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석류 문양 의미 - hanbog seoglyu mun-yang uimi

[여성의 창] 옷의 색과 상징 의미

2016-12-13 (화) 김민지(한국복식 사학자)

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서 해주신 한복 중에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입으라고 해 주신 남치마와 회색 저고리가 있다. 그 회색 저고리에는 남색 끝동과 자주 고름이 달렸다. 자고로 부인의 저고리에 남끝동을 다는 것은 아들이 있다는 표시였고, 자주 고름을 다는 것은 남편이 생존해 있다는 표시였다. 어머님께서는 결혼 후 내가 아들 낳고 남편 온전한 복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이

렇게 어머님께서 남끝동이 달린 한복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만 둘을 낳았고 그리고는 그만 낳기로 했다. 어머님께서는 아마도 섭섭하셨을 테지만 우리 부부에게 절대 내색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들을 많이 낳고자 한 염원은 전통 복식에 많이 발견된다. 석류 문양이 직조된 직물에는 석류알처럼 많은 자손을 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있으며, 복숭아 문양, 동자 문양도 다산을 상징한 것이었다. 수 놓은 연꽃 열매, 금박 장식된 포도 문양 역시 송이 송이 맺힌 열매가 번창하는 많은 자손, 즉 아들을 의미했다.

조선 후기 사회 구조가 남아를 선호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관념이 상징으로 도안화되어 복식에 표현되어 계층, 집단 내에 파급되었으니 당시 유행한 문양을 하나의 패션 현상으로 볼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남아 선호 사상은 최근 10년 사이에 빠르게 바뀌었다. 딸과 아들의 법적 권리도 동등해졌고, 결혼 후 부모에게 더 가까운 쪽은 딸인 경우가 많아 어느새 딸이 환영받는 세상이 되었다.

남아 선호를 위해 시문한 문양이나 색상이 가졌던 의미 역시 현대 한복에서는 완전히 퇴색했다. 그런 가운데 내 관심을 사로잡은 건80년대 후반 즈음부터 결혼식 때 양가 어머니가 구분되게 입는 한복의 색이다. 신랑의 어머니는 푸른 색 계열을, 신부의 어머니는 분홍색 계열을 입기 시작했다.

성별에 따라 구분한 듯 보이지만 세간에서는 ‘시어머니는 서슬이 퍼래서 푸른 색’을 ‘친정 어머니는 곱게 키운 딸을 주는 것이 분하여 분홍색을 입는다’ 한다. 매서운 ‘시’ 월드 전통이 퇴색해지는 시대가 오면 결혼식 때 양가 어머니가 입는 한복의 색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김민지(한국복식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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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석류 문양 의미 - hanbog seoglyu mun-yang uimi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무늬는 식물무늬이다. 다양한 종류의 꽃과 과실을 소재로 화사하게 도안한 옷감을 즐겨 입었는데 이 무늬 역시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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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만초문>   
조선 전기에서 중기까지 유행하였던 연꽃무늬로 연꽃을 중심에 배열하고 주위에 C자형의 덩굴이 감겨 있으며, 넓직한 연잎과 연밥이 줄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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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만초문>   
장기 정씨(?∼1614) 묘의 출토 직물로 모란을 중심에 배열하고 만초덩굴이 C자형으로 감겨 있다. 조선 전기 옷감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모란무늬 대신 연꽃무늬도 많이 사용되었다.

조선 전기의 식물무늬는 연꽃이나 모란을 중심에 배열하고 주위를 만초(蔓草, 덩굴풀)가 C자형으로 휘감고 있는 연화만초문과 모란만초문이 가장 대표적이다. 연꽃이나 모란의 형태도 일정한 모습이 있고 만초 덩굴도 정해진 기본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대부분의 옷감이 거의 유사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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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는 소재 선택에서도 전형적인 연꽃이나 모란의 틀에서 벗어났고 구성 형태도 좀 더 자유롭게 바뀌었다. 연화만초 외에 국화, 매화, 동백, 난초, 복사꽃, 석류꽃과 같은 길상의 의미를 가진 다양한 꽃과 결합하여 자유로운 분위기가 더 드러난다. C자 형태의 만초에 감겨 충전된 느낌을 주었던 전기의 연화·모란무늬와는 달리 이 시대의 꽃은 짧은 가지가 연결된 절화형이며 좀 더 사실적인 사생풍으로 도안된다. 각종 꽃 사이에 새·나비·벌과 같은 동물을 넣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복숭아·석류·불수감·여지 같은 과실을 함께 도안하여 다양한 소재가 자유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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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화문>   
길상 식물이나 동물을 사생풍으로 표현하지 않고 원형이나 타원형·사각형의 덩어리로 도안하여 드문드문 배열한 무늬로 17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다.

17세기 후반부터는 또 다른 유행이 나타나는데 꽃의 형태를 강조하기보다는 각종 길상 식물과 동물을 단순하게 원형이나 타원형, 사각형 형태의 덩어리로 도안하여 드문드문 배열한 무늬가 많이 나타난다. 이 무늬는 사대부 남자들의 편복 포에 자주 애용되었는데, 간결하고 여백이 있는 느낌이 화려함을 피하고 단아함을 추구하던 유교 사회의 기풍과 부합하였기 때문이었던 듯싶다.

조선시대 옷감에 많이 보이는 연꽃, 모란, 만초는 모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연꽃은 인도에서 불교 문화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진흙 속에 살면서도 항상 깨끗한 자태를 보여 주어 속세를 떠난 청결함을 상징한다. 모란은 ‘목단(牧丹)’이라고도 하며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다. 모란은 풍요로운 꽃잎 때문에 부귀와 다복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조선시대의 각종 장식품에 널리 애용되었다.

세화문(細花紋)은 16세기 유물에서 많이 보이는데 형태를 알 수 없는 작은 꽃이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다. 얼핏 보면 꽃이 작아 형태를 알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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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봄 동백, 여름 연꽃, 가을 국화, 겨울 매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경우가 많다.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세화문단’, ‘사양화문저사’ 등이 이러한 무늬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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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문>   
좋은 뜻을 가진 식물이나 동물을 사실적인 회화풍으로 표현하여 자유롭게 배열한 무늬로 17∼18세기에 많이 나타난다.

길상의 의미가 있는 과실무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조선 말기의 ‘도류불수무늬’와 ‘호리병박수자무늬’이다. ‘도류불수무늬’는 천도(桃), 석류(榴), 부처님 손을 닮은 열매를 형상화한 불수감(佛手柑)이 짜임새 있게 도안되어 수십 년 동안 인기를 누렸다. 천도는 장수를, 석류는 다남(多男)을 상징하고, 불수감은 복을 기원한다. ‘호리병박수자무늬’는 숙고사와 생고사의 무늬인데 호리병박과 수(壽) 자를 아름답게 조화시켜 지금까지도 한복 옷감으로 전승되고 있다. 호리병박은 모든 귀신이나 해독을 박 속에 가둘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밖에 매, 난, 국, 죽의 사군자 무늬도 고결한 자태를 상징하여 옷감에 가끔씩 사용되었다. 매화는 용기와 고결을, 난초는 우정과 고아(高雅)를, 국화는 군자의 고귀함을, 대나무는 곧은 지조를 나타낸다. 매화는 까치와도 조화를 이루어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를 바라며 남녀의 옷감 무늬로 사용하였다.

[필자] 조효숙

오랜 역사와 훌륭한 전통을 지닌 우리 민족은 다양하고 합리적인 ‘의’생활을 해 왔습니다. 같은 옷감이라도 계절에 따라 바느질 법 이 달랐으며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따라 생활하면서 자연으로부터 얻은 옷감과 염료를 사용하여 자연 친화적인 복식문화를 지켜 왔 습니다. 이렇듯 전통 복식은 오랜 기간 우리 민족의 생활과 정서를 담아내고 그 멋을 추구하며 변화를 거듭해 왔기에 옛 선인들의 삶 과 문화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남들은 이영희 선생을 한복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녀 는 옷을 만드는 분이 아닙니다. 옷이 날개라는 한국의 속담처럼 그녀는 날개를 만듭니다. 천상으로 비상하는 바람의 옷. 때로는 땅으 로 내려오는 흙의 옷을 만듭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한국 여인들이 그러했듯이 천년의 바람과 그 흙 속에 숨인 자연의 물감으로 옷에 물을 드립니다. “인디고 블루”(인도의 청색)라는 영어에서 보듯이 서양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신비한 쪽으로 그녀는 동양의 꿈을 만듭니다. 인도 중국 그리고 일본의 모 든 것을 한복 속에 담아 지구에 옷을 입힙니다.

이제 그녀가 만드는 옷은 박물관의 진열장이 아니라 세계인의 가 슴속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입지 않고 눈으로 보아도 몸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혹은 서늘해 지 기도 합니다. 정성으로 한올 한올 짠 여인들의 아름다운 손길이 옷 으로 옮아와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패션이 아닙니다. 꽃이 뿌리에 닿아있듯이 그녀의 옷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지하수에 닿아 있습니다.

오작노리개

주체부분이 은장도, 호랑이발톱, 침통 , 향갑, 방아다리 등5개로 이루 어진 오작노리개이다. 호랑이 발톱은 호랑이의 힘과 용맹함의 기를 받아 사악함을 물릴칠 수 있다고 여겨 벽사(辟邪)의 의미를 나타내 고, 방아다리는 귀이개, 이쑤시개 등 실용적인 기구를 한데 묶어 차던 것인데 그 모양이 방아개비(메뚜기의 일종) 다리와 같아서 방아다리 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반회장 겹저고리인데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안고름을 늘어뜨리고 있다.

홑저고리인데, 녹색 길에 깃, 끝등, 고름을 자주색으로 한 반회장저고고리이다. 소매의 배래를 곡선으로 하지 않고 사선처리하여 변화를 주었다.

저고리

저고리란 말은 조선 세종 2년(1420)의 실록에 처음 보이는데 그 이전에는 유(襦), 삼 (衫), 의(衣) 등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부터 현대까지 남녀공용의 옷으로 착용되고 있는데 삼국시대 까지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남녀 저고리 형태에 큰 차 이가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여자 저고리에서 길이가 짧은 ‘단의 (短衣)’가 착용되어지고, 이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길이의 변 화가 있어 왔다. 조선시대 남자저고리는 허리아래길이에 변함 이 없으나, 여자저고리는 조선중기 이후 1900년경까지 가슴이 드러날 정도로 점차 짧아지고, 20세기 들어와 가슴선 아래의 편안한 길이로 정착하였다.

수혜

원재료는 가죽으로 만들었으나 겉을 비단으로 감싸고 수를 놓아 장식하였다. 그리고 신발 안쪽 바닥은 솜을 두고 누빈 무명을 대어 신었을 때 좀더 편안하도록 제작되었다. 주로 젊은 부녀자들이 신었다.

가락지

은에 박쥐문양 혹은 꽃문양을 음각하거나 칠보장식으로 표현한 가락지이다

투호 삼각 노리개

투호노리개는 화살을 던져 항아리 안에 넣던 투호놀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항아리의 뚜껑을 덮어 한해의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활옷

활옷은 조선시대 궁중혼례에 사용되었던 홍장삼(紅長衫)에서 유래된 것으로 민간에서도 혼례시만은 착용이 가능하였다. 일반적으로활옷은옷전체에수를놓아장식한점이가장 큰 특징이며, 구성상 원삼과 유사하나 깃부분을 따로 재단하여 달지 않고 뒷고대 부분만 작은 조각으로 막아주고 흰색동정을 넓게 깃처럼 덧달아 주는 점, 소매 진동점 아래부분이 막혀있지 않 고 트여 있는 점 등이 다른 부분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본 재 현품은 깃, 소매 부분을 원삼과 동일한 양식으로 제작하고 수를 놓은 것으로 일반적인 활옷 양식과 구별된다. 자수문양은 물결, 파도, 바위, 봉황, 연꽃, 모란, 석류, 복숭아 등을 도식화 하여 표현하였다.

죽잠

죽잠은 매죽잠과 일부 유사하지만 잠두 윗부분의 매화가 특징적인 역할을 하는 매죽잠과 달리 두 개의 대나무 잎이 있고 그 사이를 여러 문양들이 채우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족두리

7조각을 이어붙이고 안에 솜을 넣어 모양을 만든 후 그위에 옥, 호박, 산호, 진주, 칠보 등으로 장식하였다.

골무: 손바느질할 때 바늘을 눌러 밀기 위해 둘째 손가락 끝에 끼는 물건이다.

제공: 스토리

Curator—Sung Ho Hong

참여: 모든 표현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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