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재미없는데 난 왜 이 과를 왔지

취업토크 상세

형이 게임회사 정치질 이야기를 해줄께. 다들 필독하고 자기 사연좀 소개해봐.

작성자형아의생각작성일2018-01-30조회수7895좋아요 수4

형이 경험한 정치질 하는 인간들 이야기를 해줄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정치질하는 인간들은 기획자 나부랭이들이 가장 많은거 같아.
애들은 일단 입심이 좋아서 그럴듯하게 후려치는게 능숙하거든. 암튼 뭐 조금 이득이나
얻어볼까 밥먹는대 열심히 쫓아다니고 열심히 맞담배하면서 친목다지고 형동생 하면서
자기 라인 만들고 회식자리만 생기면 열심히 고기굽는 인간들 대부분 정치질에 집중하는 인간들이야. 게임을 개발할려면 다양한 의견 충돌과 이해관계가 생기는대 이런걸 실력으로 해결할려는게 아니라 친분으로 해결할려는 인간들이지. 당연히 실력이 없어서 뭐가 뭔지 재대로 판단을 못하거든.

원래 정치라는게 나쁜게 아니야. 조직사회에서 정치라는건 너무 당연한거고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사가, 프로젝트가 살거나 죽는거다. 근데 개나소나 권한이
생기면 그걸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게 흔하다보니까 정치"질"이라고 비하하는거지.

요즘 뉴스만 틀면 이 나라 정치가 얼마나 썩었는지 금방 알수 있을거야. 온갖 비리와 특혜가 난무하는 이유도 정치질이 오랬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이지. 결과적으로 국민의 삶은 더 나빠지고 기회가 사라지고 인생이 굴러떨어지는 헬조선이 되었지. 공공기관
채용비리 한번 봐봐. 입이 떡 벌어질정도로 악착같이 광범위하게 해먹었더구만.

마찬가지로 게임 회사에서 정치질은 곧 게임의 질과 양의 극심한 저하로 나타나게되.
수십억원이 투자되고 수백명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가 출시하자마자 욕먹고 문닫고
아예 출시도 안되고, 만들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것도 이런 정치질의 결과라고 보면되. 도대체 돈은 어디썼는지 시스템도 허술하고 컨텐츠도 없고 그것도 대부분 잘나가는 게임이나 배끼고 그래픽은 괜찮은데 그거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슨무슨 온라인 게임들 대부분 썩은 정치판이 들끌었다고 보면되. 하면서 오픈했다가
너무 쓰레기라 다시 닫았다가 약속을 지키러 왔어! 하면서 재오픈 했다가 다시 망해서
아예 공중분해된 라그나로크2 가 개발기간중에 게임엔진이 9번 바뀠다는 사실을 알아?
정치질의 끝판왕 같은분이지. 요즘 라그나로크제로 봐봐 게임이 쾌적한게 케치프레이즈야....

이렇게 정치질이 난무하면서 대형 프로젝트가 줄줄이 망하고 바로 모바일시대가 열리게된다. 근데 문제가 뭐냐면 이렇게 정치질만 일삼던 인력들이 대형 프로젝트 "경력"을 달고 고급 인력으로 모바일 프로젝트로 흩어진거지. 국내 게임 개발 환경이 역사도 짧고 어떤 기준이나 형식이 없는 중구난방 시장판과 비슷해서 경력이 가장 중요했거든. 그냥 경력만 있으면 어딜가도 팀장 부장이런건 쉽게 달수 있었어.

진짜 개발을 잘 하면 정치질을 할 이유가 없어. 개개인의 실력이나 역량이 있고 그걸통해서 합리적인 판단이나 의사 결정을 하면 자연스럽게 조직이 움직이는게 상식이잖아. 그런데 개발을 입으로 했던 이런 높으신 경력자분들이 재대로 배우고 익힌게 별로 없었어. 근데 그걸 인정해 버리면 자기 입장이 문제가 생기잖아. 그러니까 미친듯이 정치를 하는거야.

자기딴에는 중간 관리자라면서 개발에 문제가 생기고 자기 책임이 노출될거 같으면 뒤집어 씌우고 말발로 돌리고 아래 의견을 묵살하고 왜곡하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솎아내고...등등 조직생리를 위해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서 자기 책임은 교묘이 피하고 급여와 경력을 챙기는거지. 게임이 재미가 없어 갈아엎어야 하는데 일단 출시를 해서 업데이트를 하면 됩니다. 말로는 그럴듯 하지? 그리고 업데이트 못하고 회사는 망하는거야. 예초부터 발상이 잘못되고 근본이 허접한 시스템을 가지고 할수 있는건 별거 없는데 그냥 말빨로 대규모 업데이트네 뭐네 바람만 잔뜩넣는거지. 오늘 갈아엎어야 할
일을 나중으로 미뤄서 퇴근시간을 앞당길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리고 업데이트는
뭐 실무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정치꾼은 경력이 재일 중요하다는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그래서 모든 가치판단이 경력위주고 프로젝트의 방향이나 게임성같은건 한참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취급하지. 결론적으로 조직이 서서히 경직되고 아무도 책임을 질려고 하지 않고 게임은 재미없고 질이 낮는데 도대체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체 다들 식물개발에 열중하게되.

정치꾼이 무서운게 이런거야. 뭔가 한참 잘못됬는데 책임이 없는 상황으로 교묘하게 만드는거.

형의 주장이 그냥 뇌피셜이라고 생각되면 그동안 대형 프로젝트가 어떻게 됬는지 역사를 한번 살펴보면 이해가 갈거야. 가장 유명한 서든어택2 사건만 봐도 정말뜬끔없는 FPS 고전에 "전장의 아이돌" 컨셉을 밀고 나온거지. 그냥 예쁜 케릭터 벗겨놓으면 미친듯이 케쉬질을 할거라는 발상과 서든어택1을 고대로 배낀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같은거 말이야. 이런 어처구나가 없는 의사결정에 버젓히 300억을 꼴아박는 이유도 중간에 정치꾼들이 엄청나게 설처서 그런거야. 거 누가 밀리터리 게임에서 쭉빵걸이 가슴흔들며 총쏘는걸 원하겠어? 서든1에서 여케 스킨이 잘 팔렸으니까?

암튼 이런 잘못성장한 정치질 케릭터들이 모바일로 흩어졌고 그렇게 모바일도 말아먹었단다. 한때 수백 수천게 회사에서 우루루 나오던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 요즘은 뜸 하잖아.

그게 큰 회사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아서 정치질하기 편한데 작은 스타트업 같은데서는 정치질을 하면 그대로 허접한 게임으로 나타나거든. 게다가 투자도 매우 적어서 한번 삐끗하면 바로 임금채불로 간다. 게다가 사람이 적으니 자신의 무능이 쉽게 눈에 띄게되.
덕분에 사람이 자주 바뀌는 회사는 계속 사람이 바뀌게 되거든. 그리고 막판에 돈떨어지면 망하는거고.

다행이 이런 온라인 세대 고인물들은 강제 은퇴한 상태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VR같은대로 흘러가서 정부지원금을 뜯어먹고 살게 되거든. 아니면 무슨 정부과제를 하거나.... 무슨 지원사업같은거 해서 또 밥벌이는 한다고 해. 이런분들이 빨리 업계를 떠나야 하는데 또 인맥관리는 대단해서 어디 뭐 있다 하면 가서 경력과 말빨로 자리차지 는게 문제라고 본다. 이런 퇴물들이 국내 게임 개발 발전을 저해하는 숨은 장애물이야.

다시 강조하지만 능력있고 멀쩡하게 개발 잘하는 사람은 정치질 안해.
이런 분들 주변에는 우수한 인맥도 있어서 회사를 차려도 양질의 게임이 나오는거지. 요즘 재대로 게임 만드는 회사는 게임잡에 경력급 인력공고가 거의 나오지 않거든? 인력이 풍부하니까 굳이 채용할 필요가 없지. 일정한 수준이 되니까 게임을 만들어도 팔리게 되고.

암튼 이런 악성 고인물에서 기획자출신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거 같아. 그게 기획자들이 태어날때 부터 악해서 그런게 아니라 열악하고 일그러진 시스템에 길들여지다 보니 나쁜 버릇과 사고관이 몸에 익어버린 거지. 스스로 뭘 못하니까 자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뭘 잘 모르는 사장님 구워삶고 그런거지. 그나마 요즘은 이런 눈먼 사장님은 이미
망해주셔서 다행이야.

마지막으로 예쁜 여자원화 신입 들여서 작업거는 인간들이 실재로 존재하더구만.
참 좋네 정치질만 잘하면 여친도 만들수 있고.
후배를 인맥으로 모셔서 취업도 시켜주고 사내연애도 하고 으와 좋타!
원화 리소스 뽑은거보니까 기본이 한참 부족한게 보이는데 그게 어느세 팀장님에 의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그림채로 평가되고 있는데 포지션은 UI네... 엉? UI ??????

법무부 장관 옆에서 여검사 엉덩이 쓰다듬는 검사장님도 버젓이 있는 세상이라 참 뭐라 할말이 없더라구. 조그만 권한이 생기면 오직 자기 욕망을 위해 교묘히 쓰는 인간들이 넘처나서말이야. 단언컨데 국내 게임 개발에서 여성의 위치나 대우는 정말 형편 없다고
본다. 재대로된 여성 개발자가 없어 이 바닥은. 예쁜 여자 원화 신입만 있는거지.

원화원화 실력실력 하지말고 화장 예쁘게 하고 예쁘게 입고 면접가는게 취직할 확률이 높은 참 엿같은 세상이야. 이게 형이 경험한 아주 특별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나는 뭍으로 나온 인간이다.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인 종이컵 옆으로 자판이 닳아 희미해진 키보드 너머, 이 방에서 가장 깨끗한 곡면모니터와 식을 줄 모르는 컴퓨터 본체. 술잔과 얼음잔 따라 흘린 땀 같은 물 자국이 무늬를 그려놓은 컴퓨터 책상. 한 켠에는 휴대폰 거치대가 가만히 기다리는 세 평 남짓의 방. 이곳이 나의 요람. 들어서자마자 나를 안아주는 어둠 사이로 조용히 빛을 내는, 도시 위를 날고 있는 고래가 새겨진 무드등까지. 이보다 더 행복한 풍경이 있을까. 나는 매장에서 싸 온 남은 요리들을 대충 데우고 밥공기 위에 한데 모아 숟가락 하나 꽂아서 책상 앞에 앉았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인터넷 방송을 켠 아이폰을 거치대에 올려두고 다른 손으로 본체 전원을 눌렀다. 내가 즐겨보는 30대 아저씨는 오늘도 가족 몰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같은 게임을 따라 켜고는 서로의 플레이를 비교해가며 친근감을 느꼈다. 내가 이기고 질 때보다 그 스트리머가 이기고 질 때 더 요동치는 감정들. 나는 그저 그와 동질감을 느끼려 게임을 할 뿐이다. 그가 방송을 종료하자 나는 다른 스트리머를 찾아 라디오를 켜둔 듯이 방치했다. 그냥 침묵이 싫을 뿐, 딱히 그에게 애정을 갖지는 않는다. 그 스트리머의 게임을 똑같이 따라 켜고는 이번에는 나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그러나 첫판부터 지고 말았다. 사실 나는 퇴근 후 모든 시간을 게임에 쏟지만, 재능이 없는지 실력이 형편없다. 하지만 나는 게임 말고는 그 어떤 취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할 게 없어서 하는 것 치고는 끈기 있게 하는 편이었다. 이런 생활도 벌써 5년 째니, 나에게는 가장 오래된 흥밋거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뭐든 쉽게 질리는 편이었다. 때로는 장래 희망이랍시고 마술이나 프로그래밍 등에 열정을 쏟은 적이 있지만, 1년 이상 지속한 적이 없었다. 마땅한 목표도 없었고 어떻게 학창 시절을 지났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대학에 갔으나 공부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러다 우연히 식당 알바를 하다가 어느새 주방일을 5년째 하고 있다. 그것은 주방일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생계를 책임져주니 남는 모든 시간을 게임에 몰두해도 전혀 삶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칼질을 하는 데에는 자기 계발이 필요 없다. 발전도 없고 온종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인생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보다 행복하다. 아등바등 원대한 꿈을 좇으며 사는 것이 멋진 삶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나도 갓 스무 살이 됐을 때는 그렇게 살아봤지만, 그 갖은 노력이 내게 남긴 것은 손목에 지저분하게 그어진 흉터뿐이다. 어느새 삶은 무의미하고 눈먼 애를 써봐야 결론은 자살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아챈 나이다.

  이런 나에게도 연인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태희는 대학 신입생 시절, 신입생 환영회에서 알게 되었다. 앉자마자 소주 세 잔을 연달아 마시는 그녀를 보고 재밌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무엇이든 쉽게 질리면서도 늘 재밌어 보이는 것을 쫓는 사람이 나다.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고 2차로 옮기면서 나는 그녀의 옆자리를 사수했다. 그렇게 집에도 바래다주고,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곁을 맴돌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가 이제는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이런 삶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술을 안 좋아한다고 했다. 그때는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술을 마신 것이라 그랬다는 변명이었다. 그녀는 비흡연자에, 게임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시큰둥하다. 그런데도 그녀는 항상 나에게 결혼을 이야기한다. 나는 무엇이 두려운지 왜 나와 결혼하려는지 질문도 못 하고 거절도 못 한다. 언젠간 그녀와 결혼을 할 거란 짐작 정도만 한다. 사실 나는 술, 담배, 게임만 있다면 어떤 삶이든 상관없다. 오히려 이런 것을 모두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배우자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생계를 버리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의 눈에 현실도피처럼 보이는 취미를 가졌을 뿐이다. 퇴근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녀가 잠들면 다시 게임 속으로 빠져드는 삶. 나에게는 최고의 인생이다.

  그렇다고 일하지 않는 날,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휴무일에 태희를 만난다. 쉬는 날이면 습관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난다. 그녀의 집 앞에서 산책하다가 이른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별거 아닌, 그러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도 같이 먹고 밤거리를 산책하며 그녀를 바래다준다. 물론 그 후에 나는 다시 집에 와서 컴퓨터 책상의 안락함을 느끼며 마우스를 잡는다. 그렇게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한다. 내가 일하는 곳은 야마토라는 일식집이다. 회와 초밥을 주메뉴로 팔지만 나는 이곳의 튀김을 사랑한다. “주방은 전쟁터라는 진부한 말이 사실주의 화법이라는 것을 실감할 정도로 일이 고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퇴근하고 나서 게이밍 의자에 앉는 순간 나의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항상 남는 음식을 싸주시는 사장님 덕에 맛있는 회나 튀김을 먹으면서 게임을 하는 그 순간이 진실한 행복으로 완성된다. 이토록 나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내가 튀김을 좋아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야마토의 사장님은 갑자기 어느 날, 텐동집이 하고 싶다며 폐업을 알렸다. 갑자기 이직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장님과 달리 일식에 자부심이 없다. 어디든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해미라는 한식당으로 옮기게 되었다. 제육볶음을 만드는 것은 초밥을 만드는 것보다 재미없고, 비린 고등어 손질을 하는 것은 신선한 횟감을 손질하는 것보다 재미없다.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그저 생계를 유지할 돈과 게임 할 시간만 확보되면 상관없기에 그곳이 맘에 들었다. ‘해미는 서울숲과 가까웠고 날이 풀리는 4월이 되자 매장은 더욱 바빠졌다. 직원들의 볼멘소리에 신입을 들였다.

  새로 온 희연은 정말 주방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쾌활하고 열정적인 사람. 은은한 후광 같은 게 풍기는 사람이다. 그녀가 주방에 들어오자 모두가 그녀의 배경이 된 듯, 주방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좁아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일에 치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재잘거렸다. 다들 바쁜 와중에 그녀가 선물한 웃음으로 피로를 덜었다. 나는 그저 그녀가 신기했다. 저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광합성이라도 하는 걸까.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언제나 조용히 일만 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희연은 자주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인범 씨는 퇴근하면 주로 뭐해요?”

  희연은 당근을 손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으며 물었다.

  “저요? 그냥 집에 가요.”

  기계적으로 양파를 썰면서 나는 왜 눈이 안 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요? 집에 고양이라도 키우시나요?”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능숙한 칼질은 멈추질 않는다.

  “아니요. 가서 보통 밤새 게임만 하는데요?”

  이런 나를 한심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스물 초반까지만 했다. 게임만큼 건전한 취미도 없지 않은가.

  “요새는 어떤 게임이 재밌어요?”

  그녀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여 살짝 놀랐다.

  “저는 게임은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하는 편이라서요, 다 재밌죠.”

  중반에 들어서고 나서 재밌어서 열중했던 게임이 있었나 돌이켜 보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저는 게임은 잘 모르는데 요즘은 하나 정도 배워야 하나 생각해요. 게임산업이 엄청 각광 받고 있지 않나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거 같아요.”

  이렇게 호의적인 답변은 처음이었다. 정말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일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요즘 사람들은 현실에 살고 싶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뒤로 하고 다 썬 양파를 쓸어 담고 창고로 향했다. 재료를 손질할 때 주방에 오고 가는 얘기들만큼이나 가벼운 것이 있을까. 다들 손이 일하는 동안 가만히 있는 입이 머쓱해서 아무 말이나 뱉는 것 같다. 양철 트레이에 냉장고에 지친 양배추를 가득 담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희연은 여전히 재잘대고 있었고, 다들 그녀의 이야기를 코미디쇼 마냥,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양배추들에 둘러싸여 도마 속으로 접속했다.

  휴무일이면 어김없이 태희를 만난다.

  “왔어, 인범아? 오늘 날씨 진짜 좋지?”

  태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정도 늦었지만, 그녀는 언급조차 안 한다.

  “그러게. 점심 뭐 먹을까?”

  항상 데이트 코스는 태희의 몫이었다. 나는 딱히 음식 취향이 없었고, 그녀는 항상 가고 싶은 맛집 리스트가 가득했다.

  “오꼬노미야끼 어때?”

  “한 번도 안 먹어봤어.”

  “그래? 한번 먹어보자.”

  난생처음 먹어 본 음식이었지만, 새로운 것 없는 맛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즐거워 보였고 나는 그냥 맛있다며 먹었다.

  “카페는 어디 가지?”

  식사를 마쳐 갈 때쯤 태희가 물었다. 그녀는 항상 예쁜 카페들을 보여줬고 나는 그중 아무거나 골랐다.

  “여기 괜찮아 보이는데.”

  “좋아, 여기로 가자.”

  태희는 언제나 자기가 길치라며 지도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항상 지도를 보는 게 왜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묵묵히 내비게이션을 자처했다.

  “역시 우리 인범이네. 길 진짜 잘 찾는다.”

  매번 똑같은 말로 5년째 나는 길을 잘 찾는 사람이 된다. ‘지도가 있는데 길 찾는 게 대수냐는 말은 매번 떠오르지만, 입 밖으로 뱉지는 않는다.

  “너는 따듯한 라떼 마실 거지?”

  나의 취향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주문 하러 가고, 나는 그녀의 가방을 건네받고 자리를 잡으러 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따듯한 라떼, 그리고 언제나 케이크 한 조각. 변치 않는 구성이다.

  “여기 진짜 예쁘다. 커피 맛은 어때?”

  연신 사진을 찍으며 태희가 물어왔다. 그녀와 데이트하며 여러 카페를 다니면서 기준이 올라간 나는, 커피 맛에 대해 예민해졌다.

  “고소하고 맛있네, 스팀도 부드럽게 잘했는데?”

  실제로 그 카페의 라떼는 수준급이었다. 만들 줄은 몰라도 맛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래봐야 내가 바리스타를 할 것도 아니어서 쓸데없지만, 그녀는 항상 물어본다. 같이 나온 갸또도 꾸덕하고 좋았다. 그녀는 항상 케이크 배는 따로 있다며 디저트를 시켰고, 어느새 나는 배부르지 않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늘 마지막 한 입은 그녀의 몫이다. 포크를 내려놓고는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인스타에 업로드할 사진을 고르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진이 나아, 이 사진이 나아?”

  셀카를 넘기며 묻는 태희의 말에 고민하는 척 두 장을 번갈아 보지만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인다.

  “나는 이게 나은 거 같은데.”

  조금 더 활짝 웃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 너가 골라 준 사진으로 올려야지.”

  태희는 항상 우리의 데이트를 인스타 게시물로 올리고 나를 태그했다.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사진을 올린 적이 없었고, 그녀의 게시물에 좋아요만 누를 뿐이었다.

  카페를 나와서 근처 모텔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불붙은 열정적인 두 몸짓.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도 좋다며 움찔거리는 그녀. 지쳐 누워 있을 때 잡아주는 따듯한 손까지 5년 동안 변함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놀랍도록 견고했다.

  데이트의 마무리는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그녀의 집에서 하나 떨어진 역에 내려, 산책을 하며 집에 바래다준다. 어두워진 서울의 밤은 촉촉하고 여전히 분주했다. 그녀는 자기의 일상을 얘기하며 겪은 다채로운 사건과 감정들을 털어놓고 나는 짧게 대꾸하며 들었다. 우리의 대화는 늘 그녀의 각양각색 생활을 들어주며 진행됐다. 나는 그녀에게 말해줄 일상이라 할 것이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게임 하는 생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재밌는 사건은 게임 속에서만 벌어졌고, 게임에 관심이 없는 그녀에게 해줄 일화는 하나도 없었다.

  “오늘 오꼬노미야끼도 맛있었고 카페도 진짜 좋았다, 그치?”

  집 앞에서 태희가 말했다.

  “맞아, 덕분에 오늘도 즐거웠어. 얼른 들어가서 쉬어.”

  “알겠어. 오늘도 데려다줘서 고맙습니다. 집 조심히 들어가고 도착하면 연락해.”

  애교 섞인 배꼽 인사를 하고 뒤돌아 집으로 들어가는 태희의 모습을 끝까지 보다가, 집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방문을 열자마자 의자에 몸을 던지고 태희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남기고 어김없이 인터넷 방송을 켰다. 이미 한창 재밌는 분위기였다. 나는 다시보기를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게임에 접속했다.

  하루 쉬고 온 매장은 여전했다. 점심시간은 정신없이 바빴고, 뒷정리하면서도 희연의 재잘거림은 쉬지 않았다.

  “우유니 소금사막 아세요? 거기에 가면 새파란 하늘이 온 바닥에 비친대요. 너무 예쁠 거 같죠? 죽기 전에 꼭 가볼 거예요.”

  언제나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얘기하는 희연의 눈은 순간, 우유니 사막이 된 듯했다.

  “그리고 오로라가 보이는 곳에서 늙어 갈 거예요. 오로라가 보이는 극지방은 일년내내 춥잖아요, 그러면 따듯한 찌개 생각이 절로 나지 않을까요? 그곳에서 한식당을 열고 싶어요.”

  오로라는 태양풍이 대기 중의 질소와 산소를 만나 빛이 나는 것이라고, 대학 시절 교양수업에서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게 뭐 그리 신기한 현상이라고 저렇게나 흥겨운 꿈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은 멋진 꿈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깊지 않은 동의를 내비쳤다. 사실은 모두 허황된 말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유 모를 동경을 보이는 것 아닐까. 나는 대화에 끼지 않고 설거지만 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나는 여전히 온라인 세상으로 퇴근했다. 하루 또 하루의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한 사람은 저 멀리 빛나는 꿈을 바라보며 살았고, 한 사람은 꿈 같은 세상을 지어내는 모니터만 보며 살았다.

  그날은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는 날이었다. ‘유미르라는 게임은 스토리가 좋다며 출시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은 게임이었고, 나의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스트리머들이 출시와 동시에 플레이 하겠다며 더욱 홍보되었다. 나도 그를 따라 사전예약 했다. 그들의 방송을 보면서 같이 플레이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다음날에 연차도 썼다. 마침 태희는 다른 약속이 있었다. 이틀 동안 밤새 게임 할 생각에 설레며 서둘러 퇴근했다. 유미르의 내용은 북유럽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북유럽신화에 대해 무지했지만, 게임 속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오딘과 그의 형제들은 태초의 거인 유미르를 죽여서 그 시신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 그때 대부분의 거인들은 죽었으나 베르겔미르라는 거인 하나가 살아서 신들에게 복수를 꿈꿨다. 그렇게 라그나로크가 임박하자 세계에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 괴물들을 물리치며 발할라에 발탁되려는 전사를 플레이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결말은 내가 라그나로크를 막고 로키를 죽이는 것으로 게임이 끝난다.

  나는 배달 음식을 늘어놓고 장장 28시간 만에 엔딩을 봤다. 그런데 그 마지막 장면에서 로키를 죽이면서 기력을 다한 내 캐릭터 위로 일렁이는 오로라가 파도처럼 덮치면서 게임이 끝났다. 그 장면에서 왜 나는 충격을 받고 엔딩크레딧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오로라를 보며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꽤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이 게임은 정말 명작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게임이 구현할 수 있는 절정의 가장 아름다운 현현이었다. 스무 시간 넘는 나의 작은 손가락 움직임들이 세상의 멸망을 막았다니, 퍽 감동적이었다고 표현할 만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끝났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서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또다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출근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자마자 유미르의 여운에 꿈처럼 빠져들었다. 밀려오는 오로라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눈을 뜨면 전원이 꺼지는 꿈이었다. 아침이 오자 어둠이 밀려가듯 꿈결이 서서히 사라졌다.

  어느새 장마철이었고 이날은 유난히 빗줄기가 세찼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거운 기운이지만 매장이 한가하니 직원들은 오히려 활기찼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하며 다들 여유를 즐기며 일하고 담소를 나눴다. 그런데 오히려 희연은 날개가 젖은 꾀꼬리 같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은 신명을 지니고 있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희연과 같이 돼지 목살을 손질할 때 말을 걸어 보았다. 그녀는 좀체 먼저 말을 걸지 않던 나의 물음에 슬쩍 나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장마철이라 그런가? 뭔가 울적해요. 매장도 한가해서 더 그런 거 같아요. 저는 분주하지 않으면 우울해지더라고요. 세상이 전부 멈춘 거 같은 기분이고 저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매일 커다란 눈으로 주방 너머의 세상을 마주하는 듯했었던 그녀의 시선이 도마를 벗어나지 못한 채 대답했다.

  “이렇게 쉬엄쉬엄 일하는 날이 있어야 좋지 않아요? 맨날 바쁘면 힘들잖아요.”

  분주하지 않으면 우울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정신없이 바쁜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잡생각이 안 들잖아요.”

  본인의 말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이 칼을 쥔 손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칼이 고깃결을 따라 들어갈수록 희연도 같이 고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이 손질에 몰두하며 대답하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100인분의 제육용 고기만 쌓았다.

  여느 때처럼 정오를 막 지난 햇살이 서울숲을 감싸던 날이었다. 매일 같이 출근하는 길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햇볕을 쬐어야 한다는 태희의 말에 항상 조금 돌아서 서울숲을 조금 거닐다가 매장에 들어선다. 이때가 아니면 볕을 볼 일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날씨가 맑을수록 사람들은 광합성이라도 해야 한다는 듯이 서울숲이 북적거린다. 그 활기를 그대로 닮은 희연은 장마철의 우중충한 표정을 벗어 던진 모습이었다. 녹음 짙은 생명력을 보이며 주방 이리저리 지저귀며 다녔다.

  “인범 씨는 꿈이 뭐예요?”

  초점 잃은 눈을 보며 고등어를 손질하고 있을 때, 희연이 옆에 와서 무를 다듬으며 물었다.

  “그런 거 없는데요?”

  나는 그 고등어들을 닮은 눈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런 거창한 거 말고, 뭔가 하고 싶은 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조만간 출시되는 게임 중에는 딱히 기대작이 없었다. 먹고 싶은 거나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이렇게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할 말을 찾느라 침묵 속을 헤맸다.

  “뭐 없을 수 있죠. 지금 삶이 만족스러운 거 아닐까요?”

  무 하나를 다 썰 정도의 침묵 끝에 그녀가 말했다. 나의 현재 생활이 만족스러운가. 크게 부족한 것 없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도 없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말해야 했을까. 세상에 나보다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훨씬 많을 테니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에도 침묵만 지켰고 배가 갈라져 토막 난 고등어만 쌓여갔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탈이거든요. 하고 싶은 건 계속 쌓여가는데, 할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하고 싶은 걸 못 하니까 좀 우울해져요. 이상하죠?”

  희연은 내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요새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요. 물론 고등학교 미술 시간 이후로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어서 실력은 끔찍하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저에게 다가온 그 색 그대로 남기고 싶어요.”

  희게 토막 난 무를 쓸어 담으면서도 희연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가 다듬고 있는 무는 어떤 색채로 담길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거 좋은 취미일 거 같은데요? 그리면 되죠.”

  하며 대답하던 나의 눈에 비친 고등어는 회색으로만 보였다. 짙은 회색과 옅은 회색이 서로 만나 그어진 선에 조금씩 방울지게 물든 무늬가 누군가에겐 영감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림 말고 작곡도 하고 싶어요. 멜로디는 만들어 둔 게 있는데 악기를 다룰 줄 몰라서 곡을 못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피아노도 배우고 싶어요. 작곡을 시작하려면 화성악도 공부해야 한다던데, 할 일이 끝도 없이 생겨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들을 늘어놓은 희연의 눈동자가 고등어를 닮아가는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저렇게 많은 소망을 품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꺼림직한 느낌은 가시에 손을 찔리고서야 멈췄다.

  태희가 멀리서부터 보였다. 거짓말처럼 맑고 높은 하늘을 남겨두고 장마는 온데간데없었다. 너무나 따가운 햇볕이 눈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 좁은 시선 사이로도 태희의 어두운 표정이 선명히 보였다. 한 걸음 앞에 멈춰서고도 표정을 펴지 않은 그녀를 맞이하는 내 입꼬리가 어색하게 올라갔다.

  “왔어?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네.”

  “. 너무 덥다. 얼른 어디라도 들어가자.”

  “그래. 시원한 거 마시러 갈까? 길 건너에 카페 새로 생겼던데.”

  “거기 너무 멀어. 그냥 저 앞에 롯데리아 가자.”

  “알겠어. 가서 아이스크림 먹자.”

  태희는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려 걸음을 뗐다. 지난 5년간 한결같이 미소로만 나를 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저리도 미련 없이 나를 시야에서 내몰았던 적은 없었다. 항상 기분이 나빠도 나를 보며 화를 내거나 불만을 토해냈다. 슬프고 우울할 때는 나에게 기대며 눈물을 쏟아냈다. 더위를 잘 타는 것도 익숙하다. 삐질삐질 땀 흘리며 나에게 짜증을 부리면 아이스크림 입에 물리는 것도 하나의 약속된 액션이었다. 그러나 내가 따라오고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떠나는 뒷모습은 5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5년보다 멀어질까 두려워 바삐 따라갔다.

  “안 좋은 일 있었어? 걱정되네.”

  초점을 읽을 수 없는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태희를 보며 물었다.

  “…… 별일 아냐. 그냥, 장마 끝나니까 너무 습하고 덥네. 그치?”

  “별일 아니면 다행이고.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더워서 그런가? 입맛이 없네. 인범이 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더우면 냉모밀 먹으러 갈까? 너 좋아하는 그 집으로 가자.”

  “오늘은 뭔가 안 땡기는데.”

  “아니면 냉면 먹을까? 우리 대학 다닐 때 자주 가던 집 어때?”

  “모르겠어.”

  태희가 더운 여름이면 찾곤 했던 메뉴들을 떠올리느라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내다봤을 때,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선남선녀라는 말이 모자라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의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는데, 부부 사이에 가만히 그들을 올려다보는 아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서로 미소 지으며 들리지 않는 이야기 속에도 삶이 꿈틀거리며 그 주위를 감싸는 듯했다. 소리를 막아주는 유리창 덕에 그 장면은 더 영화 같았다. 모자람 없는 가족의 모습, 젊고 찬란한 부모와 티 없이 웃는 아이의 모습은 그만큼 이질적이었다. 잔잔하고 재미없는 게임처럼.

  “태희야, 저 사람들 보고 있어?”

  “인범아, 나 정말 결혼하고 싶어.”

  “갑자기? 너 직장 구하고 안정되면 하자면서. 지금은 좀 이르지 않아? 우리 아직 삼십 대도 아닌데 왜 조급해해.”

  “아니 인범아.”

  드디어 태희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젓는 태희의 머리가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지난 추억들을 떨쳐내려는 듯, 꼭 다섯 번을 저었다.

  “나는 저런 가족을 꾸리고 싶어. 눈부시고, 따듯한 하나의 그림이 되는, 그런 가족.”

  조금씩 눈물이 차오르는 두 눈이 나를 마주 보며, 터져 나오려는 울분을 참듯이 꼭꼭 씹어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힐난하는 듯한 눈빛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시 대학 다니면 안 돼? 대학 졸업해서 번듯한 직장 다니고 살자. 너 그 식당일 하면서 평생 살 거야?”

  둑이 장마를 못 버티고 터지듯이 태희는 쌓인 말들을 이어갔다.

  “너 그리고 언제까지 맨날 방에 박혀서 게임하면서 살려고? 좀 사람답게 살아. 술담배에 찌들어서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게 폐인이지 뭐야? 이십 대를 그렇게 낭비하면 앞으로 니 인생 뻔한 거 아냐? 나는 왜 저런 평범한 결혼생활조차 꿈꾸지 못하는 거야?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어려워? 남들처럼 살면 되잖아. 제발, 인범아……

  결국 터지는 울음에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태희를 보면서도 나는 한 마디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우리의 대화에서 나는 듣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해명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관성처럼 내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한 번도 나의 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변명할 말조차 없었다. 태희는 5년 동안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용인의 제스처 아니었냐고, 무언의 지지 아니었냐고 묻기에는 게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짓곤 했던 시큰둥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건 그저 무관심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재빠르게 주제를 돌리곤 했던 그녀는 그 대화에서뿐만 아니라 내가 게임에서 시선을 돌리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외면해온 것은 나라는 사실 또한. 그녀가 이렇게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면, 나를 조금이라도 덜 사랑했다면 진작, 했을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면 진작, 알아들었을 말이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조금 울음을 추스른 태희가 낮게 건네 온 한 마디였다. 5년을 매듭짓기에 모자람 없이 가볍고 예리한 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태희의 볼을 타고 한 방울 눈물이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애가 남기고 간 유일한 것이었다. 우습게도 내 눈에서는 그 한 방울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그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내 시야에서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사라질 때까지.

  아직 이별이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지, 내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똑같이 출근하고 돼지고기를 다듬고 채소를 썰었다. 바쁜 저녁 장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을 청소하고 퇴근했다. 집에 들어가면 여느 때처럼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게임을 한다. 술이 조금 는 것도 같지만, 일상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빈자리가 느껴질 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장사가 끝나고 저녁때 쓸 재료를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아앗!”

  짧게 들려온 비명에 돌아본 곳에는 희연이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쥐고 싱크대로 가고 있었다.

  “괜찮아요? 베였어요?”

  내가 다가가자 희연은 흐르는 물에 손가락을 대고 있었다.

  “, 괜찮아요. 깊게 베인 건 아니에요.”

  나는 카운터로 달려가 선반에 있는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상처의 물기를 잘 닦아내고 지혈제를 뿌리고 연고와 반창고를 발랐다.

  “고마워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희연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칼 사이로 반창고를 천천히 문지르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딴생각했어요? 칼질 잘하시잖아요.”

  구급상자를 정리하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옆 사람과 정신없이 이야기하면서도 반듯하게 칼질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조금 놀랐다.

  “아니요. 그냥……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눈가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이.

  “왜 울어요? 많이 아파요?”

  “. 아파요.”

  그때 맑기만 할 것 같던 두 눈에 차올라 있던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수천, 수만 번을 한 칼질인데도 딱 한 번 실수하면 영영 다시는 칼을 쥘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지 않아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희연의 뺨을 타고 바닥에 빗자국처럼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는 너무 무서워요. 그 많은 꿈을 다 이루더라도 한 번의 좌절 때문에 다시는 꿈꾸지 못할까 봐.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게 무서워요. 딱 한 그릇의 요리만 완벽하게 해서 내면 되는 삶이 아니라는 게 무서워요. 계속해서 한 그릇 한 그릇 요리해서 내어야 한다는 게.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요. 언제쯤 만족할 수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요리할 필요는 없잖아요. 지치면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들면 되잖아요. 그렇게 살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게 뭐가 다르죠? 전혀 다른 게 없어요. 죽을 때까지 사실은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잖아요. 껍데기만 다른 거지.”

  “그래서 그만 살고 싶다는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조금 지쳐서 헛소리가 나왔네요. 미안해요.”

  희연은 구급상자를 직접 들고 카운터로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희연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일 아침에 눈을 떠 출근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10년 뒤에 어느 아침에도 똑같이 눈을 떠 출근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게 두려웠다. 20년 후에도. 모든 게임에는 엔딩이 있다. 노가다라 부르는 반복사냥도 그 끝을 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삶에도 그런 엔딩이 있을까. 죽는 것이 그런 엔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저 끝도 없는 반복, 또 반복 속에 허우적거리다가 엔딩크레딧은 보지도 못하고 전원이 꺼지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숨이 가빠왔다. 그러나 주문서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내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저녁 시간 내내 희연과 한 마디도 더 나누지 못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이미 희연은 없었고 나도 멍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하던 게이밍 의자에 몸을 던졌다. 서늘한 가죽의 감촉이 더없이 생경했다. 또다시 머리가 멍해져 컴퓨터를 켜지도 못했다. 그렇게 낯설고 차가운 품에 안겨 어둠 속을 멍하니 바라보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태희와 헤어지고 처음 맞는 휴무일이었다. 습관처럼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구겨지듯 잠든 온몸이 찌뿌둥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휴무일이면 태희를 만났다. 홀로 남겨진 휴일에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습관처럼 인터넷 방송을 켰다. 늘 보던 아저씨 스트리머가 바닷가에서 캠핑하는 방송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초점도 맞추지 않고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배경처럼 펼쳐진 바닷가에 희미하게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칼을 귀로 넘기는 옆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녀는 발을 담근 채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냥 닮은 사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무색하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 순간 그녀가 발길을 돌렸다. 수평선을 향해서. 천천히 천천히 바다에 잠겨갔다. 그러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이내 머리까지 잠기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스트리머가 계속해서 떠들어대자 내가 본 것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즐거운 방송만 이어졌다. 강릉. 그 스트리머의 고향이자 오늘 방송의 장소였다. 나는 홀린 듯이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예매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기차여행의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강릉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봤던 영상 속 형체만 눈앞에 선명해져 갔다. 강릉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에 내려서는 수평선을 응시하면 모래사장을 걸었다. 물가에 다가서자 발끝에 닿을 듯 말 듯 밀려오는 파도만 보였다. 짙게 일렁이는 바다에는 어떤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만 바라봤다. 이번에는 닿을 듯이, 세차게 밀려오던 파도도 결국 발끝에 닿지 못하고 멀어져 갔다. 그런데도 이윽고 다시 밀려왔다.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려갔다, 밀려왔다, 밀려갔다, 밀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다리가 뻐근해지다 못해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해는 등 뒤로 넘어가 노을이 되려 했다. 그때, 다시 한번 세차게 밀려온 파도가 신발을 타고 넘어 양말을 적시었다. 날카로운 바닷물의 한기가 발목을 감싸자 눈이 맑아졌다.

  수평선 너머에 눈빛이 박혔다. 한 걸음. 반갑다는 듯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느새 허리를 감싸 안은 바다의 품은 차갑게 흔들렸다. 파도를 따라 나도 밀려왔다, 밀려갔다.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인적 하나 찾을 수 없는 해변에 쉬는 법을 모르는 파도만 밀려왔다, 밀려갔다, 밀려왔다.

  그렇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