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페르세폴리스 왜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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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 제국의 영원한 수도

입력 : 2010-08-22 14:31:57수정 : 2010-08-23 08:54:01

페르시아제국(현 이란)은 광활한 이란 고원에서 시작해 로마제국과 이슬람 문화가 태동하기 이전에 거대한 문명을 만들었다. 그들인 남긴 섬세하고도 화려한 예술품에서 그들의 지혜와 문화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페르시아제국은 서쪽으로 마케도니아와 리비아, 동쪽으로 인더스 강, 북쪽으로 아랄 해, 남쪽으로 페르시아 만과 아라비아 사막까지 이르는 강성한 제국을 건설했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무릎을 꿇기 전까지 페르시아제국은 지금의 중동지역에서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영원한 제국을 건설했다. 페르시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다리우스 1세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바로 아케메네스제국에서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왕들로 유명하다. 이 제국의 중심에는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페르시아제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그리스인들조차 모를 정도로 산이 많은 외딴 지역에 세워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시아의 수도인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아케메네스 왕조의 또 다른 은밀한 왕궁이 있었던 것이다.

삭막한 황무지에 엄청난 돌기단과 돌기둥이 서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제국의 여름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은 기원전 6세기 다리우스 1세가 수사에 이어 건설한 수도로서 크세르크세스 1, 2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 2세에 이르기까지 150여 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궁전, 기록보관소인 아파다나, 보물창고 등 페르시아인들의 예술적 영혼을 담은 도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진정한 힘과 문화가 느껴진다.

찬란한 페르시아의 영화로움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페르세폴리스보다 더 오래된 제국의 수도인 시라즈를 가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인 도시 중에 하나인 시라즈는 페르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하페즈와 사디의 고향이다. 페르시아 문명의 발상지인 파르스 지방의 수도였던 시라즈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시작된 곳으로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1세 때 페르세폴리스로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제국의 수도였다. 고대 파르스 지방에서 사용하던 파르시아어가 현재 이란의 공식 언어인 것으로 봐서 이곳이 얼마나 유서 깊은 도시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해발 2000m에 이르는 이란 고원에 세워진 시라즈는 아리안족, 사미족, 터키족 등 다양한 민족이 살았으며 이들이 한데 어울려 페르시아 문화를 형성하였다. 지금은 페르세폴리스와 마찬가지로 도시는 황량한 옛 터만 남고 과거의 영화가 한 줌의 빛으로 사라졌다.

남루한 과거의 역사만큼이나 낡은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려가면 아케메네스 왕조의 꿈과 희망이 스민 페르세폴리스를 만난다. 2000여 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 속으로 눈과 마음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다리우스와 그의 아들, 그리고 페르시아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마주하게 된다. 1930년대 이곳이 발견되기까지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 대제국의 열정과 꿈이 시간과 모래 속에 오랜 시간 파묻혀 있어야 했다. 모든 역사현장이 그렇듯 이곳도 대부분이 파괴된 채 앙상한 돌 가지만이 남아 있다. 특히 황량한 사막 같은 척박한 곳에 왜 다리우스 부자는 수도를 건설하였을까? 18m에 이르는 석축 위에 왕궁을 짓고 그 아래 평편하게 건설된 페르세폴리스는 이탈리아 폼페이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수준 높은 미적 감각이 아직도 몇 군데 남아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벽면에 새겨진 다양한 부조상이다. 황소와 말을 공격하는 사자 부조, 사신과 무신들을 주제로 한 부조, 정복지 각국에서 진상품을 바치러 온 사신들의 부조 등 이곳의 벽면은 페르시아제국이 얼마나 강성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또한 왕국의 입구에 서 있는 만국의 문과 높이 25m의 돌기둥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제국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한 제국을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다리우스 부자는 자신들이 지배하는 여러 속국에서 다양한 건축자재들을 이곳으로 가져와 당대 최고의 예술작품처럼 왕궁을 건설하려 했다. 레바논에서 삼나무를,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티크 나무를, 박트리아에서 금을, 이집트에서 은과 동을, 에티오피아에서 상아 등을 가져다 손재주가 좋았던 바빌로니아와 그리스 장인들에게 화려하게 왕궁을 짓도록 했다.

꽃이 너무 아름다우면 사람들 손에 꺾이는 자연의 순리처럼 거대한 페르세폴리스는 마케도니아왕국의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철저하게 파괴된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의 궁정을 잿더미로 만들고, 하늘 높이 솟아오른 기둥들은 과감하게 부숴버리고, 보물창고에서 수많은 금은보화를 약탈한다. 이렇게 잔인하게 도시를 파괴한 이유는 페르시아가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파괴한 것에 대한 복수로 페르세폴리스를 폐허로 만든 것이다.

소설 같은 이런 이야기가 한 줌의 바람이 되어 도시 곳곳을 감싼다.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아케메네스 왕조의 명성은 안개처럼 인류 역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영원한 제국의 자취는 시공간을 초월해 세계사에 길이 남아 있다.

△가는 길=우리나라에서 이란 테헤란까지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인천공항~테헤란 직항노선도 있다. 다만 일주일(월요일)에 한 편만 운항된다. 약 9시간 30분 소요. 그리고 테헤란에서 페르세폴리스가 있는 시라즈까지 국내선 1시간 소요.

[글 / 사진 = 이태훈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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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역의 고도는 전부 2000m 내외로 나온다. 수도 테헤란도 해발 1500~1700m를 나타냈다. 테헤란 바로 뒤 앨부르즈산맥의 정상은 다마반드산이다. 해발은 무려 5,604m. 테헤란에서 버스를 타고 수백㎞ 내려오는 길에 유심히 고도를 체크했다. 제일 낮은 고도가 1,500m이었을 정도다. 페르세폴리스 가는 길에 2,500m 꼭지점을 찍고는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이란고원이란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페르세폴리스는 해발 1,600m를 가리켰다.

폐허가 돼 고대문명의 자취를 전하는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궁전터에 황혼이 물들고 있다.

드디어 페르시아제국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페르세폴리스에 이르렀다. 다리우스 1세가 건립한 페르세폴리스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파사르가대나 페르세폴리스의 공통점은 매우 넓은 평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적의 침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천혜의 요새 같다.

페르시아제국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보여주는 페르세폴리스 궁전의 거대한 진입로에 이어 웅장한 입구가 마치 과거의 영화를 대변하는 듯하다.

페르시아제국의 새로운 수도인 이곳의 원래 지명은 페르시아란 이름이 유래한 ‘파르사(Parsa)’였다. 페르세폴리스는 도시국가인 그리스인들이 페르세폴리스로 부르면서 이름을 가져오게 됐다고 안내문에서 설명한다.

궁전으로 들어서는 순간 페르시아제국의 화려했던 자취에 잠시 숙연해진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건립한 궁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대규모 입구에서 양쪽으로 올라가는 111개의 기념비적인 계단, 날개달린 거대한 소들, 공물 바치는 외국 사신들, 웅장한 진입로, 공식 알현실, 접견실 등 영광의 흔적을 그대로 전하는 메인 건물과 부속 건물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페르세폴리스 궁전에는 궁전과 함께 접대실 등 각종 부속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자취를 볼 수 있다.

쿠이라마트(Kuh-i-Rahmat, 자비의 산) 산기슭에 있는 궁전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인공의 궁전이다. BC 518년 다리우스 1세가 건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단의 남쪽 면에 ‘다리우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창건했다’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유네스코 등재이유도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학적 유적으로,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대문명의 독특한 자질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된다’고 밝히고 있다.

페르세폴리스 궁전은 깨지고 부서진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계속 고고학적 탐사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기단에는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대왕(Xerxes, 기원전 486~465), 그의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기원전 465~424)가 3세대에 걸쳐 왕궁복합단지를 세웠다’는 것이다. 3대 100년에 걸친 왕궁이 일사불란한 통일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리우스 대왕부터 3대에 걸쳐 궁전이 건립됐지만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유적 입구 천장 대들보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위, 두 쌍의 황소 조각이 맞대고 무릎을 꿇고 있다.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한다. 황소는 몸통으로, 얼굴은 사람, 날개는 독수리의 형상이다. 이는 사람의 지혜로 땅을 통치하고, 독수리는 하늘의 힘을 상징하고, 소는 땅의 힘을 나타낸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그 옆에는 상상의 새도 있다. 독수리 머리에 귀는 소의 형상, 뒤 몸체는 말이다. 가이드는 “이 형상은 이란인의 심볼이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상의 새”라고 소개한다.

입구를 지키는 상상의 동물은 입구를 들어서는 사람의 기를 제압할 만큼 위압적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상징으로 왕조도시의 걸출한 도시다. 그 때문에 BC 330년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불 태웠다고 전한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그들은 20,000마리의 노새와 5,000마리의 낙타에 페르세폴리스의 보물을 실어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 최고의 고대문명을 간직한 도시, 페르세폴리스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고 난 뒤 엄청난 문화유적을 가져간다고 전한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전 지역을 정복하고 페르시아문명을 대체할 새로운 그리스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운다. 도시는 불에 타 사라졌지만 문명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이 다스렸던 통치방법은 다른 왕조에 의해 수없이 모방 변형되면서 다양한 인종과 종교, 언어, 풍습을 가진 대제국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항상 세계 곳곳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 지금은 제재가 풀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페르시아란 개념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되고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페르시아제국은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에 이어 파르티아왕조, 사산조 페르시아까지 651년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아케메니드 페르시아가 세계에 끼친 영향, 그 이름의 유래, 거대 궁전의 자취가 지금까지 전하고 있어, 세계인들이 페르시아제국이라 하면 페르세폴리스만을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페르세폴리스 인근에 있는 다리우스 대왕의 묘. 절벽을 깎아 그 속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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