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서로를 너라고 했는지

운동화끈을 매다가 출발 소리를 듣지 못하는 ‘타이밍’을 모르는 윤석 선배 그 선배가 찾아와 ‘연애가 끝났다’고 허탈해 하나, 그날은 나도 연애를 정리한 날이었다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잠든 선배를 흔들며 ‘헤이 선배’하고 불렀다

왜 우리는 서로를 너라고 했는지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윤석 선배는 이를테면 이런 사람이었다. 글을 쓴다고 한다면 이것을 써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지루하게 설명하다가 결국 본론에는 이르지도 못하는 사람, 이제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출발선 앞에서 운동화끈을 꼼꼼하게 매다가 탕, 하는 출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전주가 긴 노래를 선택해서 지루해진 부장이 야 그거 끄고 다음으로 돌려, 하는 바람에 마이크에 한 소절 부르지도 못하는 사람. 선배의 모든 것은 너무 늦거나 아니면 이른 지점에만 머물렀다.

그래서 어느 저녁 선배가 회사 앞으로 찾아와 연애가 끝났어, 하고 허탈해할 때 나는 타이밍이 안 맞았겠지,라고 위로했다. 선배는 자기의 끝난 연애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친구들과 만난 어느 자리에서 보기까지 했는데도 그녀에 대한 묘사가 너무 촘촘했고 그 헤어짐을 그날의 자정에 통보받았는데 이야기를 그 아침의 전체회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회의자리에서 이런저런 불운한 뉴스들을 들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자정의 실연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 아니었을까부터 시작해서 점심에 복국을 먹으러 갔는데 그 수조에 복어들이 불길하게 죽어있었고 오후쯤에는 그녀가 자신의 SNS에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다,라는 말과 함께 셀피를 올렸으며 그러자 자기 마음이 얼마나 무참해지기 시작했는지부터. 그건 말 그대로 사족으로만 이루어진 길고 긴 사연이어서 나는 “그러니까 권태기를 못 이겨서 둘이 헤어졌다는 것이지?” 하고 정리하고 말았다. 선배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데”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가 찾아온 날이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나도 막 연애를 정리한 터이기 때문에. 매사에 너만 힘드냐, 나도 너만큼은 힘들다는 식이라서 선배가 늘어놓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마음에 착 감기지 않고 마치 탱탱볼의 표면처럼 튕겨나갔다.

“선배, 그 애인한테 돈 꿔줬어요?”

“돈? 돈, 아니.”

“선배 나는 사백이나 빌려준 애인한테 돈도 못 받고 헤어졌다고요.”

“경이야, 너, 사백이나 있었어? 언제 모았니? 사백을?”

“아씨, 선배, 요즘 같은 세상에 사백이 있어야 빌려줘요? 신용 대출이란 게 있잖아요, 카드회사나 은행에서 야 너 믿을 만하다, 너 믿는다 해서 한 사백은 어떻게 어떻게 빌려주고 나는 그 돈을 또 그 남자한테 너 믿는다, 완전한 트러스트, 믿어, 믿는다고 했다가 뜯기기도 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지금 나 놀려요?”

이별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연애의 상처는 말미잘처럼 촉이 완전히 살아 있어서 나는 흥분 상태였다. 선배는 내가 화를 내자 기분이 상했는지 나는 농담을 하려고 했을 뿐이야,라고 변명했다. 나는 그렇다면 이번에도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하고는 눈앞에 있는 하이볼을 벌컥 마시고 일어섰다. 그래도 오랜 연애를 정리했다고 저렇게 풀이 죽었는데 싶어서 술값을 내려고 하자 선배가 자기 신용카드를 먼저 점원에게 내밀었다. 이번에는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술집에서 나온 우리는 밤의 적막을 안전하게 뒤집어쓰고 있는 주택가를 걸어서 대로변으로 나왔다. 선배는 취했는지 걷는 동안 자꾸 보도블록 밖으로 발을 헛디뎠는데 그러면서도 휴대전화를 계속 확인해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화면이 켜져서 선배의 손안이 환해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그렇게 휴대전화에 매달리는 것은 이별 후 최근 일주일 동안 내가 가장 자주 했던 행동이었다.

“선배, 하지 마요, 하지 마.”

“내가 뭘?”

“전화해서 자니? 잘 지내? 이런 거 하지 말란 말이에요. 타이밍이 전혀 아니라고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대체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다 끝났지. 끝이 나면 그냥 끝이 난 것 아닌가. 쓱 썰어낸 무처럼 관계는 동강 나고 이제 내가 감당해야 할 상처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밤길은 조용했다. 지나가는 자동차들 소리가 청량하고 반갑게 느껴질 만큼. 도시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괴로운데 또 막상 한적해지면 그렇게 비어가는 공간이 쓸쓸함으로 채워져서 문제였다.

선배는 자기가 너무 궁상을 떨었다 싶었는지 다른 대화할까, 하고는 대학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교수들의 안부에서 출발해 동기들의 근황 그리고 최근에 도서관이 다시 지어졌다는 지엽적인 정보까지. 나는 선배가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사족이 긴가 싶었는데 결국 얼마 전 출판사 일로 김 강사를 만났다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김 강사는 모교 출신의 대학 강사였는데 학교 재단 측에 밉보여 강단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재단이 김 강사를 마뜩잖아 한 건 그 즈음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에 썼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히 열정적인 비판적 지식인이었지만 뭔가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심지어 우리와 토론수업을 하다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강의실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학생 중 누군가가 왜 우리가 해고된 노동자들을 도와야 합니까?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열심히 했으면 안 잘렸을 것 아니에요,라고. 다음주에도 그는 강의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빈 강의실에 앉아 그가 ‘경제학의 이해와 적용’이라는 강의명을 지운 뒤 쓰고 간 “깨어나자!”라는 말을 마주해야 했다. 그 일은 나중에 학교가 김 강사를 해고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가 강의를 하지 않는 동안에도 웹을 통해 수업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선배는 지금 김 강사가 투병 중이라고 했다.

“선배 그때 김 강사가 수업 안 들어왔던 거 기억해?”

“당연하지,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지금까지.”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데 완전히 취한 듯한 한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어이, 하고 우리를 불렀다. 등산복을 입은 그 남자는 우리 둘 다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데 또 한번 야! 하고 그가 불렀다. 저요? 하고 내가 묻자 그래, 너네 건방진 것들,이라는 욕설이 날아왔다.

“너네가 기세가 등등해서 세상이 바뀐 줄 알고, 야씨 언제까지 이게 갈 것 같아, 이 건방진 것들.”

내가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어서 한마디 하려고 하자 선배는 야, 취했으니까 그냥 가자, 하면서 잡아끌었다. 계단을 다 내려가서도 내가 왜 난데없이 욕을 먹어야 하나, 지금 나에게 보여준 그 적의란 대체 뭔가 싶어서 가서 따져야겠다고 흥분했는데 선배가 다시 완전히 취해 있잖아,라고 했다. 지금 가서 되물어도 대화가 안될 거야.

우리는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입안이 텁텁해서 껌을 꺼내려고 가방을 내리는 순간, 오래전부터 달고 다니던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선배 가방을 보니 선배의 것에도 크기는 조금 다르지만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렇다면 그 초로의 남자가 보여준 적개심은 아마도 선배와 나 둘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 남자의 상실은 그런 식으로 매번 리본을 단 누군가들을 맹렬히 향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김 강사는 그러면 이제 책만 쓰는 거예요? 강의는 못하고?”

“아니야,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어. 그때까지 몸이 견딜지는 모르겠지만 강단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그런 때가 오겠어요?”

“오지 않겠어? 우리도 괜찮아질 때가 올 것이고. 그런데 그런 때가 오더라도 왔는지 모르면 말짱 꽝일 텐데, 내가 영 눈치가 없어서.”

“그러면 내가 신호를 줄 게요.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아직은 아닌가?”

“아직은 아니죠. 아직 사백도 입금이 안됐고.”

왜 우리는 서로를 너라고 했는지

선배는 내 말에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다, 하고 웃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아픈 사람의 어두운 기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하철은 한참이나 들어오지 않고 선배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이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막차인가 싶은 지하철이 터널 끝에서 바람을 몰고 들어올 때쯤 나는 선배의 가방을 흔들며 헤이, 선배, 하고 불렀다. 잠이 들었던 선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면서 타이밍 딱 맞췄네,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어떠한 서론도 없이 단순하고 명징하게,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어딘가 말개진 얼굴을 하고.

▶필자 김금희

소설집으로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