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영국의 여성작가 제인 오스틴의 장편소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은 18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상류계급과 중산계급 간의 갈등과 사랑을 다룬 소설로, 젊은이들이 만나서 서로 호감을 갖고 청혼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세태와 풍속,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류작가이자 현대 영미문학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의 저자다.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2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15세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21세 때 첫 번째 장편소설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후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서간체 소설 『첫인상』을 집필한다. 그러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다시 여러 작품의 집필과 개작 활동을 꾸준히 한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다시 초턴으로 이사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분별력과 감수성(Sense and Sensibility)』(1811),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813),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1814), 『에머(Emma)』(1815) 등을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출판...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여류작가이자 현대 영미문학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의 저자다.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2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15세 때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21세 때 첫 번째 장편소설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후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서간체 소설 『첫인상』을 집필한다. 그러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다시 여러 작품의 집필과 개작 활동을 꾸준히 한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다시 초턴으로 이사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분별력과 감수성(Sense and Sensibility)』(1811),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813),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1814), 『에머(Emma)』(1815) 등을 출판하였다. 이 책들은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호응을 얻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1817년 『샌디션(Sandition)』 집필을 시작한 뒤 건강이 악화되어 집필을 중단하고, 4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과 『설득(Persuasion)』은 그녀가 죽은 뒤인 1818년에 출판되었고, 후에 그녀의 습작들과 편지들, 교정 전 원고와 미완성 원고가 출판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영화화되어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As As 용법, be to 용법, chapter 1, Jane Austen, pride and prejudice, 가정법, 네이버 오늘의 회화, 독서, 리딩, 리스닝, 영단어, 영어 단어, 영어 도서, 영어 원서 읽기,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번역, 오만과 편견 정리, 오만과 편견 해석, 오만과편견, 제인 오스틴, 책 추천, 필독서 추천, 회화

관련글

  • [Chapter 4]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번역해석 및 분석정리 2020.10.11

  • [Chapter 3]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번역해석 및 분석정리 2020.10.06

  • [Chapter 2] Pride and Prejudice(오만과 편견) 번역해석 및 분석정리 2020.10.03

  •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2020.10.01

댓글 0

+ 이전 댓글 더보기

비공개 댓글 남기기

영국 BBC의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할 만큼 영국인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제인 오스틴. 이번에 출간된 『오만과 편견』은 두 영문학자들이 10년 동안 꼼꼼한 원문 대조 과정과 교차 검토 과정을 거쳐 탄생한 번역본이다. 오역이나 부정확한 번역을 없앴음은 물론, 오스틴 문체의 특징으로 잘 알려져있는 ‘묘출화법’이나 반어와 풍자, 그리고 당시 시대상에 맞는 적절한 단어 표현과 선택에 신경써서 번역했다.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에 사는 베넷 가에는 다섯 자매가 있는데, 그중 위의 두 명이 적령기를 맞고 있다. 온순하고 마음이 착하며 만사에 내성적인 맏딸 제인에 비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아가씨였다. 제인은 근처에 이사 온 늠름한 청년 빙리를 사랑하게 되지만, 신중하게 자기 애정을 숨긴다. 빙리의 친구 다아시는 겉치레를 우습게 알기 때문에, 성격 연구가임을 내세우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신분을 내세우는 ‘오만’한 남자라는 인상으로 비친다. 결국 다아시는 자유롭고 활달한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다아시는 베넷 부인과 아래로 세 명의 딸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엘리자베스와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꺼려하였다. 빙리 역시 제인을 사랑하고는 있었으나,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을 못한 채, 결국 이들 두 청년은 그 땅에서 떠나간다.

다아시는 그 뒤에 신분 격차와, 저속한 중매인에 대한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엘리자베스에게 구혼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그의 구애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는 경박하고 낯이 두터운 콜린스와 싹싹하기는 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위컴과 만나면서 결코 첫인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사건과 집안 문제에 부딪히면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너그럽고 사려 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편견’을 고치기로 결심한다. 이전에는 빙리와 제인의 사랑을 의심하여 결혼을 만류했던 다아시는 그들의 사랑을 믿고, 오히려 그들의 결혼을 주선한다. 이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도 이해와 사랑과 존경으로 맺어진다.

○ 저자소개 :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폭넓은 독서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열여섯 살 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물한 살 때 첫 장편 소설을 썼다.

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1794년에 서간체 단편소설 『레이디 수전』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혼담이 깨지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소설 「첫인상」을 집필했다. 그러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다시 꾸준히 작품을 개작했다. 그러다 1799년, 후에 『노생거 사원』으로 개제하여 출간된 「수전」을 탈고하고 1803년 출판 계약을 맺는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이성과 감성』(1811)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개작한 『오만과 편견』(1813)을 출간하였으며,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등을 출판했다. 이 책들은 출간 즉시 큰 호응을 얻었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1816년 『설득』을 집필하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1817년 『샌디턴』을 집필하던 중 병세가 깊어져 그해 7월, 42세로 생을 마감했다.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오스틴이 죽은 후 오빠인 헨리 오스틴이 작가 소개를 덧붙이며 1818년에 출판되었고, 후에 그녀의 습작과 편지 들, 교정 전 원고와 미완성 원고가 출판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출간되고 영화화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삶의 미묘한 이면을 포착하고, 재치 넘치는 위트와 은은한 유머를 담아 젠트리 계층의 사교 생활과 결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오스틴은 영국 BBC 선정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가장 사랑받는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역자 : 전승희

서울대에서 영문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서울대, 경희대 등에서 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 하버드대에서 비교문학과를 수료하고 강사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미하일 바흐친의 『장편소설과 민중언어』가 있다.

– 역자 : 윤지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초빙교수를 거쳐, 문학평론가, 《실천문학》 편집위원을 지냈다. 1985년부터 덕성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리얼리즘의 옹호』,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 『놋쇠하늘 아래서: 지구시대의 비평』이 있고, 역서로는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문화비평사』, 『언어의 감옥』 외 다수가 있다.

○ 작품의 줄거리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에 사는 베넷 가에는 다섯 자매가 있는데, 그중 위의 두 명이 적령기를 맞고 있다. 온순하고 마음이 착하며 만사에 내성적인 맏딸 제인에 비해,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인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아가씨였다. 제인은 근처에 이사 온 늠름한 청년 빙리를 사랑하게 되지만, 신중하게 자기 애정을 숨긴다. 빙리의 친구 다아시는 겉치레를 우습게 알기 때문에, 성격 연구가임을 내세우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신분을 내세우는 ‘오만’한 남자라는 인상으로 비친다. 결국 다아시는 자유롭고 활달한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다아시는 베넷 부인과 아래로 세 딸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더 이상 엘리자베스와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꺼려하였다. 빙리 역시 제인을 사랑하고는 있었으나,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을 못한 채, 결국 이들 두 청년은 그 땅에서 떠나간다. 다아시는 그 후 신분 격차와, 저속한 중매인에 대한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엘리자베스에게 구혼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오만’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그의 구애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녀는 경박하고 낯이 두터운 콜린스와 싹싹하기는 하지만 성실하지 못한 위컴과 만나면서 결코 첫인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러 가지 사건과 집안 문제에 부딪히면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너그럽고 사려 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편견’을 고치기로 결심한다. 이전에는 빙리와 제인의 사랑을 의심하여 결혼을 만류했던 다아시는 그들의 사랑을 믿고, 오히려 그들의 결혼을 주선한다. 이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도 이해와 사랑 그리고 존경으로 맺어진다.

○ 출판사 서평

– 전혀 새로운 번역, 원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으로 만나는 『오만과 편견』

18세기부터 현대까지 영국의 가장 대표적이고, 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류 작가로 꼽힌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1813)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88번째 목록으로 발간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지난 3월 우리 문학계와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미문학회의 ‘번역 소설 샘플 평가’의 대상작으로도 유명하다. 오역과 표절 등으로 점철되었던 기존의 번역본들과 달리, 원문에 충실한 정확한 번역을 목표로 옮긴이 윤지관과 전승희는 10여 년에 걸친 기간 동안 철저한 원문 대조를 통해 원래의 의미와 문체를 생생히 살려내어 원작의 가치와 재미를 그대로 실현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번역서를 통해서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참되게 감상하고 비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올 3월에 영미문학연구회의 번역 평가 사업팀에서는 영미 고전문학 번역 평가 사업의 샘플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샘플 평가의 첫 번째 대상작은 영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오만과 편견』은 1958년 정음사의 오화섭 번역본 이래 최근까지 34종의 번역본이 출간되었으며 현재까지도 15종 이상의 번역본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샘플 평가에서 다룬 21종의 번역본 가운데 원작의 작품성을 살려낸 믿고 추천할 만한 번역서는 단 한 종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평가 팀은 “이 번역본들 가운데 가장 잘된 것조차 겨우 줄거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을 뿐, 가독성과 작품 이해도에서 크게 미흡했으며, 나머지 번역서들은 원작에 대한 충실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정확성이 매우 부족해 거의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오만과 편견』은 윤지관과 전승희, 두 영문학자들이 10년 동안 충실한 번역과 꼼꼼한 원문 대조 과정뿐 아니라, 서로 교차해서 검토하는 과정을 되풀이해 탄생한 번역본이다. 이런 번역 과정에서 특히나 역자들이 염두에 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많은 번역서들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오역이나 부정확한 번역을 거의 모두 없앴고, 무엇보다 원작을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해 내려고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빼놓지 않고 꼼꼼한 번역과 원문 대조 과정을 거쳐 오역이나 내용 첨삭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원문 중에 표시된 강조나 인용문의 표기를 철저히 따라서 소화시켰다.

둘째, 작가 제인 오스틴의 문체적인 특징이나 기법을 최대한 살렸다. 제인 오스틴은 반어나 풍자 등의 수법에 탁월했으며, ‘묘출화법’을 즐겨 쓰는데,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이 묘미다. 그러므로 그러한 문투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셋째, 당시 시대상에 맞도록 적절한 표현을 찾아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또 작품의 배경인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의 농촌 생활이나 풍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내실 있는 번역을 하려고 애썼다. 가령 이 작품에는 식사 약속이나 식사 장면이 무수히 나오는데, 당시 농촌 신사 계급 집안에서는 늦은 아침을 먹고, 오후 너덧 시경에 디너(정찬)를 하고, 저녁 늦게 간단한 저녁식사(Supper)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정확하게 구별하여 번역하였다. (기존의 번역본에서는 대개 ‘디너’를 ‘저녁 식사’ 혹은 ‘만찬’으로 번역하여 내용상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또 morning은 아침 식사와 정찬 사이의 시간을 말하기 때문에 낮 시간을 포함하는 것으로, 일률적으로 ‘아침’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장면의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히 번역하였다.

넷째, 원작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도 빠뜨리지 않고 번역하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읽힐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이런 번역 과정은 비단 이 작품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역물의 기본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과정과 노력도 부족한 우리나라 번역 문학과 풍토의 척박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영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 ~ 1817)에 대하여

영국 여성 작가, 소설가, 지폐의 인물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년 12월 16일 – 1817년 7월 18일)은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였다. 섬세한 시선과 재치있는 문체로 18세기 영국 중 · 상류층 여성들의 삶을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생전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작품 중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은 여러 번 영화화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출생: 1775년 11월 16일, 영국 햄프셔주

.사망: 1817년 7월 18일 (41세), 윈체스터 대성당

.활동기간: 1787~1811년 (장르: 로맨스)

.주요 작품: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영화: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비커밍 제인, 클루리스, 노생거 사원, 엠마, 설득

.형제자매: 카산드라 오스틴, 헨리 토머스 오스틴, 제임스 오스틴, 에드워드 오스틴, 프란시스 오스틴

.연극: The Watsons

영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며,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로 손꼽히는 작가다. 1775년 12월 16일 영국의 햄프셔 주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사인 아버지로부터 폭넓은 독서 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습작을 하다가 열여섯 살 때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스물한 살 때 첫 장편 소설을 썼다. 1794년에 서간체 단편소설 『레이디 수전』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1795년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라는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는데, 1797년 이 소설은 개작되어 『이성과 감성』으로 재탄생한다.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혼담이 깨지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훗날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 소설 「첫인상」을 집필했다. 그러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다시 꾸준히 작품을 개작했다. 그러다 1799년, 후에 『노생거 사원』으로 개제하여 출간된 「수전」을 탈고하고 1803년 출판 계약을 맺는다. 180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어머니와 함께 형제, 친척,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의 권유로 햄프셔 주의 초턴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이 기간에 『이성과 감성』(1811)을 익명으로 출판하였고, 『첫인상』을 개작한 『오만과 편견』(1813)을 출간하였으며,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등을 출판했다. 이 책들은 출간 즉시 큰 호응을 얻었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명성을 쌓았다.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1816년 『설득』을 집필하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1817년 『샌디턴』을 집필하던 중 병세가 깊어져 그해 7월, 42세로 생을 마감했다.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오스틴이 죽은 후 오빠인 헨리 오스틴이 작가 소개를 덧붙이며 1818년에 출판되었고, 후에 그녀의 습작과 편지 들, 교정 전 원고와 미완성 원고가 출판되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출간되고 영화화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삶의 미묘한 이면을 포착하고, 재치 넘치는 위트와 은은한 유머를 담아 젠트리 계층의 사교 생활과 결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히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오스틴은 영국 BBC 선정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르는 등 가장 사랑받는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으로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 『노생거 사원』, 『Sanditon』, 『설득』, 『맨스필드 파크』 등이 있다.

○ 생애

– 스티븐턴 시기

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1775년 12월 16일에, 햄프셔주 스티븐턴의 교회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 (1731 ~ 1805)은 그가 9세때 일찍이 고아가 되었지만, 큰 아버지 프랜시스 오스틴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머니 카산드라 (1739 ~ 1827)는 제인 외에 7명의 형제자매를 두었다. 큰 오빠 제임스는 아버지와 같이 옥스퍼드에 들어가 시를 발표하였고, 이것은 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둘째 오빠 조지에 대해서는 별로 전해 지는 것이 없다. 셋째 오빠 에드워드는 유복한 집 양자로 들어갔고, 넷째 오빠 헨리도 옥스퍼드에 들어갔다. 다섯 째 오빠 프랜시스와 남동생 찰스는 모두 해군에 입대하여 제독까지 승진했다. 언니 카산드라와는 생애를 통해 가장 친한 관계로 현존하는 편지의 대부분은 카산드라 앞으로 보내진 것이다. 제인의 초상화는 카산드라가 스케치한 것만이 전해지며, 런던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보관하고 있다. 또한 반신의 채색화가 제인의 친족들에 의해서 소장되고 있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것은 10대의 제인을 그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783년에 카산드라도 지인에게 부탁하여 단기간이지만 옥스퍼드 및 사우스 햄프턴에서 교육을 받았다. 1785년부터 다음 해까지 바크셔 리딩에 있는 리딩 수도원 여자기숙학교에서 배웠다. 당시 다른 일반 소녀보다 충실한 교육을 받아 이전에 많은 문학 작품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영어로 번역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읽었다고 한다. 14세가 된 1789년에는 이미 소설을 습작하기 시작했는데, 친구나 가족에게 읽어주고, 들려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세 권의 노트에 정리했는데, 이것들 중 두 권째에 있는 ‘사랑과 우정’ (Love and Friendship) 등과 같이 벌써 특색이 있는 것도 쓰여지기 시작했다.

1796년 톰 러프로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청년을 만났고 그와의 연애담이 최초의 낭만적 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끌렸다. 제인이 캐산드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사답고, 잘생기고, 유쾌한 청년’이라고 그를 표현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톰 러프로이는 늙어서 자신의 조카에게 말하기를, 젊은 시절의 제인에게서 순수한 사랑을 느꼈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실을 맺지 못했고, 러프로이가 아일랜드로 돌아간 뒤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1795년, 편지체 형식의 ‘에리나와 메리안’을, 1796년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는 와중에 ‘첫인상’ (First Impressions)을 썼다. ‘첫인상’은 아버지에게 권유받아 출판사에 편지까지 보냈지만, 도달하지 않았다. 1797년 11월, ‘에리나와 메어리안’을 바탕으로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을 쓰기 시작한다. 게다가 후에 ‘노생거 사원’ (Northanger Abbey)이 되는 ‘레이디 수잔’ (Lady Susan)도 착수해, 1803년에 크로스드사에 판매를 하였다. 그러나 이때 출판되지 못하고, 사후 ‘설득’ (Persuasion)과 함께 출판되었다.

– 바스 시기

오스틴의 사생활은 거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1801년 아버지 조지는 큰 오빠인 제임스에게 목사 자리를 양도하고 일가는 당시 유명한 휴양지였던 바스 (서머싯주)로 이사를 간다. 제인은 이 사실을 듣고 졸도했다고 하지만, 바스에서의 경험은 이후 소설을 쓰는 큰 밑바탕이 된다. 여기에 가족이 함께 보낸 가옥도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왓슨 가족’은 이 시기에 쓰여졌다가 버려진 것이다.

1802년 해리스 빅 위저드라고 하는 사람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다. 그는 부유한 젊은이였지만 “아주 서투른” 성격이었으며, 그녀보다 6살 연하였다. 당시 미혼 여성은 평생 아버지와 형제에 의존하여 생활해야 했다. 영국 중류 계급에게 이러한 프로포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인은 일단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가 하루 만에 마음을 바꾸어 거절을 했다.

1805년 1월 21일 아버지가 사망하자, 오스틴은 어머니와 언니 세 명과 함께 사우샘프턴 (Southampton)의 캐슬 스퀘어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평온하게 살았다.

– 튜턴 시기

1809년 아내를 잃은 셋째 오빠 에드워드가 본인의 영지가 있는 초턴의 관리인 관리인 집을 내어준다. 제인 오스틴은 죽을 때까지 이 집에 정착한다. 이 집은 오스틴 기념관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1811년, ‘맨스필드 파크’를 기고하였고, 나아가 ‘이성과 감성’을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게다가 1813년 1월에는 ‘첫인상’을 기초로 한 ‘오만과 편견’을 출판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익명으로 발표되어 친한 이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1814년 5월 ‘맨스필드 파크’를 간행하지만, 독자나 문단으로부터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알려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1815년 10월, ‘엠마’의 출판의 직전에, 우연히 제인의 애독자가 된 이후의 조지 4세 (당시는 섭정관)를 대접하고, 급히 엠마를 섭정관에 헌정 했다.

1816년이 되자 몸상태가 자주 악화되어 병상에 오래 누웠다 (현재는 애디슨병에 감염되었다고 추측함). 1817년에는 ‘샌디턴’ (Sanditon) 집필도중 요양을 위해 윈체스터로 옮겼지만, 2개월 후 7월 18일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는 ‘윈체스터 대성당’에 묻혔고, 1818년에 ‘노생거 사원’ (Northanger Abbey)과 ‘설득’ (Persuasion)이 출판되었다.

– 대표 작품들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 1811년)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813년)

.맨스필드 파크 (Mansfield Park, 1814년)

.엠마 (Emma, 1816년)

.노생거 사원 (Northanger Abbey, 1817년)

.설득 (Persuasion, 1817년)

○ 당대 문인들과의 관계 및 평가

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샬럿 브론테는 오스틴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에는 정열이 빠져 있다며 비판했다.

제인 오스틴은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을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 여섯 편의 소설로 2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BBC가 ‘지난 천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격변기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연애를 그린 오스틴의 소설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결핍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스틴의 소설이 개인들의 일상생활에 한정된 소우주를 그려낸 것은 사실이지만, 오스틴은 누구보다도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으로 당대의 물질 지향적인 세태상과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도덕의식을 예리하게 탐구했다. 또한 당대에 유행하던 고딕 소설과 감상 소설, 로맨스 등 대중적인 문학 장르의 관례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정교한 작품 세계를 창조했다.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비교적 호응을 얻었으나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들에게 가려져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지 헨리 루이스와 헨리 제임스와 같은 비평가들의 격찬에 힘입어 문학 정전의 반열에 들게 되고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스틴의 소설들은 수백만의 열광적인 독자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영화, 연극, 드라마 등에서 무수히 리메이크되면서 대중적인 컬트로 자리 잡게 되었다.

○ 관련 작품들

“제인 오스틴은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다.” ― J. K. 롤링

사후의 인기만큼은 아니어도 생전에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작품이 인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풍족한 삶을 살지는 못 했는데, 이는 익명으로 활동한 것도 있었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급작스럽게 사망한 이유도 있다.

오만과 편견 원문 - omangwa pyeongyeon wonmun

당대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대한 평론들은 주로 피상적으로 도덕적 교훈을 논했지만, 월터 스콧은 그녀의 필체에 담긴 리얼리즘에도 주목했다. 대체로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국 왕실의 왕세자도 그녀의 소설을 좋아해서 오스틴을 궁으로 초대까지 한 것이다.

사후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작품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평론가들은 그녀의 작품에 부정적이었다. 1869년 그녀의 조카가 이모에 대한 기억을 담은 책을 출간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는 더욱 올라갔는데 이 때문에 비평 또한 무지하게 쏟아졌다. 조카들은 작가 지망생이었는데, 당대 빅토리아조 특유의 근엄한 도덕주의 기준에 맞춘 사실만을 모아 전기를 쓰는 바람에 사후 100여 년간 제인은 요절한 성녀로 알려졌다. 가장 친했던 바로 손윗언니인 커샌드라는 동생과 거의 매일 그날그날의 일을 편지로 주고받았고, 제인의 생활이나 견해를 잘 보여주는 편지가 상당히 있었지만 제인이 죽은 뒤 사적인 편지들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이후 정본이 확립되고 누락된 편지와 습작, 미완성작들이 출간되며 그녀는 재조명되며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제인은 요조숙녀나 성녀라기보다는 지적이고 활력이 넘치며 개성이 강한 인물로서, 풍자에 능한 작가답게 주변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속물주의에 대한 비판과 조소를 삼가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비판은 그녀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듯 듣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난스러운 것에 가까웠음을 언니와 나눈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후대의 소설가들이나 드라마 작가, 특히 한국 드라마 작가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제인 오스틴은 정말로 식상하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와 통속적인 구조 속에서도 주제의식과 재미 두 가지를 다 잡아냈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위와 같은 구조를 가진 작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범람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양질의 작품을 찾기란 매우 힘이 든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분명히 표지만 봐도, 발단, 전개,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는 점, 그러면서도 그냥 잘 읽히는 말초적인 재미만이 아닌 진지한 주제를 녹여낸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이 사람이 현대에 다시 태어났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다.

수많은 문학적 연구들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주제로 이루어졌고, 대중적 인기도 대단해서 1940년대부터 영상화된 제인 오스틴의 작품 숫자는 엄청 많다. BBC에서 ‘오만과 편견’을 드라마화한 것만 해도 수차례가 넘는다. 현재는 영문학계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영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우정을 그린 그녀의 작품의 특성 상 여러 번 영화화되었다. 2005년까지 총 6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조 라이트감독,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 ‘오만과 편견’이 있다.

그 외에도 제인 오스틴의 삶을 각색한 ‘비커밍 제인’, 원작 소설 ‘이성과 감성’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마지막 소설을 모티브로 한 ‘엠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