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에스더 나이 - seong-gyeong eseudeo n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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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교수님의 에스더 강의에 대한 개인임종철| 2011-12-23 22:33:15

성경 에스더 나이 - seong-gyeong eseudeo nai

샬롬!!
당시 존경하는 구미정 교수님께서 에스더 강의시간에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연대기에 의구심을 갖는 표현을 하셨을때 약간 쇼킹은 했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위 조남진 선생님께서 이의를 제기 하셨네요..
성경무오설에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크리스챤 모두가 그러한 느낌을 받으셨을것으로 사료됩니다.
현재 유대인의 부림절의 기원이 된 에스더 사건은 B.C478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스룹바벨의 바벨론 1차 포로귀환(b.c537)과 에스라의 2차포로귀환(b.c458)사이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바사(페르시아)의 다섯번째왕인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재위 7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헤로도토스의 세계사 역사서에도 나타나고 있고, 성경 연대기와
정확히 맞습니다.
이후 성경 순서는 다릅니다만 아하수에로왕의 아들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왕때 느혜미야 선지자가 왕의 술관원으로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52일만에 예루살렘 성벽재건 성공 내용이 기록됩니다..
Merry Christmas!!

구미정(ecotica)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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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
> 관심 갖고 의견주셔서 고맙습니다.
>
> 성경을 정말 꼼꼼히 읽으셨네요.
> 말씀의 행간을 놓치지 않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메워보려는 노력이
>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
> 일단 127도 방백 관련 잔치에 대한 말씀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요.
> 다만 성경본문이 그걸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는 데
> 관심이 있지 않다는 점만 재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 오히려 페르시아 대제국을 '조롱거리'로 삼는
> 증거본문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
> 다음, 모르드개의 나이와 관련해서는,
> 말씀하신 대로 영어성경에 이렇게 나오네요.
> "His father was Jair, and his grandfather Shimei was the son of Kish
> from the tribe of Benjamin. Kish was one of the people that
> Nebuchadnezzar had taken from Jerusalem,
> when he took King Jeconiah of Judah to Babylonia."(CEV, Esther 2:5-6)
> 우리말로 하면, "아버지는 야일, 할아버지는 시므이, 증조부는 기스인데,
> 기스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에, 함께 잡혀 온 사람이다."
>
> 만약 여기 나오는 기스가 사울왕의 아버지인 기스와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도 있습니다.
> 물론 그렇게 되면 하만과 모르드개 사이의 케케묵은 원한관계라는 복선은
> 다소 무리한 설정이 될 수도 있지만요.
>
> 그런데 그 둘이 동일인물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 사울왕이 도대체 언젯적 인물인데, 역사가 이렇게 훌쩍 건너뛰냐는 거지요.
> (참고로 사울왕은 BC 1000년 경에 활동했습니다.
> 에스더기의 역사적 배경인 아하수에로 왕은 BC 485-465년에 집권했고요.)
>
> 결국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같은 특정 역사인물을 등장시키고는 있지만,
> 그 자체가 역사실록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 우리의 관심은 다만, 에스더서의 저자가 그러했듯이,
> 이스라엘의 멸절 위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신비롭게 펼쳐졌는가를
> 깨닫는 데 모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 제 강의가 종종 곁길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 모든 곁길이 마침내는 제 길을 찾기 위한 모색이면 좋겠는데,
> 간혹 곁길에서 시험드는 분이 계실까 우려됩니다.
> 부디 성령의 지혜로 밝히 들으실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 강의 특성상 사소한 말실수 따위는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메리 크리스마스!
>
>
>
>
>
>
> 조남진(jolombo)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 ------------------------------------------------------------
> > 매주 금요일마다 구미정 교수님의 강의를 참으로 유익하고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에스더에 관한 강의 중 성서 내용 중에 뻥이 좀 심한 부분이 있다 하셨는데 그 예로 "아하수에로 왕이 전국 127도 방백을 다 불러모아 180일동안 잔치를 베풀었다"는 내용과 "모르드개가 바벨론 포로시기에 잡혀왔으면 100세가 훨씬 넘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말씀하셨습니다.
> >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127도의 방백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들여 잔치를 베풀은 것이 아니라 여러 조(組)를 나누어 순차적으로 모이게 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이는 1장 5절에 도성 수산 백성을 불러 잔치를 했다는 것은 마지막으로 수도에 있는 백성의 차례가 되어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장 5절의 구절을 영문성경으로 보면 모르드개의 증조부 기스(Kish)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 때에 포로로 잡혀왔다고 되어있어 100년쯤 후에 태어난 증손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와 사촌의 연령이라 해도 아무런 모순이 없다 하겠습니다.
> > 짧은 소견으로 말씀드려보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매주 금요일마다 구미정 교수님의 강의를 매우 애시청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한번 강의에 감사드리며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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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화란 개혁교회에서 설교학 논쟁이 있었다. 당시, 성경의 인물을 본받으라는 모범적 설교가 유행하였다. 몇몇 신학자들은 이를 비판하였다.  스킬더, 홀버다, 스피엘, 판 데이크, 판 트 피엘, 페인호프 등이다. 그들은 구원 역사(구속사)라는 시각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킬더는 그의 책 '수난의 그리스도'(Christus in Zijn Lijden)에서 주장하기를 설교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지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논쟁은 뜨거웠다.

바빙크(Bavinck J. H. - 조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의 조카), 데이크, 다우마, 하이젤 등은 구속사적 설교와 모범적 설교의 중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성경 인물을 무작정 의로운 모범으로 여기며, 누구처럼 행하면 복 받고 누구처럼 행하면 저주받는다는 식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람의 반응까지도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방법은 신학을 설명하기에 유용하지만, 현실에서 말씀을 적용하려면 인간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중재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스킬더는 물러서지 않고 오직 구속사적으로 설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1940년 봄 독일이 화란을 침공하였다. 그해 8월 22일 스킬더는 반 나치 논쟁으로 체포되고 그가 발행하던 ‘주간 개혁’(De Reformatie)은 출간금지되었다. 1944년 화란 개혁교회는 스킬더를 총회에서 제명하였다. 도이어베르트와 폴런호펀도 스킬더를 지지하지 않았다. 스킬더를 따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교단(31조파)을 세우면서 화란 개혁 교회는 분열되었다. 같이 있을 때도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 교단이 갈라선 이후 사실상 대화는 사라졌다.

싸움은 싱거웠지만, 교훈은 있다. 설교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반응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조심할 것은 인간을 영웅시하거나, 인간을 지나치게 모범적으로 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에스더나 모르드개 뿐 아니라 다윗, 다니엘, 요셉, 모세, 엘리야, 등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허물도 크고 잘못도 있고 죄도 있다. 그 점을 외면하고 무조건 그들을 본받으라 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나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간의 반응을 균형 있게 살펴보고 싶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만, 가능하면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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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2장은 ‘그 후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성경만 놓고 보면 왕후 와스디를 폐위한 직후인듯 보이지만, 사실 시간은 많이 지났다. 그 동안 아하수에로는 170만 대군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전쟁에 나갔지만, 보기좋게 패배하였다. 크게 실망한 아하수에로는 국정을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에 빠져들면서 전형적인 폐군의 길을 걸었다. 신하들은 아하수에로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하였다.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여 후궁을 들이시고, 그중에 한 명을 왕후로 삼으소서.”

당시 수산 궁에는 유대인 모르드개가 있었다. 성경은 그의 족보를 길게 나열한다.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에2:5-6)

여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고냐를 잡아 올 때는 주전 597년이다. 아하수에로가 왕후를 뽑은 때는 아하수에로 제칠 년 주전 479년쯤이다. (에2:16) 모르드개가 태어나자마자 잡혀 왔어도 당시 나이는 대략 118살이다. 그러면 에스더는 몇 살쯤 되었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7, 80은 되어야 한다. 구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큰 난관에 봉착할 때가 많다.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고대인은 우리와 같은 시간 관념을 가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경험한 일을 자기가 경험한 것처럼 쓰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나’라는 개인주의적 관점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관점을 가졌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의 증조할아버지인 기스가 포로로 잡혀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르드개는 자기가 딸처럼 사랑하고 양육한 사촌 에스더를 아하수에로의 후궁으로 보냈다. 자원하여 보냈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억지로 보냈을까? 성경은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유대인의 신분을 숨기라고 하였다. 왜? 페르시아인들이 유대인을 미워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페르시아를 개국한 고레스 왕이나 아하수에로의 아버지 다리우스 왕 모두 유대인에 대하여 호의적이었다. 페르시아 궁정에는 유대인으로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다니엘, 느헤미야)이 있었다.

그러면 왜 숨기라고 했을까?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왕비는 페르시아인이어야 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데 장애가 될까 봐 유대인임을 숨기라고 하였다. 모르드개가 권력 지향적이라는 사실은 2장 끝부분에 왕을 암살하는 사실을 밀고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암살 음모를 고발한 것은 아하수에로에 대한 순수한 충성심 때문은 아니다. 악한 왕이 죽는 것보다 그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였기 때문이다.

왕비 뽑는 과정을 오늘날 미인대회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인대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떨어지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아하수에로가 뽑은 처녀들은 왕과 하룻밤을 잔 후에 일생 후궁에 갇혀 살아야 한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하수에로가 뽑은 왕비 후보이자 후궁은 400명이었다. 그들은 왕을 만나기 전 1년 동안 준비과정을 거치는 데 6달 동안은 몰약 기름을 쓰고, 6달 동안은 향품으로 화장하였다. (에2:12) 일 년 동안 미용실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즐거웠을까? 일 년 만에 처녀들은 매일같이 한 명씩 왕에게 나아가 하룻밤을 잔다.(에2:13-14) 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녀는 후궁에 가서 잊혀진 여인이 된다.

에스더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을까? 에스더는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다.(에2:15) 우리 말 성경은 수동태로 쓰였지만, 히브리어는 능동태로 쓰였다. 즉 에스더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행동하였다. 궁에 들어온 이상 에스더는 최선을 다하였다. 아하수에로는 결코 훌륭한 왕이 아니다. 그는 소심하고 무능하고 여자를 밝히고 잔인하였다.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주로 섬기는 불신 세상이다. 불신 세상, 나쁜 왕이 다스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불신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는 매우 어렵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며 곳곳에 죄악이 도사리고 있다. 왕후가 될지 안될지 전혀 모르던 에스더는 얼마나 불안하였을까? 그들은 때로 신분을 숨겨야 하고, 심지어 신앙까지도 숨겨야 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합당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룻밤 성적 노리개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신앙의 잣대, 도덕의 잣대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 혹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 규정하기 매우 어렵다. 에스더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사랑을 받아야 할 것 같으면 사랑받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함뿐이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발걸음 내디뎠다. 보이지 않는 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기도하였을 것이다. 비록 부족하고 죄가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소망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에스더서의 중심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가? 조국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유월절이나 안식일도 지키지 못하고 죄악 세상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