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찾아낸 낡은 테입속의 노랠 들었어 Show 언젠가 너에게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노래 진심이 담겨서 나의 맘이 다 전해진다며 오래된 테입속에 그 때의 내가 널 떠나보내고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서 참 사랑했다고 아팠다고 그리워한다고 네 맘이 어땠을까 라디오에서 이렇게라도 다시 오래된 테입속에 그 때의 내가 kdr 노래 듣기 / 2008년 영상 악보 / 반주 음악 [ 곡번호 ▶ 금영KY 85747 ★ 태진TJ 19167 ] 김동률 가수 출생1974년 3월 15일가족1남 2녀 중 장남사이트트위터, 페이스북작사/작곡 - 김동률 우연히 찾아낸 낡은 Tape 속에 노랠 들었어 언젠가 너에게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노래 진심이 담겨서 나의 맘이 다 전해진다며 오래된 Tape 속에 그때의 내가 널 떠나보내고 거짓말처럼 시간이 흘러서 참 사랑했다고 아팠다고 그리워한다고 니 맘이 어땠을까 오래된 Tape 속에 그때의 내가 느린 발라드 선곡일 경우 - 이걸로 전국노래자랑 예선을 뚫었다면 그냥 가수 오디션을 봐라. 아무리 잘 불러도 1차 예선을 뚫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이 경우 잘 선곡하는 노래는 "박완규"(혹은 이영현 버전)의 '천년의 사랑'인데, 하도 많은 실력자들이 이 노래를 선곡한 덕에 이제는 핸디캡이 생겨버린 듯. 동영상 문단에 올라온 우승자처럼 불러야 본선에 나갈 수 있을 듯하다. 2010년 10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편에서는 초등학교 교사 남녀 두명이 나와서 임재범&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불러서 우승까지 했었다.[73] 간단하게 생각해서 대충 열다섯팀이라고 치면 다섯 자리 정도는 어르신 몫이고, 두어 자리는 어린이 몫이니 청년용으로 배정되는 건 7~8자리인데 이 중에서도 절반 정도인 3~4자리는 복장에 안무까지 준비해 온 팀이다. 많아야 두명 정도만 발라드나 락으로 통과할 수 있는 셈이다. 6.3.2. 운발[편집]사실 예선 1차는 운도 중요하다. 보통 예선 참가자는 최소 300명에서 많으면 500명까지도 이른다. 자기 소개+노래 등을 고려하면 한 참가자 당 평균 1분이 소모되다 보니, 심사위원도 지칠 수밖에 없다. 합격이 잘 나오는 순서가 있고, 이 때는 어중간한 실력으로도 잘 묻어갈 수 있다. 반면 뒷순번이거나 줄줄이 불합격이 나오는 분위기 속에서는 실력자조차도 암울한 분위기를 깨지 못하고 수고했다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6.3.3. 특기 준비[편집]예선 1차에 합격한 참가자가 받는, 예선 2차 참가 신청서에는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 3곡을 적는 공간 외에도, 전국 노래자랑에 나오게 된 사연, 장기자랑(노래가 자신 없으면 장기자랑이라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1차는 합격해야 2차에 참가한다) 등을 적을 수 있다. 6.3.4. 실력[편집]위키 유저가 노래를 잘 불렀건 운이 좋았건 예선 1차에 통과했다면, 진정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예선 2차를 하게 된다. 2차부터는 키 조정이 가능한 반주가 주어지면서 진짜 실력자와 뽀록 합격자가 한 번에 구분된다. 특히 여기서는 어르신 버프로 올라온 어중간한 1차 합격자가 단숨에 걸러진다. 6.3.5. 기타[편집]상기 내용들은 모두 개인 참가자에 해당하는 얘기다. 본인이 20대라도, 단체+분장+엽기 콘셉트라면, 부족한 가창력으로도 본선 진출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할 것이다. 물론 실력이 가장 중요한 만큼 연습은 빡세게 해야 한다. 7. 포상[편집]수상자는 연말결선 출전 자격이 부여된다.[74] 참고로, 수상자들의 상품권 가격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 각각의 상이 수상될 때마다 연주하는 악단의 팡파레도 백미 중 하나.
8. 화제의 인물들[편집]
8.1. 연예인 출연[편집]같은 방송국 혹은 타 방송국의 특정 프로그램 출연진이 특별출연한 경우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은 나중에 연예인으로 데뷔한 케이스지만, 무명 시절 초대 가수로 나왔는데 훗날 뜨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장르불문 톱스타 인기가수의 등용문[86] 자격이 충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9. 사건사고[편집]
송해 송해 문서의 r960 판, 3.3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송해 송해 문서의 r960 판, 3.3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문서의 r 판, 번 문단 (이전 역사)9.1. 방영 연기[편집]
10. 기록[편집]
11. 유사 프로그램[편집]
12. 특별편[편집]
13. 여담[편집]
14. 둘러보기[편집]송해 [ 펼치기 · 접기 ] 방송 활동 전국노래자랑 · 2022 설 대기획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 송해야 고향 가자 음악 활동 음반 (내 인생 딩동댕 · 아버지와 딸 · 유랑청춘 · 나팔꽃 인생) · 가요무대 기타 문서 대인 관계 · 송해공원 · 노래방 수록곡 · 송해 1927 [1] 단, 연말 결선의 경우는 보통 2시간 방송되며, 예외로 김신영의 첫 방송인 경기 하남시 편은 20분이 늘어난 90분간(~13:40) 방송되었다.[2] 2020년 2월 23일이 마지막 정규방송일이었으며, 이후 실내 스튜디오에서 총집편 형태로 제작된 회차들은 정식 방송 횟수로 카운트하지 않는다. 2022년 7월 10일부터 방송 예정인 현장녹화분 방송이 재개되면서 횟수를 다시 카운트하였다.[3] 이 기간에 방송된 분량들도 KBS 본사 아카이브에서 디지털 영상으로 보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방송분은 DVB-S방식의 위성방송으로 인해 SDTV에 준하는 디지털 영상으로 제작되어 있지만, 디지털 방송이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에 방송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시청자들은 아날로그 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다.[4] HD 방송 전환은 2009년 4월 5일 방영분이어야 했지만, 이 날은 결방했다.[겸임] 프로듀서도 겸임.[6] 2022년 10월 16일 방영분부터 진행[7] 2016년 1월 3일에 방영한 전라남도 나주시 편(1782회)이다. 2012년 7월 이후부터 쓰이고 있다.[8] 송해의 '일요일의 남자'를 이어받은 표현이다.[9] 세세한 표현이 매 방송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내용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송해가 인사를 올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신영 역시 말미에 큰 절을 올리겠다고 표현하고 있다.[10] 녹화가 이뤄지는 현장의 명칭. 예를 들면 공설운동장이나 체육관, 강변 둔치, 공원, 지역 축제 행사장 등.[11] 이 칭호는 1999년 6월부터 사용되어 송해의 대표적인 칭호로 자리잡았다.[12] 야외 녹화의 경우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녹화현장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저~기 OOOO에 계신 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13] 세세한 표현이 매 방송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내용 자체는 여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14] 가요무대의 오프닝 멘트도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MC 김동건이 항상 "멀리 계시는 해외 동포 여러분, 해외 근로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를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에 재외국민의 안부를 묻는 멘트가 들어간 것은 과거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해외 각국 한인 사회에 이 프로그램이 전달되던 시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프로그램으로 한인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아서 특별히 재외국민의 안부를 묻는 멘트를 넣었다고 한다.[15] 2017년 8월 27일에 방영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편(1862회)이다.[16] 다만 '일요일 정오뉴스 직후'라는 상징적인 본방 시간대에 비해 재방송은 꽤나 유동적으로 편성된다. 한동안 수요일 낮 2시 50분에 했지만 언젠가부터 월요일 낮 2시 50분으로 변경되었다. 김신영으로 진행자가 교체된 후부터는 KBS 2TV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50분에 재방송을 편성한다. 그마저도 결방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17] 특별시, 광역시 등이 아닌 일반 시 아래의 일반구는 해당되지 않는다.[18] 4~10월에는 야구(주로 고교야구 또는 KBO 정규리그) 또는 K리그, 10월~다음해 4월 농구, 배구, 월 1회 씨름.[19] 1993년 봄 개편 이후에 확립된 것으로 봄 개편 이전에는 주택복권 추첨 방송이 방송되었고 봄 개편 때 주택복권 추첨 방송을 '홈런 일요일'로 바꾸고 2TV로 옮긴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게 되었다.[20] 실격의 경우도 '땡'이다. 가끔 띵~ 이나 똥~ 하는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주로 이호섭이 그렇게 친다.[21] 옛날에는 가끔 송해를 놀리는 방식으로 딩동댕동댕이나 땡을 치기도 했었다. 주로 정풍송이 그렇게 쳤다.[22] 물론 가끔 방송에서도 1번 더 기회를 주는 경우가 있다.[23] 이 외에도 동년 5월에 방송된 태안군 편과 11년 3월에 방송된 광주 남구 편이 있다.[24] 이날 방송분은 01년부터 06년까지 키보드 연주자로 활동하던 윤효간 단원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빠지게 되어 초대 키보드 연주자였던 최평국 단원이 대신 합류했고, 신재동 악단장이 작곡가라는 사실이 이날 처음 밝혀졌다.[25] 다만 가사는 웬만해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26] 위 사진은 1999년에 방송된 화면으로 사진 속 인물은 신대성(본명 최시걸, 1948 ~ 2010)이다.[27] 반대로 비슷한 일본의 프로그램인 NHK 노래자랑에서는 도 레로 불합격 판정(아예 땡으로 판정하는 경우도 있다)을 내리는데, 이 쪽은 오히려 합격하는 팀이 불합격하는 팀부다 더 적다.[28] 91년, 92년 연말결선은 88체육관에서 진행했다.[29] 상반기 결선도 장소는 항상 KBS홀.[30] 2003년 송해쏭 1, 2집을 편곡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이호섭 작사가의 권유로 2004년에 최석준의 ‘가세요 가’로 데뷔했다. 이후 송해의 적극적인 홍보로 신재동은 작곡가로 유명해지게 되었다.[31] 서인수 기타리스트는 2010년 11월에 건강 문제로 퇴사했다. 현재 김포시 음악동호회인 흥삼포르테 빅밴드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악단 밴드에서 서인수 단원의 최근 근황을 볼수 있고 노래자랑 퇴사자들 중 유일한 현역이다. 요즘에는 검은색 모자를 즐겨 쓰는 듯 하다.[32] 이때 뮤직뱅크는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이었다.[33] 통계학에서는 전국노래자랑 시청률 같은 지표를 이상치(Outlier)로 부른다. 이상치는 해당 통계자료의 일반적인 경향과 완전히 동떨어진 값을 뜻한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예로 들면 다른 작품들은 관객이 매우 적었는데 겨울왕국 같은 작품에 관객이 몰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게임으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여기에 해당된다.[34] 가수이나 '위키 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노년세대에게는 이쪽이 더 유명하다.[35] KBS 아나운서(6기)[36] KBS 아나운서(13기)[37] KBS 아나운서(5기)[38] 전체 진행기간은 총 33년 7개월.[39] 야외 녹화 촬영을 한 정규회차 방영분은 2020년 2월 23일이 마지막이였다.[40] 역대 최장기간 진행자[41] 2022년 기네스북 등재 {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최고령 TV 음악 경연 쇼 진행자)}[42] 공식적인 여성 진행자로는 2번째 진행자. 단독 진행으로는 최초.[43] 녹화가 이뤄지는 현장의 명칭. 예를 들면 공설운동장이나 체육관, 강변 둔치, 공원, 지역 축제 행사장 등.[44] 이 칭호는 1999년 6월부터 사용되어 송해의 대표적인 칭호로 자리잡았다.[45] 야외 녹화의 경우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녹화현장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저~기 OOOO에 계신 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46] 다만 신재동 악단장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PD와 갈등이 쌓이고 쌓인 끝에 한 번 촬영이 파토가 난 적이 있었다는데 이로 인해 하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47] 게다가 김선동 아나운서의 방송분들은 보통 시작할 때 기본적으로 외치는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치도 않았다. 송해 이전의 MC들도 웬만하면 시작할 때 '전국 노래자랑'을 외쳤는데 말이다. 물론 외쳤는데 편집된 건지 아예 안 외친 건지는 알 수 없다.[48] 다만 송해가 진행하는 중인 1995년 3월 19일, 4월 16일 방송분은 김선동 체제 시절과 비슷하게 오프닝을 진행하였다.[49] 호적상으로는 1924년.[50] 이 영향 때문인지 일부 남자들의 경우는 형 또는 형님이라고 부른다.[51] 사실 악단장 이전 시절에도 송해가 신재동에게 가끔 '돼지아빠'라고 부르기도 했다.[52] 차기 MC 후보로 지목되어 있는 허참의 본명은 이상룡. 공교롭게도 제2대 MC인 뽀빠이 이상용과 이름이 같다. 뽀빠이 이상용 역시 차기 MC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작 이상용도 허참보다도 더 연상인데다 현재 팔순이 다 된 고령이다. 참고로 2022년 6월 중순 들어서 이상용이 차기 전국노래자랑 MC로 공식적으로 낙점됐다는 설이 유튜브니 뭐니 하면서 여기저기 커뮤니티들에서 나돌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이 절대로 아니니 낚이지 말자.[53] 1927년 생인데 본인도 헷갈리는지 1925년 생이라고 밝혔지만, 나중에는 1927년 생으로 최종 정정.[54] 다만 이 스페셜 방송분 녹화에 송해는 불참하였고, 임수민 아나운서와 이호섭 작곡가가 임시 MC를 봤다. 스페셜 방송분에서는 2019년 녹화된 방송을 재방영하였다.[55] 다만, 마지막 출연이 2022년 05월 15일 당진시 편이였고, 이후로는 출연을 안 했기에 당진시 편을 마지막으로 보는게 맞다.[56] 1970년부터 썼고 98년 11월에 방송된 양산시 편에서는 안경을 벗고 촬영했다. 초대 심사위원인 임종수처럼 돋보기안경인 듯하다.[57] 대표적으로 2010년 전라남도 함평군 편의 벌 아저씨(김영호 씨) 다음에 나온 68세의 남성 출연자의 경우, 벌 소리에 반주 소리를 못 듣고 땡을 2번 받자 3번째는 송해가 옆에서 같이 불러 딩동댕이 나왔다.[58] 물론 7월 10일 방송분은 송해 별세 4일 전인 2022년 6월 4일에 녹화한 것이다.[59] 연말 결산 등에서만 2인 MC 체제였으나 정식 방송에서 2인 MC 체제는 최초이다.[60] 2022년 기준 38세이므로, 61세에 처음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았던 송해보다 20세 이상 젊다.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램 단독 MC를 맡게 되어 영광이라 밝혔다. #[61] 제작진이 "김신영은 10월 16일 방송분부터 MC로 등장할 것"이라고 발표를 했기 때문에 10월 16일에 대구 달서구 편이 방송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지만, 하남시가 지역구인 최종윤 의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10월 16일에 하남시 편이 방송된다고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62] 이 때문에 일부 달서구민들이 지방이라고 차별하는 거냐고 비판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연예부 기자 출신의 유튜버 이진호의 증언에 따르면 전국노래자랑 제작진들은 대구가 김신영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송해와도 관계가 깊은 곳이기에 일부러 첫 녹화를 대구로 잡았으며, 그리고 방송 사정상 나중에 녹화한 에피소드가 먼저 방송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제작진들은 이렇게 대구 홀대 논란이 생길 줄 예상 못 했다고 전하고 있다.[63] 근데 이런 게스트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90년대 후반 송해가 진행했던 시절에도 특별 게스트가 출연하기도 했기 때문이다.[64] 이 해를 마지막으로 상반기 결선 폐지.[A] 65.1 65.2 KBS 아나운서는 당시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에 대부분이 참여한 상태라서 진행자로 기용할 수 없었다.[67] 하차 이후에도 간간히 출연했는데, 98년 전라남도 해남군과 경상남도 양산시 편에서는 신대성의 대타로, 01년부터는 박현진이나 박성훈의 대타로 출연했다.[68] 역대 심사위원 중 최고령이고, 정식 심사위원이 되기 이전에 박문영과 함께 93 연말결선 심사위원으로 출연. 하차 이후에도 임종수처럼 주로 도토리 삼형제의 대타를 맡았다.[69] 이 날은 공교롭게도 2010 연말결선을 방송한 날이기도 하다.[70] 정식 심사위원이 되기 전에는 2000년 인천광역시 부평구 편과 경상북도 울릉군 편에서 이호섭의 대타로 출연했다. 동년 8월 부로 박현진과 함께 정식 심사위원으로 합류했다.[71] 예선 참가 대기자+응원 온 가족, 지인+그냥 구경온 사람 등.[72] 남자 참가자의 경우 박구윤의 '뿐이고'나 '나무꾼', 박상철의 '황진이', 진성의 보릿고개, 박현빈의 곡 등을 선곡하는 경우가 많다.[73] 당시 VOD 동영상을 보면, 여자 교사는 그냥 서있는 수준인지라(...), 남자 교사가 멱살잡고 하드캐리 한 수준일 정도로 두 사람의 편차가 컸는데도 우승하였다. 한마디로 남자 교사의 가창력은 후덜덜했었는데, 그 가창력을 정말로 봤던 것 같다.[74] 상반기결선은 2013년을 끝으로 사라졌으므로 뺀다. 물론 이 결선도 자체 예심이 있다.[75] 가끔은 달랑 1팀만 나오는 경우도 있다.[76] 대표적인 경우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했던 전국노래자랑 세계대회.[77] 자막에는 초등학교 2학년으로 나오는데 세는나이로 송출되는 전국노래자랑 자막의 특성 상 8살로 송출된 걸 보면 빠른년생일 확률이 높다.[78] 이로 인해 송해가 녹화 도중에 기절하는 사태가 있었다.[79] 2012년 추석 당일이었던 2012년 9월 30일 방영분으로, 건강 때문에 잠시 진행을 빠진 송해 대신 허참이 MC를 맡았다.[80] 소노호텔&리조트에서 녹화하였다.[81] 상의는 입지 않고 바지와 모자만 착용한 상태에서 온몸에 벌을 붙이고 나왔지만, 시상식에서는 벌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빨간색 상의를 입고 올라왔다.[82] 벌이 입으로 들어가는 불상사도 빚어졌고, 그 벌이 송해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어 바지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송해 또한 7방을 쏘였다.[설특집] 83.1 83.2 설특집 때 재출연분이다.[84] 그 영상은 전국노래자랑의 종전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는데,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게 단점이었다. 게다가 종전 홈페이지는 개편으로 폐쇄되어서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86] 트로트는 당연하고 발라드, 댄스, 심지어 국악까지 장르를 따지지 않는다.[87] 부른 노래는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88] 정확히는 둘리를 부른다고 했는데, 느닷없이 아파트 반주가 나왔다. 남편은 베짱이 49화 참고.[89] 출연 풀영상.[90] 송해보다 나이 많은 참가자들도 웬만하면 자기보다 어린 송해한테 존대해주는 것을 보면 그냥 답이 없는 수준이다.[91] 다만 녹화 장소는 달랐는데, 2018년에는 동읍에서 촬영했고 19년에는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촬영했다.[92] 1997년 8월 31일과 1997년 9월 7일에 2주 연짝으로 방송한 충청북도 제천시 편과 1999년 8월 1일과 1999년 8월 8일에 역시 2주 연짝으로 방송한 강원도 속초시 편.[93] 부산광역시 북구 편은 정장 12년만인 2022년 10월 29일에 녹화를 진행하였다. 다만 부산광역시 북구 편은 같이삽시다 채널에 전부 다 올라와서 과거 회차 중에서는 2004년 1월 25일 부산광역시 편을 대신해서 업로드 할 것으로 보인다.[94] 이 때는 군이었다. 양주시는 2003년에 시로 승격하였다.[95] 참고로 이 회차는 과거 방영분이 하나도 없으므로 유튜브의 KBS 인물사전 채널에서는 어떻게 올려질지 관건인데 아예 안 올리거나 업로드 되지 않은 광주광역시 편인 1997년 3월 9일 방영분, 2007년 2월 18일 방영분, 2009년 8월 30일 방영분 중 하나를 대신해서 업로드할 것으로 보였고 결과는 2009년 8월 30일 방영분을 올렸다.[96] 이 날은 전라남도 여수시 편을 방송하였다.[97] 1987년 2월 1일자 전국노래자랑 오프닝에서 당시 MC를 맡던 고광수 아나운서의 "앞으로 50분 동안 제1텔레비전과 제1라디오를 통해서 동시에 함께하게 됐습니다."라는 멘트가 이를 증명해준다.[98] 노라조라든가 다른 신세대 가수들의 노래는 아직까지 경음악 또는 립싱크로 내보낸다. 비록 예전에 비해서는 음질이 안 좋지만 말이다.[99] 2000년 이전처럼 자막이 안 나왔다. 단, 결선은 2012년부터 자막을 보내지 않았다.[100] 2005년 이후 과녁판에 추가되었다. 사실 이전에도 본방 로고를 약간 변형해서 쓰이긴 했지만 지금 쓰이고 있는 특집 로고는 90년대 중후반부터 쓰이기 시작했다.[101] 1996년 11월에 현재의 색상으로 변경되었다. 사실 1993년 초에도 이거랑 똑같은 색상을 썼지만 이쪽이 더 입체감이 있고 색깔도 더 진하다. 약 두달만 쓰고 색을 변경했다. 93년 김제시 편 참고.[102] 송해가 위에 썼던 것처럼 2022년 6월 8일에 타계하면서 이 회차는 송해가 마지막으로 전국노래자랑 정규방송을 진행한 회차로 기록되게 되었다.[103] 이 무렵에 예심과 녹화를 앞두고 있던 지역들은 강원도 동해시, 경기도 하남시, 전라남도 함평군이었다.[104] 여담으로, 스페셜 방송을 하는 동안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대전광역시의 자치구는 유일하게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다. 물론 이는 2010년대 이후로 대전광역시를 찾아간 횟수가 많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래도 대덕구는 2010년대에 2번이나 방문했기에 한 번 다룰 법도 했겠지만, 이 곳을 주제로 스페셜 방송을 하는 일은 영영 나오지 않게 되었다.[105] 2003년 개편 후에 방송된 완도군편에서는 김종식 군수가 심사석에 앉았는데 이는 개편 직전인 6월 22일 이전에 촬영했기 때문이다.[106] 해수욕장에서 녹화할 때는 MC나 심사위원, 밴드들의 복장도 바캉스옷으로 입고 나온다.[107] 화성시는 조용필의 고향이기도 하다. 참고로 조용필은 1987년 리비아 아즈다비아 특집에서도 초대가수로 등장했다.[108] 컨츄리꼬꼬가 리메이크한 'Oh my Julia'의 원곡(줄리아의 상심)으로 유명한 체커스라는 1980년대 일본 아이돌(당시 쟈니스 계열과 경쟁구도를 형성했던) 유닛의 <Jim&Janeの伝説(짐&제인의 전설)>이라는 곡 표절.[109] 이름만 들으면 생소할 지 모르나 '있을 때 잘해', 내 나이가 어때서 등을 부른 가수다. 게다가 이래봬도 1968년에 데뷔한 짬밥도 상당히 오래된 가수이며, 그룹 시절에도 이미 유명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그 유명한 김자옥이다.[110] 땡벌을 리메이크한 가수이자 영탁이 리메이크한 막걸리 한잔의 원곡자이다.[111] 피날레 치고는 좀 약한 편인데, 그래도 '흔적', '초대', '밤차로 가지 말아요',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반지', '미워도 미워도', '별난 사람' 등 여러 히트곡들이 있는 중견 가수다.[112] 역시 이름만 들으면 생소할 지 모르나, '사랑의 밧줄'의 주인공이다.[113] 다만 태진아, 송대관, 설운도 같은 사람은 2010년대 이전에도 OOO 씨라고 소개했었으며 그 중에 태진아는 1990년대 초반까지는 태진아 군이라고 하였으며 송대관은 가끔 송대관 군도 아니고 송대관 씨도 아닌 그냥 '송대관이 나옵니다' 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114] 물론 1990년대부터는 "현철 씨"로 호칭을 변경하였다.[115] 전남 광양시 편.[116] 1975년생이나 자막에서 세는나이 표기로 인해 35세로 송출되었다.[117] 여담이지만 2007년에도 진천군편 및 연말결선에 출연했다.[118] 옆 동네는 1994년 10월까지는 잘만 썼다.[119] 1995년 10월부터 1996년 초까지는 다른 오프닝을 사용했다.[120] 전국노래자랑 뿐만 아니라 다른 과거 KBS의 여러 인기 프로그램들도 업로드한다.[121] 다른 요일들에는 아침마당이나 여유만만, 행복채널의 영상 중 하나가 업로드되었다가 언젠가부터는 아침마당으로 딱 고정되었다.[122] 당연하지만, 이에 대해 시청자들의 여론이 상당히 나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청자들은 업로드 확대를 원하는데, 관리자는 오히려 줄여버리는 청개구리짓을 했으니 여론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123] 실제로 해당 채널 관리자도 이 무렵의 방영분들은 찾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근데 아이러니한 건, 가요무대는 80년대 방영분들도 많이 올라왔으면서 왜 이상하게 전국노래자랑은 80년대 방영분들은 찾기가 어렵냐는 것이다. 또한 80년대 방영분들은 찾기가 어렵다더니 1987년 리비아 편, 1987 연말결선, 1988 상반기결선 등은 업로드가 돼 있다는 것도 역시 아이러니한 점이다.[124] 다만 이거는 워낙 신청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어쩔 수가 없다.[125]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직접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를 더 원하지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올려봤자 호응이 별로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인물사전 채널도 마찬가지이며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올라오면 당연히 시청자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다.[126] 결국 관리자가 바뀐 이후로는 하루에 요청을 최대 2개로 제한하기로 바뀌었다.[127] 현재 이 사이트에서는 더 이상 신청을 할 수 없다. 관리자는 새 커뮤니티에서 신청을 받는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새 커뮤니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128] 다만 문제는 서울 동대문구나 부산 북구처럼 이미 같이삽시다에서 회차들을 다 올려서 더 이상은 올릴 게 없어졌거나 광주 북구처럼 한 번도 개최 역사가 없는 지역은 만일 그 지역에서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했을 시 과거의 어떤 회차를 올려야 하냐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아예 그 주에는 특정 회차를 올리지 않거나 특정 대도시 단위로 모두 하나로 엮어서 개최한 회차를 올리거나 인근 지역들 중 하나의 회차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체하거나 셋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일단 광주광역시 북구 편의 경우에는 2009년 8월 30일의 광주광역시 편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