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날이 빙판위에서 왜 잘 미끄러지는지 열역학

겨울스포츠 속 얼음의 과학
3가지 이론 주목… 완전 규명은 안 돼

스케이트날이 빙판위에서 왜 잘 미끄러지는지 열역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선물한 차민규 선수의 질주 모습. 스케이트 날의 압력을 받아 얼음이 녹는다는 ‘수막 이론’은 잘못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아일보DB

겨울올림픽 종목 대부분은 눈과 얼음 위에서 ‘남보다 잘 미끄러지느냐’를 겨루는 대회다. 스키와 스피드스케이팅 등은 남보다 100분의 1초라도 더 빨리 미끄러져 나아가는 것이 목표다. 아름다운 동작을 표현하는 피겨스케이팅 종목은 미끄러짐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에 따라 점수가 갈린다.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종목도 있다. 바로 컬링이다. 경북 의성 출신이 주축인 한국 여자 대표팀의 연이은 선전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눈과 얼음은 왜 미끄러울까. 과거에는 ‘수막(水膜)’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스케이트 날의 압력을 받은 얼음 표면이 살짝 녹아 얇은 수막이 생기고, 이 물 때문에 스케이트가 미끄러진다고 추측했다. 이 이론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여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현재 이 이론은 잘못된 것으로 인식된다. 얼음에 압력을 가하면 녹는점이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하 10도 이하의 환경에서 얼음이 녹으려면 2000기압 이상의 압력이 필요하다. 스케이트 선수 체중이 수백 kg을 넘어도 얼음 표면이 녹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마찰열 이론’도 있다. 스케이트나 스키 선수가 눈이나 얼음 위를 활주하면 마찰이 생기는데, 이때 생기는 열이 얼음 표면을 녹일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허점이 있다. 마찰열로 얼음 표면이 녹는 거라면, 스케이트 날이나 스키의 바닥을 사포처럼 거칠게 만들어야 더 빨라지겠지만, 실제로는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을수록 잘 달린다.

스케이트날이 빙판위에서 왜 잘 미끄러지는지 열역학
한국 여자 컬링팀 선수들이 스톤을 전진시키기 위해 빙판을 문지르고 있다. 컬링은 화강암으로 만든 돌(스톤)의 미끄러짐을 잘 조절하는 팀이 승리한다. 동아일보DB

그렇다면 컬링에서 선수들이 얼음판을 열심히 문질러 화강암 덩어리(스톤)의 미끄러짐을 조절하는 것은 어떤 원리일까. 언뜻 보기엔 미리 마찰을 일으켜 얼음판을 살짝 녹여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 컬링 경기장은 단단한 얼음판을 얼려 두고, 위에 미세한 얼음가루를 뿌려 다시 한번 얼리는 형태로 만든다. 표면저항이 생기도록 해놓았다. 선수들은 ‘브룸’이란 브러시로 앞을 문질러 얼음판을 조금이라도 더 매끈하게 다듬는다. 온도를 높이기보단 표면을 다듬는 동작으로 봐야 한다.

현대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표피층 이론’이다. 얼음 표면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수막이 원래부터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영국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1895년 처음 제시했다. 이후 여러 과학자들이 X선 촬영기법 등을 동원해 확인한 결과, 이런 수막의 두께는 주변 온도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아주 추운 날은 얇은 경우 원자 몇 층 정도까지 얇아지고, 두꺼운 경우 약 10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정도까지도 관찰됐다는 기록도 있다. 이 수막이 얇을수록 겨울스포츠에서 활주성이 좋아지고, 두꺼울수록 조작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흔히 ‘빙질(氷質)이 마음에 든다’는 표현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러니 겨울올림픽 때 얼음을 만드는 장인들은 쇼트트랙은 영하 7도, 피겨는 영하 3도 정도에 맞춘다. 강한 힘으로 얼음을 지치고 나가는 아이스하키는 영하 9도 정도로 관리한다.

양인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열유체표준센터장은 “수막 이론은 잘못 알려진 과학 상식 중 하나”라며 “겨울스포츠는 여러 원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마찰열 이론은 경우에 따라 약간의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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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날이 빙판위에서 왜 잘 미끄러지는지 열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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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올림픽에서 가장 오래된 종목 중 하나가 바로 피겨 스케이팅이다. 하지만 얼음위에서 스케이트가 어떻게 미끌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스케이트의 원리에 대해 이미 알아냈다 생각할 것이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꽤나 복잡하다.

사실 얼음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잘 미끄러지는 물질은 아니다. 얼음과 아주 약간의 물이 결합해야 우리가 잘 아는 미끄러운 빙판이 되는 것이다. 이를 과학적인 설명을 하자면, 마찰력이 최소화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얇은 수막(水幕)이 어떻게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어왔다.


가설 1: 압력

가장 처음으로 이에 대한 해석을 내놓은 것은 마이클 페러데이였다. 페러데이는 압력에 주목했다. 1850, 페러데이는 런던의 왕립협회에서 2개의 얼음조각을 문질러 하나로 합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연했다. 페러데이는 얼음조각을 문지르며 발생하는 압력이 얇은 수막을 만들어내고, 이 수막이 얼음의 냉기로 급격히 다시 얼어붙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압력만으로는 스케이트를 설명할 수 없었다. 얼마나 무거운 스케이터가 빙판위에 올라가든, 그 무게만으로는 얼음을 녹일만 할 충분한 압력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주목한 또 다른 해석은 바로 마찰열이었다.

움직이는 스케이트와 얼음사이의 마찰로 인한 발생한 마찰열로 인해 물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찰열이 발생하려면 움직이고 있는 상태여야 하고, 우리 모두는 꽝꽝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 넘어졌다 일어나려 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얼음이 미끄러워 비틀거렸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가설 2: 물과 얼음 사이?

2014년 싱가폴의 한 교수는, 얼음에 발생하는 얇은 수막이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처럼 액체가 아니라 주장했다. 바로 초고체 표면, Supersolid skin”. 그는 이 표면의 수막은 고체라 주장했는데, H2O 분자사이의 결합이 약해지긴 했지만, 액체상태로 용해될 만큼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연구진이 이 수막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실시했다. 연구진은 이 수막은 액체일수도, 초고체일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의 발표는 -액체라는 것이었는데, 완벽한 설명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반-액체는 고체와 액체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여전히 만족스러운 해답은 아니었다.

얼음과 같이 우리의 일상에 매우 익숙한 물질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감추어진 원리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복잡할 수도 있다.


가설 3: 물과 얼음의 변환

2015, 왜 스케이트 같은 단단하나 물질이 얼음과 접촉했을 때 미끄러지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대게 이 같은 오래된 난제에 따라오는 해답이 그러하듯 상당히 난해한 이론이기도 했다.

독일 율리히 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는 얼음 마찰에 관한 이론적 설명과 실험 데이터를 결합한 것이었다. 얼음위에서 특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아주 얇은 수막을 형성한다. 이전의 수차례 연구에서 가정했듯, 마찰로 인해 수막이 형성된다면, 특정한 속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미끄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율리히 연구진의 실험데이터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대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얼음은 더 미끄러워졌다.

율리히 연구소의 연구결과는 모순적이다. 수막을 형성할 정도로 빠르게 미끄러지지 않는다면, 얼음과의 마찰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해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수막이 형성되게 된다. 만약 수막을 형성할 정도로 빠르게 미끄러진다면, 얼음과의 마찰이 줄어들기 때문에, 형성되었던 수막이 다시 빠르게 얼어붙게 된다.

이 말은 즉, 빙판 표면은 물과 얼음 상태가 빠르게 바뀌며 미끄러지는 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속도가 있으며,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연구진의 주장처럼 -액체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스케이트가 부드럽고 쉽게 얼음위를 미끄러질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문제는 얼음과 스케이트 날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은퇴했지만, 김연아가 빙판위에서 우아한 연기를 하는 것도, 이승훈이 심석희가 폭발적인 스피드로 스케이팅을 하는 것도 사실은 그 자체로도 물리학의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