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밀이 안하는 아기 - baemil-i anhaneun agi

아기가 고개를 가누는 게 첫 기쁨 이라면

두번째는 아마 뒤집기 일 것이다.

고개를 가누고 범보의자에 앉을 수 있게된 80일~100일 그 무렵부터

혼자 앉아있을 수 있는 (혼자 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앉아 있는 행위 그 자체를 말한다) 8개월 쯤 까지

나는 기쁨은 커녕..뒤집기를 하지 않는 아가 덕분에 두려움에 떨었다.

소아과에서는 종종 뒤집기를 안하는 아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 걱정이 되거든 큰 병원을 가보라는

마치..메뉴얼이라도 있는 듯한 정형화된 답변만을 주었다.

하늘이시어, 왜 우리 아가는 두혈종과 혈관종도 갖고 있으며, 성장과정도 다른 아기들과 다른 것입니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옛 어른들의 말씀이 옳았다, 때가 되면 다 한다.

배밀이 안하는 아기 - baemil-i anhaneun agi

다른 친구들이 기어 다닐때,

앉아서 놀던 아기는 손을 잡아주니 일어섰고 걷는 연습을 10개월 무렵부터 했다.

12월 생인데, 10월 초 였던 추석에는 친조부모 앞에서 손을 잡지않고 스스로 처음 걷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6발자국 이상 걷는 광경을 연출해내었다.

그로부터 두달 후인 돌잔치에서는 혼자 식당을 종종종종 누비고 다녔고 혼예쁜 독사진 컷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벌써 걷냐고 발달이 빠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켠으로는 뿌듯 하면서도

기지를 못해요~ 혼자 앉을 줄도 모르고 설 줄도 몰라요~

라고 대답하면서

또 다시 나 스스로를 걱정과 두려움으로 몰아 넣었다.

다행히 돌이 지나고 부터는 앉아있다가 땅을 짚으면서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하였지만 여전히 누워있다가 앉을 줄은 몰랐다.

눕혀놓고 일으켜 주지 않으면 엎드려서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13개월이 되어서도

스스로 앉지를 못해서 맘카페에 조언도 구했었다.

다들 친절하고 최대한 내가 겁먹지 않도록 답변을 해주셨지만

나는 엄마인 내가 아기에게 무심해서, 무지해서 발달시기를 놓친것만 같았고, 아기의 병을 키운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다시는 맘카페에 아기의 발달 사항에 대해 묻지 않으리..

정확하게 2월 18일.

준교가 만 14개월이 되고 바로 그 다음날.

엎어져서 울고만 있던 준교가 손으로는 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들고 한발한발 다리를 당겨가며 일어서려고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무릎으로 기어본적이 없는 아기여서

오로지 팔의 힘으로만 힘들게 ㅅ 형태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한 후 무게 중심을 다리로 옮겨서 일어섰다.

맨 바닥에서는 자꾸 미끄러져서 내가 발뒤꿈치쪽을 잡아줘가며 연습을 도와줬다.

3일정도 후엔 혼자서도 곧잘 일어날 수 있게 되었고,

짜증이 많고 예민했던 아기가 한결 순 해졌다.

누워있는 걸 싫어했는데 혼자 일어설 수 있으니 눕혀놓았다고 우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누워서 노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14개월이 되어서야 웃으면서 뒹굴뒹굴 장난치는 아기아기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전히 무릎을 이용해서 기지는 못한다.

국민문짝 피셔프라이스 러닝홈 을 단 한번도 기어서 통과한 적이 없었는데

이틀전부터 그래도 기는 행위를 하고 있다. 무릎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ㅠㅠ 엉덩이를 높이 든 채로 손과 발로만 기어서 국민문짝을 통과했다라는 외할머니와 시터이모님의 증언이 있었으나,

엄마인 내 앞에서는 무게중심을 잃고 이마를 꽁. 으앙!!! 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아들 그러니까 무릎을 쓰라고!

무릎을 잠깐 댔다가, 뭐가 잘못됐다고 느낀건지 벌떡 일어나 버린다..

그래도 무릎이 땅에 닿기는 하니

신체에 이상은 없는 거겠거니. 마음을 한 번 더 비우게 된다.

앞으로 자식을 바라보며 제발 남들처럼만! 을 수백만 수천만번을 외치게 되겠지?

우리 아기는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는데,

단지 순서가 바뀌었단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못난 엄마가 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다잡아본다.

배밀이 안하는 아기 - baemil-i anhaneun agi

“우리 지원이 배밀이 하는 것 봐!”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지원이에게 목표물이 잡혔다. 8개월 만에 지원이가 배밀이를 해서 승민이가 가지고 놀던 블록 장난감을 손에 쥐자 나와 아내는 박수를 쳤다. 지원이도 뭔가 성취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드는지 방글방글 웃는다.

지원이가 뒤집기만 할 땐 무작위로 돌아다니며 손에 잡히는 대로 쥐었지만 배밀이를 함으로써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반면 승민이는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내 장난감에 손대지 말란 말이야….”

지원이는 깨어 있는 동안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뒹굴뒹굴 구르기도 하고 손을 뻗어 딸랑이를 덥석 잡아 흔들며 입으로 탐색을 한다.

매일 새로운 운동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근육을 단련한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며 의욕이 넘치는 지원이는 배움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

아기의 운동 발달은 대부분 일정표에 맞춘 듯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 돌 이전에 아기가 하는 대근육 운동은 목 가누기, 배밀이, 앉기, 기기, 서기, 걷기 순이다.

또 소근육 운동은 팔 휘두르기, 손 뻗기, 손 전체로 물건 잡기, 엄지와 검지로 물건 잡기 순으로 발전한다. 이때 운동 발달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다.

어떤 아이는 생후 2개월째 뒤집고, 6개월째 기어다니고, 10개월 만에 걷게 됐다고 부모들이 자랑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는다.

반면 지원이의 운동 발달은 좀 느린 편이다. 6개월이 넘어서야 뒤집기를 시작하고, 8개월에 들어서야 간신히 혼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승민이에 비하면 한두 달은 느렸다.

그러나 우리는 조바심 내지 않는다. 지원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운동발달 시계가 좀 천천히 가는가 보다고 여길 뿐이다.

운동신경계의 발달속도는 유전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지만 정상범위에 든다면 한두 달 늦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통 손을 뻗는 동작은 2∼7개월, 혼자 앉기는 5∼9개월, 걷기는 9∼15개월 사이에 나타나면 정상이다. 또 운동신경계의 발달은 아기의 지능이나 전반적인 발달과는 무관하다. 15개월에 걷게 됐지만 두 돌 무렵에 알파벳을 뗀 아이도 보았다.

아기에게 걷기 연습을 시키면 좀 더 일찍 걸을 수 있을까? 기본적인 신경망이 정비됐을 때에야 아기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신경망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훈련과 연습을 시켜도 소용이 없다.

“마음껏 뒹굴고, 마음껏 놀아라.” 나는 바닥의 위험한 물건들을 치우고, 거실에 넓게 담요를 깔고, 지원이 옆에 엎드려 곰처럼 뒹굴었다. 하루하루 변하는 지원이와 ‘곰놀이’를 할 날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진한 기자·의사

  • 좋아요 이미지좋아요
  • 슬퍼요 이미지슬퍼요
  • 화나요 이미지화나요
  • 후속기사 원해요 이미지후속기사 원해요

배밀이 안하는 아기 - baemil-i anhaneun agi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