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어느 흙수저 동네의 일상

  • 북핵, 동상이몽의 실체

    2017-09-04 19:54:28

    북한몽. 북한은 6차 핵 실험으로 사실상 핵을 보유했다.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철수를 조건으로 핵 동결을 수용할 속셈이다. 한미동맹을 와해시키고 한국을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핵 폐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도 평화협정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경쟁국이 될 수 있지만 떡고물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일본은 실리적으로 미국의 선택을 수용할 것이다. 북한은 미군철수를 조건으로 핵 동결을 수용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일단 공인받는다. 좌경화된 한국이 고립무원이 된다면 통일은 손바닥 뒤집기다. 핵전력 강화는 급하지 않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 세월이 가면 미국은 그 지도자가 바뀌겠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상대방의 기를 확실히 꺾어둘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매진하는 이유다. 미국의 선제타격은 없다. 한반도는 중동과 다르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인접해 있고 좁은 땅에 8천여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구가 밀집해 산다. 선제타격은 바로 세계대전으로 확전되거나 감당하기 힘들 만큼 희생자가 많을 위험성이 있다. 선제타격에 대한 부담이 과중하기 때문에 ‘벼랑 끝 전술’을 무리하게 끌고 가더라도 큰 탈은 없을 것이다.미국몽. 북한이 원하는 것은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다.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는 베트남과 같이 적화될 개연성이 크다. 전략적 방어선을 애치슨라인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일본, 필리핀, 대만, 베트남, 미얀마와 인도 등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일 수 있다. 게다가 일본은 믿을만한 든든한 우군이다. 한반도가 적화된다고 한들 대순가. 베트남처럼 적화 후 우방으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북한 주도로 통일된다고 한반도가 중국 편이 된다는 법은 없다.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은 훌륭한 유인으로 곧잘 먹혀들 것이다. 한국을 잃는 상황이 무척 아깝긴 하다.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이 최선이겠지만 발 빼는 방법도 최악은 아닌 셈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선택의 폭은 좁다. 유엔을 통한 압박으로 북한의 기세를 꺾어놔야 한다. 세계대전으로 확전되거나 최소한 수백만 명이 희생될 수 있는 선제타격은 부담이 크다. 하지만 미군이 공격당한다면 즉각 응징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몽. 중국이 미국의 동맹세력과 국경을 맞대는 불상사는 막아야 한다. 용감한 맹방이 없어지는 일도 있어선 안 된다. 북한은 대국 체면상 직접 할 수 없는 언행을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방법으로 대신해주는 자존심이 강하긴 하지만 믿음직한 혈맹이다. 순망치한이다. 핵 폐기와 미군철수가 최선이겠지만 북한이 핵을 막무가내로 고집한다 해도 그것은 미국의 전술핵이나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북핵으로 인한 세력 변화는 그게 평화적인 방법이라면 참을 수 없을 만큼 나쁜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항상 중국의 통제권 아래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 북한 등과 공동 대응한다면 미국의 선제타격을 저지할 수 있다.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두는 전략이 한국으로선 최선이다. 사드를 비롯한 미군을 보호할 수 있는 방공체계를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 북한 핵을 폐기하지 못한다면 미군의 전술핵이라도 조속히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자체 핵개발이 최선이지만 국제사회의 제재가 큰 만큼 장기적으로 은밀히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원전은 이론적 토대와 더불어 물자 수급 측면에서도 필요불가결하다. 원전 중단은 천진난만하고 섣부른 결정이다. 북한은 미군이 주둔하는 한 한반도에서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 미국은 북한을 삽시간에 초토화할 가공할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토욕은 인근 국가들에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미국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다. 북핵은 현 수준에서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 북핵이 비록 사용되지는 않겠지만 힘의 상징으로 군림할 것이다. 북한에 온갖 굴욕을 당할 일이 눈에 선하다. 최선의 방책은 한ㆍ미ㆍ일 동맹을 강화해서 핵을 포함한 군사력 우위를 계속 유지하는 일이다. 자주 국방력을 키우고 전시작전권을 찾아오는 일은 그다음이다. 지금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안보에 대한 국민적 콘센서스를 확보하는 일이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 9월에는

    2017-09-03 20:17:59

    나지막한 돌담을 따라 심어놓은 남천의 잎들이 붉게 물들어간다. 떠나기 아쉬워 머뭇대는 여름과 등 떠미는 가을이 묘하게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어느새 가을빛 하늘이 저만치서 높아만 간다. 마음이 설레는 계절, 9월이다.알록달록 꽃이 어우러진 길을 지나며 하늘대는 코스모스를 바라본다. 들판 가득 피어나 지나는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는 루드베키아를 곁눈질로 감상하며 바삐 학술대회장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만나 얼굴 보면서 함께 열심히 공부하자는 선배님이 빨리 오라고 재촉하신다. 의사회 창립 70주년 종합학술대회, 이 연수회가 있기까지에는 원로선생님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음을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열정 어린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뒤이어 따르는 후배들은 좀 더 안전하고 안정되게 그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으랴. 요즈음은 병원과 의원,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곳곳마다 잘 배치가 되어 있어서 비교적 편리하게 의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무의촌인 곳이 있다. 그곳은 어디일까? 좌장으로 앉은 분이 농담을 건네신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회원들에게 그분은 진지하게 답하신다. 바로 의사의 집과 가족입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동의한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하면서 일에 치여서 늘 동동거리는 사람들. 어쩌면 짚신장수 헌신 신는다는 말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건강은 살펴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의사이지 않을까 싶다.가까이 지내던 대학 선배가 몹쓸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다.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그것. 누구보다 철저히 환자를 챙기던 분이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어떤 것이 위로 될까. 전화받을 겨를도 없이 치료에 여념이 없다는 선배,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식 들을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잘 나아서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다시 건강해져서 옛말하면서 손잡을 수 있기를 두 손 모은다.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느님은 좋은 사람 먼저 데려간다는 이야기 말이다. 항상 좋다는 운동을 열심히 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던 선배를 보면서 그 말이 정말 들어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도 옆자리에 누군가 믿을 만한 이를 앉혀놓으면 더 든든하지 않으랴. 오래된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이었다, 이탈리아 아름다운 휴양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코믹영화. 미국인 갑부 역에 록 허드슨과 이탈리아인 여자 친구 리사 펠리니 역에 육감적인 매력의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맡아 열연하였던 영화였다. 줄거리는 가물거리지만 9월이 오면 그녀의 눈을 찡긋하던 그 매력적인 얼굴이 어른거린다.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는 젊은 날의 건강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염병은 물론 모든 병이 오는 원인 등을 잘 알아서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특별히 음식물의 과학적인 방법 즉 영양가는 물론 해가 되거나 이로운 것을 잘 알아서 좀 모자란 듯이 규칙적인 식사를 하며 늘 일정한 시간에 먹는다. 적당한 운동은 무엇보다도 절대로 필요하다. 육체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늘 활발하게 활동하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만 있는 것은 오히려 생명을 단축할지 모른다. 또한, 거처하는 장소, 주택과 늘 일하는 사무실의 햇빛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매연이 없는 환경이 좋다. 여러 가지 기계문명으로 인한 소음이 없어야 정말이지 우리가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 젊은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젊어지는 방법일 것이리라.9월은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이에게 항상 좋은 인연으로 다가가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늘 평화로운 마음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는 이 시간, 9월이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시시때때로 시간의 변화를 느껴가며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서 삶을 성찰해 가면서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따사로운 햇살과 살랑대는 바람을 고요히 맞이하는 풍요로운 가을 들판처럼 삶에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향기를 더해가는 가을처럼 늘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가끔은 주변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를.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 껍데기는 가라

    2017-08-28 20:00:22

    전통적으로 겸양은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지금은 손실을 감수한다는 이유로 도덕교과서 속의 유물로 취급하고 있다. 현대는 그 정반대의 처세술이 판친다. 정치판에서 겸양은 아예 악덕으로 수모를 당한다. 지금을 흔히 자기홍보시대라고 한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자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입장에서 보면 약삭빠른 세태다. 본질을 제대로 알리는 정도를 넘어 본질을 왜곡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 민중 심리나 허점을 이용하여 얄팍한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음모를 목도하노라면 배신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비정한 정치판에서 정치선동가의 불순한 시도에 넘어가지 않고 중심을 잡기 위해선 물밑에서 횡행하는 정치 선전ㆍ선동 수법을 역사적 프리즘을 통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정치 선전ㆍ선동은 단순한 메시지를 끝없이 반복하는 경향성을 추구한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중이 분노할 때까지 집요하게 반복한다. 예컨대, ‘기득권층이 부패했다’는 메시지를 계속 발신하고 표적 대상별로 맞춤형 접근방법을 적용한다. 학생과 학부모를 선동할 목적이라면 입시비리나 취업비리를 건드린다.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디테일 발굴에 집중한다. 분노와 증오는 민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불법적인 축재행위, 기득권층의 비인간적 갑질, 추악한 불륜, 비열한 정경유착 등이 단골 메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과 포장 그리고 날조는 기본이다.정치 선전ㆍ선동은 하나의 공격 대상에 집중한다. 정치판에선 보통 집권세력의 중심인물이 주 타깃이다. 아킬레스건 중에서 민중이 쉽게 분노하고 증오하는 분야를 주목한다. 금수저와 불통이 그 일례다. 성형수술이나 성추문, 사이비종교도 괜찮은 아이템이다. 어린 학생들의 대량 사망은 동정 여론을 광범하게 조성할 수 있는 최고의 이슈다. 취업포기자와 결혼포기자를 비롯한 사회 불만세력에게 특히 호소력이 있다. 감성에 호소하면서 명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을 공략한다. 완전히 도취된 상태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구한다. 흥분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야 한다. ‘거리를 정복하면 민중을 정복할 수 있으며, 민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고 한다. 그럴듯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참여할 명분을 주고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예인을 동원한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것은 제대로 설득하였다는 증거다.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 외세의존보다는 민족자주가 논리적이고 선동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회주의를 통해 기득권층과 부자들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를 유도하고 민족주의를 내세워 청년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문화예술 또한 인간의 무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민중에게 감동을 주고 은연중에 팩트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영화는 재미와 더불어 정치적인 의도를 내포해야 한다. 음악은 감정을 공유하게 하여 공동체의식을 갖게 한다. 영화와 음악은 민중의 정신을 장악할 수 있는 최고최선의 도구이다. 죽음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신정치’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죽음은 비장하고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 슬픔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감히 이의를 달 용기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죽음은 강력하다.언론과 방송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비판정신이라는 언론ㆍ방송의 속성을 잘 활용한다면 그들을 쉽게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 만사 단순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거짓말도 필요하다. 거짓말을 하면 처음에는 의심하겠지만 계속 반복하면 결국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배합이 완전한 거짓보다 더 설득력을 가진다. 최근 단기적 성과에 취하여 기술적 선전ㆍ선동 방법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기미가 감지된다. 마키아벨리나 괴벨스가 부활할 조짐까지 보인다. 비록 성과가 탐이 나더라도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패도로 가서는 안 된다.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하여 비인간적 절차를 좇는 것은 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껍데기를 포장하여 알맹이로 속일 수는 없다. 본질을 알리는 것이 본질을 가리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 얼음이 물이 되듯

    2017-08-27 19:48:55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써늘하게 다가온다. 견디기 한결 가뿐하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이 마지막 열기를 선사하고는 이제 멀리 떠나려 한다. 머잖아 가을이 짙은 향기를 머금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리라. 초록의 잎사귀 위로 길고 가늘게 솟아난 보랏빛 꽃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보라색 꽃을 감상하며 차의 향기를 음미한다. 진한 향기를 머금은 라벤더이지 않을까 하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맥문동 꽃이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운치 있는 곳이 있었다니. 언제부터 이곳에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을까. 참으로 신기하다.오랫동안 그리던 친구를 드디어 만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하던 고향 친구가 아니던가. 풍문으로 듣고 머무르고 있다는 절을 찾아가 보면 어느새 그는 흔적 없이 옮겨가 버린 뒤이기 일쑤였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번번이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구를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가 다시 맺어 주신 것이다. 고향 선산에 어머니를 모시던 날, 동네를 지나면서 연세 지긋한 어른을 만났다. 어머니 친구였지 않을까 싶어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어르신은 “인연은 가고 오는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의 인연이 가고 나면 그 자리를 채울 또 다른 인연이 찾아오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힘을 얻어 친구의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바로 “내 동생이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주지 스님이 되어 가까운 절에 거처한다며 바로 찾아가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전화 연락을 하니 그는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 49재를 정성 들여 모셔주겠노라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식구들도 모두 그 소식을 듣고는 검은 옷 속에서도 얼굴이 환하게 밝아왔다. 어머니를 다시 만난 듯이. 주말마다 우리는 어쩌면 인연이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그리도 신통하고 마침맞게 그 스님을 만나게 되었을까. 허전하고 슬픈 우리를 위로해주려고 어머니가 찾아 보낸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절로 향한다. 먼 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 거주하다가 얼마 전에 내려왔다는 친구는 건축에 탁월한 안목이 있는 것 같다. 절 마당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이름 모를 꽃들을 정성껏 심어 놓았다. 봉숭아, 달리아, 설화가 만발해 있다. 하얀 잎사귀를 달고서 잔잔한 꽃잎을 정갈하게 피워낸 “설화는 달빛에 보아야 그 모습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지?” 하면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때 들러 줄 것을 부탁하는 친구, 그를 만나 참 다행이다. 나무 데크 사이로 아담하게 꾸며놓은 정원과 갖가지 문학 서적으로 빼곡하게 정리된 북 카페, 삶의 향기를 더해주는 공간이다. 아무런 말 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이와 함께 맛난 차를 마시며 향기를 음미한다면 그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 있겠는가. 책이 가득한 공간에서 차 한 잔을 마주 놓고서 마음에 드는 이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으랴. 슬픔을 가득 안고서 재를 올리러 찾아오는 이들도 북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눈물은 마르고 미소가 머물다 간다는 그 친구의 공간. 달빛이 은은한 밤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설화가 가득히 피어 있는 널찍한 정원을 돌아보며 우리는 옛날의 추억을 떠올린다. 어릴 적 외가에 가면 목화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하얀 솜방망이가 터져 나오는 것도 멋있었지만 망울로 맺힌 목화를 따서 입에 넣으면 달달한 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그때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고향과 친구는 언제나 달달한 목화 같은 추억으로 남는 것인가. 떠나 버린 어머니도 언제나 내 가슴엔 그런 맛으로 남아 있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리운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인연은 정말이지 오고 가는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 같던 어머니가 떠나자 그렇게도 보고 싶어 찾았던 나의 친구를 만나 귀한 이야기를 듣다니 말이다. 어머니를 그리는 내 심정을 읽었는지 그가 나지막이 이른다. “우리 삶이 얼음이라면, 죽음은 그 얼음이 녹아서 된 물이라고 생각해”, 형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통째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본질은 변함없지. 그러니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는 거야. 먼 세상으로 떠난 그리운 이들, 모두 깨끗함도 더러움도 가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우리를 늘 끊임없이 지켜줄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위로 삼아 씩씩하게 살아야겠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 현장의 목소리 경청하고 있나

    2017-08-23 20:03:30

    “어느 명문 사립대 입학사정관이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볼 일 마치고 나가려 할 때, 학생 한 명이 상담하고 싶다고 하니 좀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어요. 입학사정관에게 그 학생은 스키부 소속이라고 말하자, 반색하며 돌아서더니 한 번 보자고 했어요.” 어느 일선 교사의 말인데 사실이 아니면 좋겠다. 스키부, 또는 아이스하키부라고 하면 가다가도 돌아와 기꺼이 상담에 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맞는 말이 아닌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는 왜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까? 앞으로는 달라지겠고 달라져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학벌에 의한 차별대우, 임금격차 등이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대학진학이 장차 ‘취업을 위한 유리한 출발선 확보’로 생각한다. ‘구직달리기’에서 서울대 출신은 출발선보다 훨씬 앞에서 뛰고, 그다음부터는 학교 순위에 따라 점점 뒤로 밀려서 지방대는 출발선보다 훨씬 뒤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 출발에서 뒤지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입상권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착화된 대학서열이 의미가 없어지는 혁명적 상황 반전이 없다면 절대평가를 도입하든 상대평가를 도입하든 명문대 입학을 위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사교육 또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직감과 육감, 눈치와 오랜 사회 경험으로 이 점을 확신하고 있다. 수능 7과목 중 4과목(영어, 한국사, 통합사회ㆍ과학, 제2외국어ㆍ한문)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국어, 수학, 탐구 1과목은 상대평가하는 ‘일부 과목 절대평가’ 1안은 전 과목 절대평가를 보완해 수능 변별력을 어느 정도까지 확보하는 차선책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교에서는 절대평가 과목보다는 상대평가 과목인 국어와 수학, 탐구 1과목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고, 과목 쏠림 현상으로 이들 과목에 대한 학습량이 늘어나고 사교육은 이 과목에 집중될 것이다. 전체 과외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고 상대평가 3과목에 집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렇게 어느 것이나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1, 2안 중 하나를 8월31일에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전 과목 절대평가라는 2안이 도입되면 중학교 단계에서 수능대비 선행학습이 성행할 수 있다. 목표 점수가 명확하기 때문에 중학교 과정에서 준비할 수 있는 수능 문제를 뽑아 과목별 수능 예비학습을 할 수 있다. 고교에 진학해서는 수시모집 대비를 위해 학생부 교과와 비교과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중3부터 수능 준비반이 생겨 입시 공부 기간이 4~5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현 중3은 학교 내신은 9등급 상대평가제가 유지된다. 학생들은 약화된 수능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사생결단 자세로 내신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현재로서는 1, 2안 모두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 학생과 학부모, 교육현장에서는 각자의 입장과 유ㆍ불리 판단에 따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능절대평가 찬반 피켓을 들고 공청회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열병을 앓아왔고 지금도 해소과정에 있는 이념갈등, 계층갈등, 보혁갈등, 빈부갈등, 세대갈등 등에 교육갈등이 하나 더 추가될 조짐이 보인다. 교육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회통합은 어렵고, 계층갈등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서로 편이 갈려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대학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일부 대학만 조심스럽게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개편안이 확정되면 구체적인 전형 방법을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원래는 수능개편안이 확정되고 대학이 거기에 맞추어 3년 후 전형요강을 발표하여 현 중3이 고교를 선택하는데 참고하게 해야 한다. 무엇하나 예측 가능하지 않으니 개편안 첫 적용대상만 괴로운 것이다. 학부모와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경청한 후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개편안을 결정하면 안 되는가를 묻고 싶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 긍정의 눈으로 상대를 봐야 한다

    2017-08-21 19:51:55

    ‘파블로 피카소’가 스물세 살에 처음 만난 여자는 유부녀였다. 피카소는 그때부터 대략 10년 단위로 새 여자와 만나 염문을 뿌렸다. 대부분 피카소가 먼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고 돌아섰다. 여든을 바라보던 피카소가 마지막으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서른으로 무려 49년 연하였다.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의 사생활은 개망나니 수준이었지만 불세출의 천재성에 가려 그의 구질구질한 행적은 묻혔다. 누구도 방탕한 사생활을 들어 빼어난 예술을 폄하하지 않는다.‘빌헬름 바그너’는 그를 절대적으로 후원했던 은인의 아내와 애정행각을 벌였다. 그것도 모자라 조강지처를 버리고 동료 음악가 리스트의 딸을 유혹한 파렴치한이었다. 사상적인 면에서도 반유대주의자였다. 나치주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그의 음악이 사용되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선 바그너 작품 공연이 금기시되고 있는 사연이다. 바그너는 의리마저 저버린 파렴치한에 독일민족우월주의를 신봉했던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은 추잡한 과거사를 덮고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혼전에 사생아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사촌과 사귀어 재혼하는 등 파란만장한 여성편력을 가진 탕아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핵폭탄 개발을 부추겼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가공할 살상무기를 만들도록 종용한 혐의가 인정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전범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시공의 절대성을 무너뜨리고 현대 물리학을 다시 쓴 위대한 천재로 존경할 뿐 부정적 측면을 들추며 교과서에서 아인슈타인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율곡 이이는 ‘단군’은 문헌상 근거가 없다고 무시하면서 ‘기자’는 천한 오랑캐에 지나지 않은 우리 민족을 계몽했기 때문에 그 망극한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대주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율곡은 생원시, 진사시를 포함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모두 장원급제함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였다. 한 번 장원했으면 족한 걸 가지고 쓸데없이 아홉 번이나 과거에 응시하여 남의 귀중한 합격기회를 빼앗은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한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창한 예지자, 성리학에 달통한 대학자로 우리나라 18대 명현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어 있다. 율곡은 대한민국 지폐의 단골손님이다.마오쩌둥은 철없는 홍위병을 앞세워 문화대혁명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5천여만 명이 희생되었고 공자묘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파괴되었다. 시대가 바뀌면 마오쩌둥의 과오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아직도 천안문 광장에 대형 사진이 걸려 있으며 중국의 국부로 존경받고 있다.앞에서 예시한 다섯 위인은 무작위로 편의상 거론한 것뿐이다. 다른 위인들의 뒤를 캐 봐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종대왕도 비켜갈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날줄과 씨줄로 옷감을 짜듯이 선과 악으로 교직 되어 있는 까닭에 인간에게 완벽한 천사나 100% 악마는 없다. 선악 양쪽 요인이 각기 랜덤하게 함께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이다. 개성은 재능과 소질의 함수이기도 하다. 사소한 선을 사유로 과도한 악을 응징하지 못하게 할 수 없듯이 참을 만한 하찮은 악을 들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큰 선을 가로막아선 곤란하다.심오한 가치관과 선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종교계에서, 기억력이 좋고 탐구심이 넘치는 사람은 학계에서 그 실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식과 상상력을 갖춘 사람은 문화예술 영역에서, 통찰력과 설득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치 영역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다.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기업가로서 대성할 개연성이 크다.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사람이 없다. 최소한의 도덕률은 지켜야겠지만 높은 도의적 잣대를 들이대며 가혹한 조리돌림을 하는 일은 과욕이다. 함께 살지 못할 결정적 사유가 아니라면 사소한 일탈 때문에 발목 잡는 일이 반드시 언제나 옳지는 않다. 세월이 흐르면 공과가 말끔히 정리되고 각자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긍정의 눈으로 상대를 보아야 비로소 ‘윈윈’이 보인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 기대를 안고

    2017-08-20 20:03:59

    깨꽃이 분홍으로 물드는 아침이다. 부추꽃이 별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흐르는 물소리에 사위질빵이 리듬을 탄다.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는 구름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도 변한 것 하나 없는 것 같은데 가슴은 온통 다 비어 버린 것 같다. 물방울이 볼을 타고 내린다. 그리움이 흘러내린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 못 하는 날씨를 다행으로 여기며 산길을 걷는다. 옛날의 일들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어머니와 함께하였던 옛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주르르 딸려 나온다. 산천은 언제나 변함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순환하며 이어진다. 보내고 또 맞이하며 그때 그 시절을 담담하게 회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허허한 가슴으로 빈 하늘을 올려다본다. 몹시도 그리움이 이는 날이다.기다란 미역 한 단을 어깨에 척 둘러메고서 “우리 딸이 아들을 순산했어!”라고 기뻐서 발걸음 가볍게 동네 골목을 지나가시더라는 동네 아주머니의 추억담을 떠올린다. 그때의 어머니 표정을 상상해본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끝없이 보살펴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 이젠 눈앞에서 더는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하늘로, 영원의 집인 천 년 유택으로 다 떨쳐버리고서 훨훨 날아가 버리셨다.마지막 인사였을까.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미역국을 끓여 입을 축여 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반짝 떴다. 파리하게 변해있던 손끝도 핑크빛으로 화색이 돌았다. 발가락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듯 자꾸만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기적”이란 음성이 들리는 것 같고 내가 어머니 귀에다 대고 말을 하면 어머니 눈빛이 확 달라지는 것도 같았다. 기적이란 것도 정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영화에서처럼 어느 순간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와 벌떡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왜 나를 이 지경으로 해놨어?” 소리치며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으실 것 같다. 하나의 음식 맛으로 저리도 좋아지다니. 이제는 팥죽을 끓여 드려야지. 그다음엔 호박죽, 시래기 된장무침…. 어머니가 건강할 때 좋아하던 음식을 줄줄이 떠올리며 장만할 생각에 가슴까지 뛰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팥죽을 준비하였다. 왕초보가 팥죽 쑤기가 그리 쉽겠는가. 정성을 다해도 어찌 된 영문인지 불 냄새가 났다. 다시 끓여서 출근길에 오르니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다. 호흡기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 편안하게 해드려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픈 환자들이 먼저 진찰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우선 그들의 아픔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마음은 급하기 짝이 없었지만, 말도 못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가진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하랴. 얼른 진찰을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는 아이들 진찰을 채 마치기도 전에 중환자실에서는 전화가 빗발친다.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계시는 데 뭐 하고 계세요?” 환자 진료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여겨졌는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느냐는 말투다. 얼른 응급진료하고 뛰어올라가니 어머니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하다. DNR(Do not resuscitate)이 손목밴드에 적혀 있지만, 눈앞이 흐려왔다. 제발 우리 어머니 숨 쉬게 해달라며 침상에 엎어졌다.심장이 멎지 않도록 에피네프린을 수없이 들이붓기 시작했다. 도파민이 최대 수위를 넘어가고 산소를 최고조로 올리고 호흡수를 늘려 인공호흡을 불어넣었다. 심장이 다시 박동하고 혈압도 차츰 제자리를 찾았다. 소변이 나오지 않으니 오래 버티긴 힘들 것이란 판단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발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빌었다. “인제 그만, 편안히 보내드리자”는 외삼촌의 문자가 도달했다. 최대한 편안히 숨 쉬며 떠날 수 있도록, 이승에서의 마지막 소풍을 편한 마음으로 마칠 수 있도록,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99세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100점 만점’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일본 의사 히노하라 박사, 생애 현역으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는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삶의 보람이 없으면 인생은 끝이다. 오늘 기대를 안고 있으면, 내일 아침 상쾌하게 눈을 뜰 수 있다”라고. 비록 다시 뵐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서 우리 곁에 있는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며 언제나 기대를 안고 눈을 뜰 수 있기를,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 경찰개혁 백미는 자치경찰이다

    2017-08-15 19:25:50

    최근 경찰개혁이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경찰은 국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경찰위원회의 실질화, 인권영향평가제 도입, 살수차 사용요건 법규화 등 개혁 기치를 내걸고 국민편익 관점에서 개혁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맘모스 같은 거대한 중앙통제적 경찰조직을 둔 채로는 현실성에 다소 머뭇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민주적인 경찰개혁의 선결과제는 자치경찰제도의 과감한 도입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현 조직의 슬림화를 통한 민주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가뜩이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생활이 노출되고 있어서 국민은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나오는 ‘빅 브라더’를 연상할 수 있다. 그동안 경찰이 많이 민주화되었다고 하나, 아직은 여러 분야에서 구태가 말끔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경찰조직의 과감한 개혁, 즉 자치경찰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나는 경찰개혁의 방향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추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가 중앙경찰과 지방경찰의 분리이다. 중앙경찰은 2개 시도이상 관련된 사건의 수사, 남북대치 상태의 특수성을 감안한 대공수사업무, 마약 등 범죄집단 수사, 경호경비업무 등으로 국한하여야 하며, 그 밖의 권한은 지방경찰에게 과감히 위양하는 등 최대한 조직을 효율성 있고 간편하게 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경찰은 광역자치단체별로 구성하고, 지방경찰청장을 치안정감으로 1단계씩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두 번째는 영국식 ‘지방경찰위원장’ 제도의 도입이다. 경찰자치의 성공은 주민 스스로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고, 주민통제를 통한 권익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주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지방경찰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도에서 시범 시행하는 자치경찰제도는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의 책임 불분명 등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어중간한 제도보다 주민의 인권과 권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시 ‘지방경찰위원장’을 직접 뽑아서 ‘지역치안계획 수립’, ‘예산총괄’, ‘지방경찰청장과 경찰서장 임면’ 등 독자적인 지방경찰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제도의 운용이 필요하다. 지방경찰이 독립된 인사조직을 갖춤으로써 행정과 더불어 주민과 함께하는 실질적인 주민자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어쩌면 이 부분이 ‘기득권’ 때문에 가장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도 내려놓지 못한다면 국민권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경찰개혁은 수사(修辭)로 그칠 수 있다는 점을 명념할 필요가 있다.세 번째는 행정과 경찰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기 위해서 자치단체별로 자치행정위원회를 구성하여 협치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 구성은 지방자치단체장, 교육자치단체장, 지방경찰위원장, 해당의회 의장을 위원으로 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해보았으면 한다. 행정과 경찰이 자치화되면 이제까지 한쪽이 빠져 있는 자치제에서 명실 공히 자치제도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자치행정 역사에 문재인 정부의 큰 족적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네 번째는 ‘지방경찰발전위원회’의 조직이다. 지방경찰위원장과는 별도로 지방경찰발전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위원회에 예산, 제도개선, 지방 치안계획 승인 등을 부여하고, 위원은 지방자치단체 부단체장, 지방의회부의장, 지방경찰위원장 추천위원 등으로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으면 어떨까 싶다.지방경찰제도의 정착이 그리 쉬운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론 조사를 한 결과 60% 이상이 지방경찰제도를 찬성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한 사항이니 지방경찰제도는 대세임이 틀림없다. 이제 때가 무르익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질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순치의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권익 보장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아무쪼록 경찰개혁위원회가 국민이 공감하는 제대로 된 ‘지방경찰제도’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지방경찰제도의 정착으로 경찰 스스로 국민과 함께 국민 속으로 들어와서 치안을 유지하고, 위난을 해소하는 민주주의의 꽃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최해남시인·수필가전 대경섬산연 부회장

  • ‘갓뚜기’여 영원하라

    2017-08-14 19:54:38

    요즘 ‘갓뚜기’가 대세다. ‘갓뚜기’는 신을 뜻하는 갓(God)와 식품회사 ‘오뚜기’의 합성어다. ‘오뚜기’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장학재단 설립 등 선행을 많이 하였고, 회사 종업원들을 대부분 정규직화하였으며, 상속세 1,500여억 원을 성실히 납부하였다. 이러한 선행이 SNS를 통해 속속 알려지자 ‘오뚜기’의 이미지가 급속히 좋아져서 마침내 ‘갓뚜기’란 애칭을 얻게 되었다.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가설이 이제 이 땅에서도 먹혀드는 것 같다.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오뚜기’가 무척 자랑스럽다. 다만 너무 착해서 힘 쓰이고 마음 놓이지 않긴 하다.기업은 비영리법인이나 공공기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한다. 사람이 밥을 먹고 살듯이 기업은 이익을 먹고산다. 이익을 못 내면 기업은 죽는다. 기업이 죽으면 종업원은 직장을 잃고 국가는 세금을 못 받는다. 기업이 살아서 세상에 공헌하는 방법은 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값싸게 제공하여 소비자에게 계속 사랑받는 것이다. 알뜰한 경영관리는 기본 전제다. 기업이 살아남아야 고객을 만족시키고, 세금을 내며, 배당과 급여를 지급한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기업이 ‘착하다’는 것은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적정이익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망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한다는 뜻이다. ‘갓뚜기’란 애칭이 걱정스러운 것은 ‘오뚜기’가 ‘인간적으로’ 착하기 때문이다. 사회 환원을 많이 하는 기업이 적정이익을 내면서 계속 생존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일시적으로 칭찬받다가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곧 소멸한다면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다. 호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이 험한 세상에 잘 적응하기 힘들다. 만사 절제하고 분수를 지키며 조신하게 살아가는 것이 오랫동안 잘 살아가는 비법이다. 기업도 다를 바 없다. ‘오뚜기’의 착한 경영이 오래도록 지속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냉철한 기업가정신이 살아있어야 한다.기업이 돈을 벌려고 기를 쓰는 것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는 그 과정에서 남을 해하거나 불공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규를 만들어 여러 가지 규제를 한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규제를 위반하면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받게 된다. 수많은 감독관이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다. 누구나 규범이란 테두리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업도 그 테두리 내에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한편은 상속세나 법인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합법적으로 절세하고자 묘안을 짜내고, 다른 한편은 현장을 관찰하다가 미꾸라지를 발견하면 그물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세제를 촘촘히 정비한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은 세금 체계나 세율이 나라마다 다른 점을 최대한 이용한다. 조세피난처로 본사를 옮기거나 국가별 이익 규모를 조정하는 편법을 쓴다. 여러 나라가 국제 협력을 통해 글로벌기업의 부당한 세금회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피하고자 하는 자와 막고자 하는 자의 좇고 쫓기는 정글 속에서 기업은 살아간다. 원론적으로 볼 때, 생존을 위해 시도하는 각종 절세 행위를 권장하고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비난할 일은 아니다. 생존은 기업의 지상과제다. 인간에게 착한 것이 기업에게 반드시 착한 것은 아니다. 절세가 생존에 필요하다면 불법이 아닌 편법은 얄밉긴 하지만 나쁜 것과 별개다. 세상 이치가 대개 비슷하다. 생존한 연후에 비로소 베풀 수 있다는 명제가 ‘갓뚜기’라고 예외일 수 없다. 칭찬에 너무 우쭐해서 돈벌이나 절세에 소홀해선 큰코다친다. 과도한 칭찬은 기업을 위험에 빠뜨린다. ‘오뚜기’가 급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며 오랫동안 우리 곁에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넋두리를 조금 해보았다. ‘갓뚜기’란 칭찬에 정신 줄 놓지 말고, 더욱더 분발하여 ‘천 년 기업’이 되기를 희망한다. 정치는 멀리 하면 얼어 죽고 가까이하면 타죽는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착한 기업 오뚜기, 파이팅!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 소원, 1+1

    2017-08-13 19:30:20

    살갗에 닿는 대기가 한결 써늘하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입추 말복이 지났다. 더위의 절정이라는 삼복이 물러났다. 끝이 없을 듯 이글대며 대지를 달구던 태양도 어느덧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성숙의 계절에 더위가 자리를 내주려 한다.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별똥별의 우주 쇼가 펼쳐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밤하늘을 바라보기 좋은 천문대 근처에 사는 지인은 그 잔치를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며 초대하곤 하였다. 하지만 번번이 일이 생겨 가보지 못했다. 올해엔 꼭 그곳에 가서 하룻밤 묵으면서 별똥별의 잔치에 함께 해보리라 계획하였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약속을 지키려 하고 있었지만, 지키지 못할 운이었던가.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또 상황이 급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상태가 나아져 일반 병실로 옮겨서 간호하여도 좋지 않을까 기대하였던 어머니 병세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열이 나더니 호흡이 가빠지고 급기야 인공호흡기를 걸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호전이 되지 않고 자꾸만 생명 연장에 필요한 줄이 늘어만 간다. 살아오면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았지만, 부모님 다 돌아가시면 천애 고아가 된다는 사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었다손 치더라도 고아가 된다는 것은 슬픔 중의 슬픔이지 않을까 싶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어머니를 보면 한시라도 더 숨을 연장하려고 애를 써대는 내 모습을 어머니는 원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어떻게 하는 편이 옳은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고통스레 숨 쉬는 것을 어머니가 진정 바라지 않으시면 그건 불효가 아닐까?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도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뉴스에서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는 유성우가 잘 관찰될 것이라며 꼭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하고 있다. 떨어지는 별똥별에 저마다 가슴 속의 소원을 빌고 그 축제를 즐겨보라는 뜻이지 않겠는가. 나는 진정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어머니의 진정한 평안은 무엇일까? 그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고 미리 알아차려서 그것대로 행해 드리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효도가 아니랴 싶다.라디오를 켰다. “여름밤마다 펼쳐지는 별똥별 쇼인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현장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멘트를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밝은 빛 하나가 길게 사선을 그으며 휙 떨어진다. 눈을 의심하며 다시 올려다보니 이번에는 오른쪽 하늘가에서 더 밝은 불빛 하나가 비 오는 날 물방울이 차창을 타고 내리듯 선을 그으며 길게 떨어진다. 아~! 참. 소원을 빌어야지. 나는 소원을 얼른 떠올려본다. “소원성취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소원에 덧붙여 나의 소원도 같이 성취하게 해주십시오.” 어느 작가는 책에서 말하지 않던가. 여행은 시선이라고. 인생이라는 우리의 긴 여행에서 우리가 어느 곳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슬픔과 기쁨은 교차할 것이다. 밝은 면을 바라보면 기쁨이 클 것이고 어두운 면을 응시하면 슬픔이 강조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빛으로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어둠 속에서 밝음이 더 빛나지 않은가. 어두운 밤하늘에 유성우를 바라보며 나는 여러 가지 소원을 떠올리다가 순식간에 지나가는 별똥별을 그저 바라본다. 그 짧은 순간에 외마디 소리조차 다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나는 급히 말한다. “소원, 1+1”이라고.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나의 소원 또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이다.시선의 방향을 보면 그 사람의 지금 상황과 마음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이곳 내가 있는 나의 하늘에서도 별똥별이 내리고 있다. 페르세우스 유성우는 스위프트-터틀 혜성이 우주 공간에 남긴 먼지 부스러기가 지구 대기권과 충돌해서 불타 별똥별이 비처럼 내리는 현상이라지 않던가. 유성우가 쏟아지는 우주 쇼는 매년 펼쳐진다. 지인의 집에서는 잘 보이는 최적의 조건이라니 어쩌면 소낙비처럼 내리지 않을까.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서 페르세우스 유성우, 별똥별을 바라보며 나는 소원을 수도 없이 빌어 본다. 어두운 밤하늘에 밝은 빛으로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우리네 인생도 저처럼 어느 순간엔 사라져 가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아픔을 간직한 이들의 가슴이 평안하기를, 신체의 고통 없이 모두 건강하기를 소망한다. 우리 인생의 황금 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무엇인가에 소원을 빌면서 무언가를 소망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겠는가.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 인공지능 시대 아인슈타인을 생각한다

    2017-08-09 19:53:09

    “가까운 미래에 나는 ‘셧 다운’해 버릴 것 같다. 그날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찌푸린 날이었다.… 따분하다.… 그렇다 소설이라도 써보자. 나는 문득 생각하고 새로운 파일을 열어 1바이트(bite)를 써 넣었다.… 따분하다. 너무 따분하다.” 일본의 인공지능(AI)이 쓴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의 앞부분이다. 이 작품은 2016년 ‘니케이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서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이 소설은 인공지능이 문학작품 창작과 같은 정답이 없는 영역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우리에게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며, 이미 목전에 닥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 산업, 교육 등 모든 면에서 과거와는 다른 대응방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새 정부 출범 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건설, 4대강 수문개방, 수능체제 개편, 부동산 정책 등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문제를 두고서도 차분한 토론과 검토, 충분한 설명과 설득, 진정성이 느껴지는 질의와 답변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방적인 지지와 반대의 목소리만 들린다. 언론과 여론조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전달할 뿐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생각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북핵과 미사일, 사드 배치와 관련된 문제는 관련국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우리로 하여금 단합된 목소리와 국론통일에 근거한 현명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두고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서 하는 말은 무조건 찬성하고, 그 반대 진영의 말은 경청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모두에게는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이 난국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같이’ 또 ‘따로’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각 당의 입장을 수렴하여 정책 방향을 결정하면 그 다음에는 사심을 버리고 각자의 주장이 국민과 국가발전을 위한 것인가, 문제점은 무엇인가 등을 두고 열린 자세로 토론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에겐 포용력과 판단력, 결단력 등의 자질이 필요하다.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포용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다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예의염치, 양보의 미덕을 발휘해야한다. 진영논리만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그런 와중에서도 정치, 철학, 과학, 교육 등의 영역에서는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설익은 주장을 들고 현장으로 뛰쳐나오면 사회는 소란스러울 뿐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세기를 문 닫는 1999년 12월31일에 아인슈타인을 ‘20세기의 가장 주요한 인물’로 선정했다.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두드러진 세기로 가장 많이 기억될 것이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을 ‘해도(海圖)에도 없는 사상의 바다’를 혼자 항해한 또 다른 콜럼버스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과학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수필 작품을 여러 편 남겼다. “분노는 바보들이나 가슴에 품는 것. 성공한 인간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여라. 사실을 배우려고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사실은 책에서 배울 수 있다. 교양 교육의 가치는 사실을 배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사고력을 훈련하는 데 있다.” 그가 툭툭 던진 아포리즘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인생이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그의 말이 절실히 와 닿는 요즘이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현장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성실하게 움직이는 정치가, 무리의 소란에서 떨어져서 홀로 근본과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든든하고 안전해진다.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 블라인드 채용, 취지만 좋을 뿐이다

    2017-08-07 19:52:30

    정부는 공공부문 취업에서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편견 없는 평등한 상태에서 학벌이나 스펙이 아닌 실력과 능력으로 평가받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는 충분히 수긍하지만 사안에 대해 너무 외눈박이로 접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외모나 학벌, 스펙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면접만으로 필요한 인력을 선발하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에 대해 아마 긍정적인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다. 명문대를 나온 사람보다 비명문대나 지방대를 나온 사람이 더 많고, 토플 등 각종 스펙을 고루 잘 갖춘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득을 보는 사람이 양적으로 더 많다는 사실이나 정치적으로 표가 더 많다는 등의 이유가 어떤 정책의 필연성이나 정당성 또는 옳고 그름을 담보할 수 없다. 블라인드 채용은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성적이 좋은 사람들, 스펙 관리를 철저히 잘해온 사람들, 이른바 모범생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을 줄 수 있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 밤잠 안자고 노력한 학생이 안목이 긴 사람이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성실한 사람이며, 토플이나 각종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스펙을 잘 쌓은 사람이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한 사람이다. 안목이 긴 사람, 성실한 사람, 주도면밀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 있다. 이들이 또 창의성도 아울러 갖추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이들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필요한 사람을 찾으라고 강제하는 것은 정말 억지다. 입사지원서의 제반 정보는 지원자의 각종 자질을 유추ㆍ평가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료다. 인력 수요자가 제대로 채택하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지만 인력 평가에서 여러 가지 객관적인 공인 자료를 참고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거기엔 개인의 역사가 담겨 있고 개인의 역사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무단히 막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학교나 공인기관의 존재나 기능을 부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하고 객관적 채용만을 지향한다면 방법은 다른 곳에 있다. 객관식 평가방법이 그 일례다. 객관식 시험은 블라인드 채용이 지향하는 목적을 뒤끝 없이 말끔하게 달성한다. 이런 점 때문에 객관식 시험은 지금까지 공공부문에서 가장 선호해온 방식이다. 최근에는 채용방식을 조금 변형하여 정원의 30% 정도를 더 뽑고 면접에서 그 초과 인원을 탈락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면접학원이 성업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 소설을 쓴다고 한다. 인성 평가라는 원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개악이다.인재는 조직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절차의 정의로움보다 본질적인 자질 평가를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 조직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 아니라면 인력 채용에 ‘배 놔라 감 놔라’식 간섭은 부당하다.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기업이 자기가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는 과정에 그 누구도 섣불리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전문성과 자기책임도 고려대상이다. 인재를 판단하는 공인된 훌륭한 자료를 모두 외면하고 백지상태에서 조직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즉석에서 판별ㆍ채용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권한을 넘는 과잉 개입이고 기존의 질서를 깨는 파괴적 발상이다. 인력 채용에 가치공학적 사고방식을 도입하여 기업이 적합한 인력을 경제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개입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청소원을 뽑는데 대학원을 나온 사람을 채용하는 것과 건전한 상식과 올바른 직업관만 있으면 충분한 곳에 명문대 출신을 뽑는 것 등 학력 인플레 유사 현상은 조직의 동맥경화를 유발하고 사회적 낭비가 된다는 사실을 널리 환기시켜 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대학서열화나 지나친 입시과열을 겨냥하려한다면 블라인드 채용과는 다른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 각 대학마다 특성화를 유도하여 단선적 서열을 무너뜨리거나 대학 간 교수와 학생을 상호 교환ㆍ공유하게 함으로써 대학서열화를 깨는 방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블라인드 채용, 아무리 물러서도 취지만 좋을 뿐 말 그대로 앞이 깜깜할 뿐이다.오철환대구시의회경제환경위원장

  • 자, 오늘부터 칭찬 시작

    2017-08-06 19:32:31

    열어 놓은 문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몇 분 후면 무료 진료 마무리 시각이다. 외국인 주말 봉사단원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정리하면서 기념사진 찍을 차비를 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순번대로 의료봉사 나오는 이들. 수년 지속하다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식구처럼 느껴진다.청진기를 놓고 봉사단 조끼를 벗으려는 찰나 급히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어색한 웃음을 보이는 남자였다. 그가 헐떡이는 숨 사이로 뱉은 말은 오늘 내가 당번으로 근무하는지 확인하러 뛰어왔다는 것이 아닌가. 잠깐이면 아들과 아내를 데려올 테니 꼭 기다려 달라며 애절한 눈빛을 보인다.그는 지난 진료 시간에 왔던 외국인 아이 아빠다. 고열에 설사가 심해 푹 꺼진 눈을 한 아들을 안고 왔기에 외국인 노동자 병원비 지원혜택이 있는 의료원으로 안내하여 치료해 주었던 바로 그 가족이었다. 그때 심각한 상태였던 아이가 열이 내리고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아기 아빠는 사정이 급해 빨리 퇴원하여야 한다고 우겼다. 설사가 심하고 잘 먹지 못하는 꼬맹이의 상태가 걱정되어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면서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일렀다.아뿔싸! 그 아이 아빠에게서는 그때의 번호가 내 휴대전화 창을 장식했다. 급하게 받아보면 “아이가 잠을 많이 자는데 괜찮으냐? 아기가 설사를 또 하는데 어떡할까? 옆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항생제 쓰면 설사한다는데 무슨 항생제를 썼느냐? 프로 바이오틱스는 같이 처방하였느냐?” 등등이었다. 아이는 장염에 탈수로 패혈증이 의심될 정도로 심하였는데 본인의 사정으로 퇴원하고 나서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자꾸만 따지듯이 물어보는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는 바쁜 시간을 내어 나의 솔직한 심정을 적어 보냈다. “나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 거주지 근처 병원에 가서 진료 잘 받도록 하세요” 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는 잊었는데 몇 주째 나를 찾아 봉사단 진료실을 들락거렸다는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왔다. 설사는 이후 곧 그쳤고 내가 처방한 철분제를 먹고는 아기의 체중도 많이 늘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아내와 직접 하고 싶어서 내내 찾았다는 것이 아닌가. 한때 섭섭함을 느꼈던 내가 미안했다. 환자를 볼 때는 언제나 지극한 마음으로 잘 살피고 그 다음에는 내가 해준 것일랑 생각하지 말아야 하지 않으랴. 복은 스스로 짓는다고 하지 않은가.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온화한 얼굴에 부드러운 말씨로 상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의사라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절대로 없지 않으랴. 더운 여름 몇 주째 땀 흘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 찾아왔다는 그를 보며 나는 다짐한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될 때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다시 이해해보리라. 인간이 하는 행동 중 가장 효율적인 행동은 칭찬이라지 않던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나의 환자와 나의 환자 보호자들을 신이 나게 만들수도 있으니 기분좋게 칭찬해주리라.오늘 그가 내게 해준 고마웠다는 인사말 하나로 그간의 섭섭하던 마음이 눈녹듯이 녹았듯이 나도 남을 기분좋게 하는 말로 상대를 기운나게 해주고 싶다.자, 오늘부터 칭찬을 시작해 보자! 내가 행복해야 환자에게 웃을 수 있지 않겠는가. 환자에게 찡그리고 섭섭해하고 불친절하기 쉬운 여름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는 날마다 상대를 만나면 칭찬의 말부터 해보리라.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그래야 내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으랴. 시원한 여름을 위해 내 마음을 달래보자. 어떤 이가 나의 화를 돋우고 그로 인해 하루종일 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되더라도 결국 그 사람 덕분에 나의 모서리가 둥글둥글 둥글어져 원만한 인간으로 되어 간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를 믿고 나의 진료를 받으러 오고 또 고맙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면서 오늘도 나는 마음으로 다짐한다. 자 오늘부터 칭찬을 시작해보자.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이사

  • 콩잎김치

    2017-08-02 19:47:24

    음력 6월 보름은 세시풍속 중의 하나인 ‘유두(流頭)’이다. 동쪽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으며, 행운을 기다리던 이 풍습도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물맞이’를 하러 작은 폭포수에 간 것이 전부다. 유두는 머리를 감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한여름 장마가 걷히고 나면 몸을 청결히 하고, 흐트러진 마음가짐을 다잡고자 하는 조상들의 깊은 가르침이 녹아 있음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유두를 기다리는 습성이 생겼다. 바로 이맘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콩잎김치’를 맛볼 수 있어서다. 유두가 다가오면 하얀 콩잎이 달리고, 콩잎이 진한 초록색으로 변해간다. 장맛비에 콩잎이 너풀너풀 춤을 추는 모습만 봐도 절로 흥겨웠다. 장맛비가 고개를 들었다 싶으면 나는 인근 시골 5일장을 찾아 부리나케 달려간다. 일찍 가야 시골에서 갓 따온 콩잎을 살 수 있어서다. 아내는 더위 먹어 비실비실하던 위인이 ‘콩 이파리(연한 콩잎의 사투리)’하면 난리법석을 피우는 나를 보고 웃음을 머금곤 한다. 시골학교 고적대 나팔수처럼 뛰어나가는 나의 등 뒤로 “너무 많이 사지 말고, 쪼끔만 사오이세”하는 내자의 당부쯤은 늘 있는 일이다.시골장터 좌판은 할머니들의 숨결과 같다. 줄도 삐뚤삐뚤하고, 색깔도 가지각색이고, 종류도 다양하다. 고객도 어린 아이, 젊은이, 나이 든 사람까지 천차만별이다. 콩잎 다발들이 마디 굵은 할머니의 손등 옆으로 날개모양을 하고 동그랗게 모여 있다. 구름 뒤로 살짝 얼굴을 숨기는 연둣빛 콩잎만 골라 따서일까? 부드러운 촉감 하나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한다. ‘콩잎 묶음’ 한 단을 풀어 이파리를 들추어본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덤말리’ 콩밭에서 따던 그 콩잎이다. 코끝을 자극하는 이 깊은 내음. 잊혀가는 나를 찾아주는 효소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처럼 훈훈하다. 나를 시골장터로 이끄는 것도 나의 DNA에 잠재된 깊은 향수일 성싶다. 콩잎김치를 담으면 피안에서 웃고 계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고싶다. 그리고 너무 그립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이 실감 날 때가 많다. 이 자그마한 ‘콩잎김치’만도 그렇다. 이때보다 이르면 너무 연해 풋내가 나고, 더 지나면 거칠어서 먹기가 어려운 데다 콩잎만의 독특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콩잎도 ‘콩꽃’이 달리기 전인 이때 콩잎이라야 제대로 된 ‘콩잎김치’를 담글 수 있다. 고운 콩잎과 찹쌀풀, 마늘, 고추 등을 넣고 한 이틀 삭힌 후 콩 이파리를 꺼내어 강된장과 함께 먹는 맛이란 다른 어떤 음식과도 견줄 수 없다. 약간은 비릿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게 여름을 죄다 담은 초록색 맛이랄까? 아무래도 콩잎김치의 백미는 금방이라도 고추잠자리가 맴돌 것 같은 청량한 고향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식후 여운이 아닐까 싶다. 비닐하우스나 비료, 농약으로 속성 재배한 채소에서 어찌 고유한 맛과 향기를 느낄 수 있으랴. 콩은 쌀, 보리 다음으로 중요하다. 게다가 뿌리혹박테리아와 공생을 할 수 있어서 비료를 주지 않아도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여 영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재간둥이다. 콩잎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연식품의 하나이다. 이순(耳順)인 내가 시쳇말로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허둥대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콩이파리김치 하나를 떼어내어 초등 1년생인 손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뱉어내면 어쩔까 하고 걱정했는데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 게 아닌가. 어쩌면 콩잎에 묻은 사랑이 녹색 줄기를 타고 가슴으로 전달된 것일까? 하얀 콩꽃처럼 내 마음이 환하다. 더구나 콩잎에는 유방암, 전립선염,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이소플라본’이 들어 있고, 항암, 항고지혈증, 항산화기능을 가진 ‘소야사포닌’도 들어 있는 데다 산화억제, 비만억제의 ‘테로카판’이라는 성분까지 함유되어 있으니 나의 ‘콩잎김치’ 예찬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콩이파리김치를 먹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 복도 많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은 것들- 시래기, 무, 꿀밤, 콩이파리, 쑥, 산나물 등등 -이 최고의 건강식품일 줄은. 그보다 콩밭에서 김을 매거나, 콩잎을 딸 때 어머니와 내가 나눌 수 있었던 말 없는 대화. 기대감으로 바라보는 눈길 덕분에 무던히도 열심히 살아온 것 같다. 콩잎김치가 익어 가면 멍석을 펴 놓고 밤하늘의 별들을 세고 싶다.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름만큼.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은 그리움이 아닐까. 그 어떤 아픔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오묘한 힘. 바로 그리움이 물들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최해남시인·수필가전 대경섬산연 부회장

  • 지방분권 개헌의 성공적 추진 방안

    2017-08-01 20:04:07

    최근에 발표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지방분권은 5대 국정목표의 하나인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과 20대 국정전략 과제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자치분권 과제에 포함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새 정부는 지방분권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고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정의, 상관관계로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 정부는 출범 후 지방분권 국가를 지향하고 지방분권을 포함한 분권 개헌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천명해왔다. 여기서는 지방분권 개헌의 성공적 추진 방안에 대해 제언해 보기로 한다. 먼저 지방분권의 비교우위에 대해 보자.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수도권 집중과 지역 불균형발전이 이루어져 왔으나 지방분권은 국가 균형발전과 사회통합에 유리하다. 중앙집권 국가는 세계화와 지속적 국가경쟁력에 한계가 있으나 지방분권 국가는 지방중심의 신 지역화와 지속 가능한 신성장동력의 확보에 비교우위가 있다. 현행 통치구조는 고질적 사회문제와 미래 불확실성의 대응능력에 한계가 있으나 지방분권 국가는 통일시대와 미래 사회변화에 전체적 대응력의 확대가 가능하다. 그러면 지방분권을 하지 못한 장애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지방분권의 추진의지가 미약하였다. 정치권의 기득권 유지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방선출직 단체장의 중앙의존적 태도도 문제였다. 일반국민의 지방분권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언론의 보도 행태도 지방자치에 비판적 기사가 많았다. 또한 우리 사회의 기저에는 여전히 지방분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지방분권은 국가 불균형발전을 심화시킨다. 지방분권 국가로 가기에는 지방역량이 미흡하다. 지방분권은 소규모 국가에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지방분권은 큰 나라에 적합한 제도이다. 지방분권국가는 남북분단 상태에서 국가안보에 취약하다. 지방분권은 접속과 공유 시대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지방분권 개헌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이의 극복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지방분권 개헌의 성공적 추진방안에 대해 보자. 먼저 지방분권의 기본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지방분권 가치의 구현, 자치기본권의 보장, 정부 간 관계와 권한배분의 명확화, 지방자치권과 역량의 확대, 연계ㆍ통합 지방자치의 지향, 지역대표성의 강화가 되어야 한다.이를 위해 지방분권 개헌안에 담아야 할 핵심과제로는 지방분권 국가의 선언, 자치기본권의 신설, 정부 간 관계의 구분, 정부 간 권한배분 원칙의 명시, 자치입법권의 확대, 자주재정권의 강화, 자치조직권의 확대, 특별지방행정기관과 광역시ㆍ도 간 유사ㆍ중복 기능의 통합, 교육자치와 일반행정자치의 연계ㆍ통합, 지역대표성의 강화를 위해 지역대표 상원제의 도입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는 획기적인 자치분권 촉진과 주민참여의 실질화, 지방재정 확립을 위한 강력한 재정분권, 교육민주주의 회복 및 교육자치 강화, 세종특별시 및 제주특별자치도 분권 모델의 완성 등 4개가 선정되었다. 이는 앞으로 지방분권 개헌안 마련 과정에서 실질적 지방분권 국가로 가기 위해 지방분권 과제가 재조정ㆍ확대되어야 할 것이다.지방분권 개헌의 추진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먼저 지방분권 개헌의 내용 차원의 추진 전략은 지방분권 과제에 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우선순위화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지방분권 개헌의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추진 전략은 다음의 키워드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지방분권은 비용보다 편익이 크다. 지방분권은 비효율보다 효율이 높다. 지방분권은 지역불균형에서 지역균형 발전에 효과적이다. 지방분권은 남북분단에서 미래 통일 대비를 위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방분권 개헌의 성공적 추진은 정치권 설득과 대국민 홍보가 중요하다. 이와 같은 지방분권 개헌과 지방분권 국가로의 지향은 다음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 중앙-지방정부의 협업적 거버넌스 가능, 중앙-지방정부의 효율성 향상, 국가 및 지역경쟁력 향상으로 국가균형발전에 기여, 국민공감과 행복지수 향상, 국가현안과 미래사회의 불확실성에 정부 대응력의 강화, 지방분권 개헌으로 지방분권 가치와 주민자치권의 제도적 기반 마련, 지방정부의 자치역량 확대, 남북통일 시대의 준비가 기대된다.이성근영남대 교수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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