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잘못 맞으면 - chim-eul jalmos maj-eumyeon

침을 잘못 맞으면 - chim-eul jalmos maj-eumyeon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인터넷에 ‘소화 안 될 때 누르는 곳’이라고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게시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족삼리혈(穴)을 침으로 다스리면 기혈(氣血)이 상향(上向)하여 위(胃)를 보위한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강중원 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이 문장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더니 이렇게 풀어줬다.

“족삼리혈은 무릎 아래의 바깥쪽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위 건강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 부위를 자극하면 혈관미주신경과 교감신경 반사를 활성화해 위 운동을 조절하기 때문에 위경련이나 소화불량이 개선될 수 있다.”

‘혈’이라는 단어 외에는 일반 병의원 의사에게 설명을 듣는 것 같았다. 강 교수는 “각종 질병에 대한 한의학 치료의 효과를 과거에는 ‘기혈을 원활하게 해서’라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요즘은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매년 1100만명 이상이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을 찾지만 한의학은 사용하는 용어가 어렵고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최근 한의학계는 용어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바꾸고, 한의(韓醫) 치료의 과학적인 근거를 밝히는 연구를 진행해 유명 학술지 등을 통해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해외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은 작년 10월 쥐의 뒷다리 족삼리혈에 전기 침 치료를 시행한 결과 전신에 염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한의학의 과학적 검증 작업에 앞장서고 있는 한의사다. 특히 주력 분야인 침, 부항, 뜸 등 비약물 치료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를 많이 해 유명 학술지 등에 발표하고 있다. 강 교수에게 침, 부항, 뜸 치료의 과학적 근거는 무엇이며 이들 치료법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자세히 물어봤다.

한의 치료는 크게 한약 치료와 비약물 치료로 나뉜다. 강 교수는 “비약물 치료는 증상이 있는 부위나 증상과 무관한 부위를 치료한다”며 “가장 많이 활용하는 침 치료는 국소치료와 분절치료, 전신치료로 분류한다”고 말했다.

- 국소치료는 어떤 원리로 증상 개선을 돕나. “국소치료는 이통위수(以痛爲兪), 즉 통증이 있는 곳에 혈자리가 있다는 전통 지침에 기반을 두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다. 국소치료는 증상이 나타나는 조직의 변화와 반사를 유도해 혈액 공급을 개선하고 근막유발점(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목표다. 침을 자침(刺鍼·침을 꽂음)하면 그 부위에 아데노신 등 혈관 확장 물질이 분비되어 혈액 공급이 좋아진다. 아데노신은 통증 신호가 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을 억제해 통증을 줄이기도 한다. 또한 국소치료는 근막유발점을 비활성화해 근육의 기능을 정상화시키고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

- 분절치료는 무엇이며 어떻게 효과를 내나. “피부와 근육은 부위에 따라 묶음으로 나눠져(분절) 각각 다른 레벨의 척수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가 아니라도 같은 분절에 속한 피부나 근육 부위를 자극하면 척수의 후각에서 통증의 문을 닫는 방식으로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또한 척수는 자율신경계를 통해 방광, 장 등 각종 장기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피부나 근육을 침으로 자극하면 자율신경계가 조절되어 같은 분절에 해당하는 장기의 기능 정상화를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방광 기능 이상을 치료하기 위해 종아리 피부나 종아리 근육을 자극하는 이유는, 방광과 종아리가 S2(두 번째 엉치뼈) 척수와 같은 분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는 피부나 근육과 형태는 달라도 발생학적으로 보면 근원이 같다.”

- 전신치료는 어떤 원리인가. “침 치료 자극이 중뇌에 있는 수도관주위회백질(PAG)을 기반으로 하는 통증 조절 중추신경에 작용해서 통증을 줄일 수 있다. 침 치료를 통해 PAG를 자극하면 베타엔도르핀,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물질이 분비되어 통증 조절을 돕는다. 또 통증은 우울감 같은 감정·정서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데, 침 자극을 통해 감정·정서적 반응을 담당하는 뇌 변연계의 활성을 조절함으로써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

침 치료라고 하면 한의사가 손으로 직접 침을 피부에 꽂는 모습을 연상하지만 요즘은 침 치료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진다. 전기 침, 레이저 침, 매선요법 등이다.

- 전기 침은 일반 침과 무엇이 다른가. “전기 침(전침) 치료는 한 쌍 이상의 침을 혈자리에 꽂아 전류를 연결함으로써 침 자극과 전기 자극을 동시에 일으켜 치료 효과를 높인다. 자극의 강도가 일반 침보다 강하기 때문에 중증도가 심한 질환이나 강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질환 치료에 많이 쓴다. 특히 요통이나 관절통 같은 통증 질환이나 뇌졸중, 안면마비와 같은 마비 질환에 효과적이며 침술 마취에도 응용한다. 기능성 소화불량과 같은 내과 질환에도 활용될 수 있다.”

- 레이저 침은 어떤 경우에 사용하나. “레이저 침은 저출력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여 혈자리나 치료 부위를 비침습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침 치료와 유사한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통증이 없어 침을 두려워하는 환자나 소아에게도 시술이 가능하며, 감염의 위험이 없고 자극의 정도를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일반 침 시술이 어려운 예민한 부위에도 시술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레이저 침은 근막동통증후군, 외상과염, 수술 후 오심, 만성 긴장성 두통, 섬유근통 치료와 금연 보조 등에 효과적이라고 보고되고 있다.”

- 요즘 유행하는 매선요법은 어떤 효과가 있나. “매선요법은 침에 폴리디옥사논이나 봉합사 같은 약실을 부착해 혈자리나 통증 부위에 매입함으로써 약실이 장기적으로 남아 지속적인 침 치료 효과를 내는 치료법이다. 실이 4~5개월간 남아 자극을 지속해, 면역을 활성화하고 국소 부위의 재생을 돕는다. 이전에는 주로 추간판탈출증, 무릎관절염이나 안면신경마비 후유증, 뇌졸중 후유증 등 마비 질환에 많이 활용했으나 최근에는 얼굴 리프팅이나 비만과 같은 미용 성형 분야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 침 치료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안전한가. “침 치료를 받은 8만52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020년에 시행한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별도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미한 이상반응이 대부분이었으며, 감염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은 5건이었다. 침 치료는 정규 교육을 이수하여 숙련되고 주의 깊은 전문 의료인에 의해 이루어지면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안전한 치료법이다.”

- 침을 잘못 맞으면 몸이 뒤틀리거나 일부 마비가 올 수 있다는데 사실인가. “자침할 때 방향이나 각도, 깊이가 적절하지 않고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 뇌(뇌간이나 소뇌)나 척수를 직접 찔러 손상시킬 경우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훈련된 전문 의료인에게 치료를 받는다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침을 잘못 맞으면 - chim-eul jalmos maj-eumyeon

비약물 치료로는 침 외에 부항과 뜸이 널리 쓰인다. 강 교수는 “침, 부항, 뜸 치료는 외형적으로 시술이나 자극의 형태가 서로 달라 보이지만, 서로 배타적으로 다른 치료 기전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공통적으로는 체표에 작용함으로써 국소 및 전신에 걸쳐 치료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치료의 목적에 따라 상호 보완이 되도록 선택, 조합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부항 치료는 어떻게 효과를 내며 어떤 경우에 시행하나. “부항요법은 플라스틱이나 유리 등의 재질로 된 컵을 환자의 피부 표면에 흡착시켜 공기를 제거함으로써 발생하는 최대 600㎜Hg의 음압을 이용한다. 시술 부위의 피부와 피하조직을 늘어나게 하고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간질액(세포 사이에 있는 액체)의 가스 교환을 돕고 혈류량과 산화헤모글로빈의 농도를 증가시켜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치료법이다. 건강 증진이나 질환 예방에서부터 허리, 목, 발목 등의 근골격계 통증이나 편두통 같은 통증 질환, 고혈압, 천식, 기능성소화불량 등 내과 질환, 뇌졸중, 안면마비 등 신경계 질환, 불면증 등 신경정신과 질환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다.”

- 부항 치료로 짙은 색의 피가 나오는 것이 좋은가. “부항은 일반적으로 출혈을 동반하지 않는 건(乾)부항을 실시한다. 그러나 습(濕)부항은 치료를 위해 사혈(피를 뽑아냄)을 유도한다. 이때 사혈되는 혈액은 정맥혈로 동맥혈에 비해 산소 함량이 부족해 비교적 어두운 색이지만 ‘죽은 피’가 아니라 정상 범위의 혈액이다. 그러나 국소순환장애가 있어 산소 공급이 많이 떨어지면 사혈된 혈액이 더 검붉고 탁할 수 있다. 습부항은 근육 등의 산화물질을 원활히 제거하고, 사혈 시 손상된 정맥이나 모세혈관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면역반응이 촉진되어 치료 효과를 높인다.”

- 뜸은 어떤 경우에 주로 시행하나. “뜸 치료는 쑥이나 약물을 사용하여 혈자리나 환부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열자극을 가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말한다. 국소적으로 치료 부위의 온도를 높여 혈액 순환을 증가시키고, 전신적으로 면역, 항염, 진통 효과를 볼 수 있다. 척추관협착증, 추간판탈출증, 퇴행성관절염 등의 척추관절 질환, 뇌졸중, 안면마비 등 마비질환, 설사, 기능성소화불량 등 소화기 질환, 월경통, 월경곤란 등 여성 질환뿐만 아니라 만성피로나 암성피로 등에도 널리 시행되고 있다. 또한 면역기능 향상도 돕는다.”

- 뜸이 어떻게 면역기능까지 좋게 하나. “열자극으로 인해 신체 조직이 일부 손상되면 손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활성화된다. 소염, 진통, 면역 조절 물질들이 배출되어 손상 부위와 전신에 작용하는 것이다. 침과 부항도 상당 부분은 같은 원리다.”

- 쑥 사용 외에 다른 방법도 있나. “전통적으로는 쑥을 많이 사용해왔지만, 치료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하고, 조작이나 온도 조절의 어려움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레이저, 전자기, 고주파, 초음파 등 다양한 자극을 열원으로 활용하면 치료 목적에 따라 열의 세기나 자극의 깊이 등을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안면마비와 뇌졸중 환자를 특히 많이 진료한다. 안면마비나 뇌졸중은 병의원보다 한의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두 질환 모두 급성기인 경우 병원이나 양·한방 협진병원에서 빠른 조치를 받는 것이 우선이다”라며 “재활 부문에서는 한의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안면마비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안면마비의 대부분은 뇌로부터 뻗어나온 말초신경인 안면신경에 바이러스가 침범해서 발생하는 말초성 안면마비(벨마비)다. 따라서 초기에는 병원에 가서 고용량 스테로이드제나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신경 손상으로 인해 지속되는 운동 마비에 대한 치료는 한의학에서 연구가 많이 되어 있다. 침 치료나 온열 자극, 안면 자가 운동, 한약제 복용 등으로 남아 있는 신경을 재교육시켜 손상된 신경의 역할을 대체하게 하는 것이다.”

- 말초신경 손상으로 인한 안면마비와 뇌졸중으로 인한 안면마비는 어떻게 다른가. “뇌졸중으로 인한 안면마비는 중추성 안면마비라고 하며, 말초성 안면마비와는 마비 패턴이 다르다. 말초성 안면마비는 한쪽 이마, 눈썹, 눈, 코, 인중, 입술 모두에 마비가 와서 얼굴 모양이 전체적으로 틀어진다. 중추성은 입만 돌아가며 반신마비, 언어장애, 감각저하, 삼킴장애, 의식저하 등이 같이 올 수 있다.”

- 찬 바닥에 엎드려 자면 입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인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안면마비의 일종으로, 눌린 부분의 혈류가 줄어들고 온도까지 낮아지면 바이러스에 취약해진다. 해외 유학 중인 고3 학생이 귀국 비행기에서 10시간이나 에어컨에 노출되어 안면마비가 발병해 치료한 사례도 있다.”

- 뇌졸중에 대한 비약물 치료는. “일반 침 치료뿐만 아니라 전침 치료도 병행한다. 마비, 언어장애 등 증상에 따라 자침 부위가 다르다. 침은 혈관 탄력성에 영향을 주고 혈류 흐름을 돕는다. 그러나 뇌동맥류나 뇌혈관기형 등으로 인한 혈관 협착 등이 있을 때는 병원에서 시술을 받아야 한다.”

강 교수는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강 교수가 최근 10여년간 준SCI급 이상의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한의학 관련 논문은 50여편에 이른다. 특히 전침 치료가 통증성 당뇨병 신경병증 환자의 증상 완화와 수면 개선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를 2018년 미국당뇨병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인 ‘당뇨병 케어(Diabetes Care)’에 발표해 주목받았다. 강 교수가 2019년에 공동 번역한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활용’은 한의학 분야 서적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세종도서 학술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강 교수는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코로나19 감염증 후유증에 대한 침과 뜸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강 교수는 “미각 장애, 후각 장애, 탈모, 원인 미상의 통증 등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증상들에 침·뜸 치료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연구를 시작했다”며 “현재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구 결과를 예상한다면. “코로나19 후유증의 일부이기도 한 탈모, 후각 장애 등에 대한 침 치료 효과 연구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침 치료가 코로나19 후유증 개선에도 효과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은 한의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한의학은 환자 개인별 맞춤 치료에 유리하지만 표준 치료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의학 분야의 방대한 임상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접목되면 치료자 개인 판단의 한계점을 극복해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침, 부항, 뜸 치료와 관련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한의 치료는 비용 대비 효과가 높아 국민건강 측면에서 장점이 크다. 또한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자격이 있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