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사 이민 현실 - migug uisa imin hyeonsil

[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현재 45세인 A씨는 한국에서 비뇨기과 전문의 면허를 취득한 후 미국으로 갔다. 미국 의사면허와 영주권을 취득했고, 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 현재 텍사스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이민 온 A씨는 현재 성공적으로 미국 사회에 정착한 편이고, 지역의 한인사회에서도 명망이 높다.

현재 29세의 여의사 B씨는 의과대학 졸업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USMLE 시험을 본 후 레지던트 과정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 대한 괴리감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했으며, 현재는 한국의 모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에 있다.

현재 36세인 안과 개원의 C씨는 공보의 3년차 때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대학에 남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해외연수나 유학을 하지 않는 국내파가 교수가 되기는 쉽지 않음을 알고 선진 의료체계를 경험해 볼 겸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현재 USMLE 시험 STEP 1부터 준비중이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2년 후에 무조건 떠나는 것으로 결정해 놓은 상태다.

이들 세 명은 모두 usmlemaster.com 동호회 회원들이다. 이들과 비슷한 케이스들은 훨씬 더 많다.

지난 2001년 4월 메디게이트 내 동호회(CUG)로 시작한 usmlemaster.com은 회원이 3,000명을 넘어서던 지난 2002년 12월 메디게이트에서 독립했다. 2003년 6월에는 해외 이민, 연수 동호회와 하나로 합병했고, 현재는 무려 7,80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의사의 10% 가량이 가입한 셈이다.

USMLE에 대한 정보 공유를 위해 시작한 이곳은 지금까지 세미나, 시험 대비 모의고사, 시험 관련 강좌 등을 마련, USMLE를 준비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회원들 대부분이 20∼30대로 ▲의대생 1,000여명 ▲개원의 2,000여명 ▲봉직의 1,000여명 ▲공보의 및 군의관 2,000여명 ▲전공의 1,500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usmlemaster.com에 따르면 매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의대생 및 의사 수는 2001년 1,300명, 2002년 2,000명, 2003년 3,000명으로, 해마다 크게 늘고 있고, 회원들 중 미국 병원에 취업된 회원수는 2001년 12명에 이어 2002년 30명, 2003년 30명에 달한다.

동호회 장충영 회장은 “대부분 해외 진출을 원하고 있는 분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 언어문제”라며 “현재는 언어문제나 비자 및 이민 수속 등에 대한 법률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만 정보 교환에만 치중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그동안 해외진출을 원하더라도 진출을 위한 정보교류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게 사실”이라며 “해외 진출에 관심이 있는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진출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동호회를 통해 각종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며, 동호회 또한 이들에게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진출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으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한 해외진출에 성공한 이후라 할지라도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한편, 미국의사협회(AMA)에 따르면 2002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 중 타국 의대 출신 의사(인종이나 국적 불문)는 모두 19만8,703명이며, 그 중 한국 의대 출신은 2.3%인 4,593명으로 7위를 차지했다. 1위는 인도로 3만8,104명이, 2위는 필리핀으로 1만9,051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의대 이무상(비뇨기과) 교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우리가 애써서 돈을 들여 키워 놓은 학생들이 외국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나가는 것은 손해일 수 있다”며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는 결국 국가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의사들의 해외진출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복지부 한 관계자는 국내 의료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의사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사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미국 보험회사들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보다도 더 악랄한 곳”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외국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이고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그것은 체제의 문제”라며,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등 나라마다 그 나라의 여건에 맞는 환경이 있듯 우리나라의 의료환경도 우리 처지에 맞는 여건인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양성된 우수한 의사 인력이 국내의 의료환경에 좌절하고 해외로 향하고 있는 현실을 정부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도 있다. 국내 의료시스템에 있어서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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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장충영 (usmlemaster.com 동호회 회장)

- 동호회를 만들게 된 이유는?

사실 USMLE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개인적 필요에 의해 만들게 됐다. 하지만 내가 시험을 치른 이후에는 이 동호회가 여러 사람들에게 필요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동호회 회원수가 상당하던데 이렇게 해외진출을 꾀하는 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의 의료 사회가 급속하게 몰락해 가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인력의 과잉공급으로 의사의 지위가 급속하게 추락해 가고 있는 이같은 현실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 과거에도 해외로 진출한 의사들이 많았다. 최근의 흐름이 과거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60∼70년대 약 1만2,000명의 의사들이 미국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의 경제적 현실 때문에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꿈꾸며 떠난 분들이었다.

또한 이미 많은 분들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을 보면서 귀국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의료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진출을 계획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 즉, 사회주의적 의료환경, 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의료인력의 과잉공급이 의사들로 하여금 해외진출을 모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 우수한 인력의 해외진출의 국내 의료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있다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많은 의사들이 외국으로 진출할 경우 국내 의료인력의 과잉공급 현상이 완화되지 않겠는가. 또 해외에서 우수한 의료지식을 습득한 후 고국에 돌아와 기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악한 국내 의료환경이 지속될 경우 젊은 층의 해외진출은 가속화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나친 유출로 인해 최악으로는 국내 의료인력의 공급부족 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앞으로 동호회 회원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계획인가?

우선 회원들의 언어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 중에 있다. 또한 비자, 이민 관련 프로그램이나 레지던트 지원 시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 할 것이다. 그리고 수년 내에 미국 내 각 지역별 동호회 지부를 마련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유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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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장)

- 미국엔 언제 갔었나?

1967년이다. 지난 88년 연세대에 발령을 받아 귀국할 때까지 20여 년 정도 미국 생활을 했다.

- 당시에 미국으로 가게 된 배경은?

우리가 60년대 중반 미국으로 갈 때는 4·19 혁명과 5·16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우리나라의 모든 여건이 열악했고 후진성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당시에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 필리핀, 이란 등 외국의 우수한 인력들을 끌어들이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외국 진출을 꾀하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의사들이 외국으로 진출하려는 의도와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려 한 목적이 과거에는 외국을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우리의 것을 팔기 위해, 우리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젊은 의사들이 외국에 나가려고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많은 의사들이 그런 생각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미국 의사로서 생활하는 데 있어 후배들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미국 등 외국에 가서 의사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환자들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가게 되더라도 이왕이면 국내에서 임상경험을 쌓은 후 가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부분들과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점은 더욱 빨리 받아들이고, 오히려 자신이 더 좋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부분도 생기게 된다. 나의 경우 한의학을 공부했었다는 점이 다른 나라의 의사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었다. 하지만 언어가 딸리면 가르치는 것은 고사하고 배우는 것조차 어렵다. 또한 외국의 이질적인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 국내의 의료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이 이런 흐름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의사들의 해외 진출이 도피의 성격에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더 좋은 기회를 찾기 위해, 더 좋은 교육을 찾아서 가는 것이면 몰라도, 현재 국내 상황이 힘들다고 해외로 나가려 한다면 힘들게 장벽을 넘은 이후에도 불만이 높을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나간다면 만족도 없고 발전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 ‘두뇌유출(brain drain)’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우수한 사람만 나가는 것도 아니고, 우수한 인력이 모두 나가는 것 또한 아니다. 국내에도 우수한 의료인력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특히 그들이 외국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실력을 쌓아 한국인으로서 명성을 떨칠 수도 있고,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는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전에 국경은 지도에 빨간 줄로 표시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가서 활동하는 곳이 바로 우리의 영토이기도 하다.

유지영 기자

미국에서 온 편지…내가 미국에서 다시 레지던트를 하기까지


미국 의사 이민 현실 - migug uisa imin hyeonsil

손정현 (서울의대 졸, 한국 안과전문의, 위싱턴대학 fellow, 현 미국 룰이빌대학병원 안과 레지던트)

이제 어느덧 transitional year residency(internship)도 끝나가고, 며칠 후에는 안과 레지던트를 다시 미국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시간들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많은 선배들과 동기, 후배분들이 미국에서 훌륭하게 활동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제 미국에서 의사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하는 제가 이런 글을 쓰자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만, 뒤늦게 다시 시작하시려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래는 미국에 가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영어도 관심 밖이었습니다. 중·고교시절 부모님께서 유학을 권유하셨을 때에도, 지금 학생들과는 다르게, 한국에서 뼈를 묻겠다며, 가족과 친구들을 멀리하고 어떻게 떠나느냐고 울고 불면서 소위 단식투쟁(?)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울대병원에서 안과 레지던트를 하면서 저에게는 다른 시각이 주어졌습니다. 우선 저희 동기인 문철소 선생이 박사 학위를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가톨릭대학 안과 주천기 선생님이 미국 연수 후 한국에 오셔서 많은 연구업적을 쌓으시는 것, 서울아산병원 안과 윤영희 선생님이 미국에서 망막 임상 펠로우를 하신 후 한국에서 역시 훌륭히 활동하고 계신 것 등이 저에게 아주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머뭇거리고 있던 저에게, 우연히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망막과 포도막염 펠로우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 안과학교실에서 하게 된 것입니다.

이곳은 과거 서울대 안과 대선배님이신 윤동호 선생님이 다녀오신 곳이고 최근엔 주천기 선생님이 다녀오신 곳이어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관광지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물가도 싸고 생활비도 저렴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막상 미국에 도착해서보니, 연구면에서 소위 infra-structure에서 많이 놀랐고, 아울러 소위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외래에서 환자를 보고 진료할 기회도 있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차트에 있는 갈겨써진 영어글자를 해독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연구에 비해 별로 재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연구를 하면서도 여유있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다른 교수님들을 동경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부터는 중점적으로 연구 펠로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구 펠로우를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의사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본질적으로 저하고 자세가 달랐습니다. 2년 정도 미국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나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저와는 달리, 그들은 열심히 해서 미국에서 인정받고 레지던트를 다시 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지내다보니 그들의 생각이 점차 이해가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안과 레지던트를 하는 곳에는 Dr. Tongalp Tezel이란 분이 있는데, 터키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유럽에서 펠로우를 했고, 다시 미국에서 펠로우를 하다가 결국 안과 레지던트를 워싱턴대학에서 마치고, 지금은 루이빌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족적을 보면서,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한번이라는데, 그냥 평범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한번 모험해보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안과 프로그램에 들어가려면 되도록 미국의대 졸업생이어야 하고, 아니면 USMLE 최고점수가 있어야 하며, 좋은 연구경험, 추천서, 사회봉사경험 등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얼떨결에 본 USMLE 점수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서, 그 외의 것을 좋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먼저 많은 사회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미국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면서 회의와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science fair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자원봉사자로 Kentucky State Fair에서 눈질환 검진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 시키는 것을 하기보다는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먼저 공부하고, 바둑에서 말하는 중요한 포석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틈틈이 대학원 수업에 참석하여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맡은 프로젝트가 잘 되어가자 제 나름대로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시행하게 되었고, 이것이 결국에는 Nature Medicine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끝내 문제였습니다. 인터뷰 담당자에게는 열심히 노력해왔고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따름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온 교수님이 저를 영국으로 데려가려 하신 적이 있는데, 한때 영국행도 생각했었지만 일단 미국에서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영국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미국에 온 인도 의사들의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은 영국에 가면 오히려 더 고생한다’는 말도 영국행 포기의 요인이 됐습니다.

인턴은 인터뷰를 여러 군데 다니면서 분위기가 좋을 듯한 곳으로 골라 Match list를 작성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외국인인데다가 나이도 많아서, 잘못하면 구박덩어리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막상 인턴을 시작해보니 생각 외로 순조로웠습니다. 미국 북부지역은 남부 사투리가 별로 없고, 한국 사투리도 외국사람들이 잘 알아들었습니다. 특히 이 근처 흑인들은 중국인 가게에 많이 가던 터라 제 발음도 잘 알아들었습니다. 처음 입원시킨 환자는 오히려 제가 한 영어를 못 알아듣는 백인의사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을 간호사들이 잘 따라하고 환자들이 이해해 주는 것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래도 영어는 문제였습니다. 환자에 대해 토론을 하려면 생각대로 이야기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고, 조금 빨리 이야기하면 발음이 뭉개져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미국의 의료제도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생소한 의료제도와 기관들 때문에 몇 번씩 되물어가면서 일을 더디게 처리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생각으로 환자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잘 가지고자 회진을 잘 돌고, 다른 specialty 의사들과도 환자의 치료에 의문이 가면 수시로 묻고 토론하였으며, 환자에 대한 사항은 수시로 관계된 책과 논문을 찾아 최선의 치료를 하고자 힘썼습니다. 당직 때는 전화로도 처리가 가능한 일도 되도록 환자를 직접 보고 확인한 후 불안해하는 환자와 간호사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했습니다. 부족한 영어로 인해 생기는 communication문제를 시간과 정성으로 cover하여 좋은 의사-환자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전화위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conference에도 항상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하여 주도권을 가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록 말은 잘 못하지만 미국의대 졸업생도 저를 자기들의 그룹에 끼어주었고, 그곳 attending 선생님들과도 수시로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미국 의사의 특징이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의사들이 잡무에서 벗어나 있으며, 병원의 구조가 의사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채혈, 검사결과 정리 등은 확연히 레지던트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주치의로서 좀더 환자의 진료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최근엔 주 80시간으로 일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인턴들이 과로하지 아니하고, 공부하면서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병원에 레지던트 월급과 교육기금을 줌으로써 레지던트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점을 지적할 만합니다. 의사-환자 관계면에서는 환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이 있지만 일단 의사들의 말을 경청하고 들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환자들은 설명을 잘해주는 의사를 아무래도 따르려 합니다. 미국에도 최근에 malpractice insurance premium, medicare cost, management insurance plan 등의 압력이 점차 거세지고 있지만, 한국에서와 같이 의사들을 돈만 아는 모리배로 매도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일주일에 5일 일하는 것이 보통이며, 더 일하는 과도 있는 반면 주 4일을 일하는 과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선택에 따라 적게 일할 수도 있는 다양한 근로조건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시작의 길에 서 있습니다. 저의 경험이 미국에서의 의사 생활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