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기형도, 오래된 서적

rang_92 2018. 11. 27. 13:05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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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It's almost a miracle that I have lived I was covered with mould for a long time How could I, in a dark and damp world, in an order that no one bothers to look at, in empty hope, prophesy my own life? Other people hurriedly flick through one another's functions and insert their bookmarks, with few contents. And some say I have lived too easy a life, that I need thicker memories But what does thickness matter when perfection is your goal? I have moved from place to place several times but haven't even thought of death, as my only career was birth, for fear is my property and the future is my past, this is how I exist, therefore see what an irresponsible thing courage is Every person who ever looked at me once left me, my soul is mostly dark pages, so who would ever open me? But in that case they have no right to discourse on lies Lies and truth must dream a common goal, if only a single line I don't believe in mira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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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오래된 서적> 시평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서표)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언젠가 꼭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형도 《오래된 서적》 시평

이 시에서 우리는 첫 연과 마지막 연의 기묘한 수미쌍관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것은 가히 기적적이었다고 말하며 시를 연다. 그러나 마지막 줄에서 기적의 존재는 돌이킬 수 없이 단호하게 부정된다(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회고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도저한 역설이다. 평범한 사람의 삶에도 한 번쯤은 존재할 법한 기적 같은 사건이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범준하고 지리멸렬하여 날카로운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온 것이야말로 아이러니하게도 기적적이라는 것이다. 웹툰 《커피우유신화》에서 재치있게 풀어나갔듯이 모든 것이 평범한 삶은 오히려 비-평범한 것으로 전화된다. 특별할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아무도 들여다’보기를 원치 않는 고루하고 낡은 삶은 그 자체로 바깥과는 동떨어진 하나의 ‘질서’가 되고 스스로 굳어진다. 이끼 낀 절망들이 돋아나는 습하고 곰팡이 슨 닫힌 생태계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너무나도 평범한,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는 목숨이 계속 살아진다는 것은 한편 기적 같지만, 시인이 ‘거의’ 기적이었다고 말하는 데서 보듯 결코 진짜 힘을 지닌 기적이 될 수는 없다. 지루한 일생은 언제나 완전에서 한 발 모자라다. 어제와 같이 오늘 또다시 계속될 삶에서는 희망이 아무런 알맹이를 지닐 수 없다.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시간 또한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ㅡ그것이 아무리 연약한 희망이라 할지라도ㅡ 내일은 어떻게든 변화하고 성장하며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사는 것일진대 희망이 언어적 껍데기만을 남기고 텅 비어 버린다면 죽음과 삶이 무엇이 다르랴. 희망을 부를 수는 있되 가질 수 없다면 그 때 삶은 모든 약동을 멈추고 멎는다. 그렇기에 시인ㅡ화자의 삶에서 내일은 없는 것과 같으므로 ‘일생을 예언’하는 것은 더더구나 언감생심이다.

그의 정신이 이토록 깊은 절망과 무력감으로 침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속한 세계의 얄팍함이다. 시에서 각자의 생은 서적에 비유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생을 인내심있게 읽어내려 하지 않는다. 존재는 오로지 유용성, 즉 ‘기능’으로 환치되고 삶은 읽히기보다는 ‘분주히 넘겨지’며 쓸만하다 싶은 타이틀과 경력에 돋보이는 책갈피(서표)가 꽂힌다. 또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생을 평가하며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삶의 역경은 정신적 깊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력서의 두께를 늘리기 위한 것으로서 강요된다. 그가 절망하는 현실은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쓰기 위해 스펙을 쌓고 봉사활동을 하며 ‘두꺼운 추억’을 만드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삶은 화려한 서표가 꽂혀 있으나 정작 그 ‘내용은 몇몇 안 되는’ 빈한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묻는다,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그가 생각하기에 생의 기적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오래 살 필요도, 두꺼운 추억을 쌓을 필요도 없다. 완전은 돈오에서 오는 찬란함일 수도, 재능에서 오는 비범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도 아마 생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학적인 예술가의 정신이 견뎌내기에 자신의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고 삶은 너무나 불완전하다. 그가 보기에 자신이 삶에서 획득한 진리라곤 자신이 이 세계에 실존적으로 던져졌다는 사실뿐이다. 곧 그의 ‘경력은 출생뿐’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인은 뒤늦게 속물적이고 얄팍한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자신의 경력을 팔아치울 수도 없다. 세인들이 말하는 ‘두꺼운 추억’을 쌓기엔 그의 결벽한 ‘두려움’이 장애물이 되며, 그렇다고 삶을 완전하게 포기하기엔 아무 것도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 또 다른 ‘두려움’이 된다. 부평초처럼 떠돌며(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사는 것은 두려움을 이기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미약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본연의 절망이 변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앞으로의 삶도 별다를 것 없이 ‘미래가 곧 과거’이리라 좌절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생을 끝내는 것이 마땅한 선택인 것도 아니다(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이 그렇게도 갈망해왔던 삶의 진리와 예술적 본질에 접근할 가능성을 자기 손으로 잘라내 버리는 꼴이 될 것이므로.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부적합하고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다. ㅡ 그는 생과 사 사이에 끼인 존재로서 영영 고통받을 운명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다. 그 말은 앞으로도 생의 불완전함을 홀로 견디어야 할 시인에게는 ‘무책임’하게 들릴 뿐이다.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한 그의 삶의 책은 대부분 ‘검은 페이지’로 채워져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가 아니라 검은 페이지라는 것은 그가 지나치게 많이 배웠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그의 고통은 식자의 고뇌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말로 생을 채웠으나 그것은 그를 검게 오염시킬 뿐이다. 검은 페이지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씌어 있어 해독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펼쳐보지 않으며’ 설령 펼쳐보았다 할지라도 타인이 해갈할 수 없는 그 고통스런 목마름의 깊이에 모두는 겁을 먹고 가차없이 ‘떠나간다’. 그러나 그처럼 타인의 삶을 공들여 읽으려 하지 않는 경우 너희는 내 삶이 ‘거짓되다고 논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는 타인의 실존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거짓이든 참이든 삶의 다양한 양태들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다. ‘단 한 줄일 수도’ 있는 생의 에센스, 어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에 도달하는 것. 그러나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더군다나 얄팍하기 그지없는 세계 속에서 단 한 번의 목숨으로 삶 전체와 바꿔도 좋을 진리를 획득한다는 것은 요원하기 그지없다. 진실된 것을 꿈꿀수록 불완전한 삶은 그를 더욱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기적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의 고통스런 자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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