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을 하게 되니 살맛이 나네요.”
경기도 부천에 사는 김영수(65) 할아버지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자기 능력엔 훨씬 못 미치는 일이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가 일하는 곳은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유소. 아침마다 마실 삼아 주유소 인근을 돌았는데 그곳에서 노령자를 채용한다는 소식에 얼른 이력서를 집어넣었다.
김 할아버지가 젊어서 했던 일은 무역상.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40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에 오르는 등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최고 연장자였던 그는 젊은 직원들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때가 그의 나이 61세였다.
퇴직 후 김 할아버지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작은 오퍼상을 차렸다. 처음엔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다. 중동지역에 액세서리 등을 파는 일이었는데 그곳 정세가 불안하고 중국산 저가 상품들이 넘쳐나며 회사사정이 점점 어려워졌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넣고 적금까지 깨 자금을 동원했지만 기울어 가는 회사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그나마 하나 있는 집이라도 건질 요량에 사업을 접고 말았다.
사업에서 손을 뗀 후에도 김 할아버지는 의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40년간 처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니 잠시 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한 달을 쉬니 좀이 쑤시고, 두 달째부턴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세 달이 지나자 아내와 자식들 보는 눈이 이상했다.
어느 날은 시집간 딸이 외출한다며 손자·손녀들을 떠맡기는가 하면 집사람은 친구들이 온다며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김 할아버지가 취업하려고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노인취업박람회니 실버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찾아가 봤지만 자기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젠가는 하도 답답해 지하철에서 무료신문을 수거하다 팔아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김 할아버지는 “주유소 생활이 허드렛일에 불과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연령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지만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열악해 지고 있다.
좌승호 한동한의원 원장은 “노인들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돈을 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박탈감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노인들은 일자리를 통해 건강과 보람을 찾는다”며 “건전한 일자리 창출을 통해 노인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정부가 마련한 노인 일자리는 △거리·자연환경 정비, 교통질서 및 주차계도 교통안전지도, 방범순찰 등 ‘공익형’과 △한자·서예·예절강사와 문화재해설사·전통문화지도사 등 ‘교육형’ △거동불편 노인돕기, 장애인 및 아동돌보미, 노인가구 주거개선, 보육도우미 등 ‘복지형’을 들 수 있다.
또 △택배, 간병인, 세탁, 식품판매, 재활용품점 등 ‘시장형’과 △주유·경비·운전·매표원,주례 등 ‘파견형’도 준비되어 있다. 이들 일자리의 근무조건은 하루 3~4시간(1주일 3~4일)에 7개월로 급여조건은 월 20만원 내외다. 여기에 정부는 문화재지킴이 등 공익형 일자리 등 4만6000여개를 추가로 창출할 예정이다.
정부 지원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은 각 지역 시·군·구 사회복지과나 보건복지가족부 및 시·도가 지정한 노인일자리 전문기관 등에 신청하면 되며 지자체로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을 위탁받은 노인복지관과 대한노인회에서도 신청을 받는다. 대신 시험감독관·주유원·아파트 택배와 같은 일을 원하는 노인들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02-6203-6901)에 구직을 신청하면 된다.
한편 중앙정부와 별도로 각 지자체들도 별도 예산을 편성하는 등 노인 일자리 늘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경상남도는 정부 지원 외에 별도 예산을 편성해 8600여개 노인 일자리 만들기에 나섰고, 대전 서구청은 노인 일자리 사업단의 생산품을 구청 전 직원이 구매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부산시 산하 환경공단은 11개 사업장의 경비와 녹지관리 업무에 노인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부산교통공사는 지하철 1~3호선 내 벽보부착·제거·청소, 부산도시공사는 임대아파트 경비·청소업무에 노인 인력을 활용할 방침이다. 부산경륜공단·부산시설공단 등도 노인들을 고용하고 있다.
이 밖에 인천시는 공동작업장과 택배·비누제조 등을 통한 시장 일자리 사업에 660명, 도배·집수리 등 주거환경개선사업에 1220명, 공원관리·주차관리 등에 530명, 우리 동네 지킴이에 3200명 등 인천 거주 노인(60세 이상 70세 이하)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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