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화재 위치 - inhyeondong hwajae wichi

[한국강사신문 이미숙 기자] 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가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사건을 조명한다.

인현동 화재 위치 - inhyeondong hwajae wichi

[사진출처=SBS]

때는 1999년 10월 인천 인현동, 새천년이 밝아오기 두 달 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연이(가명)는 기말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서 놀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학생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라이브'였다. 한창 밀린 수다를 떨며 즐겁게 놀던 중 수연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다. 그리고 불과 10분 사이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저기 위에 불이 났대!"라는 외침이 들렸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라이브'가 있는 2층을 집어삼켰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친구를 찾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구급대원들 손에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실려 나오지만 여전히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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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SBS]

화재가 난 <라이브>는 호프집이었다. 사망자 57명, 부상자 79명.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화재 사건으로 기록됐다. 놀랍게도 사망자 대부분은 중·고등학생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날 <라이브>에 있던 아이들 120여 명 중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왜 밖으로 나오지 못했는지 <꼬꼬무>에서는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날'의 아이들이 '오늘' 카메라 앞에 섰다. 불은 꺼졌지만, 아직도 '호프집'에 갇혀 있다는 아이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간절한 부탁은 무엇인지, <꼬꼬무>에서는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화재의 진상과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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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SBS]

이번 '꼬꼬무'에 장트리오의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슈퍼주니어 예성, 가수 최예나, 배우 유인영이 나선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 최예나는 첫 '꼬꼬무' 출연임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녹화 내내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던 최예나는 그날 이야기를 이제야 안 것이 "미안하다"며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한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는 데뷔 18년 차에 빛나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예성이다. 말끔한 정장차림으로 '꼬꼬무'를 찾은 예성은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수트 입고 왔는데 맨발로 이런 걸 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예성을 땀 흘리게 한 '교양' 없는 '꼬꼬무'의 깜짝 이벤트를 공개한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는 유인영이다. 1999년의 향수에 흠뻑 빠진 유인영은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을 보며 라떼(?)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그날 이야기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23회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1999 인현동 라이브' 편은 7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된다.

*<인천호프집화재사건> 

1999년 10월 30일 오후 7시경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위치한 4층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2층 라이브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중·고교생들과 20대 초반의 청소년 등 손님 56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또 71명이 연기에 질식되거나 화상을 입고 중앙길병원, 인하대학교 부속병원, 인천의료원 등 인천지역 8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날 불은 이 건물 지하에 있는 히트노래방의 내부수리 공사장에서 처음 발생하여 계단을 타고 2층과 3층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있지도 않은 비상구와 비상계단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많은 청소년들이 화를 당하였다. 불은 긴급출동한 소방차 15대와 구급차 19대, 소방관 180명과 경찰관 160명에 의하여 35분 만에 진화되었다.

그런데 많은 중·고교생들이 희생된 호프집은 불법영업을 일삼아 온 문제업소였으며, 이 업소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정성갑이 단속기관과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순한 화재사건 이상으로 커졌다. 화재가 일어난 직후 종적을 감춘 정성갑은, 1999년 11월 3일 오후 충남 보령시 대천역 앞에서 경찰에 자수하였다.

한편, 언론은 정성갑의 전 관리인으로부터 입수한 비밀수첩에는 1998년 말부터 1999년 1월 중순까지 인천 중부경찰서, 파출소 등에 얼마씩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은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공무원의 부정부패로 인한 인재(人災)가 여전함을 다시 확인해 주는 사고였다. 2004년 숨진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현장 인근에 있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뒤편에 위령비를 세웠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정보 :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1:1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친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사건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세세하게 알려주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전달한다. 출연진은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이다. 공식영상, 편성정보, 시청률, 재방송시간까지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새로운 형식의 시사/교양프로그램이다.​

※참고자료 : 인천호프집화재사건(두산백과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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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  / MBC 뉴스데스크 캡쳐

7일 방송될 '꼬꼬무'에서는 23년 전 인현동의 한 호프집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의 전말과 살아남은 아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전한다.

때는 1999년 10월 인천 인현동, 새천년이 밝아오기 두 달 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연이(가명)는 기말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서 놀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학생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라이브'였다. 한창 밀린 수다를 떨며 즐겁게 놀던 중 수연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됐다. 그리고 불과 10분 사이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저기 위에 불이 났대!"라는 외침이 들렸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까만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갑자기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라이브'가 있는 2층을 집어삼켰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필사적으로 친구를 찾아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구급대원들 손에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실려 나왔다. 여전히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화재가 난 '라이브'는 호프집이었다. 사망자 57명, 부상자 79명.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사망자가 많은 화재 사건으로 기록됐다. 놀랍게도 사망자 대부분은 중·고등학생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날 '라이브' 에 있던 아이들 120여 명 중 단 한 명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날, 아이들은 왜 밖으로 나오지 못했는지 '장트리오' 장현성, 장성규, 장도연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날'의 아이들이 '오늘' 카메라 앞에 섰다. 불은 꺼졌지만, 아직도 '호프집'에 갇혀 있다는 아이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간절한 부탁은 무엇일까. '꼬꼬무'에서는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화재의 진상과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집중 조명한다.

이번 '꼬꼬무'에 장트리오의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슈퍼주니어 예성, 가수 최예나, 배우 유인영이 나선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 최예나는 첫 '꼬꼬무' 출연임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녹화 내내 눈물이 마를 틈이 없었던 최예나는 그날 이야기를 이제야 안 것이 "미안하다"며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한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는 데뷔 18년 차에 빛나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예성이다.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꼬꼬무'를 찾은 예성은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수트 입고 왔는데 맨발로 이런 걸 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예성을 땀 흘리게 한 '교양' 없는 '꼬꼬무'의 깜짝 이벤트를 공개한다.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는 유인영이다. 1999년의 향수에 흠뻑 빠진 유인영은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을 보며 라떼(?)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그날 이야기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편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사건'은 사망 56명, 부상 78명이 발생하며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 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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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23년 전 인천 인현동의 한 호프집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사망자 57명이 발생한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를 조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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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호프집 화재 사건 TV 뉴스 / MBC

인천 인현동 화재참사는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위치한 무허가 불법 주점 '라이브2'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입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 사고였습니다. 1위는 대구 지하철 참사, 2위는 대연각 화재사건입니다.

해당 주점은 인천 시내 번화가 한 가운데에서 불법 무허가 영업 및 미성년자 주류 판매를 버젓이 자행하던 곳이었습니다. 본래 영업 정지 처분을 받고 폐쇄되어야 했으나, 해당 점포 주인이 지역 공무원과 경찰을 뇌물을 찔러가며 회유하여 영업을 묵인해주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호프집 주인 정성갑씨는 호프집 이외에도 다양한 업소를 인근에 소유, 운영하며 청년재벌로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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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현동 호프집 사장 사진 방송장면 /  MBC

설상가상으로 해당 주점은 인천 지역 일대의 중고등학교 앞에서 버젓이 전단을 돌려가며 점포 홍보를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불법 주류 판매를 하고 있었으나, 미성년자 주류 판매 신고가 들어와도 해당 점포와 유착하던 경찰들은 제대로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은 채 신고를 묵살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점 주인의 비리와 탈법, 지역 공권력의 부패와 묵인, 방조로 인해 당시 인천 번화가 한복판에서 '학생들한테도 술을 파는 집'으로 소문이 퍼지며 인천 일대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도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고, 이는 참사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건은 1999년 10월 30일 발생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수연이(가명)와 진선이(가명)는 기말고사를 끝내고 호프집 '라이브'로 향했습니다. 라이브는 따로 신분증을 검사하지 않아 10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불린 곳이었습니다.

수연이가 잠깐 근처 지하상가에 볼일이 있어 나온 사이, 라이브가 있는 건물에서는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119 구조대가 투입돼 구조를 시작했지만, 수연이는 진선이를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이 화재로 진선이를 포함해 총 57명이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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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현동 호프집 사장 사진 방송장면 /  MBC

문제의 인현동 '라이브2호프'는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에는 노래방, 1층에는 고깃집, 2층에는 호프, 3층에는 당구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내부 수리 공사 중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불이 나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 2명의 불장난. 참고로 이 알바생 2명 중 한 명은 현장에서 불에 타 숨졌고, 나머지 한 명은 체포되었습니다.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진압되었으나, 화염과 유독 가스가 지상 입구에서 지하 노래방을 잇는 벽의 소재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간 것이 문제. 화염과 가스가 출입구를 가득 채웠으니 위층에서는 출입구를 통해 내려올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1층은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호프집은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사망자 대부분도 이들이었습니다. 이 때는 10월 말이라 인천 지역 고등학교들의 축제가 몰려 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고 후에도 미성년자들이 술집에 출입한 것에 대해서 계속 질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입니다.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라며 한탄하는 해당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90년대 중반까지만 해주셔도 인천광역시의 번화가는 동인천역과 그 인근 지역이었으며, 구월동과 부평역로 대표되는 신시가지는 아직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중심지라고해서 청소년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명동, 신촌도 마찬가지였으며 대학가 인근은 출입 불가가 이상한 상황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현재 기준의 바,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트 조차도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이트 죽돌이 죽순이 라는 단어도 그냥 생긴게 아닙니다.

대형 참사로 번진 이유1 : 비상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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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불 자체는 30분 만에 진압되었고,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는데,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버렸습니다. 또 호프집이 2층이었던 만큼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가 부러질지언정 죽지는 않았겠지만,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꿔버렸던 데다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놓은 상태였다 보니 그 방법을 택하는 것 역시 어려웠습니다. 바로 위층인 3층 당구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려 대피했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호프집 매니저 의 정신 나간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때처럼 "돈 내고 나가라."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입니다. 출입구에서 매니저와 학생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불길은 치솟아 결국 출입구로 대피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대부분 질식사하였습니다. 매니저는 그 뒤 주방으로 달려가 환풍기를 뜯어내고 저 혼자만 탈출해 살아남았습니다.

호프집 매니저는 CCM 가수가 된 실제 주인이 아니라 호프를 운영하던 바지사장입니다. 즉 별개의 인물.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지배인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당시 화재가 발생하자 비상구등이 켜져, 학생들은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비상구등이 켜진 쪽으로 향했으나, 알고보니 그 비상구등은 가라였고, 비상탈출구인줄 알았던 곳은 화장실이었습니다. 따라서 화재 구조 당시 화장실과 그 앞에서 사망자들의 시신이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참사로 번진 이유 2 : 내부 구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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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시 호프집 내부는 탁자와 의자가 꽉꽉 들어차 있었고, 50여 평 정도 규모의 공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사람이 돌아다닐 만한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아주 좁은 수준이었습니다. 계단 역시 폭 1~2m 정도의 아주 좁은 계단이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정체 상태였으며, 불이 나자 계단이 굴뚝 역할을 해 연기를 위층으로 올려보냈습니다.

내부 구조물들 역시 주로 인화성 물질로 만들어져 있던 탓에 불이 붙으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뿜어냈습니다. 사고 후 경찰의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자 대부분의 사인도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였습니다. 저렴하게 인테리어를 하기위해 디자인된 인테리어 제품으로 장식하고 빈틈을 우레탄폼으로 메운뒤 페인트등으로 마감하는게 거의 전부였으며 우레탄폼 조차도 그냥 싼 제품의 우레탄폼을 사용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환풍구를 통해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시신들이 층을 이룰 정도로 꽉꽉 메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처음 화재가 시작된 지하 노래방 천장에 설치된 비상 소화 장치인 스프링클러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제거된 상태였습니다.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달려 있었어도 초기 진화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호프집 주인과 공무원의 막장

이 업소는 1999년 3월에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화재 당시 업소 주인이 인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뇌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기에 가능한 불법 영업이었고, 사고 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 역시 구속되었습니다.

사장의 집에서 임대료없이 전세를 살고 있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 또한 직위가 경위인 경찰이었으며 전경을 동원해서 참사가 발생했던 술집의 보수를 돕기까지 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비밀 수첩에 1998년 말부터 1999년 1월 중순까지 인천 중부경찰서, 파출소 등에 얼마씩을 지출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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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현동 호프집 사장 사진 방송장면 /  MBC

한편 이 상가 건물은 수리 후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파란 건물이 당시 사고가 났던 건물입니다. 그리고 그 건물 2층이 당시 사고가 났었던 호프집 자리입니다. 사고 당시 손님들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던 3층 NBA 당구장은 사고 이후에도 한동안은 같은 이름으로 계속 영업을 하다가 폐업하였습니다. 현재는 1층엔 요리주점이 있고 2층은 현재는 공실(空室)이며 3층은 신학대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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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가 터져버림으로써 상권 위축 수준을 넘어 도심 지위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넘어가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 타격은 경인선으로 나란히 연결된 제물포역을 거쳐 주안역과 동암역의 상권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이 같이 망하다시피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른 도시의 원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무척 피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구는 본토 한정입니다. 영종도는 인천국제공항과 공항신도시 개발의 영향을 받은 지역인 만큼 섬 지역만 영종구로 분구하자는 의견까지 거론될 정도로 상황이 완전히 다르입니다. 지금은 그나마 여러 오래된 건물들이 재건축되면서 많이 나아진 상황. 반면 동구는 피해가 가장 심각했는데, 사고 이전까지 인구가 20~30만 명대였으나 사고 이후 몰락이 가속화되어 지금은 6만 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방송에서 여전한 트라우마를 호소했습니다. 특히 "호프집에 갔다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불량학생 꼬리표가 붙었다"며 "이제는 아이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거둬달라"고 부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