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명박

  

(이 대통령의 입을 잘 보라!) (고개를 끄덕이며) 아~ 논의 했구나.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한 일은 악행이 아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깜박 잊은 것뿐이다.

    오래된 동영상이나 세상이 하수상하여 의미가 새롭다. 지금봐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시추에이션이다. 희생정신(!)을 발휘해 '미국 김영삼' 부시까지 지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각하만의 극진한 국빈 외교술이다.

    조지오웰의 <1984년>에 나온 말로 이제는 일반 명사화된 ‘이중사고’란 것이 있다.

    때론 2+2=4가 진리고 때론 2+2=5가 진리가 되는, 진리로 믿는 사고방식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개의 상반되는 신념을 동시에 소유하고 둘 다 받아들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하면 불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어제는 4고 오늘은 5인 단기기억상실증’을 의미한진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보며 거의 실시간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고다.

    이 과정은 의식적으로 행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중사고’가 정확히, 만족스럽게 실행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어 동요하고 죄를 짓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신을 분열하면서도 그것을 인지하고 통합하는 능력, 그러면서도 정신이 멀쩡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대통령의 언행을 가만히 보면 단순한 (어설픈) 거짓말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거침없는 상습적 거짓말들로 볼 때 스스로 거짓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양심의 가책 역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고도의 이중사고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너무 조악하고 뻔한 거짓말이다. 방금 한 말을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상실증도 아니다. 그런 바보가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그 자리까지 올라갔을 리가 없다.

    정말 깜박 잊은 것일까? 하지만 파병이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보통 안건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본인에게 감사인사까지 했다는데 만약 잊었다면... 바보다!! 정말 바보라면... 그런 바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가 너무 비참해지지 않는가!

    분명한 것은... 내 머리론 이해하기 어려운 아스트랄한 인물, 아스트랄한 정신세계다. 정치학, 심리학, 언어학, 병리학적으로 많은 논문을 양산할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과제다.

“여러분보다 30초 먼저 알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 입력 2013.02.04 09:09
  • 281호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 1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제107차 라디오 연설에서 한 말. …여긴 어디? 난 누구? 청와대 방 뺄 때가 되어도 변함없는 각하표 ‘긍정의 힘’.

“질문의 요지가 뭐냐?” “다시” “확실히 못 알아듣겠다.” 청력이 약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1월24일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한 말 말 말. 결국 조윤선 대변인이 올라와 통역(?)을 맡기도. 남의 말 잘 안 들리는 총리 후보자와, 남의 말 잘 안 듣는 대통령 당선자. 역시 환상의 짝꿍.

“모든 동성애자들이 법에 따라 똑같은 대우를 받을 때까지 우리의 노력은 끝나지 않는다.” 1월21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기 취임연설에서 한 말. 각하, 국격은 이렇게 높이는 겁니다. 그리고 “현수막에 적힌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유해하기 때문에 강제 철거했다”라던 서울 마포구청 관계자들, 보고 있으신가?

“부인이 비서관 역할을 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1월21일 인사청문회에서 부인을 해외 출장에 동반한 이유를 해명하며 한 말. 재벌가 아들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국제중에 입학하고, 헌법재판관은 부인이 비서관 노릇까지 해야 하는 나라. “이러저러한 용도로 썼다”라던 특수업무경비처럼 아내도 그렇게 사용하시는 듯?

“조사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의혹 있으면 밝히고, 고칠 것 있으면 고치고, 보완할 것 있으면 보완해야 한다.” 1월22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인수위의 입장을 묻자 한 말. 1월21일 브리핑의 “노코멘트”에서 한 발 나아가긴 했지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다. “대통령이 되면 잘 하겠다”라던 박근혜 당선자 생각이 물씬.

“여러분보다 30초 먼저 알았다.” 조윤선 당선자 대변인이 1월24일 총리 후보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 당선자의 복심이어야 할 유일호 비서실장 역시 “하늘에 맹세코 여기서 알았다”라고 말해. 당선자 핵심 보직은 한글만 읽으면 맡을 수 있나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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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몰입은 원래 피곤하다

    몰입에 잘 빠지는 서른 살 남자. 지나치게 몰입하는게 고민.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이 사람은 몰입하는 사람. 그래서 다른 게 잘 안보여. 몰입은 좋지만 피곤해. 끝. 허무한 질문에 허무한 답변. 몰입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과연 자의에 의한 것이냐다. 심리적인 도피 말이다. 심리적인 도피가 나쁜 건 아니다. 직장생활 힘들다면 건프라에 몰입해도 괜찮다.

    야동몰입은 곤란하다. 하여간 A를 취한다는건 B를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인은 몰입이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게 문제일 수도 있다. 체질적으로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산만한 것보다는 몰입하는게 낫다. 몰입할 수 있다는건 에너지가 나와준다는 의미다.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능력이 중요하다. 별 의미없는 문답.

    27.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스물다섯 여자. 중학생 때부터 10년 유학생활의 고독. 현지인의 따돌림의 상처. 한국 오니 미국사람 취급, 미국 가니 아시아인이라고 따돌려. 미국에선 정치이야기 했는데 한국에선 성형수술 이야기만 해.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라서 고독해. 나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강신주 답변은 횡성수설. 동어반복. 잡생각 때문에 고독한 거야. 몰입하라구.

    고독해서 잡생각을 하는지 아니 잡생각을 해서 고독한지, 하여간에 미국생활 해서 한국생활에 적응 안 되는지, 한국생활 해서 미국생활 적응이 안 되는지, 하여간에 미국에서 정치 이야기 해서 한국의 성형수술이 신경쓰이는지, 한국에서 성형타령 해서 미국은 부시라서 어쩌구. 평론해줄 가치가 없는 헛소리의 연속. 글이 아니라 말로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

    즉문즉설 이런 걸로는 잡담이나 하는 거지 좋은 이야기 안 나온다. 하여간 한심하다. 철학자는 철학으로 답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 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나는 나의 의사결정영역이다. 여기서 타자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나의 몸, 나의 가족, 나의 나라, 나의 세계로 나의 자아는 점차 확장되어진다. 인격적 성숙이다.

    그러다가 침범당한다. 불시에 타자로부터 공격당한다. 몇 대 얻어터지고 나면 '어? 내 가족이 아니네.' '어? 내 나라가 아니네.' '어? 내 편이 아니네.' 이렇게 된다. 소외당하고 학대당하고 금 밖으로 밀려난다. 누구든 일생에 한두 번은 처절하게 깨진다. 우병우처럼 잘 피해다녀도 결국 깨진다. 남이 나를 깨뜨리기 전에 내가 먼저 세상을 깨버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노무현이 되어 있다. 인생은 아我와 피아의 투쟁이며 그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문제는 전략이다. 턱없이 피아를 크게 잡고 아我를 좁게 잡으면 말라죽는다. 턱없이 아我를 크게 잡고 피아를 좁게 잡으면 줘터진다. 한겨레는 아我인가? 적은 혼노지에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나를 학대하기도 한다. 마약중독이 그렇다. 적은 내 몸 안에도 있다.

    강신주처럼 멍청한 몸타령이나 하다가는 한방에 가는 거다. 정신차려야 한다. 철학자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타자성의 원리다. 답은 신과의 일대일이다. 아我와 피아의 투쟁이라는 게임의 장을 설계하는 문제다. 개도 자기집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준다고 한다. 남의 게임에 끼어들면 무조건 깨지게 되어 있다. 자신의 게임판을 설계하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담자의 나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어야 한다. 미국의 나와 한국의 나 중에 어느게 진짜 나인가? 영어로 개인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고 교류할 수 있으면 미국인이고, 그게 잘 안 되면 한국인이다. 미국인과 대화를 해도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뿐 정서적인 교류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사로운 고민을 미국인들에게 잘 털어놓겠는가?

    우리말은 매우 독특하다. 예컨대 ‘시큰둥하다’거나 혹은 ‘그냥’이라거나 하는 말들을 영어로 정확히 옮기기 어렵다. 한국어는 의태어가 발달해 있다. 둥글둥글, 미끌미끌, 싱글벙글, 왁자지껄 이런거 말이다. 영어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마음 속 깊은 곳의 느낌을 교류하기는 쉽지 않다. 유소년기에 뇌가 세팅되기 때문이다. 세팅 잘못되면 붕 뜨는 거다.

    되도록 만만한 지역을 선택하기다. 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했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에 따라 만만한 지역을 선택해서 에너지 낙차를 일으켜야 한다. 언제라도 그곳에서 자신이 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방향성 판단의 문제다. 미국이 만만하면 미국을 선택하고 한국이 만만하면 한국을 선택하고 매우 잘났으면 세계시민을 선택한다.

    백남준이나 윤이상 같은 사람은 세계시민을 선택하는게 맞다. 한국인의 정체성? 필요없다. 세계적인 작가는 세계단위로 놀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백남준이나 윤이상은 아니잖아. 조수미나 백건우만 되어도 다른 거다. 정명훈 정도만 되어도 한국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말고 좀 봐줘야 한다. 예술가들은 다른 거다. 김연아도 한국의 김연아가 아닌 거다.

    인류의 대표자로 위상을 높여줘야 한다. 어쨌든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하향지원이 정답이다. 진중권처럼 주제에 세계시민 타령하다가 바보되는거 한순간이다. 실력따라 가는 거지만 입시를 해도 하향지원이 낫다. 정리하자. 인간은 세상의 어느 지점에 각을 세우느냐에 따라 관점이 형성된다.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다. 호연지기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아래를 내려다볼 위치는 어디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정상에서 전모를 봐야 한다. 진리의 팀에 들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말은 내가 일으킨 사건은 무엇인가다. 나는 그 자체로 사건이다. 화살은 쏘아졌다. 정상에서 눈덩이를 굴려야 최대한 멀리까지 굴러가주는 것이다. 기슭까지 굴러가면서 큰 눈사태를 일으킨다.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많은 한국인이 병역기피 이유로 혹은 좋은 일자리를 위하여 혹은 입시지옥을 피해 미국으로 도망쳐 낮은 곳으로 숨어들고 있으니 망했다. 과거에는 영어만 배워도 장래가 보장되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사건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생각해야 한다. 기승전결의 기에 설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한국 사이의 애매한 곳에 양다리를 걸치면 기에 서기가 어렵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 양다리 걸치다가 망한 안철수 꼴 나는 것이다. 나의 줏대를 잃고 시류의 흐름에 끌려가게 되니 안희정 뽀뽀로 복구해야 한다. 세상은 변덕스럽다. 해외유학이 어제는 훈장이었는데 오늘은 가랑잎이다. 어디를 가든 토박이가 유리하다. 토박이가 게임의 장을 설계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는 유리하고 타자는 불리하도록 설계한다. 

    마을 이장 자리도 각성받이한테 안 준다. 기득권을 인정해야 한다. 처절해지는 거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하는 말은 사건 안에서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나의 주도권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말이다. 노예는 주도권이 없다. 차별받는 약자는 주도권이 없다. 여성은 자녀를 낳아 지배자가 된다. 자녀를 지배할 수 있다. 남자는 승진해야 약간의 의사결정권을 얻는다. 

    사방에 위태로운 함정이 숨어 있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외모가 어떻다는 이유로 의사결정권을 뺏기고, 주도권 뺏기고 기승전결의 기가 아닌 승이나 전이냐 결에 서게 된다. 뒤에 가서 서게 된다. 노예가 되어 있다. 동양인이 미국회사에 취업하면? 노골적인 차별은 없다고 한다. 

    다만 임원으로의 승진은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임원으로 키울 인재는 입사면접때부터 별도로 관리한다고. 이 부서 저 부서로 뺑뺑이를 돌리며 개고생을 시키면 자신이 관리되고 있는 증거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를 파악하고, 인맥을 쌓아서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 동양인이라면 한 부서에서 은퇴할 때까지 편하게 잘 근무하고 퇴직한다. 

    이런 식의 짜고치기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어디를 가서 터를 닦어야 내가 갑이 되어 사건을 일으키고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느냐다. 언제나 그렇듯이 구조론의 답은 이기는 팀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무당의 답은 굿해봐, 의사의 답은 수술해, 스님의 답은 출가해, 강신주 답은 가출해, 구조론 답은 이기는 팀에 들어 팀플레이 해. 

    그리고 만날 사람을 만나 확률을 높여둘 것이다. 그러려면 운명의 장소에 가서 대기타고 있어야 한다. 포레스트 검프 문재인처럼 역사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어야 한다. 운명의 시점에, 운명의 현장에서, 운명의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김정숙 여사도 데모하다가 만났지 않은가? 술집에서 만난 것과 데모하다 만난게 같은 만남일 수는 절대 없다. 

    에너지가 있고 없고 차이다. 호르몬이 작동하고 뇌가 반응한다. 무의식이 움직여주는 거다. 우리가 무심코 실수하여 이층에서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 들어간다. 난간에 다가서면 뇌가 반응한다. 신기한게 4미터에서 3미터로 1미터만 내려와도 한결 편안하다. 난간을 막 걸어다닐 수 있다. 

    뇌는 그거 다 계산하고 있다. 같은 사람을 만났어도 어디서 만났느냐에 따라 뇌가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호르몬이 다르게 분비된다. 운명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뇌는 운명 프로그램을 쓰는 것이다. 물론 우병우나 이명박과 같은 꼴통들은 뇌 속에 그런 운명프로그램이 없다.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 운명프로그램이 보니까.

    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너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인생은 게임이고 당신은 알량한 권력이 밑천이다. 종잣돈을 잘 굴려서 권력을 키워야 한다. 당신은 퀘스트를 수행하고 아이템을 수집하며 롤플레잉을 해야 한다. 기승전결이다. 기에 서면 흥하고 결에 서면 망한다. 기에 서려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한곳에 짱박혀서 공들여서 터를 닦아야만 한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캐릭터만 계속 바꾸면 금방 망한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든 와우를 하든 한곳에 터를 닦아 그곳의 터주대감이 되어야 한다. 경쟁과잉의 시대다.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한다. 어린 새싹을 경쟁시키면 죽는다. 왜 부산에서 특별히 인재가 많이 나올까? 경쟁이 덜하고 인맥으로 엮이는 것이다. 중국은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고 동문도 없다.

    15억 인구가 경쟁하는 판에 선후배를 챙기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천성에서 온 사람과 광저우에서 온 사람이 북경에서 친하기 어렵다. 일단 사투리가 심해서 말이 안 통한다. 북경어를 한다고 해도 정서적으로 괴리가 있다. 차이나타운을 가도 동향사람만 받아들인다. 동향도 부족하고 성씨가 있는데 문중사람이라면 사위삼고 중국집 차려준다.

    돌아가는 판에 끼이기가 쉽지 않다. 남이 설계한 판에 끼면 우병우꼴 나고 자신이 판을 설계하면 노무현처럼 죽는다. 위태로운 게임이다. 내담자는 그런 면에서 보호받지 못했다. 눈칫밥 먹고 성장한 전쟁고아처럼 험악한 환경으로 초장부터 내몰린 것이다. 기승전결의 기에 서려면 오만해져야 한다. 당당해져야 한다. 큰소리도 치고 허세도 잘 부려야 한다.

    그러다가 몰매맞는다. 동양인이 미국에서 제멋대로 까불며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성소수자라면 이태원이나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대접받는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밀라노 프로젝트는 절대로 망하는 거다. 인간은 오만해야 한다. 오만해도 용서되고 허세를 부리고 큰소리쳐도 용서가 되는 공간은 가족밖에 없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오붓한 공간 말이다.

    너무 크지 않은 그리고 내부 상호작용의 밀도가 높은 공간이 필요하다. 중국과 같이 큰 나라의 국민노릇 하기보다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국민노릇 하기가 더 낫다. 허세를 피워도 용서되는 공간이 한국에 더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15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숨도 못쉬게 짓누른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더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남에서 학교다니면 큰 인재가 못 된다. 보호되어야 한다. 더 많은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본인 실력으로도 올라가고 가족의 도움으로도 올라가고 친구 잘 만나도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도 친구 잘 만나서 대통령 먹은 거 아닌가? 오직 실력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환경으로 내몰리면 죽음이다. 나는 누구인가? 근데 당신은 누구야?

    문재인은 쉽다. ‘나 대통령인뎅.’ ‘알아모시겠습니다.’ 김정숙은 피곤하다. ‘영부인인뎅.’ ‘영부인 호칭은 안쓰기로 했잖아. 너 김씨?’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남 뒤에 묻어가지 말고 자기만의 고유한 영토를 개척해야 한다. 내집에서 누가 내게 누구냐고 묻겠는가? 내집에서 ‘당신 누구야?’ 하고 캐물을 사람은 도둑놈밖에 없다. 당당할 수가 있다는 말씀.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터주대감 노릇을 할 수 있는, 내가 마음껏 활개쳐도 용서되는, 내가 심하게 오버하고 무리해도 용인되는 그런 공간과 역할과 캐릭터와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 공간은 작아야 한다. 너무 크면 정 붙이기가 어렵다. 주로 섬이나 바닷가와 같은 변두리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강남에서는 원래 인재가 잘 크지를 못한다.

    너무 일찍 거친 경쟁으로 내몰려서 싹이 죽는다. 나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를 찾아야 한다. 내 부모는 누구인가? 아빠? 엄마? 대한민국? 박근혜? 박근혜를 어버이로 여기는 심리적 전쟁고아 많다. 60대 이상은 대개 심리적으로 유기된 사람들이다. 유기견처럼 아무에게나 꼬리치지만 정작 다가가지 않는다. 당신은 심리적으로 유기되지 않았나?

    박근혜에게도 꼬리를 치고 홍준표에게도 꼬리를 쳐대지만 문재인이 프리허그를 한다해도 다가오지 못하는게 심리적 유기견들이다. 당신을 절대로 보호하는 것은 진리밖에 없다. 진리의 프리허그에 응해야 한다. 홍준표에게 꼬리치지 말고. 이기는 팀에 들어야 한다. 엄마 품에서 어리광부리는 아이처럼 당신은 자유로워야 한다. 진리 안에서 그럴 수 있다.

    결론은 공부하라는 말이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원래 답이 없다. 불안하고 무섭다. 귀신도 무섭고, 좀비도 무섭고, 빨갱이도 무섭고, 김정은도 무섭고, 좌빨도 무섭고, 종북도 무섭고, 문재인도 무섭고, 문빠는 더 무섭다. 왜? 심리적 유기견이니까. 정신적으로 유기되었으니까. 신을 이겨야 한다. 져야 이긴다. 아기는 언제나 엄마를 이긴다. 지니까 이긴다.

 

    신과의 대결에서, 운명과의 대결에서, 인생의 게임에서 어디까지가 피아구분하고 겨룰 수 있는 지점인지 그 금을 확실하게 그어야 한다는 말씀. 아기는 아는데 어른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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