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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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1958년생. 무사시노 미술대학교 교수인 동시에 일본 디자인 센터(Nippon Design Center)와 하라 디자인 연구소(Hara Design Institute) 대표인 하라 켄야는 <리디자인: 일상의 21세기> <햅틱> <센스웨어>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는 일본 문화에서 기인하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 중 큰 축을 차지하는 ‘공(空)’의 개념을 일본의 세계적 브랜드 ‘무인양품’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으며, 2003년 산토리학예 상을 수상한 <디자인의 디자인>, 일본의 미의식을 디자이너의 눈으로 들여다 본 <백>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디자인 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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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 제품 카탈로그 내지 이미지
무인양품은 ‘생활의 형태’라는 제한된 상황, 즉 집을 통해 7000품목을 하나로 묶어 소비자에게 제안하고 있다.

하라 켄야는 인터뷰가 예정된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뒤 기자가 대기하고 있던 좁은 방으로 들어왔다. 180cm가 족히 넘을 정도의 큰 풍채를 갖춘 그는 먼저 다가와 정중히 명함을 건네고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답에 응하며 눈이 내린 창밖을 자주 응시했고, 인터뷰 내내 진지했으며, 매우 차분했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 옆으로 돌아서 마신다거나, 손윗사람을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김치나 막걸리, 지짐이 등 한국 요리도 무척 좋아합니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왠지 일본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지형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매우 가까이 있고, 앞으로 아시아의 시대가 되어 간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사이좋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단순히 이웃 나라로 생각하기보다 동지 의식을 가지고 한국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가장 일본다운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은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 그래픽 디자인계의 전설 다나카 잇코(田中一光)와 일본 유통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츠츠미 세이지(堤清二)에 의해 소매 유통업으로 처음 시작했다. 하라 켄야 디자인 철학의 핵심인 ‘공(空,  emptiness)’의 개념은 무인양품의 7000품목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18세와 60세에 맞는 테이블을 따로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18세나 60세 모두 이 테이블은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 심플(simple)과 그가 말하는 ‘공’의 결정적 차이다. 무인양품은 단순히 디자인이 뛰어난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그것은 물질만능의 시대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전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 최고 디자이너 간의 세대교체를 통해 디자인 DNA를 전수하며 후카사와 나오토(深沢直人) 같은 톱 클래스 디자이너들과 힘을 모아 나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워내고 있다는 데 있다.

무인양품은 일본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기존 슬로건인 ‘이유가 있어 싸다’에서 ‘이것으로 충분하다’로 한 차원 더 발전시키며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무인양품이 처음 태어난 해는 1980년입니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의 전성기로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물건이 넘쳐나던 시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무인양품이 등장했지요. 제품을 호사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라 생산의 프로세스와 패키지 등을 합리화해 소박하고 간소하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런 무인양품의 철학은 2002년 다나카 잇코로부터 아트 디렉션의 바통을 이어받은 후에도 바뀌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처음에 40품목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7000품목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슈퍼마켓의 사설 브랜드였기 때문에 제조업이 아니라 소매유통업에서 시작했습니다. 직접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보니 제조사에 요청해 ‘색은 흰색으로 해주세요’라든지, ‘색 없이 부탁 드려요’라는 식으로 운영됐습니다. 미완성적인 면이 많이 있었죠. 무인양품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생략해 나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제가 고문의 멤버가 된 이후부터 프로덕트 디자인은 후카사와 나오토 씨가 담당하는 등 디자인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방향으로 보완해 나갔습니다. 형언하기 힘든 역설적(paradoxical)이고, 신비한 디자인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디자인을 하지 않은 듯한 디자인을 한다’는 제2기(期)로 넘어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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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광고(2003년, 몽골리아 평원 편)
무인양품의 광고는 가능한한 메시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인양품’이라는 로고 자체가 모든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만을 표현한다. 5~6명의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는데 사원 모집 문구는 ‘디자인하지 않은 디자이너 모집’이다. 무인양품의 카피라이터는 ‘시’를 죽여야 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죽여야만 한다. 그래야 무인양품의 디자인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그 숨은 의도가 궁금합니다. 기업에게 상품이나 제품은 나무에 열린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일의 품질을 좋게 만들어 보겠다고 과일에 장식을 달아 봤자 소용이 없지요. 그 열매의 품질을 좋게 만들려면 나무를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좋게 만들려면 그 나무가 심어져 있는 토양을 좋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 토양의 품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욕망의 에듀케이션’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시장의 크기가 달라 뉘앙스가 다를 수도 있지만, 일본 기업이란 일본의 토양 위에서 자라난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가 좋은 열매가 되려면 일본이라고 하는 경제・문화권 사람들이 지닌 자동차에 대한 욕망의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그 토양에서 자란 나무의 열매, 자동차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입니다. 열매만 디자인한다고 다가 아니라 전체적인 자동차에 대한 수요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노골적인 표현인지라 더 좋은 말이 있다면 그것으로 대체하고 싶기는 해요. 어쩌면 욕망이라는 말을 ‘희망’이라고 바꿔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소비자가 지닌 욕망을 ‘희망의 수준’ ‘희망의 질’이라 표현한다면 그 희망의 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고민하는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라는 대상은 선생님께서 예상하신 대로 잘 에듀케이트되던가요? 제가 ‘에듀케이션 하는 사람’, 즉 ‘교육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인양품이 교육자라는 것도 아니죠.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란 자기 자신이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소비자가 ‘이것이 갖고 싶어’라는 욕망을 환기시키는 상품을 만듭니다. 기업은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심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경제를 일궈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뭔가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경이나 자원 문제도 있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조금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어요. 무인양품의 상품을 살 때 ‘이것이 갖고 싶다’는 게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요.‘그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제품을 사용하는 게 오히려 이성적이고 똑똑한 것’임을 깨닫는 게 기분좋은 일이라는 것을 사용자 스스로 각성(awaken)해 나가는 것입니다.

뛰어난 디자인 전략이 있어도 클라이언트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리는 없으셨나요? 무인양품이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요구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인양품도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안 되고, 물건이 회전하지 않으면 안 되죠.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고 상품은 팔리지 않는다면 무인양품이 아랍권 회사에 매수 당하는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무인양품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의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디자이너는 이상적인 것을 잘 생각하면서도 그것이 이윤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저는 무인양품의 어드바이저인 동시에 디자인도 수주하는 독특한 관계입니다. 조언을 하는 입장과 그곳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입장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에게 클라이언트는 무인양품이 아니라 소비자라 볼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가 그저 싼 가격만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그냥 놔둬도 모든 제품이 좋아질 텐데…, 역시 그런 사이클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에 대한 고민이 관건입니다. 결국 어떤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에 대한 서로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지가 없는 시장은 의지가 있는 시장에게 반드시 패배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매니지먼트 할까 하는 문제가 참 어렵습니다. 특효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문화가 대단히 취약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햅틱>이나 <센스웨어>전을 통한 시도도 시장에 대한 제 의사 표명 중 하나입니다. 디자이너는 역시 그런 일을 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런 건 어떤가요?’ ‘이런 것도 멋지지 않나요?’ 혹은 ‘이런 미래를 만드는 건 어떤가요?’라고 제안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거죠.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고 말하면 “역시 하라 씨는 굉장히 선생님답네요”라고 많이 생각하겠지만 각성해 나가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희망의 질’을 스스로 발견하고 개선함으로써 더 좋아지는 ‘깨달음(気づき)’이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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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기획한 <리디자인: 일상의 21세기>전에 선보인 디자인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32명의 디자이너에게 일상의 제품을 다시 디자인하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져 온 ‘일용품’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드러나는 ‘생각의 차이’를 통해 디자인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1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의 화장지. 사각형 종이 심은 종이를 잡아당길 때 달그락거리며 걸리게 돼 있어 동그란 심에 비해 휴지를 절약할 수 있고 운반 시 공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2 광고・영화감독 사토 마사히코(佐藤 雅彦)의 출입국 스탬프. 비행기 방향을 반대로 해 출국과 입국을 표현한 것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하루 평균 5만 명의 외국인에게 ‘일본인들이 재미있는 생각을 했구나’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3 조명 디자이너 멘데 카오루(面出薫)의 성냥.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 발화제를 입힌 것으로, 지구로 환원되기 전 마지막 일을 시켜 보자는 발상을 담았다.

‘세계의 합리적 가치’를 추구하며 내세운 무인양품의 슬로건이 현재의 전 세계적 경제난 속에서 그 가치가 어떻게 변모해가고 있는지 또는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인간 모두가 옳은 방향으로 나가기는 힘들겠죠. 어찌 보면 저는 사회가 가려는 방향의 반대 쪽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 지구 환경이 이렇게 됐어도 소비주의가 그다지 움츠러들지 않고, 중국을 중심으로 상품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죠. 중국 시장 등을 감안하면 ‘이것으로 충분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좋다’가 강해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브랜드 제품을 갖고 싶어’ ‘서양인이 갖고 있는 게 갖고 싶어’ ‘사치품이 갖고 싶어’ ‘내가 부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런 욕구는 인간에게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니 점점 더 그렇게 되겠죠. 그러나 그럴 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라며 반대로 방향을 되돌리려는 ‘이성’이라는 게 늘 움직이는 것도 사람입니다. 무인양품도, 제 디자인 활동도 그런 반대 방향으로의 각성을 주창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시장인 것입니다. 이성적인 소비를 한다는 것도 인간에게 대단히 큰 만족감을 줍니다. 자신이 부자임을 자랑하거나 돈이 많다고 호사스러운 것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제대로 고를 수 있다는 행위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소수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런 부류도 필요한 것이지요.

하라 켄야가 국내에서 좀 더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일본에서 처음 열린 <햅틱>전을 통해서다. 이 전시회를 통해 실제 바나나를 뒤집어씌운 것 같은 형태의 바나나 우유 패키지, 젤리처럼 흐물거려 살아 있는 듯 보이는 신소재로 만든 리모컨 등 보기만 해도 촉각이 곤두서는 제품들이 선보였다. 그가 말하는 ‘햅틱(촉각)’의 핵심은 인간은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 수 많은 감각 기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이 감각의 경로를 찾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햅틱>전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를 돌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국내에서는 2008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소개됐다. 이 전시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후카사와 나오토와 반 시게루, 구마 겐코, 재스퍼 모리슨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국내 대기업도 ‘햅틱’이라는 이름을 제품에 붙일 만큼 ‘햅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햅틱’을 ‘재미’의 한 요소로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햅틱의 개념을 받아 들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햅틱>전은 촉각을 사용해 재미있는 디자인을 시도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디자인의 요인은 색, 형태, 텍스처 등 ‘외적인 요인’에 중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즉, 어떤 색으로 할지,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어떤 촉감으로 만들지 그런 것만 계속 생각해 온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사물을 ‘어떻게 느끼는가?’ ‘인간의 감각은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관점에서의 디자인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지요. 바우하우스 이후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햅틱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 ‘햅틱’입니다. 그만큼 감각의 세계라는 분야는 아직 과학이 다 탐구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색이나 모양은 다양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뇌의 문제는 앞으로 더욱 탐구해야 할 세계이며, 과학의 미개발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곳에는 대단히 큰 디자인적 가능성이 있습니다. ‘햅틱’을 표면상 보이는 일차원적인 해석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굉장히 시시한 것이 돼버리고 말 겁니다.

느끼는 방식을 알려면 대단히 세밀한 사고 과정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 발견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경제가 잘 돌아갈 때라든지 사회가 진전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큰 보폭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게 마련입니다. 정수처럼요. 예를 들어 8, 9, 10, 11로 걸어왔다고 칩시다. 다음에는 모두 12를 바라보게 될 겁니다. 그러나 미래는 12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6.8이라든지 7.2 같은 데서 문득 미래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정수처럼 큰 보폭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래가 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소수와 같은 불연속적인 미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디자인이나 일상이나 신체 같은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소수점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수점을 발견한다면 대발견이겠지요. 지금까지의 디자인이 덧셈 뺄셈이었다면 저는 소수점을 먼저 발견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햅틱’을 통해 다른 감각의 대륙을 발견한 것이고요. 이런 식으로 디자인을 생각함으로써 미래를 다른 모양새로 불러들이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00년 <리디자인re-design>전을 연 이유도 ‘일상의 재미있는 디자인’을 전시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디자인이 제트기나 미래형 자동차처럼 거창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두루마리 휴지나 휴대 전화, 펜 등 정말 친숙한 것도 잘 들여다보면 매우 획기적인 착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계가 달리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과거 검은 배(에도 시대 일본에 들어오는 서양의 배를 뜻하며,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임)가 다가오듯 멀리에서 전혀 모르는 미지의 존재가 들이닥치는 식으로 세계가 바뀌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이지만 익숙한 일상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죠. ‘인식을 살찌운다’든지 ‘미묘한 곳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일은 결국 소수점을 발견하는 일인 것입니다.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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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기획한 <햅틱Haptic: 촉각>전에 선보인 디자인들: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많은 감각 기관의 발견을 디자인에 접목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1 하라 켄야의 ‘물 파친코(Water Pachinko)’. 방수 재질의 표면 위에 떨어진 떨어진 물방울은 인간의 장기를 관통하듯 각자의 정해진 길을 따라 경쾌하게 흐른다. 그 모습이 깨나 환상적이다.
2 후카사와 나오토의 ‘주스 껍질(Juice Skin)’. 실제 바나나를 뒤집어씌운 것 같은 형태의 바나나 우유 패키지로 보는 순간 군침이 흐른다.
3 파나소닉(Panasonic)의 ‘젤 리모컨(Gel Remote Control)’. 녹아 있는 듯 흐물거리는 이 리모컨은 센서가 장착돼 있어 손대면 불이 켜지면서 딱딱해지는데, 마치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2007년 기획한 <센스웨어Senseware>전: 산업계와 디자이너가 손잡고 일본의 최첨단 인공 섬유 특성을 디자인과 연결해 그 가능성을 선보인 전시다. 2009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미술관(Triennale di Milano) 전시에 이어 도쿄 미드타운 디자인 사이트(Design Sight)에서 2009년 버전을 선보이며 비중을 높이고 있다.
아사히 카세이 섬유회사(Asahi Kasei Fibers Corporation)를 위해 민트디자인(Mintdesigns)이 제안한 ‘투 비 섬원(To Be Someone)’.

최근 한국에는 기상 관측 이래 최대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어쩐지 저술하신 <백>과 잘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백>을 보고 있자면 기존 디자이너들이 쓴 디자인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비교적 책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언어를 사용해 디자인을 논하는 것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색이나 형태를 동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의미의 디자인일 수 있겠지요. <백白>을 쓰게 된 계기는 ‘엠프티네스’ 때문입니다. ‘텅 비어 있다는 것’, ‘공’에 대해 쓰자고 생각한 것이지요. ‘공’이나 ‘백’은 일본이라는 문화권에서 살아온 제 자신의 미의식(美意識)과 이어집니다. 미학(aesthetics)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미의식이란 게 단순히 의식만의 문제, 윤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원(resources)’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석유나 철광석같은 하나의 자원 말입니다. 미의식이 자원이라는 것을 잘 이해한다면 그것을 운용해 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은 전후 50년 동안 물건을 만들어 왔습니다. 공업화로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그것을 유지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일이 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으니까요. 특별한 물건을 만들면 되긴 하겠지만 그것도 일본의 주특기는 아닙니다.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란 건 과학이기에 어디든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의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이나 저는 앞으로 관광 산업처럼 서비스, 즉 접대(hospitality)를 포함하는 영역에서 모두가 기분좋게 지내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거나 하는 일을 해야 할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자국의 미의식을 잘 활용해 새로운 문화의 원형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네 미의식의 자원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글로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 하나의 포인트로서 심플(simple)이 아니라 ‘엠프티(empty)’를 찾아낸 것입니다. 미국은 심플이라는 개념을 찾아냈지만 일본의 문화는 ‘공’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이라고 표현하다 보니 왠지 중국의 노장 사상이나 인도의 불교사상 같은 것과 겹치기 시작하더군요. 여기에서 제가 말하려는 ‘공’은 노자가 말한 ‘아무것도 없다’ 혹은 불교에서 말하는 ‘0은 0이다’ 같은 사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엠프티가 아니라 ‘백’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이야기가 잘 풀리더군요. 어찌 보면 이 책은 디자인 서적이라기보다는 미의식에 관한 서적이라고 해야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얗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존재한다. 하얗다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감수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일상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수성이란 건 키우는 게 아니라 모두가 이미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얀 꽃이란 매우 하얗죠. 숲 속에 하얀 꽃이 피어 있으면 새하얗게 보입니다. 그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낍니다. ‘숲 속의 꽃이 하얗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러나 숲 속의 꽃 뒤에 A4 용지를 대보면 대부분의 경우 A4 용지가 더 하얗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꽃은 사실 별로 하얗지 않고 약간 탁하거나 조금 노란 기를 띱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A4 용지를 새하얗다고 느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물론 하얀 물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하얗다는 느낌을 받진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하얀 정도가 그 느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숲 속의 꽃이 하얗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지요. 여기서 바로 ‘사물을 느끼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숲 속의 꽃이 더 하얗게 느껴지느냐 하는 것을 깨닫는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에 있어서도 능숙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물을 이해하는 시스템을 알아낸다는 것은 ‘악마적인(사악한)’ 행위일는지 모릅니다. 디자인한다든지 표현한다든지 등의 의식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법이나 인식하는 법을 악마처럼 탐구해 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인식을 작동하고 있지만 스스로가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는 못합니다. 늘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계신가요? 사실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그런 충동대로 움직이는 것이지요. ‘왜 모두 눈을 보고 감동할까?’ ‘그런 것이 왜 일어날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 자체가 멋진 행위입니다. 나만이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발견해 나가는 게 굉장히 즐겁습니다. 감각도 둔화되고 머리 회전도 잘 안 되면서 구매력만 왕성하다든지 하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니에요. ‘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세상이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왠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일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감각의 평화’ 같은 곳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모두가 ‘감각의 평화’를 공유할 수 있다면 자원 문제도 환경 문제도 어느 정도는 제동을 걸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책에서 일본의 미의식을 ‘청소’와 관련지어 언급하신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부분을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저는 최근 들어 디자인이 청소와 비슷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와” 하고 감탄을 자아내거나 재미있다며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디자인을 선호했지만 요즘에는 서체를 쓸 때도 거의 일반적인 서체만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진정한 고딕체와 민초체, 산세리프와 로만이라는 아름다운 서체만 패밀리로 갖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다. 자간과 행간을 조정해 글이 잘 읽히게만 배치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지요. 그것이 이른바 ‘청소를 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봅니다. 청소란 장식을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정돈하는 일을 뜻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물이 대단히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본 절의 정원은 참 아름답습니다. 이전에는 선종(禪宗) 사찰의 정원을 보며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정원의 돌 배치나 나무 배치, 즉 조경이 좋기에 정원이 좋아 보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굉장히 잘 청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거죠. 일본 선종의 절에는 카레산수이(枯山水,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 모래 등을 배치해 풍경을 나타내는 정원 양식)가 있는데 그런 정원은 굉장히 인공적인 느낌을 줍니다. 꾸밀 때 모두 인공적인 것만 사용하면 아무래도 재미가 없으니까 바위에 이끼가 껴 있는 게 더 좋고, 꽃이나 나뭇잎이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게 더 보기 좋겠지요. 자연을 불러들이고 받아들이는 일과 인공적인 작업을 교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여기까지는 바다, 여기까지는 땅’이란 식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해안가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걸 만들어 가는 작업이 바로 청소인 겁니다. 상당히 어려운 작업인데 일본의 선종 사찰은 경우에 따라 그런 작업을 몇 백 년이나 계속해 왔습니다. 일본 조경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청소법이 아름다운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새로움’이 아니라 ‘지속’이 낳아 온 아름다움이 숭고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새로운 것은 순간적으로 소비되고 맙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늘 새로운 것만 찾는 것은 이미 소비주의에 물든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과 인위의 해안가를 관리함으로써 큰 아름다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유지되는 것’과 ‘유지하는 것’이 낳는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 2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개회식(the Nagano Winter Olympic Games Ceremony) 브로슈어 표지와 내지 이른 아침, 밤새 내린 눈밭 위를 걷던 설렘을 누구나 간직하고 있다. 전 세계로부터 일본에 오는 손님들에게 ‘눈을 밟던 기억을 되살린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특별 가공한 푹신푹신한 흰색 종이에 압력을 가해 누르면 반투명한 종이가 드러나는 데, 이는 마치 눈 밑에 나타난 얼음의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진 광택 소재의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눈과 얼음의 종이’를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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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자연의 예지(叡智: 지혜)’를 주제로 아이치 현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 ‘엑스포 2005 아이치(Aichi)’ 공식 포스터 디자인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의 조화를 꾀함으로써 더 많은 지혜와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 콘셉트를 담아 시각 표현물을 디자인했다.

하라 켄야는 2008년 일본인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와 함께 일본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로 ‘디자인 플랫폼 재팬’을 설립했다. 그 첫 번째 전시로 <재팬 카: 포화된 세계를 위한 디자인>전을 파리와 런던에서 열었다. 각자의 트레이드마크인 종이 구조와 백(白)을 이용해 전시를 구성했고, 토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내 7개 자동차 업체가 참여해 문화의 관점에서 일본 자동차를 바라보고 그 문화적 배경과 철학,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디자인 플랫폼 재팬’의 설립은 일반적인 디자이너 활동 영역의 관점에서 볼 때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한 명의 건축가와 한 명의 디자이너가 손잡고 일본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전시회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일어선 것입니다. 굳이 조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둘이서 <재팬 카Japan Car>라는 전시를 했는데, 당시 둘 다 나이가 50세였고, 그다지 친한 친구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런 일을 벌였습니다. 단둘이서는 아무래도 힘이 약할 수밖에 없어서 조직 명이 있는 게 좋겠다 싶어 이름을 지었고요. 원래는 플랫폼이 아니라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고자 도쿄도(東京都) 도지사에게 그 내용을 프레젠테이션했는데 별 흥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그 길로 포기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역시 뮤지엄의 시대는 아니구나’ 싶었어요. 뮤지엄은 상자 안에 여러 가지를 담아서 보존하거나 보관하는 것인데, 디자인은 그런 상자 안에 들어가 머무를 대상이 아니니까요. 전 세계를 겨냥하는 움직임이니까 디자인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늘 운용하는 것은 아니고 5년 후쯤 가동해도 되는 융통성 있는 존재로, 현재는 구상만하고 있습니다.

‘플랫폼’도 ‘공’의 개념이 들어가 있는 듯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플랫폼이란 다양한 것을 위에 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쟁반 같은 것이죠. 그러니 그 위에 조그마한 마카로니 같은 것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거대한 도시 군집을 올려놓을 수도 있어요. 어떤 것이라도 담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쟁반. 그런 것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뮤지엄은 한정된 땅에 세우는 구체적인 상자이기 때문에 거기서는 광열비나 인건비 같은 많은 비용이 발생해 비경제적이라, 제게는 가상의 공간인 플랫폼이 더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새로운 역할을 계속 고민하고 계신 듯합니다. 앞으로의 디자이너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시나요? 지금까지 디자인이란 ‘이 제품의 디자인을 해주세요’라든가, ‘이 브랜드의 공구를 만들어주세요’ 같은 부탁을 받는 일이 많았잖아요. 그러나 저는 클라이언트로부터 부탁받은 일도 같이 하겠지만 앞으로 디자인의 본질인 구상업(構想業)에 좀 더 집중할 예정입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일을 생각해 나가는 일, 그것을 사회에 제안해 나가는 일 등이 될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나 경험으로부터 추리 및 연역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상상력(imagination)으로 발전해 나가는 세계나 구체적인 움직임(action)을 사회에 제안해 나가는 일을 구상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저는 사회에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으로 세상을 향해 제안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교육자로서의 하라 켄야는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다. 디자인하는 ‘과정’을 주목하는 그는 교육에서도 ‘사고 과정’에 주목한다. 무사시노 미술대학 기초디자인학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 미지화하다)’은 ‘얼마나 모르는지’를 자각하게 해 더 큰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리디자인>에도 적용된 개념이다. 이번 ACA 수업에서는 예고 없이 세계지도를 그리게 하고, 세계지도를 학습한 뒤 다시 그려 보게 해 서로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세밀하게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판단력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세계를 바라보면 로컬이 더욱 명확해진다. 로컬은 글로벌이 있을 때 작용하는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진행 중인 ‘엑스-포메이션’은 어떤 수업인가요? 졸업반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하는 것인데, 매번 15명 정도의 연구생이 참여하며 하나의 테마를 정해 각자 ‘엑스-포메이션’ 하는 것입니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이 ‘알게 한다’는 의미니까, ‘엑스-포메이션’은 ‘알지 못하게 한다’ ‘미지화(未知化)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말에도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지금까지 몰랐던 일을 갑자기 깨닫다)’는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사람에겐 선입견이라는 게 존재하므로 세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기란 참 힘듭니다. 그러나 의외로 대부분은 세상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얼마나 모르는지 제데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면 세상사를 잘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만들어집니다. 그런 것을 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앞으로 디자이너에게는 구상력이라는 게 무척 중요해집니다. 과학자나 환경학자는 백곰의 수를 셀 것이고, 경제학자는 주식 지표나 돈의 흐름에 대해 열심히 탐구하며 경제 순환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행동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디자이너가 움직여야 합니다. 사실 디자인은 조형학과에서만 가르칠 내용이 아닙니다. 생물학자, 환경학자, 사회학자가 디자인을 배우고, 미디어를 논하는 사람이 디자인을 배울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힘을 비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엑스-포메이션 역시 그런 디자인형 두뇌를 만들어 가기 위한 훈련입니다.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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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홋카이도 무카와쵸(北海道 鵡川町)의 민들레술 브랜드 ‘탄포포(たんぽぽ酒)’ 패키지 디자인
홋카이도 무카와쵸의 민들레술은 일본 최대의 민들레 군락을 지닌 이 마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로 디자인됐다. 라벨에 민들레 홀씨가 그려져 있으며 매년 한 가닥씩 늘어난다.
2 캠페인을 위해 한정 수량으로 제작한 니가타 현(新潟県)의 ‘이와후네 쌀(岩舟米)’ 패키지 디자인
니가타 현의 이와후네 쌀은 일본 내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특별 패키지는 일본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한다.
3 오부세도 마쓰이치 이치무라 양조장의 청주 ‘핫킨(白金)’ 패키지 디자인
세계를 담을 수 있는 ‘거울’을 표현하고자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술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선생님의 작업을 보면 늘 로컬리티(locality)를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분야에서는 글로벌하게 노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경쟁력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화는 글로벌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의 본질은 로컬리티에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한 어머니가 ‘마리오! 파스타는 그릇을 데운 다음에 올려야 해!’라고 말하는 시칠리아(Sicilia)의 파스타가 진짜 맛있는 것처럼요. 일본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가 맛있는 거지 여타의 것들을 죄다 뒤섞은 건 맛이 없습니다. 그 장소에서 태어나 그 장소의 지혜를 먹고 자란, 그곳의 재료나 조리법 등을 사용해야 맛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별성을 지닌 멋진 문화를 세계의 문맥에 맞춰 발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김치를 한국 고유의 맛 그대로 맛 보았을 때 비로소 ‘한국 김치는 굉장한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 김치는 세계로 수출하지 않겠다’라거나 ‘세계에 내놓을 때는 맛을 좀 순하게’라거나, ‘우리의 맛을 잘 모를 테니 이쯤이면 되겠지’라는 식은 안 됩니다. 제대로 된 품질로 반듯하게 내놓는 게 중요합니다. 가끔 ‘문화의 글로벌 컬처’라는 말이 나오는데 솔직히 ‘그딴 게 어딨어’라는 심정이 들어요. 그걸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글로벌한 게 고급이고, 글로벌한 게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로컬이 가치를 낳는다는 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많은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영어는 스스로가 느끼는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로컬리티를 강조하고 계신데 영어가 글로벌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국제적(international)이라는 것이 곧 ‘영어를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국제적이라는 것은 ‘국제적인 무대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국제적인 무대에 설 가치가 없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면 우수한 통역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고(思考)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만약 그게 모국어라면 그 모국어의 특기를 살려 사고를 펼쳐 나가면 됩니다. 모든 모국어(언어)는 개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하게끔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무리하게 영어로 전환해 생각을 전개하다가는 놓쳐 버리는 게 생길지도 모릅니다. 정말로 세계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지닌 사람은 외국어를 못하더라도 모두가 그를 이해하려 노력할 것입니다. 지나치게 말을 배우는 데 열중한 나머지 다른 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시시한 사람이 돼 버리겠지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때로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는 역시 일본어로 하는 게 더 낫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본의 어느 수학자는 ‘수학 수업을 좀 줄여도 되니까, 국어 수업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한국에서도 한국어가 사용되고 있는 당위성 같은 게 분명히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즉 한국인이 모두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그 순간 일종의 ‘방파제’가 없어지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인은 모두 영어가 서툴러요. 저는 오히려 그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일본어라는 일종의 방파제가 존재함으로써 미국 문화가 일본을 휩쓸어 버리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만약 일본인이 영어에 능통했다면 오늘날의 일본은 무척이나 미국스러워졌을 거예요. 팔레트 위의 여러 색이 모두 한데 섞여 회색이 된다면 전혀 재미있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은 언어는 물론 일본의 역사, 시, 소설에서까지 많은 영감을 받고 있으신 듯합니다. 사실 저도 아직 일본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마 당신도 아직 한국에 대해 잘 모르지 않나 싶어요. 모두가 자기 나라에 대해 의외로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기쁨을 주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여전히 일본 히라가나의 흘림체는 읽지 못합니다. 대체 왜 못 읽나 싶긴 한데요. (웃음) 역시 못 읽겠더군요. 고어(古語)도 잘 모르는 편이고요. 탄카(短歌)나 하이쿠(俳句)(둘 다 일본 고유의 시 형식)도 저 스스로 짓는 일이 드뭅니다. 50세 정도 됐는데, 지금부터 해서 과연 탄카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조금은 노력하려고 합니다. 영어도 노력하려고 하고요.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단지 ‘자기 모국어보다 우선시하면 안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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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나가사키 현 미술관(Nagasaki Perfectural Art Museum) 사인 프로젝트
나가사키 현 미술관은 정보와 자극을 수용해 새로운 형태로 바꾸어 다시 발신하는 ‘살아 숨 쉬는 미술관’을 표방한다. ‘움직이는 심벌마크’가 ‘살아 숨 쉬는 미술관’이라는 역동적인 미술관의 특징을 보여준다. 입구에 설치한 사인은 금속 기둥을 2열로 배치해 서로가 비쳐 보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준다. 삼차원 형식의 사인 시스템은 평면 기반이나 벽에 정보를 기입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사인이 입체적으로 돌출해 있어 먼 위치에서도 주의를 끌 수 있다.
4 우메다 병원(Umeda Hospital) 사인 프로젝트
우메다 산부인과는 임산부가 출산 전후 심신을 달래는 공간인 만큼 이들이 신뢰를 느낄 수 있도록 결벽증처럼 보일 만큼의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자 했다. 사인 시스템에 쉽게 더러워질 수 있는 흰색 천을 씌웠는데, 이는 ‘더러워지기 쉬운 것(곳)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겠다’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선생님처럼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 스스로도 나는 전문직, 전문가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디자이너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패키지 디자인, 광고, 전시, 섬유의 형태, 무인양품의 7000품목을 관장하는 일 등을 하는데, 마치 수많은 공을 가지고 저글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오히려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거나 제너럴리스트가 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30대 초반에는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도 한쪽에 편중된 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통하게 돼 있기 때문에 지금은 조금 헛발질을 한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본질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하면 영역이 넓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도 재능입니다.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력도 필요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괜찮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니까요. 중도에 힘들다고 다들 그만둬서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저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저는 인생의 지력(智力), 체력의 정점을 65세 정도로 설정해 놓고 있어요. 살도 쪘지만 앞으로 몸 관리를 좀 더 잘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 믿어요. 그리고 건망증이 아주 심한데 그것도 뭐 하나의 장점이라 생각하면 ‘망각력(忘却力)’이라든지 ‘달관력(達觀力)’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65세까지는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개인적인 질문인데, 외부에 드러난 선생님의 모습이 워낙 섬세하고 세밀해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싶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혹시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오해입니다. (웃음) 특정한 제 책을 보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집에서도 28세 된 아들은 독립하고 아내와 함께 사는데 취미나 성격이 달라 제가 심플한 각티슈를 가져다 놓으면 아내가 다시 레이스가 달린 커버를 씌우거나 합니다.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이 한 공간에 섞여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라는 사람은 칠칠치 못한 면이 많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이솝 우화 속에 나오는 까마귀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허구한 날 거짓말만 늘어놓는다고 할 수 있고,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행동하지도 않아요. ‘이런 생각도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스스로를 온전히 믿지는 않는다고 할까요. 내가 이런 소릴 늘어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나도 그냥 거짓말쟁이지, 뭐’ 같은 생각도 항상 들어요. 물론 허풍을 떨려고 떠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웃음) 공자님처럼 올바름만 갖고 사람들에게 도리를 가르치는 경지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죠. 실패도 하고, 안 좋은 모습도 갖고 있습니다. 아! 제가 젊었을 때 쓴 에세이집이 이번에 15년 만에 일본에서 출간됐어요. <포스터를 훔쳐주세요>라는 책이에요. 그 책을 보시면 ‘이 녀석 완전 바보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실 겁니다.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내가 만든 스킨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마츠야 긴자(Matsuya Ginza) 백화점 리뉴얼 프로젝트
백색 외벽에 반구 모양의 엠보싱 패턴을 적용해 ‘촉감으로 알 수 있는 미디어’를 표현했고, 이를 통해 반구에 반사된 빛이 긴자 거리를 수놓으며 ‘백색 마츠야 긴자’를 탄생시켰다. 전체 아이덴티티를 통일하기 위해 쇼핑백, 멤버십 카드 등에도 일관되게 물방울무늬를 적용했다. 사용자의 촉감을 고려해 매끈매끈한 종이가 아닌 손끝에 촉감이 전해지는 종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바이라인 : 최태혁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