시간 여행을 왜 하고 싶은가

문화 예술 방랑

[영화/어바웃 타임]당신도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영화/어바웃 타임]당신도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시간 여행을 왜 하고 싶은가

어바웃 타임

감독 리차드 커티스 출연 레이첼 맥아담스, 빌 나이, 돔놀 글리슨 개봉 2013 영국

일주일 전부터 보려던 영화였으나 오늘 저녁에야 겨우 시간을 내어 갔다.

얼마나 촉박하게 갔으면 상영시간이 지난 후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광고시간이어서 처음부터 볼 수는 있었다. 

종종 마주치게 되는 <어바웃 타임>의 리뷰에서 오로지 호평만 보았기에 기대에 차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이다.

혹시나 싶어 이 글을 쓰기 전에 리뷰들을 대충 훑어보았지만 99.9%가 극찬에 호평이다.

어쩌면 내 글을 보고 화살이 쏟아질지도 모르겠으나 지극히 사적인 의견으로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생각의 차이는 있는 것이고, 누구의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실제 삶과 거리가 있는 것에는 큰 감동을 받지 못한다.

환타지라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처럼 상징성이 있는 것이라면 괜찮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든가,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등 비현실적이지만

환타지를 환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이라면 수용하고 감동까지 하며 보게 된다.

그러나 '어바웃 타임'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상당히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팀의 아버지가 팀에게 '시간여행'에 대해 말 할 때 상상 속으로의 여행을 말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두운 곳에서 두 손을 꽉 쥐고 원하는 과거로 가면 되돌아 갈 수 있으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상상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현실적이어서도 아니다.

우리는 가끔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어느 때까지는 그러했다.

우리가 과거의 어느 시점을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가 불만족스럽다는 말과도 같다.

나는 남편과 이 주제를 가지고 오래 전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게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1학년 때까지 나는 그야말로 공부밖에 모르던 아이였다.

나는 그저 공부하는 것이 좋았고, 좋은 성적을 얻어 주위 사람들에게 늘상 칭찬받는 것도 자랑스러웠다.

학교 선생님들로부터는 귀염을 받았으며 마음 속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하여도 학년 수석을 몇 차례 할 정도였고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춘기가 늦게 시작되었는지 공부밖에 모르고 살아 온 나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부러 공부를 등한시하였고 성적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등수들이 차례차례 찾아왔다.

그 동안 대부분 최상위권에서 맴돌았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그 때 성적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무언가를 연구하고 그 분야에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는

내 기질에 맞게  뛰어난 학자나 교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말을 했을 때 남편은 한방으로 내 생각들을 다 날려 버렸다.

만약 그랬다면 남편과 내가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늘상 그 생각만 하고 있었지 현재를 잊고 있었다.

남편도 아이도 못 만났을 것이란 생각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 생각을 아예 버려 버렸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여기에서도 모든 일을 다 새로이 시작할 수 없다는 장치는 해 놓는다.

과거를 되돌려 바꿀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가벼운가.

아픔도, 상처도, 힘듦도, 연필로 쓴 글씨처럼 다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냉혹한 것이며 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21살의 나이라면 세상 속으로 직접 뛰어 들어가 몸과 마음으로 부딪혀 보아야 한다.

무너지고, 깨지고, 절망하면서 삶이 무엇인지 배워나가야 한다.

어려울 때마다 마법 카드처럼 현실을 뒤바꾸어 놓는다면 정작 힘든 일이 찾아 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마법카드는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여행'을 핵심 소재로 쓴 것에 대해 가장 큰 실망이 왔다.

팀이 워낙 건전한 청년이고 마음이 따스하여 좋은 방향으로 시간여행을 했다손치더라도

자신을 위해 과거를 되돌릴 때 다른 사람의 인생이 180도 바뀌기도 하였다.

이것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삶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 듯 쉬운 것이 되어서야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영화에 빠져서 보다보면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이것은 분명, 한 사람의 이기적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삶까지 원치않는 방향으로 뒤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일이다.

팀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로부터는 시간여행을 하지 않으며

열심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는 그 사이 적지않은 시간여행으로

사랑을 얻고, 좋지 않은 상황을 만회하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여행이 강조되어 보였다.

그래서 감독이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지만 나는 반대로 받아들여졌다.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단 일회성의 결과만 있다.

비록 지난 일이 후회스럽다 하더라도 본인이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 결정하였는데 그것이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아무리 권능한 신일지라도 그것을 바꾸어 놓는 일은 없다.

대신 우리는 그런 일을 통해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누군가를 아무리 원망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나는 이 영화의 전체가 다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알고, 주인공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왜 꼭 '시간여행'이라는 비현실적인 수단을 썼느냐 하는 점이다.

아직 삶을 많이 살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환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점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20대 초기에 봤더라면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반열에 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랑이나 따스함을 강조하기 위해 비논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장치들을 사용한 점이 눈에 거슬렸다.

또한 전반부에서는 팀이 사랑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시간여행을 하면서

후반부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그리고 상상으로야 백번도 가능하지만 하루를 어떻게 두번 살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억지스럽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영화에 그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니면 가족간의 따스함이 많이 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족의 해체현상이 급증하고 있으니 따스한 가족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파고들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런 따스한 가족영화나 이야기가 그 동안 드물었거나...

메리에 대한 팀의 순정과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아버지와 아들(팀)의 대화, 부자간의 탁구경기, 

젊은이들의 자유스런 생활과 선택, 그것을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멋진 촬영지, 명대사 등이

비논리적인 것들을 가려버리게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삶이 일회성이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측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므로 현실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며, 어떤 일을 선택할 때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마음 먹은대로 다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그래서 나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아름다운 추억은 몇번이고 되새기이어서 현실의 삶에 용기와 에너지를 얻기를 바라지만

후회되고 아쉬운 것들은 떨쳐버리고 지금의 시간에 최선을 다해 다가오는 시간들을 잘 맞이했으면 좋겠다.

이상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실망이 컸기에 리뷰를 쓸 생각이 없었으나 나 하나쯤 반대의 평을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엉성하게 짜여진 구조와 내용들에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무나 큰 기대를 하고 간 탓에 실망이 컸을 수도 있으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 주어서 꼭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그리고 우리 큰 아이와 이 영화를 함께 보았고, 걸어 오면서 서로 소감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