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해석 - ojig salanghaneun ideulman-i sal-anamneunda haeseog

기타/감상

2019. 12. 18. 20:51

틸다 스윈튼 Tilda Swinton, 톰 히들스턴 Tom Hiddleston 주연
짐 자무쉬 Jim Jarmush 감독
Running time 123분

긴 삶을 이어가기 위한 예술의 흐름, 그리고 사랑

국내에선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다.

뱀파이어 아담과 이브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과 세상, 그리고 인간좀비들을 향한 시선을 담은 영화다. 몇 백년을 살아온 그들 중 아담은 모두가 떠나고 폐허들만 남은 디트로이트에 살면서 오염된 지구, 엉망이 되어가는 세상을 비난하며 인간 좀비들을 증오하는 염세주의자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지닌 음악과 기타를 애틋하게 다루며 매일 장송곡을 만들며 자살을 열망하는 자이기도 하다. 반면 모로코의 탕헤르에 살다가 자신의 오랜 연인이자 남편인 아담을 만나러 온 이브는 아담의 인간 좀비들에 대한 비난과 죽음에 갈구하는 것은 인생의 낭비이며, 그보다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춤을 추기를 원한다.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가 언젠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이브는 말한다. 남부가 다 불타 없어질때, 오랜 기간 인간 좀비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디트로이트는 그 때가 되면 다시 번성할 것이라고.

뱀파이어인 그들은 피를 마시는데, 인간들의 피는 너무나 오염되어서 깨끗한 피를 마시는 것이 어렵다. 마이너스 (아마 Rh-를 말하는 듯) O형을 좋아하는 그들, 피를 예쁜 잔에 따라 한 소끔 마시고는 황홀함에 빠지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에 자주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시작부터 그 황홀함을 감독이 표현하는 방식은 턴 테이블을 돌아가는 레코드 판처럼 누워있는 그들을 카메라를 회전시켜 잡아 내 보내주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시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글과 음악, 예술을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여행 가방에 오직 책만 담아서 움직이는 이브의 모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평화로운 그들의 삶은 좀비들의 소굴인 LA에 살던 이브의 동생 에바가 그들을 찾아오면서 무너지는데, 피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않는 에바가 아담의 친구 이안의 피를 마시고 죽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날 저녁, 잠에서 깬 이브와 아담은 몇 세기의 역사를 품은 아담의 악기들과 음반들이 부서져있는 모습과 이안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오랜 삶을 살았던 만큼 그들은 놀라지 않고 차분히 이안의 시체를 처리 후 디트로이트를 떠나 탕헤르로 떠나는데, 그곳에 남아있던 말로라는 훌륭한 예술가이자 친구였던 뱀파이어의 죽음과 함께 피를 구할 길을 잃게 된다. 말로의 죽음은 오염된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탕헤르에서 세상에 유명해지기엔 너무나 뛰어나다고 역설적으로 아담이 평가한 레바논 여인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은 둘은 마실 피가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데, 그 떄 눈 앞에 키스를 하는 한 연인이 나타난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는 그 연인들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로 바꿀 결심을 하게 된다.

제목의 번역에 대해서 오역이다 뭐다 여러가지 말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그래서 영어 제목을 찾아보고 영화를 봤는데 원제가 가진 중의적인 의미 때문인 것 같다. 영화의 엔딩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랑을 하는 순수한 자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와, 아담과 이브를 가리켜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연인들을 말하고자 하는 제목의 중의적인 의미를 전자에 한정지었기 때문인 것 같다. 두 번째 의미는 영화의 중간에 틸다가 말로의 책에서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증명되면 자신은 결코 사랑을 한 적이 없다. 라는 문장을 읽으며 오, 말로.. 하며 감동하는 장면과 몇 백 년이 지나도록 퇴색되지 않은 이브와 아담의 사랑이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과 예술, 문학에 대해 영생의 존재에 가까운 뱀파이어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영화였다.

말로는 셰익스피어로 보이는데, 사실 현대에서 우리는 고전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고전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읽히는 이유, 해외 명문대에서 졸업을 하기 위한 조건이 고전을 읽는 것인 이유. 세상에 수많은 글이 나오지만 고전이 고전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가 다 있겠지. 이미 오래 전 예술에 인생을 담은 많은 작가들이 고전 문학에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글을 쓰는 건 참 좋아하는데.. 표현에 재주가 없어서 고전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잘 안된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목표를 되새김 하게 만드는 영화를 봤으니 책꽂이에서 잠을 자고 있는 책을 꺼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