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영문 - salm-i geudaeleul sog-iljilado yeongmun

이 시는 한글 번역이 잘 된 시 중의 하나인데요, 영어 문장과 비교해볼 때 한글 번역이 더 매끄럽게 느껴지는 몇 안되는 훌륭한 번역 중 하나입니다. 특히 뒤의 네 구절은 영어 문장을 읽는 것보다 한글 번역문이 훨씬 더 철학적 깊이가 있고 시적인 문장으로 다가옵니다. 마치 이 시를 번역한 분이 불교의 고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번역문에 철학적 깊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뒤의 네 문장 번역을 아주 뛰어난 번역으로 생각하며, 특히 마지막 문장인 'And delight returns tomorrow.'를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나니.'로 번역한 것을 번역의 백미로 꼽습니다. (끝 부분이 '그리움이 되리라'고 인쇄된 책이 많은데, '되리니.'나 '되나니' 라는 말이 더 여운이 있어서 저는 '되나니'로 바꾸어 적습니다.)

뒤의 네 문장을 평범한 번역가가 번역한다면(이 부분을 그대로 번역하자면)

가슴은 다가올 날을 보고 살아라.
그곳은 슬픔의 끝이다.
갑자기 모든 것은 지나가면서,
기쁨은 내일 다시 찾아올 것이다.

로 번역하는 것이 옳겠죠. 앞의 네 문장은 참고 견디면 기쁜 날이 온다, 뒤의 네 구절은 미래를 보고 살면 기쁜 날이 온다는 댓구로 구성된 시입니다.

이렇게 번역해놓으니 정말 아무 느낌 없는 교훈적인 시처럼 보이는군요. 참고 살고 미래를 보고 살면 기쁜 날이 올 것이다라는 교훈적인 시. 정말 시적 느낌이 없군요.

번역자는 이미 첫 네 문장과 뒤의 네 문장이 같은 의미고, 특히 네 번째 문장에 기쁨이 내일 찾아온다는 구절이 있기에 여덟 번째 문장에서 또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의역을 한 것이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움이 되나니.'인데... 정말 적절한 해석과 창작이라고 생각합니다.(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이 번역문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컴퓨터 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엉터리 번역으로 욕 먹는 책이 많습니다. 독자들이 ' 번역 : 번역 프로그램 이라고 적어라. 이것이 어찌 사람이 번역한 것이냐.'고 혹평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영어 실력이 더 뛰어난 요즘 번역이 엉망인 이유는 우리말에 대한 실력과 문화적인 식견, 철학적 깊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푸시킨의 시를 읽을 때마다 번역의 힘과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번역이 제2의 창작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아울러 번역의 힘은 넓고 깊은 문화적인 식견과 철학적 깊이와 비례한다는 사실도 느낍니다.


참 아이러니할 것 같은 사람, 푸쉬킨
38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그 사람, 푸쉬킨

그러면서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던 그 사람, 푸쉬킨
외교 일을 하면서 큰 꿈을 갖고 세상을 품었던 그 사람,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내가 처음 이 사람을 만난 건 고3 문학소년 시절
그리고 진지하게 그를 접했던 건 스무살 대학시절
그리고 그때 그의 시를 달달 외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과외학생에게도 외우라고 시켰다, 첫 수업시간부터 황당해하는 과외학생...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막무가내로 외우라고 숙제냈던 그때 그 아이들 지금은 몰하고 있을라나... 혹 나를 기억한다면, 푸쉬킨을 기억하시라... 

러시아 사람이라 러시아 원어를 모르고서야 참 맛을 모를 법한데도
몇몇 다른 버전의 영어로 된 시로도 그 감흥을 맛볼 수 있는 그의 시
그를 좋아해서 그 추운 러시아로 공부하러 떠난 후배도 기억난다...

내가 스무살 그 때 외운 푸쉬킨의 영어버전 시는 이렇다

영시를 읽으시는 분들이여,
강요나 금지의 의무보다 자유를 선택하시라...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pushkin(Пу́шкин)-

What though life conspire to cheat you,
Do not sorrow or complain.
Lie still on the day of pain;
And the day of joy will greet you.

Hearts live in the coming day;
There's an end to passing sorrow.
Suddenly all flies away;
And delight returns tomorrow.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절망의 나날 참고 견대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영문 - salm-i geudaeleul sog-iljilado yeongmun

Aleksandr Pushkin by Vasily TropininBornJune 6, 1799(1799-06-06)
Moscow, Russian EmpireDiedFebruary 10, 1837 (aged 37)
Saint Petersburg, Russian EmpireOccupationPoet, novelist, playw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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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박꼭질(Hide and seek)에서 술래가 열을 센 후에 눈을 뜨고 이제 찾으러 간다라고 말할 때 "Ready or not, here I come."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짧은 카툰을 보고 어릴 적 많이 읊었든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시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푸쉬킨/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영어로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네요. Genia Gurarie의 번역입니다.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아래 것은 M.Kneller의 번역입니다.

If by life you were deceived...

If by life you were deceived,
Don't be dismal, don't be wild!
In the day of grief, be mild
Merry days will come, believe.
Heart is living in tomorrow;
Present is dejected here;
In a moment, passes sorrow;
That which passes will be dear.

Should this life sometimes decieve you...에서는 "Should..."는 가정법을 나타냅니다.

한글 번역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에서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영문에서는 "즐거움" 혹은 "소중한 것"으로 번역되어 있네요.

우리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 않나 생각되네요.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고난과 시련이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분명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푸시킨은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유명한 소설가, 시인이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러시아 문학가이다. 우리에 가장 친근한 그의 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일 것이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은 젊은 시절에 20대의 상당 세월을 유배 생활을 해야했다.

유배가 끝나갈 무렵 그는 한 편의 짧은 시를 썼는데, 그게 바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괴로운 법

모든 것이 순간이고

모든 것이 지나가리니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다우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영문 - salm-i geudaeleul sog-iljilado yeong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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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은 자유주의자였기에 이에 따라 과격한 시를 써서 남러시아로 추방되기도 하였다. 그는 데카브리스트의 사상에 공명하여 자유를 사랑하는 내용의 송시(頌詩) 《자유(1817)》, 농노제 붕괴를 예언한 《농촌(1819)》 등이 바로 그러한 자유주의 사상에 바탕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유주의를 사랑했던 그는 1837년 푸시킨의 진보사상을 미워했던 자들의 음모에 휘말려, 아내를 짝사랑한 G. 단테스와 결투하여 치명상을 입고 이틀 뒤에 허망하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