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메리 역사 - beulleodi meli yeogsa

벌써 한주의 딱 중간, 수요일이 되었네요.

영국은 모처럼 해가 쨍~ 하고 나서 기분 좋게 아침을 열었는데 한국이나 다른 나라는 어떤지요? 어디에 계시든 멋진 하루 보내고 계시길 바라며~~

오늘은 영국 왕실 이야기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지난번 글에 이어 많은 분들이 헨리8세의 첫딸, 메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셨는데요, 약속대로 그 언니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영국 왕실은 이름들이 하도 다들 비슷비슷해서 허구헌날 메리, 엘리자베스, 안 뭐 이렇게 반복적인 이름들이 나오곤 하지요~

오늘의 주인공 메리 여왕은 헨리8세의 동생 메리가 아니고 (이 메리 이야기도 이미 올라와있습니다^^) 여섯 부인들중 첫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딸래미인 메리입니다. 사실 이 메리의 이름이 헨리8세의 여동생 메리에서 따온거라 이름이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 영국에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부모 등등 친근한 가족 이름을 자식에게 흔히들 붙이곤 했지요. 그래서 이름들이 비슷비슷해서 헷갈리기도 합니다만, 오늘의 메리는 특히 유명한 메리이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칵테일 이름 `블러디 메리` 아시죠? 그 메리가 바로 이 메리입니다. ㅋㅋㅋㅋ 쓰고보니 조금 웃긴 말이 되었네요. 그 메리 이 메리. 여튼 그 칵테일에 왜 `bloody` 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가 하면요, 바로 우리의 이 메리 언니가 여왕으로 집권하던 당시 상당히 피를 많이 부른 노티한 언니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노티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기도 했습니다.  워낙 파란만장해서 이번 이야기는 조금 깁니다.. ㅋㅋ (스크롤 압박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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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엄마 아빠이자 젊은 시절 헨리8세와 카써린 왕비

위에도 언급했듯 메리는 1516년 헨리8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 아라곤가의 카써린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엄마인 카써린은 스페인의 공주였는데요, 사실 그녀는 헨리의 형이자 장남인 아서 왕자와 결혼할 목적으로 영국에 왔다가 갑자기 아서가 요절을 하는 바람에 결혼도 하기전에 정혼자를 잃고 떨렁 혼자 남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상당한 강대국으로 정치적으로 혼인을 통해 스페인과 다리를 잇는 것이 영국 왕실에 유리할터, 그냥 카써린을 돌려보내느니 앞으로 왕위를 잇게 될 차남 헨리와 결혼을 시키기로 합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들을 떠억~ 하고 낳아 왕실의 대를 이어줘야 할 부인이 자꾸만 유산을 겪게 됩니다. 여섯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숱한 유산 끝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가 바로 이 메리 공주입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을 골고루 닮았다고 해요.

엄마인 카써린은 스페인에서 공주라고 귀염받고 크다가 혼자 떨렁 영국 왕실로 멀리도 시집을 왔으니 안그래도 낯설었을텐데 별로 살갑지 않은 남편을 만나 계속 아이까지 유산했던 엄마 카써린은 상당한 카톨릭 교도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은 당시 카톨릭이 국교였기 때문에 별로 놀라울 일은 아니었지만 아마 이런 배경이 있어서 더더욱 종교에 매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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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의 메리 공주

여튼.. 메리는 그렇게 무럭 무럭 자라고... 유일한 외동으로 이쁨 받으며 크는 것도 잠시.. 메리가 한 아홉 살쯤에 아버지인 헨리8세가 엄마 시중을 들던 하녀, 안 불린과 바람을 신나게 펴대며 눈이 홱~하고 멀어버리죠.. 엄마인 카써린 왕비는 이미 나이가 차고, 잦은 유산으로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살랑 살랑 꼬리를 흔들며 젊디 젊은 안 불린이 작정하고 덤비니 헨리의 눈이 멀만 했겠죠. ㅋㅋ

문제는 바람만 잠깐 피고 끝난게 아니고.. 왕비 시켜주면 안 불린이 아들 낳아줄게 하고 꼬시니 눈 먼 헨리는 이제나 저제나 어떻게 하면 부인인 카써린을 내쫓나 궁리를 살핍니다. 가뜩이나 예민한 십대의 나이에 메리는  바람피는 걸로 모자라 엄마랑 이혼한다고 난리인 아빠와 답답한 심정에 십자가 붙들고 펑펑 울기만 했을 엄마 사이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로마 교황이 느그 부인이 그리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데 우째 이혼을 시켜주노, 안된다니께~ 걍 살어.. 하고 밀어붙이니.. 고민 끝에 옆에서 살랑살랑 크롬웰의 달콤한 제안에 눈이 번쩍 뜨인 아버지, 헨리8세는 카써린이 자신과 결혼하기 이전 카써린이 자신의 형, 아써와 결혼시킬 계획이 했었으니 나와 했던 결혼은 무효다~ 하는 말도 안되는 억지스런 이유를 들이대며 새 교황에서 압력을 가합니다. 이런 계획이 실제로 존재하긴 했지만 카써린이 당시 두 살이었고, 결혼시키려했던 아써왕자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실제로 결혼 성사가 이루어진 경우가 아니었으니 당시 법상 전혀 지장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형  아써가 일찍 죽어 결과적으로 헨리가 왕위를 이었으니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서 우긴거나 다름없는 거였죠. 그걸로도 모자라 헨리8세는 나중에 아예 국교까지 바꿔버렸습니다. 이참에 영국 성공회로 바꾸면 교황 허락 없이 내 맘대로 이혼도 하고 좋줴.. 바로 그거줴~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영국은 지금까지도 주욱 (중간에 트러블이 있긴 했으나) 500년 가까이 영국 성공회가 정식 국교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왕실법상 지금도 카톨릭교인과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법이 남아있답니다. 요즘 세상에도 이렇다니 신기하죠? ㅋㅋ

여튼.. 다시 메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충 상상이 가시죠.. 이런 꼴을 보고 자랐으니.. 메리는 얼마나 아빠가 미웠을까요. 그렇게 엄마와 강제로 이혼하고 둘째 부인을 들인 뒤 엄마와 완전한 찬밥 신세로 크는 메리. 게다가 잦은 병치레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여러모로 많이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억지로 이혼당한 후 궁전에서 내쫓은 엄마는 이 성 저 성 전전하며 남편에게 버림받은 것도 억울한데 궁에 남은 딸도 보지 못하게 해서 남은 생을 속을 끓이며 지내던 엄마 카써린.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남편을 애정어린 단어로 지칭했던 참 대단한 여인이었으니... 그렇지만 메리에게 있어 오로지 믿을 사람은 엄마 뿐이었는데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하고 떨렁 혼자 궁에 떨어져서 자란 우리의 메리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정말이지, 아무도 못믿을 그런 궁정 생활이 아무리 화려한들 뭣하겠어요. 그것도 모자라 새 장가간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안 불린은 곧 임신을 하고.. 메리는 이혼한 첫부인 사이에서 낳았으니 더 이상 공주가 아니라며 공주에서 별안간 '사생아'로 타이틀을 깎아내립니다. 사생아라면 아무래도 왕좌에서 더더욱 멀어지니 아마도 새 부인이 된 안 불린이 자신이 낳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맘에 그렇게 처리한 것이겠죠.. 유일한 공주에서 별안간 사생아가 되어버린 메리 공주...얼마나 속이 뒤집어졌을지... 어디 속만 뒤집어졌겠어요. 아버지가 부인들을 버리고, 죽이고, 메리의 대모도 찢어죽일 정도로 잔인한 모습을 보며 자란 메리.. 안 불린이 싸바싸바해서 갑자기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도 모를 그런 팔자가 되었으니 아마 많이 스트레스 받으며 불안하게 생활했겠지요.. ㅠㅠ

그러던 어느 날, 안 불린은 헨리가 그리 원하던 아들 대신 딸을 낳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갖은 둘째는 유산이 되죠.. 안 불린에게야 완전 인생 종친 결과였겠지만, 메리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안하게 연명하고 있는 그녀의 삶을 살린 계기였겠죠.. 안 불린이 그리 아들 낳아주겠다고 큰소리 떵떵 치더니 고것 봐라~ 갸도 별 수 있냐? 신이 벌 내린겨... 하고 여기지 않았을까 싶기도 ㅋㅋㅋ 

여튼 메리가 죽도록 미워했을 안 불린과 귀 얇은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딸래미가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지금 현재 여왕은 엘리자베스 2세죠. 얼마나 미웠을까 싶은 이 두 딸들은 같은 궁정에서 같이 자랍니다. 국민들이 창녀라 부르며 미움 받은 안 불린이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받을수록 같은 궁정에서 살던 메리 공주를 더욱 미워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아들 아들 타령하던 아버지 아래 딸만 둘이 된 튜더 집안... 이쯤에서 또 부인 갈아치워야죠. 애증의 둘째 부인덕에 왕권 약화 생겼지.. 낳아준다는 아들은 안낳아주지.. 아마 둘째 부인은 금방 질린 것 같아요. 헨리8세는 불과 3년전만해도 그렇게 좋아 안달복달하던 안 불린을 오빠랑 근친상간 관계였네 어쨌네, 마녀로 몰아 죽이고 그녀를 처형한 지 2주도 안 가서 셋째 부인을 얻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 에드워드를 낳습니다. (이전 포슷 주인공이죠~ ^^) 헨리가 그리 노래 부르던 아들까지 얻고 자식이 셋입니다만..... 아들이 생겼으니 헨리는 당연히 다음 대를 이을 왕은 왕좌 1번 내 귀한 아들래미 에드워드지! 했겠죠.. 그리고 아주 내키지 않지만 에드워드가 자식 없이 죽으면 그 다음으로 어쨌거나 첫딸이었던 메리가 그 다음이 둘째딸 엘리자베스가 되는 걸로 서열 정리를 합니다.

수십 년 사이 여러 부인 갈아치우고 낳은 터라 메리와 막내 에드워드 사이에는 나이 터울도 많습니다. 당시로 치면 엄마와 아들이 가능할 차이였죠. 왠수 같은 아버지가 드디어 세상을 떠나고 아홉살 난 어린 에드워드가 왕좌에 오릅니다. 어린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독실한 프로테스턴트였고...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큰 메리에게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문제는 끝났도다.. 가 아니었죠. 이 나이도 어린 것이 ㅋㅋㅋ 카톨릭교를 상징하는 것들을 몰살하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카톨릭교인이던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자란 메리인지라 그녀도 독실한 카톨릭교인이었건만.. 이건 졸지에 불법 행위나 하는 왕가의 사생아가 된 꼴이 되었으니.. 이건 뭐 마지막까지 아주 어린 동생한테 존심 상하는 일까지 겪은 메리... 그러나 다음 왕좌 서열 1번인 그녀를 아버지도 없는데 설마 날 죽이겠어? 하고 배째라 식으로 처음엔 들은 척도 안합니다. 에드워드가 편지도 보내보고 협박도 하지만, 메리는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꾸준히 미사를 드리죠. ㅋㅋ 이쯤 되니 별의별 고생을 다한 메리도 아마 두꺼워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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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이 된 메리

저 초상화 속의 메리 여왕.. 참 인상이 무섭지 않나요? 살벌한 눈빛에, 야무지게 다문 입술이며...뭔가 표독스런 느낌을 주는...;; ㅋ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고생하며 살아온 메리에게... 갑자기 뒤늦게 인생 역전의 계기가 왔으니... 그것은 고작 열다섯 살 된 에드워드가 자식 없이 병으로 사망하게 되면서였죠. 에드워드는 카톨릭인 메리가 뒤를 잇는 것이 싫어서 제인 그레이를 지목하고 세상을 떴으나 죽은 사람이 뭐 압니까. 이를 두고 왕실에선 말이 많았습니다. 제인은 공주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죠. 아들만 대를 잇는 판국에 왕가도 아니고 튜더도 아닌 사람에게 어찌 여왕 자리를 주느냐며 의회에서 일어나 달랑 9일간의 여왕 노릇을 한 제인 그레이는 조용히 왕좌를 내려오고 정식 튜더가의 첫째 딸인 메리가 여왕이 됩니다. 인생 역전...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죠...

궁정 밑바닥까지 기었다가 갑작스레 여왕이 된 메리!  정식 튜더의 딸이 여왕이 되었다며 국민들은 환호를 합니다. 물론 그것도 잠시죠.. 국민의 환호가 원망으로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여왕이 되었으니 그동안 시집도 못가고 궁정에 감옥처럼 붙잡힌 채 (결혼해서 메리가 아이까지 낳으면 더 복잡해지므로) 서른 일곱까지 옆구리 시린 노처녀로 살아온 메리는 결혼이 하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자신이 아이를 낳지 않고 죽으면 또다시 자신이 이룬(?) 카톨릭 유산이 무너지게 될 테니 그걸 방지하려면 자식을 낳아야겠죠. 그러던 차에 챨스 5세가 우리 외동 아들 필립 왕자랑 결혼해볼차? 하고 엄마인 카써린의 집안인 스페인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스페인 왕자인 필립의 왕실은 카톨릭 집안이니 더업이 아주 좋은 조건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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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된 필립공과 메리 여왕

의회와 국민들은 여왕이 같은 영국인과 결혼했으면 했던 차에 스페인 왕자와 결혼을 해서 가뜩이나 당시 강국인 스페인 왕국의 영향을 받는게 싫어서 이를 반대했지만, 필립 왕자와 결혼을 한 메리는 필립에 상당히 꽂혀있었다고 해요. 정략 결혼이 흔했던 당시 왕실이지만, 메리가 워낙 오래도록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느즈막하게 결혼해서인지 필립에게 많이 의지를 했다고 합니다. 둘이 떨어져있을 때면 남편인 필립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메리가 편지를 쓰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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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으로서는 달달해도 정치적으로 메리는 눈엣 가시같은 존재가 됩니다. 여왕 자리 올라 그동안 미웠던 정치인들을 하나씩 복수하듯 처형해서 정치 세력 숙청은 기본이고... 헨리8세의 변덕정치에 지친 국민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살아생전 에드워드가 걱정했던 대로 메리는 온나라에  처참한 종교적 피바람을 불러옵니다. 당시 에드워드가 정비해둔 프로테스턴트 분위기에서 카톨릭 전환을 하게 되니... 메리는 수백 명의 프로테스턴트인들을 처참하게 불에 태워죽였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살 타는 냄새가 떠날 날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알 수 있겠지요.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인 화형.. 오래도록 서서히 불에 타면서 고통스러하다가 죽는 일을 조금은 방지하기 위해 목에 화약을 두르고 처형시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종교를 빙자해 휘두르길 좋아하는 정신병은 예나 지금이나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서에 카톨릭이 아니면 이단으로 몰아 쥑이라~ 하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죠.. 이렇게 어린 시절 불안하고 고생 많이 하고 자란 메리 공주는... 국민에게 피바람을 불러오는 블러디 메리가 됩니다.. 어린 시절 얼마나 올바르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단면 같습니다.

필립공과 사이가 무척 좋았긴 하지만 메리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갖지 못합니다. 궁정 의사들도 임신이라고 믿을 정도로 임신 신호를 보인 일이 몇 번 있었지만, 메리가 너무 원하다보니 생긴 상상 임신 혹은 자궁외 임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을 뿌리기도 합니다. 메리의 엄마도 유산을 많이 했던 과거가 있는데 엄마처럼 몸이 약해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메리가 여왕 자리에 오른 후로 감옥에 갇혀있던 엘리자베스 공주는 감옥에서 풀려 여왕의 출산을 증인으로 보기위해 궁에 오지만, 메리는 2세 없이 숨을 거둡니다. 평생 고생 끝에 여왕 자리에 올라 낙이 잠시 왔지만 메리는 겨우 마흔 셋이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거죠.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는 했지만 사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인 필립공까지 머리를 갸우뚱할 정도였다고 해요. 현대 의학에 와서 아마도 메리는 자궁암이나 난소 종양으로 사망한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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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의 무덤

메리는 죽을 때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그녀의 소원과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사원안에 안치되었고, 이후 엘리자베스가 죽고 옆에 묻혔으니 어린 시절 강적 같았을 엘리자베스 여왕 옆자리에 나란히 묻힌 셈이 되었네요. 메리가 죽고 에드워드가 죽을때 비슷한 염려를 했던 것처럼 엘리자베스가 왕좌에 오르자 카톨릭교로 옮긴다고 그렇게 피비릿내 나는 처형 전쟁을 벌이던 메리의 잔인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프로테스턴트였던 엘리자베스는 다시 카톨릭 국교를 폐지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메리처럼 '블러디 엘리자베스'로 불리우지 않는 이유는 나름 평화롭게 이를 성사시켰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헨리8세가 그리 난리치며 바라고 소원하던 튜더 왕조 대잇기는 또다시 자식 없이 사망한 엘리자베스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새로운 왕실이 문을 열게 되는거죠~

다음 이야기는 왕실 이야기에 잠시 쉼표를 찍고,

19세기 스캔들을 일으킨 유명한 여인 카롤라인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게요~

♥ 정성들여 쓴 글이니 재밌게 보셨다면 공감/덧글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