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거대한 자석인데 왜 자석이 바닥에 붙지 않을까

<隕石 탐방 동영상: 진주 미천면에서> 

내가 찾은 '운석' TV조선에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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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운석. 가지고 간 자석이 붙는다. 

뒷면엔 콘드라이트 흔적도 일치하며, 흙에 박힌 자국도 있다.

 *이날 필자의 운석을 소개한 TV조선(이성진 PD) 동영상.

 블로그에 동영상이 제대로 안나오니 필자의 카페에 오셔서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클릭: //cafe.daum.net/zoomsi/XBd3/157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운석. 이번에 진주 지역에 떨어진 '별'이다. 근간에 돌에 대한 많은 글을 써온 필자로서 진주로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71년만에 한반도에 떨어졌다는 운석은 연일 뉴스로 뜨겁다. 필자가 찾아간 19일 현지에는 하루에 수백 명씩 운석 탐사객들로 산야가 삼삼오오 붐빈다. 

근간에 필자는 돌에 대한 신화와 전설에 대하여 추적해 오고 있던 중 운석 낙하에 대한 뉴스 이상 현장에서 느껴본 '우주지기'는 분명 전에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진주시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미천면 면사무소에서는 수백명의 외지인들이 몰려오는데도 아무런 부가적인 서비스도 지도 한장도 내밀지 않는 냉냉한 분위기였다. 

면소재지 바로 인근 오방리 중촌 마을 뒤 언덕에는 제2번 운석이 떨어진 장소가 있다. 그곳에는 찾기 쉽게 누군가 말뚝에 붉은 깃발을 걸어두고 있었고, 운석이 떨어져 파여진 홈은 플라스틱 바가지로 덮어두고 있었다. 연신 사람들이 그곳을 보고자 방문하고 있었다. 

제1번 운석이 떨어진 대곡면 단목리 정호마을 비닐하우스(강원기씨 발견)도 미천면에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같은 골짜기 들판의 연속선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는 못들어가게 하여 밖에서 비닐하우스만 볼 수 있었다. 

제3번 운석은 제2번 운석 낙하지점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르막길 오른편 골짝 50미터 안쪽 묘지 아래 있었다. 2번 운석 낙하지점처럼 말뚝을 박고 플라스틱 바가지로 덮어 두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찾아온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운석을 본양 감탄하고 있었다. 

변용익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에 의하면 3월 9일 오후 8시경 우리나라 상공에서 운석은 경남 향양군 산청 인근에서 공중폭발했다고 한다. 보다 상세히 말하여 118㎞ 상공에서 수도권 남부로 진입하여 대전 남쪽 하늘(고도 85㎞)에서 빛을 뿜으며 남쪽으로 향하다 5초 뒤 경남 함양군 산청 상공(고도 25㎞)에서 공중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때의 폭발로 운석 덩어리들의 일부가 진주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많은 운석이 진주 인근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거운 조각일수록 더 멀리 남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진주운석 낙하 추정궤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는 진주 운석에 대하여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그리고 흔한 운석의 하나로 철, 니켈이 많이 함유된 오디나리 콘드라이트(odinary chondrite) 운석으로 판명되었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1943년 두원 운석 이후 71년만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운석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진주 제1번운석. 대곡면 정호마을. 비닐하우스에 착지.

*진주 제1번 운석. 극지연구소홈페이지  사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이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두원 운석'. 

가로 13cm, 세로 9.5cm, 높이 6.5cm, 무게 2.117kg 크기로, 동그랗고 길쭉한 모양을 띄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우리나라의 운석에 대한 기록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三國史記> 열전 제1에 따르면 647년 2월(이하 양력) 3경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고 했으며, 같은해 7월에도 월성으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했다. <三國史記> 신라본기 제7에는 673년 봄 정월에 큰 별이 황룡사와 재성(월성) 중간에 떨어졌다고 했다.  <三國史記> 신라본기 제8에는 710년 2월 천삼랑사 북편에 떨어졌다고 했으며, <三國史記> 제9에는 768년 7월에는 큰 별이 황룡사 남쪽에 떨어졌으며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우뢰소리같이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그 외에도 '隕石이 비오듯이 떨어졌다'고 한 기록들이 있으나 유성을 보고한 기록이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상세하다. <조선왕조실록> 명종 18년(1563년) 운석(隕石) 기록은 다음과 같다. 

"경상도 산음현(현 산청) 북리에 천둥소리가 크게 일어났는데 마치 북 치고 활 쏘는 소리 같았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무엇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 형상이 나는 제비 같았다. (중략) 조금 있다가 또 떨어지는지라 가서 보니 쌓인 돌 위에 떨어진 것은 부서져 가루가 됐고 두터운 땅에 떨어진 것은 땅속으로 10척(尺)쯤 들어갔는데 모양은 돌과 같았으며 밖은 검고 안은 희어 돌과 다름없었다.’조선 성종 23년인 1492년 기록에는 경상도 관찰사 이극돈이 조정에 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올렸다. 

"지난 4월 초하루에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릴 적에 진주에 운석이 떨어져 1척이나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병(正兵) 강계손이 땅을 파고 찾아내니, 빛깔은 뇌설(雷?: 대나무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으로 속은 희고 겉은 검다. 그 모양은 밤 모양과 같다)과 같고 모양은 복령(茯?: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으로 표면은 흑갈색이고 주름이 많으며 공 모양이다)과 같았는데, 손톱으로 긁으니, 손톱에 따라 가루가 떨어졌습니다.” 

조정에서는 운석 발견 보고를 받고 다음과 같이 하명했다. 

"뇌부(雷斧)에 비할 물건이 아니니, 올려 보내지 마라."

석기시대의 돌도끼를 뇌부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그 뇌부를 하늘이 내린 것으로 믿었다. 운석이 떨어지면 사람을 운석 낙하지점에 보내 해괴제를 지내게 했다. 

필자가 이번에 진주 미천면 운석 탐사 지역에서 만나본 사람들은 서울, 인천, 원주, 광주, 전주 .. 전국 모든 곳에서 몰려온 사람들이었다. 운석 탐사객들은 저마다 운석 하나쯤 자신이 발견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언론 매체들 특히 TV 방송들이 연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여기에선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은 땅을 가리키며 불러야 할 노래가 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누군가 바로 그 제3번 운석 지점 앞에 스텐리스 그릇에 물을 떠놓고 있는 풍경이었다. 그 물그릇에는 낙엽들이 들어가 구정물이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정화수'로 갖다두었으리라. 별을 올려다 보고 정화수를 떠 놓은 것이 아니라 별이 떨어진 곳이 오히려 사발처럼 들어가 있는 바로 그 옆에 떠놓은 '정화수 사발' 흥미롭기 그지없는 풍경으로 다가왔다. 

*진주 미천면 제2운석 발견지에 '정화수' 그릇이 놓여있다. 푸른 뚜껑을 열면 운석이 떨어진 곳이다. 

*제3번 운석.

정화수가 무엇인가. 전통 어머니들이 새벽별이 비치기를 바라면서 정화수를 바가지에 떠놓고 소원을 빌던 깨끗한 아침 샘물의 그 첫물이 아닌가. 이번엔 새벽별이 비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별이 이곳에 찾아온 곳에 정화수 그릇을 떠놓은 것은 최 현대문명 속에 가장 전통적인 풍속의 장면이 오버랩된 모습이다.  

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은 미천면 면사무소 아래쪽 마을인 오방리 중촌마을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버스 정류소도 있거니와 제2번 운석 자리에서 2백미터 떨어진 곳이기도 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쉬는 쉼터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언론 미디어들도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동네가 생긴지 처음 일어난 일이라면서 오늘따라 관광버스가 두 대 그곳에 도착하여 많은 사람들을 쏟아냈다. 그들은 모두 2번 운석 자리를 코스의 하나로 선택했다고 한다. 

MBC에서는 제2번 운석 발견자의 '4촌'이라는 노인을 인터뷰하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좋은 일이죠"라고 했다. MBC 제작진(민병선 PD)이 필자에게 왜 좋은 일인지 설명해달라고 인터뷰를 했다. 이미 부산지국에서 왔다는 TV조선 PD(이성진 차장)도 필자를 인터뷰했고 부산 KNN TV, 창원 래디오방송에서도 필자를 인터뷰한 뒤였다. 필자는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재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이죽이면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말씀드려볼까요. 나는 어제 이곳에 와서 둘러본 뒤 진주에서 하룻밤 묵고 오늘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에 온 탐사객들마도 진주 운석을 모두 하나쯤 발견할까 하는 희망 또는 그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나라의 경사이고 진주의 경사이고 미천면의 경사입니다. 접근 방법을 좀더 전통 문화에 맞추어 발견하건 못하건 모든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문화적으로 승화시키도록 촛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운석문화현상 말이죠.

"예를 들어 말이죠. 왜 하필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을까 하는 것도 그 하나죠. 진주라는 말은 한자 뜻을 떠나 한국 지명 가운데 가장 '보석스러운' 지명입니다. 그래서 진주에 금보다 비싼 운석이 떨어진 것이라 할만하죠. 

"그뿐 아니죠. 진주는 '떨어지는 일"로 유명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진주 촉석루에는 논개(論介)가 강물에 떨어져 그 애국적 행동이 전국민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잘 떨어진 일'이 다시 진주에서 일어난 것이 운석이 진주로 '떨어진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隕石의 隕이 '떨어질 운'자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이곳 미천면에서 멀지 않은 산청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죠."

"대곡리는 운석이 떨어지는 '큰 골짜기' 의미가 있고 마을 이름이 정호마을은 '정화수'와 유사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 아니겠어요? 

"왜 미천면에 두 개나 떨어졌냐구요? '한 밑천' 잡은 의미가 있겠고요. 왜 오방리냐구요? 운석 모양이 '오방떡처럼 탄 흔적이 있는 둥근 모양 아닙니까? 왜 중촌마을이냐구요? 돌이 무거우니까"

물론 예상하던대로 인터뷰를 듣던 많은 사람들이 폭소를 했다. 사람들은 필자가 운석을 꼭 하나 주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이날 오후 '운석'을 하나 발견하여 찾아낸 일이 발생했다. 

제3번 운석 발견지에서 5백미터 떨어진 공터 변두리에서다. 부산에서 왔다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 이용하씨와 이야기하면서 둘러보던 중에 바닥에서 커다란 해삼만한 '운석'을 나는 장난삼아 들어올렸다. 

"아니 보기보다 무겁네!"

가지고 간 자석을 붙여보았다. 

"오잉! 자석도 딱 붙어버리네!"

나는 이용하씨를 쳐다보고 눈을 껌벅거렸다. 

"흙이 반 묻어있는 것을 보아도 운석이군요"

이용하씨도 맞장구친다. 제2번 발견지의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저마다 내가 찾은 돌이 운석이라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난리였다. 

그러나 탄 검은 흔적이 조금 약한 면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구동성 운석이라고 일고의 의심이 없다. 자석이 착 달라붙는 모가 나지 않은 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돌을 보는 사람마다 만져보고 싶어 했고 기념사진을 찍고자 애를 썼다.  내가 찾은 운석을 저마다 개인사진도 찍으면서 아는 지인들에게 즉각 보내고 있었다. 

*내가 찾은 '운석'. 진짜일까?

*필자가 발견한 운석을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흥미로와하고 있다. 

면사무소에 가서 운석 확인 또는 신고방법을 알아보니 면사무소에서는 극지연구소(032-770-8400)에 알아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사실은 서울대 운석연구소02-880-99)로 알아봐야 한다. 필자를 인터뷰한 TV조선 이PD에게 사진을 보냈다. 발견자리에 사람들과 표식을 하고 있는데 MBC TV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내가 운석을 찾아낸 장소에 왔다. 아리조나주에서 왔다는 '운석 사냥꾼' 로버트 워드씨를 인터뷰하고 나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다. 

MBC 이PD 일행도 자석이 붙는 둥근 돌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진짜 운석같다고 흥미로와했다. 인터뷰를 하고 촬영을 하고 난 뒤에 나는 이PD에게 금방 돌아간 로버트를 전화로 불러보라고 했다. 어떤 의견인지 알아보고싶었다. 

택시를 타고 가던 로버트씨가 돌아왔다. 필자와 인사를 나눈뒤 필자와 영어로 3분정도 대화를 했다. MBC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었다. 

"아리조나에서 왔다구요? 난 시카고에서 활동해 왔어요. 이 돌이 meteorite처럼 보이나요?

로버트는 내가 들고 있는 돌에 자석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흥미롭게 살펴보더니 바솔트(basalt)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운석일 수도 있지만 현무암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메카에 모셔져 있는 운석도 '현무암설'이 있다. 운석에 대한 평가에서 전문가들도 구체적인 검사를 해보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이는데 로버트는 장사꾼처럼 말했다. 내가 버리면 줏어가려고 하는가? 

로버트는 시무룩하게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그는 진주에 묵고 있는데 이틀 후에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운석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운석 발견자들에게 운석을 싸게 사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운석을 발견하고도 로버트같은 장사꾼들이 '가짜 판단'해 발견자는 가짜 돌이라고 버리면 나중에 와서 그걸 도로 주워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로버트는 현장에서 발견되는 운석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가짜로 말해서 자신이 싸게 사가려는 의도는 아닐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앞서 운석 사진을 보낸 TV 조선 이PD와 전화로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밤에 TV조선은 내가 찾은 운석을 '새로운 운석'으로 보도했다. 

나는 '자석을 붙인 운석'을 가지고 오면서 운석일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되는대로 운석연구실에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것이다. 이참에 나는 향후 며칠 간의 계획으로 좀더 본격적인 운석찾기를 해볼 요량이다. 나는 이미 미국에서 산삼찾기는 물론 수석찾기와 정동(geods) 찾기는 물론 규화목(petrified wood)도 찾아낸 일이 있는 많은 경력이 있다. 

운석을 찾는 운석문화현상에 대한 현장 탐방을 잠깐 온다는 내가 이곳에 오자 진짜 운석 찾기에 빠져 들고 있었다. 

이슬람의 무슬림들은 그들의 성지 메카에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운석을 신성한 성소에 모셔두고 있다. 그 운석을 보통 검은돌(Black Stone)이라고 하는데 메카의 마스지드 알 하람 모스크(Masjid al-Haram mosque) 사원의 광장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사각형에 검은 천으로 덮은 카아바(Kaaba)라는 성소에 모셔져 있다. 그 운석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위치한 메카의 가장 중심에 카아바(kaaba) 성소 안에 지상으로부터 약 1.5m 공중에 떠받쳐 올려져 모셔져 있다.

*무슬림의 메카에 있는 카아바(kaaba) 안에는 검은 돌(black stone) 운석이 있다. 

*1315년 무슬림 지도자들이 메카의 운석을 들어올리고 있다. 

무슬림은 아담이 그 검은 운석을 처음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믿으며 제단의 일부로 숭상해 왔다는 것이다. 그 운석은 산 속에 여러해 숨겨두었다가 가브리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가져다 주었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때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돌 제단에 눕혔다고 하는데 무슬림들은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이스마엘(이삭의 배 다른 형제)를 돌 제단에 올렸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 제단에 그 운석을 함께 올렸다는 것이다. 

종교에 왜 운석일까? 

별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 즉 바이블의 계명성은 결국 운석 이야기다. 

무슬림들의 그 신성한 돌은 어떤 돌인지 불명확하다. 그러나 그것이 운석이라는 설이 가장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운석이 아니라 현무암(basalt), 또는 마노(agate)라거나 흑요석(obsidian)이라는 설도 있다. 

운석이라고 믿는 Lloyd V. J. Ridgeon는 그 돌을 운석으로 보고 신의 오른손을 상징한다고 풀이한다. 그 돌을 건드리거나 가르키면 신과 인간 사이의 교통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무슬림 운석'은 검은 색인데 인간이 죄를 지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고 그들은 믿는다. 우주에서는 흰 색이었는데 땅에 내려와서 검어졌다는 것이다. 이슬람인들의 운석 형성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운석은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산소에 의하여 타는 과정에서 검어지는 것을 그들은 인간의 죄 탓으로 빙자하는 것이다. 

일단의 학자들은 그 돌은 무슬림 이전의 운석신앙을 이슬람교에서 수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 돌의 크기는 가로 세로 11인치에서 15인치였는데 해가 갈수록 깨져 여러 조각으로 나위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모아 은으로 된 틀 안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 하지(hajj) 순례자들은 메카에 오면 운석에 대한 의식 즉 그 돌에 키스하거나 살짝 손으로 대는 예배를 취한다. 이러한 의식을 그들은 타와프(tawaf)라 한다. 마치 카토릭 신자들이 바티칸 베드로 성당의 베드로 동상 발가락에 키스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타와프(tawaf) 의식에서 카아바(kaaba) 성소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일곱바퀴 도는 의식을 행한다.

지금 미천면 운석 순례자들은 아마도 미천면 일대 산야를 일곱바퀴 반보다 더 많이 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천면 제2번 운석 낙하지점은 바가지를 놓아두고 거기에 지폐가 쌓이는 것을 보았다. 정화수를 떠놓던 제3번 운석지점은 며칠 뒤에 서낭당처럼 돌무더기가 쌓여 갑자기 돌무지 서낭당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에 대한 신앙이 날이 가면서 토속 신앙에 이어지는 흥미로운 장면이지 않을 수 없다. 

'별볼일 있는' 미천면 일대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운석이 무거운 돌인지도 자석에 붙을 수 있는 돌인지도 모른채 자석 하나 없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전라도 고창에서 수십 개의 운석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가짜 자철광이라고 생각한다. 돌의 모양은 물론 무엇보다도 발견자의 진술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붉은 불길이 머리 위로 지나가 댐 방향으로 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전혀 알리바이가 맞지 않은 진술이기 때문이다. 

그는 운석이 떨어질 때 불빛을 내며 날아가는 뒤에 다시 불이 꺼진 뒤에 한참의 거리를 더 날아가야 하는 이른바 불빛 없이 운석이 식으면서 날아간 뒤에 다크 플라이트(dark flight)가 이어져 불빛없이 상당한 거리를 날아가게 된다는 것에 대한 일체의 인식을 못한 채 그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운석찾기 방법은 <르포탐방 동영상> 운석을 찾아내는 방법을 참고하라. 

진주 미천면은 진정한 운석의 땅이 되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을 때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무시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늦기 전에 빨리 '운석'이라는 상호를 잡아 놓으세요. 운석식당. 운석모텔, 운석민박.. 곧 이 마을은 방문하는 사람들로 대박날 것입니다. 아마도 불원간 운석박물관이 이 지역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별이 찾아온 그 마을에는 중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은 공터만 남아 있다. 그 공터에는 흥미롭게도 교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필자의 눈에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래는 별무늬 받침대가 위에는 운석을 받들어 올린 '운석 기념탑'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독특한 이미지 관찰의 눈에 띄인 것이다. 

*운석이 두 개나 발견된 미천면의 중학교 폐교터의 기념비. 

우연이라기엔 별모양 받침대에 둥근 운석을 받쳐올린 '운석기념비'라 할만한 모습이다. 

우리의 전통 역사에 하늘은 숭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해와 달과 별은 저 세상이기도 하고 이상향이기도 했다. 북망산의 북극성이나 칠성신앙, 삼태성 신앙은 물론 '별똥별' 즉 유성에 대한 신앙은 그저 유명인물이 죽거나 실각하는' 의미로 받아들인 정도이지 직접 별이 땅에 떨어진 이야기에는 모두 '벼락'이라는 말에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별똥별'이 하늘에서 선을 그으며 낮게 날아가 '지나가는 빛'에 대해서는 신화가 존재했다.  '깡철이'라는 전설이 그것이다. '깡철이'는 옛날 시골에서 이 산에서 저산으로 지나가는 마치 '짐승 불꽃'으로 여겼던 날아가는 불빛을 의미하고 있었다. 

'깡철이'의 어원은 생각컨대 빛을 내며 떨어지고 쇠와 유사하니 '빛나는 쇳덩이' 즉 '광철(光鐵)'이라는 의미가 그 어원이었을 것이다. 

'깡철이'가 짐승처럼 여겨졌던 것은 천구(天狗)라는 '하늘의 붉은 개'에 대한 전설적인 믿음 때문일 것이다. 

일식현상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하늘에 천구(天狗)가 사는데 해나 달을 잡아 먹는다(天狗吃月亮, 天狗吃太陽)고 믿었다. 그래서 장선(張仙)이 그 천구를 활을 쏘아 떨어트리는 중국의 신화도 있다. 

신화 속의 천구(天狗)는 몸에 털처럼 작은 불꽃이 활활 타고 빛이 나 매우 밝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 머리는 항아리만하다는 표현에서도 유성의 모양을 보여준다. 그 천구(天狗)가 죽으면 땅으로 떨어진다고 믿었다. 운석이다.

천구(天狗)가 땅에 떨어지면 땅이 넓게 패이고 작은 지진이 생기는 것으로 믿었다. 667년, 710년, 748년 등 앞서 언급한 신라를 중심으로 천구(天狗)에 대한 기록들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천구(天狗)에 대한 믿음은 바이블에서는 누시엘이 계명성(啓明星) 별이 땅에 떨어져 타락한 것으로 본 것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이슬람교의 운석은 그러니까 누시엘 계명성(啓明星)이 떨어진 운석(meteorite)으로 본 것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운석이 왜 종교 세계에 들어와 있는지 이제 짐작이 갈 것이다.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별이 찾아온 곳'은 사람들에게 그 어떤 미묘한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나는 흥미있는 곳들에는 세 가지 기(氣)가 있다고 그곳에서 만난 탐사객들에게 말해주었다.

"명승지를 가면 세 가지 기(氣)가 생깁니다. 단순한 자연 명승에선 많이 알려진대로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깁니다. 그런데 제가 만들어낸 말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된 역사적인 유서깊은 곳에 가면 '유서지기(由緖之氣)'라는 기(氣)가 생깁니다. 경치가 아니라 그 역사성이 있는 곳에서 유서가 느껴지는 것이죠. 그 다음에 세번째가 바로 우주지기(宇宙之氣)입니다. 바로 이곳처럼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곳 즉 운석이 떨어진 곳이죠. 우주지기(宇宙之氣)를 느낍니까? 대한민국에 별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와 했다. 향후 더 큰 별이 더 많은 운석이 다른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에는 수십년 이상 이곳 진주 미천면 일대는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방문을 받을 것이다. 

세 개의 별이 진주로 날아왔다. 땅에서 '별자리'를 찾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곧 '진주 삼태성 운석 별자리 올래길'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하늘이 진주로 Three Strike를 던진 것이 아닐까. 시속 3천킬로미터로 날아오는 운석을 홈런을 때려 날아올릴 수 있는 방망이는 무얼로 만들어야 할까... 별이 내리기를 바라는 정화수를 떠놓는 사발 즉 도자기로 만들어야 별을 되 올려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벼라별 판타지가 머리를 스쳐간다. 

이번엔 느린 속도로 보자. 별이 내려왔다는 것은 '별에서 온 그대' 드라마 신드롬처럼 누군가 외계에서 별을 타고 이곳에 내려온 것은 아닐까? 연오랑과 세오녀가 타고간 바위처럼 운석을 타고 온 누군가 있었을까? 아니 내가 아닐까... 운석이 이곳에 오면서 나도 이곳에 와 있으니까...

이 글은 운석 신드롬에서 가장 전통문화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글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운석을 하나 주울 수 있을까요? 주웠다 해도 그게 진짜일까요? 별이 가까이 찾아왔는데 그대도 찾아온 별 가까이 가서 맞이해야 만나지 않을까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은 속삭이지 않고 때로 그대를 찾아올 때 요란한 소리를 낸다! (03/21/14 오두 김성규. 코리안신대륙발견모임 //cafe.daum.net/zoomsi )

*추기: (3월 28일 제4운석 발견보도)

3월 28일 네번째 운석 인정 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 20.9kg으로 현재까지 최대 크기이다. 이번에는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 지구환경과에서 검사를 하여 발표한 것이다. 그 모양이 1,2,3번 운석과 같은 계툥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TV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대로 그 밑바닥이 '분리된 흔적'이 남아 있는 특징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대로 그 분리된 흔적까지 합치면 마치 소나무 뿌리에 나는 균핵인 '복령(茯苓)' 버섯같은 모습이 된다. 복령도 겉은 검고 속은 희고 끊어져 뿌리 부분이 마치 큰 운석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 흔적'처럼 보인다

발견된 지점은 제1번 발견지점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 속에서 건져낸 것이라고 한다. 

좌용주 경상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오전 10시10분 경남 진주시 집현면 덕오리 한 도로변 작은 개울에서 진주시 가좌동에 사는 김만식씨(59)가 지난 17일 발견한 암석을 27일에 의뢰받아 조사한 결과 최근 진주에서 발견된 운석 3개와 같은 종류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제4번 운석에 대한 필자의 영감은 '좌'에 있었다. 전문교수 이름이 좌씨이고 발견자는 진주시 가좌동에 산다고 했으니 4번째 운석은 '좌'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별들이 진주에 떨어져 '별자리'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비로소 '성좌(별자리)'를 이루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그 성좌는 '진주 별자리(성좌)'라 할 수도 있고 발견한 면 이름들 대곡면 - 미천면 - 집현면을 순서대로 모아 '대미집 별자리'라 할만도 하지 않는가. 

왜 집현면에서 지금까지 최대 크기 운석이 발견되었을까? 다시 해학적 해석을 해보면 '검은 돌을 모은다'는 의미로 '집현'이 아니겠는가. (03/28/14 오두 김성규 코리안신대륙발견모임 )

관련글: 

<신화이야기 217> 진주 운석에 대한 신화학적 해석: 무속에서 '신(神) 내림'은 별신의 '신(辰) 내림'의 의미...

*진주 미천면 가는 길

*미천면 소재지.

*미천면사무소.

운석 떨어진 면으로 전국에서 수백명씩 몰려오는데도 

아무런 행정적인 안내도 하나 없다. 적어도 운석이 떨어진 1.2.3번 지역 안내도는 있어야 한다. 

*제2 운석 낙하지점 올라가는 골목. 미천면 오방리 중촌마을

*제2운석 낙하지점에 발견자가 붉은 깃발을 꽂아놓았다. 

*운석이 떨어지던 지난 9일 밤 이 골짜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

*중촌마을 앞 입구

*제1 운석 낙하지점인 대곡리 정호마을 강원기씨의 비닐하우스 단지.

*제1운석이 떨어진 정호마을 강원기씨 비닐하우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세번째 비닐하우스에 떨어졌다. 

*제2운석이 떨어진 미천면 오방리 중촌마을 쉼터. 

*이 마을 역사 처음으로 관광버스가 두 대씩 온 날. 3월 20일. 

*모든 방송 미디어들 총충동. 창원 래디오방송. 

*필자를 취재한 MBC

*염소들을 따라 가보아도 운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2운석 낙하지점이 있는 산 정상 반대편쪽

*제3의 운석 낙하지점은 도로에서 50머터 떨어진 곳이다. 

*제3운석 낙하지점. 누군가 정화수를 떠놓았다. 먼지가 들어가 있다 .

*필자가 인근의 유사 돌을 놓고 촬영. 

*미천면 중학교 폐교 자리에 남아 있는 학교 상징탑. 필자는 '운석 낙하 기념비'라고 명명해두었다. :)

*내가 발견한 '운석' 옆에는 부산에서 온 전직 초등교가 이용하씨.

*가지고 간 자석이 붙는다. 둥근 모양에 무겁고 땅에 떨어진 흙 흔적까지 있다. 

다만 그을린 자국이 약하다. 

*보는 사람들마다 내가 발견한 '운석'을 진짜라고 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진위 여부를 떠나 운석으로 여기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아리조나주에서 온 '운석 사냥꾼' 로버트씨와 이야기 해본 결과 그는 운석을 찾은 사람들에게 값싸게 사가려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스스로 운석 찾는데는 포기하고 있는듯 했다 .


 

*3월 23일 다시 가본 제3의 운석 발견지점

사람들이 운석을 찾기를 기원하는 돌무지 제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3월 23일 다시 가본 제2운석지점엔 사람들이 기원의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건너편 소나무밭에서 바라본 미천면 제2운석 발견지점.

*아래는 TV조선에 필자의 운석이 방송된 기사 전문과 동영상 

TV조선 뉴스7

[뉴스 7] 진주 운석 마을…"탐사객 그만 와라"

[앵커]
운석 발견으로 관심이 집중된 경남 진주의 농촌 마을이 과열된 탐사 열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운석사냥꾼'들이 논밭과 주거지까지 들쑤시고 다녀 마을이 엉망이 됐다고 하소연합니다.

이성진 기자입니다.

[리포트]
농작물이 자라야할 밭에는 사람 발자국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과수원 복숭아 나무는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국내외에서 몰려든 운석 사냥꾼들이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모씨 / 마을주민
"저기 내 집인데 '거기 들어가면 안돼요' 했는데, 들어갔는데 어쩌겠어. 그만 왔으면 좋겠지 그만 왔으면…"

운석이 발견된 장소 주변은 더 난장판. 무너지지 말라고 쌓아 놓은 석축까지 파헤쳤습니다.

왕복 2차선 마을 도로에는 이처럼 외지인들이 타고 온 차량이 주차돼 있어 사고 위험도 높습니다.

하지만 운석 추정 암석이 계속 발견돼 탐사 열기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진주 오방마을 인근에서 네번째 운석 추정 암석이 발견됐습니다. 운석 추정 암석 30여 개가 무더기로 나온 전북 고창에도 탐사객 200여 명이 몰렸습니다.

[녹취] 권기운 / 광주광역시 삼수동 
"(운석이) 떨어진 자리라고 해서 구경 삼아 왔는데 모르겠어요. 행운이 될는지, 안 될는지요."

이들 암석은 서울대 연구진의 사진판독 결과, 운석일 가능성이 낮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박을 노려 몰려드는 운석 사냥꾼의 발길이 이어져 농번기를 앞 둔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TV조선 이성진입니다.

출처 :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메모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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