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로도 위로 가 되지 않는

[금주의 DJ] 사랑한단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 기자명 이선영 기자
  • 입력 2019.02.02 11:24

  그런 날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는 날이. 주변에서 위로의 말을 해줘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칙칙한 날이. 속 빈 강정 같은 위로를 받기보단 혼자이고 싶은 날이. 그런 당신을 위한 노래가 있다. 가수 브로콜리 너마저의 2<졸업>에 수록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덕원 작사·작곡)’이다.

  곡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약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한다. 특별한 내용이나 주제를 담고 있지 않은 가사는 언뜻 무덤덤해 보이지만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 날이 있어로 시작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로 넘어가는 구절이 특히 그렇다. 고요한 BGM 위로 위로가 되기를바라고 하는 말이, 도리어 쉽게 지나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어쩌면 위로의 말 한마디 보다 더 다정한 말은 스치듯 지나가는 공감의 말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더 큰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구절엔 자신의 힘든 부분을 감추고자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위로받길 원하는 우리는 정작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다. 후렴으로 가면서 고조되는 피아노 소리와 잔잔한 드럼 소리는 그런 마음을 따스하게 감싼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구절은 여러 번 반복되며 듣는 이의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동시에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친구와 같은 느낌을 준다. 가끔 견딜 수 없이 힘들어진다면, 이 노래를 들으며 지친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게 어떨까.

이선영 기자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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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2011. 7. 25. 02:40


  사랑해 라는 말에 대해 음악도시에서 성시장이 말했다. 그 말은 가벼워서 좋다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 고개를 사정없이 위아래로 끄덕였다. 나도 사랑해 라는 말이 가벼워서 좋다. 오죽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자는 노랫말이 담긴 노래까지 나왔겠나. 뭐 반대로 아껴하지 말자는 노래도 있지만 어쨌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게가 있는 말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 사랑해라는 말에 그렇게 의미부여를 절절하게 하여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미는 사람도 사랑도 없다. 어찌보면 닳아 빠진 말의 일색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그래서 그 말을 싫어하냐고? 네버네버. 정말 좋다. 가벼운 말이어서 좋다. 자신의 감정을 사랑해 하나로 응축해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단어보다 밀도가 높게 전할 수 있다. 그것도 손쉽게. 이 얼마나 사랑해라는 단어가 가진 특권인지.  
  그래도 이 노래 가사처럼 꼭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고, 사랑해라는 말이 모든 일을 손쉽게 풀어줄 리는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도 고개를 사정없이 위아래로 끄덕였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보컬이었던 계피가 빠졌지만 여전히 브로콜리 너마저 다운, 좋은 노래.

그런 날이 있어. 그런 밤이 있어.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말이 없었지만.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그냥 너를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정작 힘겨운 날에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있어.

오늘은 좀 많이 울적해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명곡을 들으며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낮부터 계속 느끼고 있는 우울을 외면하고 싶어서 집에 오다가 영화도 한편 보고, 집에 들어와서는 유튜브 추천영상들을 잔뜩 보고 프렌즈팝콘을 하면서 정신을 분산시켰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기분이 나아질 수가 없다는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혼자 울다가 자거나 일기장에 쏟아낼 법한 감정인데 오늘은 포스팅을 해본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엇갈려서 서로를 옥죄거나 상처 입히고 끝내는 파국으로 치닫는 서사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글을 봤다. 그 견디기 힘든 괴로운 느낌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그런 종류의 서사를 싫어하지는 않기 때문에 자꾸 생각하게 됐다. 음.. 사실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잘못되는건 좀 너무한 것 같고, 엄밀히 말하면 누구도 악의는 없었지만 잘못되는 서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숨이 막히고 괴로워하면서 보기 때문에 두 번 볼 엄두가 잘 안 나긴 하지만 그건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어떤 서사이든 파국으로 치닫는건 썩 내 취향이 아니다.)

어쨌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듯 마찬가지로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경우엔 미묘하게 어물쩍 흘러가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것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스크린이나 종이 위에 옮겨낸 것들을 볼 때마다 작가의 관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하긴, 일상에서는 밍숭맹숭하게 지나가버려도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에서는 작은 균열이 파국으로 치닫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정작 실제로 그런 순간들에는 좀 무딘 편이다.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렇다. 나는 보통 감정을 좀 내버려두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전에는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아예 회피해버리는게 주된 대처방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렴풋한 기억은 있는데 생생하지는 않은' 미묘한 감정들을 강하게 느끼게 만드는 서사가 어딘가 내 속을 긁어줬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그나마 불편한 감정을 뱃속에서 느끼긴 하는데 특별히 어떤 액션을 취하진 않고 그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쓰면서 문득 깨달은건데, 불편을 잘 참고 견디는 특성이 이런 식으로도 나타나는 모양이다.

아무튼 대개는 그렇게 넘어가지만, 이런 일들이 길지 않은 기간 사이에 여러번 자꾸 생기니까 속이 많이 상한다. 오늘 있었던게 세번째 일이었다. 아직 이전에 있었던 일들도 미처 풀리지 못하고 뭉쳐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니까 체할 것 같다. 이제는 자책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서 더 괴롭기도 하다. 자책하고 있을 때 가장 문제인 것은 남들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한테만 유리하게 이야기를 편집해서 들려줬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내 편을 들어주는건 아닐까. 사실은 내가 뭔가 명백히 잘못한게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거나 혹은 모르는 척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더이상 누구에게도 그 얘기들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어도 그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있을 땐.

지금 몹시 괴로운데 슬픈건 또 아니라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속시원히 울어버리고 훌훌 털고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잘 안되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믿는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런 괴로움의 순간에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가사

그런 날이 있어 그런 밤이 있어 말하지 아마도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말이 없었지만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bbbgold 님이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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