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대학생 인턴 전환 - samseongjeonja daehagsaeng inteon jeon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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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안녕하세요 김보성입니다!

2018. 11. 22.

[2018]나의 취준기 (삼성전자 영업 마케팅 인턴 전환)

2018. 12. 11. 20:26

2018

나의 취준기

(삼성전자 영업 마케팅 인턴 전환)

시작하며, 오직 하나님께서 하셨던 나의 취업 준비

이 기록은 짧았던 내 취준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나의 취준기이다. 마냥 취업 언제 하지... 싶었던 나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 어엿한 취업 준비를 하는 취준생이 되었고, 1년 만에 재수 좋게 취준을 끝냈다. 사실 취준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 오디션 전형이었던 SKT를 제외하고는, 나는 삼성전자 이 회사 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지만, 취준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기엔 그저 한량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부족한 준비 상태와 스펙 정렬도 없는 나의 상황으로썬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고 밖에 못하겠다.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었으니, 입사하면은 날 왜 뽑았느냐고 인사팀에게 따져보고 싶을 정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3월부터 12월까지, 장장 9개월 간의 삼성 입사 여정

직접 정리해 본 2018년 입사 관문 일정. 삼성은 언제 결과가 나는지 일정이 안 나와있어서 9개월 내내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참 길었다. 돌이켜보면 3월부터였으니, 9개월 동안 그저 '삼성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닐까'를 가지고 수 천, 수 만 번도 더 왔다갔다 마음 졸인 것 같다. 삼성전자 인턴 전형을 누군가 지원한다고 하면 바로 이런 이유로 말리고 싶다. 기나긴 일정 속에서 정말 많이 지친다는 것. 다시 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공채를 한 번에 넣지 않을까. 물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인턴보다는 공채라는 거지, 굳이 말하자면은.

처음에 삼성전자를 쓰게 된 계기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정말 정신 차려보니 4학년이었고, 주변에서 취업 준비를 하길래, 대외활동 서류 쓰듯 그냥 한 번 써보지 뭐, 하면서 서류를 넣었다. 첫 끝발이 개끗발이었다. 아무리 다시 지원해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다. 아무튼 3월 한 달 동안은 지난 대학 생활 쭉 돌아보는 겸 정리하듯 서류를 썼고, 내 나름 최선은 다했던 것 같다.

그런 서류가 붙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사실은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GSAT이다. 높기로 소문난 문과 직무, 영업 마케팅의 GSAT 합격컷을 도대체 내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치뤘던 시험이었고, 아 이래서 정말 똑똑한 사람들만 삼성에 가는 거구나하며 좌절했다. 심지어 못 푼 문제도 최소 열 문제 가까이 됐었다. 그 일요일 압구정고에서의 무거운 공기,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GSAT 합격창을 보자마자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대며 '어쩌면 내가 진짜 삼성에 갈 지도 모르겠구나'를 실감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면접까지 단 1주의 시간 동안, 첫 오픽 시험을 응시하고, 면접 컨설팅을 받고, 직무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GSAT 난이도를 보고서 정말 절망했었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여기까지 못 올 거란 생각이 들어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1분 자기 소개를 짜고, 예상 질문을 정리하고, 취업 준비하는 주변 친구들과 계속해서 모의 면접을 진행했다. 홍기찬 오픈 특강도 신청했다. 면접은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3가지의 면접, 7문항이 하루종일 진행되었고, 창의성 면접, 직무 역량 면접, 임원 면접을 봤다. 끝날 때 쯤엔 나도 면접관도 진이 다 빠져버려서, 맨 처음에 임원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모든 면접에서 가장 많이 맏았던 질문은 바로, '디자인과인데 왜 여기 지원했어요?'였다. 나는 디자인과인데다가, 성적도 낮고, 11학번이라 휴학도 많은 특이한 지원자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오히려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 그건, 하나는 예상 질문을 물을 것이 뻔하기에 딱 이 부분에 대해서만 답변 대비를 하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지원자들에 비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직무 면접에서는 A사 스마트폰 대비 갤럭시 브랜드 제고 방안에 대해 나왔는데, 나에게 친숙한 주제라 꽤 여유롭게 면접을 봤고, 답변에 대한 질문을 하나도 받지 않은 걸로 보아서 꽤 괜찮게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 면접은 그럭저럭, 임원 면접에서는 말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을 두 번이나 받아서 사실 가장 걱정 되었었다. 놀라운 것은 면접 중에 삼성 노트북 공모전 대상 받은 것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중에, 심사위원께서 스마트폰으로 내 블로그를 보시는 것을 봤다. 삼성 노트북 공모전 포스팅을 보시면서 옆의 심사위원분과 함께 이야기 나누시는 걸 봤다. 참 블로그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면접도 후루룩 지나갔다.

<나의 1분 자기 소개>

안녕하세요. 작은 눈을 가진 지원자 김보성입니다.

저에게는 비록 작지만, 특별한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하나, 에버랜드 영업마케팅팀에서 특판영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온라인 유통채널을 바탕으로, 시즈널리티에 맞춰 딜페이지를 기획했습니다.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시장트랜드를 바라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 삼성 노트북 홍보하는 프로모션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포인트는 21명의 팀원을 이끈 리더십, 효과적인 업무 분담이었습니다.

협업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은 '서글서글한 눈'을 가졌습니다

삼성전자 영업부에서, 가장 빛나는 눈을 가진 영업사원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에서도 썼듯, 발표 일자 공고가 뚜렷하지 않은 삼성이라, 정말 마음을 많이 졸였던 것 같다. 초조한 마음에 매일 독취사로 지원자들의 게시글을 눈팅하곤 했는데, 발표 일주일부터 '약속의 5시', '6시 가즈아'하면서 단체로 홀린 것처럼 한 마음으로 초조해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붙든 떨어지든 이젠 좀 결과 나라...' 정도까지 갔다. 또, 삼성의 면접 합격자 발표는, 까지 않아도 로그인 하자마자 붙었는지 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 합격자 발표 안내 글자가 초록색이면 합격, 보라색이면 불합격이기 때문이다. 제발 초록색이어라, 초록색이어라 간절히 기도하고 또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이 때 거의 세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면접 합격을 받았던 5월 29일 화요일. 나는 수업 중에 강의실에서 뛰쳐나왔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 감격스러운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슴이 벌렁거렸고,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찔끔 났다. 미친 듯 달려온 지난 대학생활을 다 인정받은 기분, 오랜 기다림 끝에 난 발표, 너무나 무거웠던 주변의 기대에 대한 안도, 무엇보다 이런 기적같은 일을 내게 보여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에 대한 감동이었다. 그렇게 인턴 일정을 기다리며 대학 생활 중 가장 행복한 종강을 맞이했던 것 같다.

SVP가 그렇게 재미있다더라. 그런 말을 하도 들은지라 기대를 많이 했다. 2박 3일 합숙했고, 물산이랑 DS 사람들이랑 같이 했다. 팀장 뭐 이런거 좋아하는 성격이라 팀 리더로 활동했다. 뭐 이것 저것 교육 받았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진작 써놓을 걸. 그냥 지금 생각 나는 건 엔지니어나 DS 이런 쪽은 거의 100% 전환이라 조금 여유로웠고, 우리 같은 문과 직무 사람들은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면서 칼 각 잡고 인사 꼬박 꼬박 박고 다녔다. 그런데 뭐 다들 긴장감은 있었다. 어찌 됐든 전환 면접 봐야하는 반쪽 짜리들이니까. 팀 리더 했다고 대표로 무슨 선물 받았다. 신입 SVP에서도 팀 리더 해야지.

부서 배치 받고 혹시 미운 털 박힐까봐 쓰던 멀쩡한 아이폰도 갤럭시로 바꿨다. 내가 배치 받은 곳은 한국총괄의 하이마트 담당 RM(Regional Management). 서울과 고양 지역의 매장을 담당하는 팀이라, 강남에서 근무했다. 복장은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비즈니스 캐주얼이었기 때문에 매일 깃있는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다. 그런데 난 그게 좋았다. 직장인이 된 기분, 뭔가 그들 속에 속한 기분. 내 얼굴이 붙어있는 삼성의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닌다는 것. 너무 짜릿한 일이었다. 매일 아침 굳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저 삼성전자 다녀요~ 그러고 싶었던 모양이다.

인턴 동안 딱히 업무를 부여받지는 않았다. 업무 수행이라기 보단, 체험, 교육에 가까웠다. 이런 걸로 합격 불합격을 변별할 수 있을까? 아 혹시 전환 면접은 그냥 절차고 사실은 인턴 기간동안 신입사원들을 일찍 교육 시키는 건 아닐까?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모르는 대학생을 데려다가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을 맡기겠는가. 그래서 7주 간 주로 했던 건 사무실에서 품목, 연출 가이드 공부, 인턴 일지 작성, 선배들이랑 현장 답사, 미스터리 쇼핑 뭐 이런 것들 했다. 별개로 무슨 수원 화성으로 봉사활동도 가고, 에버랜드도 가고, 우수 매장 유통 투어 뭐 그런 것도 갔다. 아니 이런 사람한테 월급을 준다고? 진짜 이런 생각 내내 했다.

업무는 안했지만, 마냥 놀러다니듯 갈 수 없었다. 인턴 기간 동안 프로젝트 두 개를 기획하고, 실행해 발표하는 데, 이걸 통해 최종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삼성닷컴 온라인 플랫폼 활성화 방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장 비중이 큰, 개인 프로젝트였다. 주제는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의류건조기에 대해 프로젝트를 진행해 기획안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적용시킨 POP를 디자인, 제작하고, 현직자 분들 앞에서 발표했다. 기간 동안 매일, 아니 매시간 매분 건조기 생각만 했다. 아이디어를 짜서 선배님들께 보여드리면 까이고, 또 까이고, 까이고, 한 열 번은 넘게 엎었다. 분석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좋은 아이디어는 이미 죄다 시도되었던 아이디어였기에, 그 점에서 많이 좌절했다. 지금도 건조기 기능과 스펙을 줄줄 외울 정도니, 지금 추억 보정 돼서 이 정돈데, 그 땐 정말 건조기, 끔찍했다. 건조기, 건조기, 건조기... 게슈탈트 붕괴 자주 왔었다.

특별히 칭찬 받았던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성실성, 나는 서울 각 지역의 매장 56곳을 다니며 미스터리 쇼핑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두 세 배 이상 많이 돌면서 현장의 인사이트를 캤다. 110년 만의 폭염은 가산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덥고, 힘들었다. 다른 하나는 실행력,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 매장에 배치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어설프더라도 그렇게 실행해보려는 시도가 좋게 보이셨나 보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임원분께서 직접 칭찬해주셨다. 그 때의 감정은, 아 전환 확률이 높아졌을까에 대한 안도 보다는, 인정 받았다에 대한 뿌듯함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몇 년 뒤에 이 프로젝트를 다시 볼 때면 너무 부끄럽겠지. 아무튼 그렇게 세상 알찼던 여름 방학, 내 꽉 찬 인턴 생활은 마무리 되었다.

치열했던 여름 방학에 대한 전리품. 두고두고 꺼내보고 추억팔이 해야지

가장 힘들었던 건, 인턴이 끝나고 곧바로 확정 면접을 보는 게 아니다. 공채와 같이 입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3급 신입 공채 일정에 맞추어 진행된다. 이 말은, 공채 지원 인원들이 면접을 보는 시기까지 그저 기다려야 한다. 8월 10일에 인턴 수료를 하고, 최종 면접을 봤던 11월 8일까지, 3개월 내내 그저 기다렸다. 이 때 다른 회사 쓰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곳에 지원해서 붙고, 삼성전자에 떨어진다면 너무 아쉬워서 어차피 계속 미련이 남을 것 같았기에, 아무데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디자인과로서 졸업을 위한 졸업 전시회도 해야되는 상황이라, 그저 초조해하면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3개월은 무지무지 잔혹할 만큼 길었다.

확정 면접은 만든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PT한 뒤, 여기에 대한 질의응답과 인성 면접을 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포트폴리오는 대략적으로 영업 마케팅을 위해 학부 동안 뭘 준비했는지와 인턴 동안 수행한 것들에 대한 내용이 주였다. 9개월의 마침표다, 아무리 다 잘해도 여기서 미끄러지면 끝이다. 이런 각오로 미친 듯이 연습했다. 대본을 자면서도 외웠다. 나중엔 시간도 칼 같이 맞아서, 열 번 시험 PT하면 발표 시간 오차 범위가 10초가 안 될 정도였다. 면접 때는 의외로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 건조기에 대한 것들을 많이 여쭤보셨는데, 위에도 적었듯 스펙까지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 어렵지 않게 대답했던 것 같다. 확실히 인턴 면접 때보다 훨씬 덜 떨렸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들어오게 되면 무슨 업무가 하고 싶냐고 물으시길래, 너무 마음이 가벼웠는지 대뜸 '네, 우문현답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그러고서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이렇게 덧붙이고 근거나 디테일을 말하긴 했으나, 갑자기 자신의 질문을 '우문'으로 만들어버린 면접자의 엽기적인 패기에 표정이 썩 좋으시진 않았다. 떨어지면 우문현답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행히 합격은 했다. 해프닝이 되어서 참 다행이다.

'김보성' 앞에 '삼성전자', 가슴 떨리는 새로운 이름표

합격 결과 안내 캡처본. 결국 한번도 탈락이라는 글자를 보지 못해 다행이지만, 아직도 이 캡처들을 볼 때면 뿌듯함 보다는 아찔함이다. 아찔하고, 다행이다.

내 취준기는 어설픈 해피엔딩이다. 쓴 아픔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취준이란 말이다'하고 조언하긴 주제 넘는다. 준비도 죄다 벼락치기에 특이케이스 투성이었기에 '삼성 필승 합격법'입니다~ 이런 말도 전혀 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 정황상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게 명백하다. 주변에선 당연한 수순이다, 열심히 살았던 대가다 이렇게 칭찬해주지만, 내가 누리기엔 너무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재수없어 보일까봐 숨죽이고 있지만 사실 이게 내 진심이다.

어찌 되었든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회사이고, 요즘 취업 시장이 정말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이 삼성전자가 나에겐 너무나 큰 의미이고, 소중하다. 최종 면접 때, 심사위원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말헀다.

삼성전자 안에서는 구성원들을 '프로'라는 호칭으로 통일해서 사용하지요.

인턴 수료식 날 팀장님께서 마지막 인사로,

"김보성 프로, 고생 많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생각하면 가슴 설레는,

인턴생활 중 가장 강렬했던 기억 한 가지입니다.

아마추어였던 제게 '프로'라는 소중한 이름표가 생겼던 인턴 생활,

이제는 삼성전자의 한 구성원이 되어서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오글거릴지라도, 이게 내 진심이다. 어설픈 나라는 사람을 알아봐주고, 기회를 준 회사에, 이 소중한 기회에 열정으로 답하고 싶다. 영향력을 끼치는 구성원이 되고 싶다. 프라이드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지금의 감정이 혹자가 말하는 '삼성뽕', '신입사원뽕'에 취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 매너리즘과 슬럼프에 허덕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27살 나에겐 이런 초심이 있었다는 걸, 치기 어린 파이팅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냈으면 좋겠다. 이 때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부끄러울 만치 생생하고 어리숙한 이 글은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

2월 18일에 신입 연수를 시작한다. 나에게 두 달의 공백 시간이 남았다. 지금 느낌은, 마치 8년 전에 경희대에 합격한 뒤 겨울 방학을 보내는 스무살 때의 그 느낌, 불안한 설렘이다. 설렘. 사회라는 세상은 어떨까. 회사원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또, 불안.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어본 나로서는 '대학생 그거 결국 별 거 아니었어'라고 냉소적인 어투로 완결을 말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 스물의 불안한 설렘이 나에게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 그랬듯, 또 처음에 서투를 것이고, 실망할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시행착오에 좌절할 것이다. 그래도 길을 찾겠지.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사회생활을 할 거다. 그리고 꽤 그럴싸한 것, 나다운 모양으로 만들어갈 거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거다. 그렇게 멋진 사회인이 되어버리고 싶다. 남은 두 달은 그런 불안한 설렘 속에서, 나중에 한껏 실망할 수 있도록 잔뜩 로망과 기대로 망상하며 보내야지. 그리고 회사 생활이 힘들 때 팔만 한 추억팔이들을 잔뜩 만들어야겠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허락하신 것에 온 맘 다해 감사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당신의 종, 멋진 사회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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