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Show
2. 역사 3.1. 하늘이 내리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과 우승자 징크스 3.2. 준우승자 징크스 3.3. 조지명식은 항상 쪽박, 결승은 항상 대박 4. 온게임넷의 위기 5. 관련 기록 5.1.1.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10회 이상 진출자 명단 6.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대한민국 최초의 게임
방송국인 온게임넷과 스포츠 신문 스포츠조선에서 주최했던 스타크래프트 대회이자, 과거 MBC GAME 스타리그,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와 함께 스타크래프트 1 시절을 대표했던 대회이다. 또한 인터넷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대진표를 짜 주는 프로그램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근거하여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그만큼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왔던 대회였다고 볼 수 있겠다. 2. 역사2.1. 스타크래프트 11999년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99PKO)를 시작[5] 으로, 2012년까지 총 합해서 34번째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열렸다. 대회 방식은
'바둑TV'의 노하우를 받아서 사용되었고, 처음 투니버스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운영할 때의 인원들이 주축이 되었다. 프리챌배를 제외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까지는 전통적인 16강 풀리그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더블 엘리미네이션이라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방식을 사용한 MSL과 비교하여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더 잘 먹힌 쉬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운빨우승, 부커 의혹 등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방송사가 직접 스타리그를 개최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였으며[7] , 태동기였기에 이전까지 존재했던 여타 리그보다는 위상이 낮은 편이었다. 2000~2001년까지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위상이 높았던 리그는 KIGL, KGL, 그리고 앞서 언급된 PKO였다. 이중에서 KIGL이나 PKO는 케이블이 아니라 지상파 방송국인 SBS와 손을 잡고 지상파 중계까지 시도하였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온게임넷이 주관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었으며[9] , 결정적으로 2000년 말 IT버블이 터지면서 각종 게임단을 후원하거나 리그를 운영하던 IT 기업 상당수가 철수하거나 도산하면서 프로게임판 자체가 붕괴할 상황에 처하자, 앞서 언급된 3대 리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리그 및 이를 주관하던 회사들은 리그를 폐지하거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즉, 방송사들이 직접 리그를 개최하는 시대가 온 것이고, 이러한 환경 하에서 선두주자였던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2001년에 개최된 세 번의 대회를 연속적으로 흥행[10] 시키면서 차츰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전신인 2002 KPGA 투어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 브랜드가 확립된
MSL이 2003~04년경에 다른 리그들이 폐지될 때에 엄청나게 위상을 높이게 되면서 많이 사람들이 잘 아는 양대 리그 체제가 본격적으로 구축되었다. 2.2. 스타크래프트 2로 진행된 첫 리그의 의견8강 대진과 동시에 티빙 스타리그가 마지막 브루드 워 리그로 확정된 현재 스갤이나 포모스에서는 이왕 마지막이 된 거 누가 우승했으면 좋겠다, 누가
누가 결승에서 만났음 좋겠다라는 등의 판타지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반응도 있긴 하다. 앞선 5월에 열린
스타크래프트2 비전 선포식에서도 황형준 본부장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오픈리그를 개최하고픈 의향을 드러냈음을 그 증거로 꼽고 있으며, 그 비전 선포식 이후로 케스파 독단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이제 거짐 프로리그에서밖에 입김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보이콧 같은 걸 또 했다간 이제 눈총을 보낼 쪽은 단순 팬들만 있을 리가 없다. 올드팬들보다는 앞으로 스타2를 볼 신규팬들을 끌어모으는게 중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대다수가 앞선 쿼터제나 유예기간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는 못한 의견이다. 플엑에서는 몇몇 이들이 이런 제도를 주장하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질 뻔 한 일들도 있을 정도다.
중간 협의 내용이 발표되자 반응은
역시 오픈 리그로 열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사실 발표가 나기 전에, 스타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예선이 의외로 빨리 열릴거란 루머는 이전부터 돌았었고 그 이유는 스폰서가 의외로 빨리 잡혔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고 있었다. 와 함께 듀얼 토너먼트를 거쳐, 8명이 스타리그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듀얼 예선을 뚫고 올라온 연맹소속 스타2 선수들도 이 건에 대해서는 "뭐 어떠냐?" 라는 식의 반응과[16] "좀 불공평하긴 하다"라는 식의 의견이 갈렸다. 2.3. 도발과 스타판 어벤져스 VS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조용 조용히 브루드 워의 마지막 황혼을 바라보고 있었던 스타크래프트 팬덤에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 예선을 통과한 몇몇 선수들도 이 점에 대해서 확실히 어느 정도의 부담을 가진 선수들도 꽤나 있는 듯하다. 에서 웅진의 김유진이
GSL 리거 두 명 (한 명은 미공개, 한명은 StarTale 소속)을 잡는 대파란을 일으키면서 포모스, 스갤은 충격과 후련함에, 스투갤, PlayXP,
루리웹 피정게 등의 커뮤니티가 초대형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이 상태에 온게임넷과 곰TV쪽 관계자들 모두다 이 믿기 힘든 결과에 놀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김유진에게는 무언가 절박했던 플레이를 느꼈지만 GSL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도 있었다. 만 방송사 병행을 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단독주최는 사라졌지만 방송사마다 각자의 자체 포맷을 유지한다고 하니 정통성은 그대로 간다고 볼 수 있다. 2.4. 2013년 이후 더 이상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없다?그러나 통합체제에 참여하여 수많은 떡밥을 만들어낸 것이 무색하게도, 블리자드의 2014년 WCS 운영 계획에 따르면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통합체제에서 이탈하고, 앞으로의 WCS 한국 디비전은 모두 GSL이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블리자드와 온게임넷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스타 2팬
입장에서는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WCS 글로벌 대회로 인증받아 한국에서 같은 기간에 양대리그로 개최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온게임넷이 블리자드와 하스스톤 중계 및 방송제작을 합의함과 동시에, 스타리그 해설진에게 하스스톤 중계진 합류를 제안했다고 하며 프로리그 중계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WCS에 이어 프로리그까지, 온게임넷 스타2 아예 손 떼나? 2.5. 스타크래프트 1으로의 회귀?온게임넷 스타리그의 마지막 대회가 진행된 지 약 1년 3개월 후
제10차 스베누 스타리그가 온게임넷을 통해 전파를 타기 시작한 후, 차기 대회까지 소닉의 후원이 확정되면서 10차 리그가 끝난 지 3달 후 제11차 스베누 스타리그 시즌2가 OGN을 통해 방송되었다. 하지만 OGN을 통해 방송된 스베누 스타리그는 은퇴로 프로게이머 자격을 상실한 전 프로게이머들의 이벤트 매치이며, 협회/공식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다가 11차 대회를 끝으로 리그가 사실상 폐지 절차에 들어갔기에 이것을 토대로 스타크래프트 1 공식리그가 부활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이라 하면서 신랄하게 깠다. 3. 역대 대회
3.1. 하늘이 내리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과 우승자 징크스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은 하늘이 내린다고 할 정도로 프로리그에서 난다긴다 하는 선수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유난히 죽을 쑤는 경우가 많았다.[24] 특히 전 시즌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자가 연속으로 우승한 것은 10년이 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사상 단 3번 뿐일 정도로[25] [26] 매우 힘들고, 대부분의 경우 16강에서 광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우승자 징크스'라고 부른다.[27] 이 징크스는 매우 강력한데 그 이유로는 아래와 같은 이유들이 있다.
맵과 8강 대진이 추첨을 통해 정해지므로, 특정 선수 또는 특정 대진을 부추기기 위한 '맵 부커' '대진 부커' 의혹이 몇 차례 있었다. 물론 의혹은 의혹일 뿐이고, 해당 감독 혹은 코치와 함께 심판 지도 하에 이루어지는 추첨이 부커라는 말은 그냥 장난일 뿐이다. 3.2. 준우승자 징크스'처음 진출한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한 선수는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로 대부분 이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3.3. 조지명식은 항상 쪽박, 결승은 항상 대박이 말은 MSL이 '조지명식은 항상 대박, 결승은 항상 쪽박'이라는 것과 비교되는데, 우선 조지명식 같은 경우에는 구조적 문제가 컸다. MSL 고유의
스틸 드래프트는 작게나마 낮은 지명권을 가진 선수가 '도발' 이라는 요소를 통해 실제 대진으로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시청자들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빵빵 터질 때가 많았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조지명식 같은 경우에는 일단 상위 지명자가 한 번 지명하면 땡, 그리고 늦게 지명되면 선택권도 없어서 당연히 갈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을 도입해보기도 했지만, 4번 시드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3, 4위전이 폐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이후 오랫동안 스타리그 조편성의 기본 원칙이었지만 선수들 지명의 자유도를 좁혔던 종족 배분 원칙(각 조별로 종족을 최대한 균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폐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종족 배분 원칙 덕분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조별리그는 동족전이 적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원칙이 폐지된 후 동족전이 많아졌다는 논란도 생겼다. 실제로 종족배분원칙이 폐지됐던 첫 리그에선 16강
4저그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 엄재경 위원의 포장능력은 아래가 좋은 예다.
3.4. 온게임넷 스타리그 오프닝[44]
초기 온게임넷 스타리그, 특히 SKY 스타리그 2002까지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나오는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경기하고 있는 선수들 화면을 짜깁기 한 정도에 그쳐,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파나소닉 스타리그부터 경기 중인 선수를 그래픽에 편집한 것을 시작으로, 드디어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는 스튜디오에서 직접 선수를 촬영한 오프닝이 등장하면서 오프닝의 개념이 완전히 정립되었다.
가끔가다 MBC게임과 온게임넷 양 방송사를 비교하는 아해들이 개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다른 컨셉을 가지고 만들어진 오프닝에서 우열을 가리려는 것은 코미디 영화와 블록버스터 영화 중 무엇이 우월한가를 따지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상대방을 의식하며 기선 제압의 의미로 오프닝을 더 인상 깊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간지 컨셉이 괜히 오래가는 게 아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도 스타판에 관심이 있다면 서로의 오프닝을 비교해서 보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윗글에서도 '박정석 헤드셋 간지가 MSL 오프닝을 압살했다' 같은 말이 그런 맥락에서 나도는 것처럼. EVER 스타리그 04때 팔을 벌리는 장면은 위에서 언급된 박정석의 헤드셋 장면과는 반대로 안 좋은 의미로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다만 박성준이 비주얼 적으로 가오가 안사는 편이기는 하다. 4. 온게임넷의 위기온게임넷의 경우 흥행카드들이 떨어지면 흥행면에서 잇단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이 좋은 예시다. 그때 월드컵을 누르는건 불가능했으니 운명이라고 말할 수 밖에는 없다. 네이트배의 실패 이후 온게임넷은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오프관중을 많이 모으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로는 네이트배만할 흑역사는 없을 듯. 그때 반대편 KPGA TOUR 2차리그(MSL의 전신)는 스페인전과 결승날을 겹치게 해 오히려 흥행에 대성공했다.[58] 이때 뭔가를 배웠는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때는 스위스전 단체응원과 겹치게 만들어 온게임넷쪽이 흥행에 대성공했다.
5. 관련 기록5.1. 스타크래프트 1 기반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관련 기록들스타리그 13년의 기록 영상과 한국어 위키백과의 스타리그 항목에서 발췌.
위에 언급된 기록들 상당수가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기록들이다. 최초의 야구장이라던가 최초의 격납고, 최초의 제주도 이런건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기록인것 처럼 기록되었다. 쓸데 없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특징 중 하나였다.[77] 5.1.1. 온게임넷 스타리그 본선 10회 이상 진출자 명단
5.1.2. 다승 순위5.1.2.1. 통합 순위
5.1.2.2. 테란 순위
5.1.2.3. 저그 순위
5.1.2.4. 프로토스 순위
5.1.3. 커리어 순위
5.2. 스타크래프트 2 기반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관련 기록들브루드워 기록과 마찬가지로 위키 백과의 항목 발췌.
6. 관련 문서
[1] 가로형 레이아웃으로 디자인된 로고도 있었는데, 이쪽은 마우스맨이 폐지된 이후인 Daum 스타리그 2007의 결승전 무대에서 한번 더 사용되었다.[2] 이건 오인용이 맞고 게임을 홍보할 때 변형해서 써먹었다.[3] 몇몇곡들은 원곡에 속도업을 했다.[4] 물론 이쪽은 전문성을 내세우기에 그만큼 매니아층의 비중이 두껍고 해설도 정확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이에 비해 매니아층에게 많이 까였다.[5] 다만 99PKO기 온게임넷 스타리그 1회 대회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주최사인 PKO측이 자기들 주최로 99PKO의 후속리그를 계속 개최하면서 하나의 대회의 후속리그를 주장하는 대회가 2개가 되었었다. 지금은 PKO가 망한 지 오래라 대충 1회 리그로 쳐주는 경향이 있지만 당시엔 그렇지도 않았다[6] 해당 리그는 PKO라는 별개의 단체가 운영을 주관했다가 도중에 발을 빼고 나갔으며, PKO는 이후 다른 방송사와 손잡고 이후로도 여러 대회를 개최했다.[7] 지금도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그 어떤 스포츠에서도 방송국이 대회를 주최하진 않는다. 다른데서 주최하는 대회를 중계할 뿐.[8] 앞서 자금력이 막강하다는 설명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온게임넷의 자금력이 막강했다면 기존 3대리그와 비교해서 상금규모나 대회규모가 턱 없이 부족했을 리 없다.[9] 방송국 주관이 장점이라는 서술이 있었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방송국이 대회를 주관하는 것은 바람직한 구조가 아니다. 타 스포츠에서 왜 방송국이 대회를 주관하지 않고 대회 전문 주관사가 따로 있는지 생각해 보자. 온게임넷 측의 장점은 당시 동양그룹의 계열사라서 안정적 자금 지원이 가능했다는 점이지 방송사라는 부분은 장점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온게임넷 측이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른 대회주관사 보다 우위를 보인 적도 없었다. 저당시 타 대회에서는 스폰서로 삼성전자가 나서기도 했었다. 동시대 기준으로 스폰서들 수준 혹은 자금력에서 기존 메이저 대회들이 온게임넷보다 명백하게 우위에 있었으며 기존 메이저 대회들이 망하는 그날까지 온게임넷 측이 이들 대회를 경쟁을 통해서 이겨낸 것은 아니었다.[10] 이 시기에는 기존 대형 대회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면서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던 시기였다.[11] 괜히 진에어 이전에 마이 스타리그를 열고, 이번 듀얼에서 구성훈을 출전시킨게 아니다. 그래서 1.23 정전사건에서도 케스파 심판의 판정보다는 MBC GAME을 질책했던 반응이 더 많았다. 케스파는 이 두 리그에 대해서는 심판파견과 판정만 해 줄 뿐이지 방송사들이 리그를 개최하는 것과 그 체제에 대해 간섭할 수 없다. 괜히 온게임넷이 저작권 분쟁 초기 GSL 편성 제외 사건에서 엄재경이 우리가 케스파 하라는대로 하는 그런데가 아니라는 발언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12] 승부조작과 저작권 분쟁 이후 스타판과 스투판은 극도의 매니악 위주의 성향을 띄게 되었다.[13] 전용준 캐스터의 발언에 따르면 GSL에 출전하는 한국e스포츠연맹(케스파와는 다른 스타크래프트2 감독과 코치진으로 이루어진 단체)소속의 게이머들도 참가 가능하다고 하였다.[14] 정종현, 임재덕, 장민철, 박수호[15] 뱀발로 과거에 온게임넷 워크래프트 3 1회 대회도 8강 예선+기존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8명으로 16강을 구성한 적이 있다. 스1 팬덤을 끌고 가려는 고육지책인 듯 하다.[16] 데일리e스포츠쪽에서 악의적으로 편집하긴 했지만 원이삭의 일부러 만든 거만한 설정도 이유가 있다. 원이삭은 코드S 4강이라는 게 포인트, 즉 지금 상황에서 케스파 선수들 입장에선 GSL 코드 S 8강 이상은 너무나도 험난한 산이나 다름없다. 정반대의 인터뷰를 한 변현우가 생각외로 겸손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17] 예네는 한술 더떠서 전일본에서 일부가 하극상 사건 일으킨 뒤 프로레슬링 NOAH만든 뒤 삼자구도까지 펼쳐졌다. 지금은 올 투게더라는 이름으로 합동 PPV도 열고 있다. 대립이 아예 흥행까지 이끌어낸 셈.[18] 아직도 GSL 코드 S나 A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병행 프로리그 시작부터 지금 상황에서는 꽤나 게임에 대한 이해도나 유닛 활용에 있어서 꽤나 성장하긴 했다. 물론 몇몇 스꼴들은 게임에서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메카닉이라는 주장을 하긴 하지만...[19] KeSPA 소속 선수 2명과 e스포츠 연맹 소속 선수(GSL 선수) 2명이 출전하였다.[20] 결국 7월 10일 아침 정우서선수가 마지막 경기는 자기가 한 게 맞다고 하면서 상황은 일단 소강상태. 그래도 GSL선수들 입장에선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7월 10일 코드 A 경기는 선수 전원이 강제로 각성모드로 해버렸다.[21] 36강제 폐지 이후 약 2년만에 스타리그가 16강제로 치러지지 않게 되었다.[22] 카트라이더 리그는 2013년 2월을 끝으로 소식이 없다가 SPOTV GAMES로 옮겼고, MBC GAME 폐국 후 진행했던 철권 리그도 1번 열린 후 소식이 없다.[23] 스갤에서는 김택용을 온겜 우승자로 띄워주려고 한 코딱지+인방충(지금 리그가 정식으로 인정받으면 자기들도 나쁠 거 없으니)들의 행동으로 보고 있다.[기록말소] A B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한 영구 제명으로 인해 기록이 말소되었다.[24] 대표적인 예로 염보성, 신상문, 전태양, 김민철, 김대엽, 김택용이 있었다. OSL과는 영 인연이 없다. 프로리그야 단판승이고 코치와 함께 맵 하나에 최적화된 빌드와 전술을 쓸 수 있지만 개인리그는 상대도 여러명, 맵도 여러가지를 준비해야 한다.(5세트면 맵5개에 20게임씩 연습해도 100판..) 연습량도 연습량이지만 상대 분석, 심리전, 다전제 판짜기가 철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김택용 같은 경우에는 개인리그 4강 이상도 진출하지 못한 다른 다섯 선수와는 다르게 반대편 MSL에서는 첫 진출한 곰TV MSL 시즌1에서 3.3 혁명을 일으키며 로열로더 우승을 기록하고, 이후에도 두 번 더 우승하며 프로토스로서는 유일하게 단일 대회 3회 우승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사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결승만 올라가지 못했을 뿐 세번의 4강 진출을 기록하였다. 프로리그와 다승왕, MVP, 양대리그를 섭렵한 이영호와 이제동은 어찌보면 정말 대단한 선수.[25] 2001년에 임요환(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과 이제동(2009년에 BATOO 스타리그 08~09, 박카스 스타리그 2009), 허영무(2011년 진에어 스타리그 2011, 2012년 tving 스타리그 2012) 뿐이다.[26] 반대로 MSL에서는 전 대회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1번 시드의 큰 특권 때문인지 연속 우승자들이 많았다. 이윤열(3연속), 최연성(3연속), , 김택용(2연속), 이영호(2연속) 5명이다. 물론 그만큼 하위 시드자가 우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27] 우승 후 다음 시즌 8강 탈락자(따로 표시되지 않은 경우 1회): 최진우, 기욤 패트리, 변길섭, 서지훈, 박성준(2회) , 이제동(2회, 2번 다 이영호에게 패해 탈락), 박카스 스타리그 2008 우승 당시 한정으로 이영호, 송병구. 2회 연속 우승자를 제외하고 우승자 징크스라는 이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선수는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우승을 거두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한 끝에 에게 우승을 내준 이윤열과 EVER 스타리그 2009 우승 이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과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두 번이나 더 결승전에 진출하고 준우승-우승을 차지한 이영호와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진에어 스타리그 2011과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모두 준우승을 기록한 정명훈 정도밖에 없다. 참고로 우승 후 다음 시즌 4강 탈락 사례는 없다.[28] 실제로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을 다 자기보다 아래로 본다'는 식의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29] 2회 준우승[30] 사실상 첫 결승에서 준우승한 선수는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법칙을 만들어낸 선수[31] 2회 준우승[32] 2회 준우승[33] 하지만 이 멤버들 중에 유일하게 메이저대회(MSL)에서 우승을 달성했다[34] 준우승 이후 다음 대회에서 우승을 달성했다[35] 이 둘은 서로를 잡고 우승. 정명훈은 송병구가 자신을 잡고 콩라인을 탈출한 뒤에 송병구를 잡고 우승했다[36] A, B, C조의 세 시드권자가 D조에 들어갈 선수를 각각 한명씩 지명하는 방식.[37] 물론, 엄재경 해설이 본좌라인 들어간 것은 엄재경이 '식신 본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임이최마엄론이 나온것은 라이벌(?) 김캐리와의 스타대결에서 여러차례 이겼기 때문이다(...)[38] 혹은 결승까지 올라가는 16강, 8강 대진이 드라마틱하거나[39] 결국 MSL은 끝날 때까지 저그 VS 저그 결승이 4번이나 열렸다.[40] 김캐리에게 묻히는 감이 있지만, 엄재경 해설위원도 업계에서 유명한 저그빠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저저전 결승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스타리그에서 처음으로 나온 저저전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3:0의 일방적인 결과가 나와서 마음이 바뀌었을 것 같지만.[41] 풀세트 까지 가면서 밤늦게서야 경기가 끝났는데 팬들의 귀가를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없었다. 결승전이 벌어진 김포공항 격납고는 주변에 인가가 없는 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고 경기가 끝난 시점에 대중교통편은 모두 끊긴 상태였고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 어둠 뿐이었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다면 살인이나 강간 같은 사건이 터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어둠속에서 노숙을 하거나 무작정 밤길을 걸어간 팬들이 상당히 많았다. 온게임넷 측도 대한항공 측도 팬들의 귀가 안전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기들 끼리 퇴근하였다.[42] 특히 4강의 이영호VS정명훈(약칭 꼼덴록)은 다섯 경기가 모두 머머전에 비견될 만큼 최고의 명경기였고, 이재호와 이제동도 적당한 날빌과 쇼부등을 통하여 임진록에 비견될 만큼 흥했다. 그리고 결승인 리쌍록도 경기력 자체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3경기 투혼#s-1에서의 치고 받는 명경기와 5경기 폴라리스랩소디에서의 사활을 건 대혈투로 매우 흥했다.[43] 허영무, 김명운, 정명훈, 이영호. 택뱅리(이제동)가 없고 사실 반대편에서 허영무가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에 정명훈, 이영호 누가 올라가도 대박대진이 만들어진 것. 게다가 4강 김명운전에서 허영무는 사실상 진 경기나 다름없는 4세트를 기적적으로 역전하고 이후 5세트를 따내 세트스코어 3:2로 역전하여 진출함으로서 특히나 열성팬들이 많은 프로토스빠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등에 업고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44] 몇몇곡들은 원곡에 속도업을 했다.[45] PD와 장난을 치다가 기타를 치는 모션을 취했는데 그게 그대로 오프닝에 나와버렸다.(...)[46] 이때 안습이었던 것은 박용욱. 특이한 포즈로 점프한 장면을 보고 순식간에 '메뚜기' '메뚝토스' 등의 별명이 붙었다.[47] 게다가 전 대회 우승자인 한동욱에 대한 성의도 잊지 않았다. 역대 최악의 오프닝인 진에어 스타리그 오프닝과는 대조적[48] 하지만 프링글스 MSL 시즌 2 오프닝도 상당히 좋은 평을 받는 오프닝이다. 카툰 컨셉을 밑의 에버 스타리그 오프닝보다 먼저 실현한 오프닝.[49] 사실 이건 MBC GAME 쪽도 마찬가지여서 프로리그 오프닝에 쏟았던 역량을 MSL 오프닝에 쏟기 시작하면서 양 방송사 모두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를 기점으로 하여 프로리그 오프닝은 SKY 프로리그 시리즈와 비교하였을때 크게 퀄리티 하락이 느껴질 정도였다.[50] 당시 베이징 올림픽을 중계하던 MBC에서 이 노래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51] 동작 자체도 본편이랑 비교해서 엄청나게 유치했고 음악 중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가사와는 무관)을 삽입했다.[52] 탑 위에서 웃통 깐 김정우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날개를 펴는 내용인데 오프닝에서 김정우가 펴고 있는 날개가 철권 6 BR에 나오는 캐릭터인 데빌 진의 날개와 비슷했다. 참고로 그 당시 옆 동네는 TEKKEN CRASH 시즌 5 본선이 펼쳐지고 있었고 결국 데빌 진을 들고 나온 통발러브가 우승했다.[53] 문외한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누가 주인공인 것 같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이제동이라 답할 정도다. 티원팬 입장에선 진짜 치가 떨릴 지경,[54] 더군다나 이제동이 또 16강 탈락해버리면서 배로 까였다.[55] 단, 티원팬들에게는 인쿠르트 스타리그 못지않은 흑역사 취급.[56] 사실 이부분도 당시 양대리그 2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기록한 박성준을 준우승 5회의 홍진호와 동급으로 밖에 안봤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것 마저도 홀대접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홍진호의 5회 준우승 중 3번은 MBC 게임에서 거둔 성적이고 온게임넷만 따지면 준우승 2번이 전부다. 박성준의 우승 준우승 기록은 전부 온게임넷에서 거둔 성적이라서 온게임넷 내에서의 성적으로 비교하면 격차는 훨씬 더 커진다.[57] 당시 준우승자인 강도경도 손색없는 흥행카드였다. 다만 월드컵의 열기에 희생됐을 뿐.[58] 더불어 역대 최초 리버스 스윕도 나왔다.[59] 총 경기 횟수 리스트에 신한 프리마스터즈(1343~1357), 신한마스터즈 (1358~1369) 경기가 포함되어 있다.[60] 신한마스터즈를 제외하면 EVER 스타리그 2009 16강 C조 1경기 정명훈(T) VS 김윤환(Z) in 태풍의 눈이 된다.[61] 다만 이당시 최진우를 랜덤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최진우 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최진우를 저그로 간주했다 이당시엔 온리 특정 종족만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맵과 상대에 따라서 종족을 바꿔서 플레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기석 봉준구 등등 동세대 다른 프로게이머들 대부분이 이런식이었다.[62] 최진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엔 주종과 부종이라는 개념이 있었지 온리 특정 종족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였기 때문이다.[63] 최진우가 랜덤이라는 논리면 국기봉도 랜덤이 될 수 있다. 국기봉도 종족이나 맵에 따라서 저그 외의 타종족을 고르는 일이 가끔 있었다.[64] 항목이 홍진호로 되어 있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정보다. 홍진호는 양대리그 통합해서 5회 준우승이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기준 최대는 임요환과 정명훈이 맞다. 단 MSL에서는 3회 준우승으로 홍진호가 이윤열, 이제동과 함께 최다 준우승 타이 기록을 가지고 있다.[65] 참고로, 역대 양대 리그 최고 승률 우승자는 이제동이다. NATE MSL 13승 1패 92.9% 기록[66] 역대 양대 리그 통틀어 최저 승률 우승이다. 여담으로 MSL 최저 승률 우승은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 15승 7패(승률 68.18%)를 기록하며 우승한 박태민이다.[67] 특별 골든마우스를 받은 홍진호(28세 7개월 24일)는 논외[68]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모든 기록 말소[69] 참고로 이영호가 가장 많은 경기를 치름(12전 11승 1패)[70] 공교롭게도 MSL도 최다 출전 우승 기록이 조용호의 9회이다.[71] 양쪽 모두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 처리되어 기록 말소.[72] 승부조작범의 기록이 몰수됨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이제동의 3:0 몰수승이다. 실제 스코어도 3:0 셧아웃이었고.[73] 참고로 MSL 및 양대 리그에서는 최연성이 최초로 달성하였다.[74] 마지막 야구장 결승전이기도 하였다. 야구장은 결과적으로 컴퓨터 게임 대회를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라운드에 관중이 직접 들어갈 수 없으니 선수들과 팬들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75] 추산치이다. 정확하지는 않다[76] 정확히 말해서 오프라인 결승전이 행해진 초창기 온게임넷 스타리그 관중이 더 적기는 하다.[77] 격납고는 단순히 스폰서인 대한항공을 홍보하기 위해서 정해진 경기 장소였을 뿐 경기하기에 좋은 장소도 관람하기에 좋은 장소도 아니었다. 실제로 외진곳에 교통편도 거의 없는 격납고 결승은 대 참사가 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과연 대한항공이 스폰서가 아니었으면 격납고에서 스타 경기를 했을까? 할 이유가 있을까? 야구장 역시 관중석에서 보기엔 너무 멀었다. 야구장은 야구 하라고 만든 곳이지. 스타하라고 만든 곳이 아니다. 일반적인 스타경기장이나 혹은 보통의 야외 무대외 비교해서 뭐라도 나은 점이 있어야 의미가 있을텐데 아무 것도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스타팬 누구나 자기집에서 OSL 결승전을 한다 쳐도 최초가 될 수 있을것이다. 근데 그 최초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장소라면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장소에서 이후에도 계속 경기를 했을 것이다. 최초의 제주도도 웃긴게 서울 밖을 따로 기념 하는 갓도 웃기지만 이미 서울 밖의 도시인 대구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제주라고 또 최초라는 식이면 전국 어디를 가도 다 최초가 된다. 이런식이면 최초의 서울 결승도 기념 했어야 하고 각 지역별로 다 최초로 기념해야 한다. 제주도 서울 밖에 포함이 되는데 대구와 달리 봐야할 이유가 없는데 또 따로 기념하는 식이면 모든 결승전, 모든 경기를 다 기념해야 한다. 대부분이 최초이자 마지막인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78]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신한은행 마스터즈 기록 포함.[79]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신한은행 마스터즈 기록 포함.[80]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신한은행 마스터즈 기록 포함.[81]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82] 챌린지리그, 듀얼토너먼트, 신한은행 마스터즈 기록 포함.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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