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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공산화를 들 수 있다. 미국이 지원한 장제스의 국민당이 ‘국부천대’ 로 대륙을 포기하고 타이완 섬으로 철군하면서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였다. 드넓은 중국이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미국은 중국을 현재 일본과 같은 역할(아시아 지역의 미국의 대리)을 하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일본은 많은 공업설비들을 해체하고 농업과 목축이 주를 이루는 아시아의 스위스와 같은 국가로 만들 계획이었고[6] 이를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을 처벌하고 일본의 사회당(현 사회민주당) 세력을 우대했으나 다시 전범 세력이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고 사회당 세력은 축소되었고 공산당 세력은 추방되었다. 이 사건을 ‘역코스(reverse course)’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좌우 합작에 우호적(여운형, 김규식 우대)이던 미국이 시큰둥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의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일본의 화족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전범 세력을 처벌하지 못함으로써 일본 정치는 급격히 우경화되었고 일본의 파벌 정치, 세습 정치 등의 고질적인 구태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음으로써 현재 전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게 된다. 한국에서도 분단-한국전쟁 등으로 상호간의 악감정이 생겨나 분단이 고착화하는 원인이 된다.

2.3. 한국전쟁과 제1공화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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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박진나루전투에서 돌격하고 있는 한국군

사사오입 개헌당시 항의하고 있는 야당 의원들

1950년대 서울특별시에 있던 판자촌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지 5년 만에 북한의 침공으로 6.25 전쟁이 발발한다. 6.25 전쟁은 수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와 행방불명자들을 낳았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양극화를 발생시켰다. 전후 북한에서 건너온 실향민들과 베이비붐으로 엄청난 인구가 폭증하였지만 사회 구조는 여전히 농업사회에 머물러있었다. 이 시기의 가난함은 한강의 기적 참고. 1961년 포린 어페어에 기고된 기사를 보면 말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던 전후 상황을 알 수 있다. 이땐 먹을 거리가 없어서 자기 몸의 때를 먹었다는 증언도 있을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했다.기사. 이렇듯,1950년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암울한 시대로 인식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1950년~61년에 미국에게 제공받은 경제원조는 27억 달러에 달하였고 이 외에 많은 군사원조도 주어졌다. 이러한 막대한 원조는 전후 시설 복구 및 극도로 어려워진 민생고를 그나마 유지하는데 크나큰 역할을 하였으며, 이승만 정부는 원조를 바탕으로 공업 생산에 투자를 하여 제조업이 급속히 성장하였다. 더욱 괄목한 변화는 의무교육을 제정해, 국민학생은 1960년까지 총 360만 명으로 (1945년 대비) 2.6배 증가했고, 중학생은 53만 명으로 10배 증가했고, 고등학생은 26만 명으로 3.1 배 증가했고, 대학생은 7800명에서 9만 8천 명으로 12배 이상 증가하여 당시 영국의 대학입학률을 능가하게 되었다. 선진국에 유학을 떠나는 대오도 활발해져, 1951년~59년에 5000여명이 떠나고 훗날 이들은 대거 귀국하여 국가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확산은 1960년대부터 전개된 고도성장에 적응할 수 있는 노동력을 공급하게 되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이념 갈등으로 인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지속되어,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무려 약 3만 명[7], 당시 제주도 인구의 약 10분의 1이 살해당하는 참사를 겪었다. 탄압과 학살은 1949년부터 시작되었지만, 1956년까지 7년이나 지속되었다.

2.4. 4.19 혁명과 제3공화국 ~ 대한민국 제4공화국과 경제계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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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당시 서울의 시위대하고 계엄군

5.16군사쿠데타 당시의 쿠데타군의 M4A3E8 셔먼 전차들

새마을운동의 포스터


이승만 정권은 개헌을 반복하며 집권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3.15 부정선거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이승만은 매카나기의 이야기를 듣고 이후 하와이로 망명[8]하게 되고 장면을 행정부 수반 총리, 윤보선을 군통수권자 대통령으로 4.19혁명 정신을 이어받은 제2공화국이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2공화국은 대통령과 총리간의 알력이 심했고 같은 정당 내에서 계파간의 갈등이 심각하여 10개월 만에 개각을 세번이나 단행하는 등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4.19의 여파로 정치 및 언론자유가 대폭 신장되는 긍정적인 변화는 극심한 사회혼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국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5.16 군사정변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다.

이때는 제국주의를 야기한 선진 열강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의 차이를 떠나 종속이론에 입각해 항구를 봉쇄해 원료부터 제품생산까지 자립공업을 일으키고 국영기업을 육성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시기였는데 이전의 실패에 교훈을 얻어 1964년에 이전까지 하던 계획을 뜯어고치는 당시 후진국의 대세와 정반대인 약한 산업은 관세와 정부의 보조금으로 충당해주고 일정한 단계가 달성되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수출주도 산업화로 방향을 틀었다.

3년간의 군정을 통해 정치 기반을 다진 박정희는 정치자금을 받아서 선거를 준비하였고 상대의 종북몰이를 역으로 이용, 전라도와 경상도 농민들의 표를 받아 마침내 1963년 12월 국민 선거를 통해 5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대일차관기업의 부실화와 자금문제는 골칫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수교에 의한 물품과 기술의 유무상 공급, 고강도 노동 및 월남전 참전 특수에 따라 경제 규모는 성공적으로 커졌고 노동집약형 경공업과 조선, 자동차 등 노동집약형 중공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을 알린 시기이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 참고.

70년대에 이르러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막대한 인명피해와 돈을 투입해 국력이 소모되어 닉슨 독트린이 발표한데 이어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방문해 6.25 전쟁이래 적대관계를 유지하던 미중관계는 해빙기를 맞았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데탕트로 불린다. 이에 비해 박정희는 국내외적으로 경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월남 특수 종료와 함께 미국발 불황이 국내에 찾아와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외채상환 압박, 부실기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대통령 박정희는 8.3 사채 동결 조치 등을 실시하는 한편, 북한의 무장공비에 의한 군인 및 민간인살해가 번번한 것을이유로 들어 1971년 대통령에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출판, 언론, 방송에 대한 검열을 합법화하고 정치활동, 집회의 자유를 불법화하였다. 한편으로는 6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3선 제한을 철폐, 52%의 득표로 7대 대통령에 취임해 1972년 10월 17일 19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헌법의 일부 조항을 효력을 중지시키며,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단체들의 활동을 중지시키며 효력이 정지된 조항은 "비상국무회의"가 주재하고 10월 27일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여 국민투표에 붙인다는 "10.17 특별성명"을 발표하여 제3차 국민투표로 통과되었다. 이는 4공화국의 성립이었다.

1972년 들어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경공업 수출만으로는 더 이상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옷, 합판, 신발, 가발 등의 품목들이었는데 이 같은 수익이 별로 남지 않는 품목들로서는 성장 동력의 전망이 분명치 않았다. 이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에서 오원철 당시 경제담당 수석 비서관에게 100억 달러 수출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오원철은 일본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한덕분에 100억 달러 수출을 이루었다고 대답하했다. 이에 박정희는 그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6월에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화학을 6대 전략 업종에 선정해 이들 분야에 10년간 90억 달러를 투자해, 1981년까지 전체 공업비중에서 중공업비중을 51%로 늘리고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 달성한다는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하였다.

주철, 강철, 기계, 조선업, 화학은 산업혁명이래 선진국이 독점해온 산업들로서 막대한 자본 투입과 수많은 기술인력 양성이 필요해[9] 스페인도 진출하지 못하던 분야이고 마오쩌둥이 무한정 자원과 노동력을 동원하다 파국을 초래한 분야이다. 이것은 지나치게 모험적인 투자로서 자칫하면 한국경제는 대대손손 빚더미에 오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것에 과감히 도전하였으며, 1974년 원유도입값이 3배 이상 폭등한 오일 쇼크가 발생해 물가상승률이 8배 이상 치솟고 막대한 무역적자가 발생해 부도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대출을 통해 이를 막고 연간 수출증가율은 40%를 경신하는 동시에 노동집약 건설업을 통해 중동지역에 많은 노동인력을 건설투자에 투입함으로써 다량의 오일달러를 벌어옴으로써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내며 농촌발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도시보다 현저하게 뒤쳐진 농촌은 70년대 말에 이르러 가구당 소득이 도시를 역전하였다. 이를 오늘날 해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찾아 배우러오며, UN에서도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정하였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1970년대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원조 농산물을 시장에 판 돈이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매우 가난한 농업 후진국에서 15여년만에 공업이 발달한 중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안정적인 장기집권을 실현하였다고 평가받는 유신 체제는 곧 각종 반발로 강하게 이어졌으며 유신 정부는 긴급조치들을 선포해 이를 탄압했다. 그러나 YH 사건 등으로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계엄령이 선포된 와중에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총을 맞고 숨진다. 제4공화국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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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성공후 12월 14일에 사진을 찍은 반란 수괴들

수도 서울로 진격하는 반란군

반란군으로부터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다 전사한 김오랑 중령


10.26 이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10.26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합동수사본부의 본부장으로 임명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전두환은 10.26 사건 수사 기록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군 내 정보를 독점 하는 등 월권행위를 일삼았다. 이에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은 전두환을 보직해임 시키려 했으나 전두환은 자신의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의 인맥으로 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정승화를 제거하기 위해 전두환은 10.26 사건 당시 정승화가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를 들어 정승화를 불법체포하며 12.12 군사반란이 발생한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이 반란을 진압하려 했으나 당시 진압군 측 최고 지휘관이었던 윤성민 육군 참모차장의 우유부단한 대처와 하나회 소속 장교들의 배신으로 인한 병력 부족으로 결국 실패한다. 12.12 군사반란으로 갑종장교, 육사 8~10기 중심의 기존 군부는 몰락하고 하나회와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탄생한다.

2.5. 신군부의 통치와 3저 호황[편집]

1980년대의 사건

시기

사건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5.17 내란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들의 5.18 민주화운동

1981년 5월 28일

국풍81

1981년 11월 17일

88올림픽고속도로 착공

1982년 1월 5일

3S정책의 일환으로 야간통행금지령이 해제

1982년 3월 27일

3S정책의 일환으로 한국프로야구가 출범

1983년 1월 11일

일본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전후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

1983년 6월 30일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1983년 8월 3일

삼성반도체가 64KB D램을 개발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1984년 5월 1일

과천 서울대공원 개원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 전후 처음으로 일본 방문

1985년 9월 30일

63빌딩 개장

1986년 5월 3일

인천 5.3 운동

1986년 9월 20일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987년 6월 9일

이한열 피격 사건[10]

1987년 6월 10일

6.10 민주 항쟁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 노태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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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도청으로 진격하는 계엄군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내의 반대 세력을 없앤 신군부은 1980년에 모든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5.17 내란을 일으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신군부는 5월 17일, 새벽에 이화여대를 급습, 전국학생회을 체포해 학생운동을 무력화 시켰고 33사단 병력으로 국회을 점령, 사실상 모든 헌정을 중단시킨다. 또한 정치적으로 적이 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나 삼김을 체포나 가택연금으로 무력화되었다. 국회하고 모든 학생회가 무력화가 된시점에서 유일하게 학생회가 무력화가 안된 광주에서만 계속 시위을 진행했고, 전두환하고 신군부는 게엄군을 광주에 보내 광주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 광주 시민들은 저항권을 발동, 시민군을 결성해서 계엄군하고 맞서 싸우지만 끝내 계엄군에게 진압당하면서 5.17내란은 반란세력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1980년에는 오일 쇼크로 인해 셰계경제는 성장이 곤두박질 치고 때마침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중공업을 육성중이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해 경제성장률이 집계하기 시작한 1954년이래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인 -1.7%, 물가상승률 28.7%라는 큰 충격이 가해졌으나 전두환 정부의 강력한 물가안정 정책과 함께 이전까지의 정부주도 개발에서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성장 기조로 복귀하여 유지되었고 1인당 실질 소득은 7여년만에 2배 불어났으며, 여기에 엔고에 의한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시대의 이른바 삼저호황까지 겹치며 80년대 말~90년대 초중반까지의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1986년에는 서울에서 제 10회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게 되었다. 당초 1970년에 개최하기로 했으나, 대한민국 정부가 개최권을 반납함에 따라 태국 방콕에서 대신 개최하였다.

이 시기에는 각종 악법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졌다. 정치풍토쇄신특별조치법, 제3자개입금지법 등이 제정되었으며, 반공법 폐지 이후 사회안전법을 만들어 정적이었던 정치인사들과 무고한 국민들을 억압하였다. 이러한 악법들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이 계속되는 도중에 결정적으로 1986년 7월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터졌으며,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고문과 성고문등이 발생했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헌법 중 대통령 간접선거 조항을 사수하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제껏 쌓여왔던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시위중 최루탄에 피격당하자 국민들은 저항권/시민불복종을 진행하고, 항쟁을 시작한다. 결국, 6.29 선언으로 신군부는 항복했으며 이는 40여년 지속된 권위주의 정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6.10 민주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헌법과 정권의 개혁안을 발표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와 자유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훗날 각종 공안사건들은 재심을 받은 뒤 무죄선고를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9차 개정안이 현재까지 한국 정치와 법률 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다.

2.6. 민주주의의 시대[편집]

보수당과 민주당 양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양당 체제의 시대였다.

2.6.1. 1988~1997[편집]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 잡고


1988년에는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 160개국이 참가하게 되었고, 특히 당시 동서냉전으로 갈등과 분쟁을 벌여왔던 미국과 소련, 그리고 서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여서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종합 4위를 달성하면서 주최국으로서의 강한 저력을 발휘하였으며 대한민국이 더욱 선진화가 되고 불굴의 신화를 입증하는 한강의 기적과 국력을 전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까지도, 대한민국은 북한과 체제, 국력, 외교적인 측면에서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과거에는 공산권의 전폭적 지원을 얻는 북한보다 국력이 열세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공산권의 침체나 여러 외교적 성과,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치 등은 대한민국의 저력을 전세계에 조금씩 알리고 과시하는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렇게 한국인들은 "우리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이겼다!" 라는 확신을 얻게 되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 이후 완전히 폐허가 된 서울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가 다시 재건하는데는 10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라고 비관적인 예상을 하였지만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재건하는데 성공하고, 서울 올림픽까지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었다. 또한, 202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기구에서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하게 되면서 더욱 큰 의미가 있게 되었다.

더불어 공산권의 몰락에도 일정 영향을 끼쳤는데, 미국-소련의 대립으로 인해, 서구권과 동구권 국가들은 몇 년 동안 올림픽에서 서로 마주하지 못하다가 서울에서 결국 올림픽에 함께 모여서 참가하였고, 동구권의 국가들은 직접 '서울'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대한민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8.15 광복이 되었지만 6.25 전쟁으로 박살났고, 1950년~1960년쯤에는 거지들이 들끓는 서울이었는데 전혀 딴판으로 변한 것이었다.

게다가 북한은 동구권 국가들에게 "우리는 지상락원이지만 남조선은 거지 천국이다."라는 선전을 해댔기에 공산권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알던 사실과 전혀 다른 서울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동구권 인민들이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돌아서게 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1991년에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그리고 1994년, IMF, UN, 세계은행의 통계에서 한국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처음으로 넘었다.

1990년대, 마지막 군인 정권 출신으로 여겨지던 노태우 정부와 그 후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게 된 김영삼 정부때 민주화와 더불어 고도성장 시대에 누적되어있던 여러가지 어두운 문제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3당 합당의 정치적 후유증으로 골머리를 썩혔으며 성수대교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으로 '사고 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1993년에는 대전에서 세계박람회(엑스포)를 개최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2.6.2. 1998~2003[편집]

1997년, 김영삼 정권은 IMF 사태로 대미를 장식했고, 그 이후 15대 대선이 실시되어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실시되었다.

1999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파급력을 호칭하는 '한류'라는 단어가 중국의 언론 등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한류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거론하는 고유명사로 각인된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FIFA 월드컵이 동시에 개최되었으며 대한민국은 4위를 달성하면서 4강 신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같은 해에 부산에서는 제 14회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으며 사상 최초로 북한이 공식 참가하여 남북한이 동시 입장하기도 하였다.

2003년에는 사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약 48조원의 경제 피해를 입었다. 안 그래도 2003년에는 한국이 IMF 외환위기[11]의 후유증이랑 2002년에 발생한 카드대란 사태에 시달릴 때라 사스 피해까지 받아서 그 당시 한국경제는 암울했다.

2.6.3. 2004~2013[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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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서 한국 영화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12]

그러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풍요롭게 살고 있는 신세대들과 과거 가난을 겪으며 자라거나 보수적인 사상에 익숙한 기성세대들간의 세대갈등부터 지역개발의 차이에서 오는 지역갈등같이 사회문제에서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편협한 시각이나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황금만능주의, 성장을 위한 지나친 경쟁사회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소외현상, 지나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ペ・ヨンジュンBYJ, Ardent love?! Report Image!

2000년대 초 일본에서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일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배용준의 욘사마 신드롬과 함께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급속도로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본에서도 한류라는 단어가 전해지게 된다.

2010년 ~ 2011년 K-POP을 중심으로 신한류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특히 2012년에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말 그대로 전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게 되었고 한국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음악이 전세계의 음반 시장을 뒤흔들었다. 중남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일부에서 한류가 더욱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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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2010년 11월 11일에는 2010 G20 서울 정상회의를, 2012년 3월 26일에는 세계 50여개 국가가 모인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입장조차 거절되었던 대한제국의 과거를 넘어, 높아진 국가적 위상과 국제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경제와 안보분야에서 국제적인 이슈를 논의하고 조율하는 의장국이 된 것이다. 누가 뭐래도 국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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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남 도발은 정권교체 이후 거세졌으며 2010년 상반기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이, 하반기에는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발생해 안보를 위협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개성공단이 일시 폐쇄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2006년에 IMF, UN,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GDP가 처음으로 2만 달러를 넘었다. 2011년 1월 14일, 대한민국의 저축은행 중 한 곳인 삼화저축은행이 PF로 인한 부실을 털어내지 못해서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되는 등 다수의 상호저축은행들이 건설사들에게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2012년 3월 15일엔 한미 FTA가 발효되었다.

2012년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세계박람회를 개최했다.

2.6.4. 2014~2019[편집]

2014년에는 인천광역시에서 제 17회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으며 2018년에는 강원도 평창군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여러 안전불감증 관련 사고[13], 북한의 위협 재증대[14]에 더해 장기적 불경기로 인하여 사회적인 갈등이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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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에는 사상 초유의 민간인의 국정농단 정치 스캔들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대한민국이 추구했던 성장중심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나게 되었다. 2016년 12월 3일 6월 항쟁의 참여인원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사 최대 인원인 232만 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어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함으로써 12월 9일에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어 공식적으로 직무가 정지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되어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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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조기 대선으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고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득표율 41.1%로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3번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는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많은 득표 차이로 당선되었으며, 이전까지는 531만 7,708표 차이를 기록한 17대 대선이었지만, 이번 19대 대선에서 1, 2위간의 득표 차이가 557만 951표를 기록하면서 갱신됐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2017년, IMF, UN, 세계은행 통계 기준 최초로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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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참여정부 이래 처음으로 남북 정상들이 만났다. 사진은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며, 좌측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우측은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전후 남북관계는 빠르게 발전하였으나, 2019년 2월 북미정상회담과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남북관계는 다시 냉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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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19년 후반기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인 조국 사태가 사회를 양분시켰다. 이는 대규모 집회로까지 이어져서 진영별로 각각 조국 전 법무부장관 규탄 집회와 검찰개혁 촛불문화제로 이어졌다.

2.6.5. 202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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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밝자마자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한때 여러 집단감염으로 국가별 감염자수 2위까지 올라갔었지만 3월부터 유럽, 미국 등에서도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며 순위권에서 벗어났다. 2020년 8월달에 2차 대유행, 11월달에 3차 대유행, 2021년 7월달에 4차대유행, 그리고 2021년 11월달부터 계속 5차 대유행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경기 침체, 양극화를 비롯한 사회갈등과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문제들이 심화되고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0.73%라는 역대 최소 득표율 차로 기호 2번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로써 5년만에 정권교체가 되며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이어져오던 보수-진보 정권 10년 주기설은 깨지게 되었다. 이 후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2022년 6월 21일,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11번째로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3. 대한민국에서 개최한 주요 국제 행사[편집]

  • 1960년: 1960년 AFC 아시안컵

  • 1986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

  • 1993년: 1993 대전 엑스포

  • 1997년: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부산 동아시아 아시안 게임

  • 1999년: 1999 강원 동계 아시안 게임

  • 2002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 2003년: 2003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 2007년: 2007 FIFA U-17 월드컵

  • 2011년: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 2012년: 2012 여수 엑스포

  • 2014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 2015년: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 2017년: 2017년 FIFA U-20 월드컵

  • 2018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 2019년: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4. 관련 링크[편집]

  • (한국어 위키백과)한국의 역사

  • (영어 위키백과)한국의 역사

5. 관련 문서[편집]

  • 한국사

  • 대한민국/정치

  • 대한민국/경제

  • 대한민국 대통령 일람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미군정

  • 대한민국 제1공화국

  • 대한민국 제2공화국

  • 대한민국 제3공화국

  • 대한민국 제4공화국

  • 대한민국 제5공화국

  • 대한민국 제6공화국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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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상 속에서 나오는 음악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오프닝이다.[2] 자막은 없지만 고화질인 버젼도 있다.[3] 다만 대한민국 수립년도를 두고 1919년과 1948년이 대립하고 있다. 그중 1919년이 역사적 의미가 크므로 주류 견해이다.[4] 분단의 원인이 이승만인지, 김일성인지, 미국인지, 소련인지는, 입장에 따라서 여려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5] 6.25 발발전의 38도선은 완전한 경계선이 아니었다.[6] 다만 스위스는 당시에도 공업이나 금융이 발달하였다.[7] 많게는 6만 명이 넘는다. 브루스 커밍스는 8만 명일 수 있다고 말했다.[8] 당시 언론계부터 학계, 교육계를 비롯 한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등이 망명이라 표현한다. 심지어 이승만 본인도 하야 직전에 학생 대표들과 면담하며 원하는 것이 내가 망명하는 것이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