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첫 문장 - ganglyeolhan cheos munjang

첫 문장으로 유혹하라

모든 신문기사는 첫마디에 생사가 갈린다. 글의 생명은 잘 쓰는 게 아니라 독자가 잘 읽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문기사는 스트레이트와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것으로 구분된다. 스트레이트기 사는 신문기사의 전형으로 육하원칙에 의거, 사실 만을 중점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이다. 이 형식의 특징은 역피라미드에 있다. 역피라미드형 기사란 기자가 송고한 기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사 분량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도록 기사의 내용을 역피라미드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맨 나중의 단락부터 잘라내며 분량을 조절해가도 핵심의 전달에는 이상이 없다.

강렬한 첫 문장 - ganglyeolhan cheos munjang

스트레이트 기사의 첫 단락은 그러므로 기사의 전부라 할 고갱이다. 이 고갱이를 기자들은 ’ 리드’라 부르는데 리드문을 쓰기에 기자들의 능력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보다 자유분방한 형식의 기사라 해도 첫 단락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사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끌고 이 관심을 유지,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유혹의 힘이 첫 단락에서 발휘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헤밍웨이를 거쳐 대입 논술에 이르기까지 첫 단락에 대한, 나아가 첫 문장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글쓰기에서 중시되는 덕목이다. 블로그도 트윗터도 회사 인트라넷에 올리는 게시글도 첫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곧바로 ‘킬’된다. 첫 문장, 첫 단락의 힘으로 다음 문장, 다음 단락을 읽게 하지 못하면 글 창은 닫혀버리고 독자는 어느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다음은 신문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압선처럼 치명적인 유혹의 힘을 발휘하는 첫 문장, 첫 단락쓰기의 방법이다. 

1. 임팩트있는 첫마디 


헤밍웨이가 권했다. 첫 문장은 짧고 힘 있게 써라고. 첫 문장은 짧고 강렬한 임팩트가 전부다. 유혹은 짧을수록 강렬하다는 말은 진리다. 
 

지금도 펜팔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2010년 11월 10일 - 김상헌, 디지털3.0, 매경) 


느닷없다. 이 디지털시대에 펜팔이라니. 그래서 궁금하다. 다음 문장이. 무슨 얘긴지. 
 

2. 관심을 끄는 개념을 설명하며 시작하기 

개념은 기사의 핵심이다. 개념을 이해시키면 다른 내용은 저절로 이해된다. 

환율·에너지 문제 등 논의 세계 경제의 큰 밑그림을 그리게 될 서울 G20 정상회의가 11일 개막한다. 

(2010년 11월 10일 - 소년한국일보)

3. 최근 이슈로 시작하기 

최근의 이슈는 누구에게나 관심사다. 당연히 계속 읽을 수 밖에 없다. 

아이폰의 위치 기반 서비스를 이용한 ’오빠 믿지’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했다. 

(2010년 10월 25일 - 디지털타임스)

4. 격언이나 속담, 고사성어로 시작하기 

무슨 소리를 하려고? 아는 얘기니까 계속 읽게 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은 외로울 고(孤), 손바닥 장(掌), 어려울 난(難), 울 명(鳴)의 성어이다. 한 손바닥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우리 속담 “두 손뼉이 맞아야 소리가 난다”의 한자 성어이다. 이 말은 혼자 힘으로는 무슨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낸다. (2010년 11월 10일 - 광주드림신문)

5. 에피소드로 시작하기 

구체적인 에피소드만큼 마음을 끄는 게 있을까? 그것도 유명인사의 에피소드라면. 유명인의 에피소드로 첫 문장을 시작하니 궁금할 밖에. 그래서? 그다음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yjchung68)은 트위터에 ’I’m at 커피지인’이라는 단문을 자주 올린다.

(2010년 11월 3일 - 스포츠한국)

입력 2018.03.12 09:01
수정 2018.03.12 09:01 생글생글 585호

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강렬한 첫 문장 - ganglyeolhan cheos munjang

최인훈 ‘광장’의 첫 문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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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첫해, 첫아이, 첫인상, 첫 등교, 첫 월급. 모든 ‘첫’은 설렘과 긴장을 동반한다. 우리는 일상이 지루할 때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획하여 ‘첫’의 의미를 부여하고 크고 작은 실패를 했을 때 ‘첫’을 만드는 노력으로 삶에 기회를 다시 부여하기도 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어떨까? 흡인력 있는 첫 문장들을 읽어 보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최인훈)』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제목은 광장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바다다. 주인공 명준이 떠난 곳이 바로 바다였다. 광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무거운 주제만큼이나 무거운 바다. 그래서 비늘도 육중하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첫 문장이다. 1970년대 도시 개발의 이면에는 강제 철거로 보금자리를 잃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눈물이 있었다. 이 작품은 그들의 비참한 삶과 고통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하였다. 신산한 세상에 대한 비판은 화자의 이어진 문장에 담겨 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30년이 지나고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사내가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치렀던 ‘전쟁’을 회상한다. 지금도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한 것은 그 전쟁이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벅찼기 때문이기도 하고 불완전한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의 첫 문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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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라는 이정비(里程)를 보았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무진기행(김승옥)」의 시작이다. 주인공은 무진에서 며칠을 보내고 달라질 게 없을 삶이 기다리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잡초 속에 튀어나온 이정비는 그 부끄러움을 예고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정비가 잡초 속에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면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삶으로의 전환을 준비할 수 있었을까?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콧물이 아니라 누렇고 차진 코여서 훌쩍거려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만 아니라 그때 아이들은 다들 그랬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송도 부근 박적골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그려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품 속에 펼쳐진 굴곡진 현대사와는 별개로 유년기의 어린이라면 당연히 콧물 닦는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던 어리숙한 시절에 대한 회상은 정겨운 데가 있다.

<이 냉장고의 전생은 훌리건이었을 것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소설은 시종 재미있다. <아내가 결혼했다. 이게 모두다.> 영화화되어 흥행에도 성공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의 서두다. 꽤나 도발적이다. 궁금해서 소설이든 영화든 찾아보게 만드는 문장이다. 도발적인 서두라면 『7년의 밤(정유정)』도 지지 않는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 되는 경험을 하는 인생은 대체 어떤 인생인가 책장을 들추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진부하지 않아야 한다

단순한 생활글 하나를 쓸 때도 우리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까 고민한다.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고 내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문학 작품이라면 난이도가 더 높아지리라. 매력적인 첫 문장은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면서 모티브를 제공하거나 주제를 암시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독자를 사로잡아 작품 속으로 초대한다. 첫 문장이 독자를 끌어당긴다면 그 작품은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리라. 강렬한 첫 문장에 매료되는 것은 독서 과정에서 받는 맛난 선물이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