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했 하나님 앞에 시간 재물 어떻게 사용 보고 - malhaess hananim ap-e sigan jaemul eotteohge sayong bogo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
20160228
본문 / 마태복음 26:1~13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죽임 당하고 3일 만에 살아날 것을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 17:22~23, 20:18~19).

본문 마태복음 26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실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세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내가 말한 대로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런 상황에 예수님의 주변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삼상 16:7). 사람은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얼굴이 잘 생겼나 못 생겼나, 키가 큰가 작은가, 눈이 큰가 작은가, 돈이 많은가 적은가, 학식이 얼마나 있는가, 세상의 지위와 권세가 얼마나 있는가, 얼마나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인가를 봅니다. 그것이 바로 외모를 보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굉장한 사람입니다.
왕이 되거나 대제사장이 되거나 유대사회에서 장로나 서기관이 되는 사람은 아주 출세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잘 된 사람들을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전혀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 11: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관심을 가지고 보십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외모를 보면, 다윗의 형들은 이미 장성했지만, 다윗은 어린 아이였고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형들의 믿음보다 다윗의 믿음이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장 크게 보셨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교회 다녔나, 장로가 된 지 얼마 되었는가, 목사가 된 지 얼마 되었는가 등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외모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가장 좋은 사람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을 깊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믿음을 알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최고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새의 아들 여덟 명 중에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윗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장 기뻐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높이시고 귀하게 쓰셨습니다. 다윗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통해 가장 귀한 일을 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 가운데 가장 귀한 일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셨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던 세 종류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가룟 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마 4:23).
예수님께서는 눈 먼 사람, 나병환자 등 병으로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다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며칠씩 굶고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을 아시고, 그들이 돌아가다가 쓰러질까봐 걱정하시며 오병이어로 5천 명의 사람들을 먹이시고, 칠병이어로 4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왕이 되신다면, 해결하시지 못하실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고마워하고 보답하려고 하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좋게 생각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 받을 기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가룟 유다는 은혜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마치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면,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은혜 받을 기회가 많았음에도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기독교에서 그것을 빼면, 기독교는 세상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셔서 하시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성령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을 믿지 않습니다. 홍해는 엄청나게 깊은 바다입니다.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홍해의 바닥을 찍은 사진을 보면, 여기저기에 애굽 군대의 마차 바퀴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가게 하시기 위해 길을 내신 것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것을 알 수도 없고, 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셔야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적으로 맹인이기 때문에 분별하지 못합니다.

유다서 1장 17~2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삼서 1장 9~12절에 보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 중직을 맡은 사람입니다. 파워가 있습니다. 교회를 좌지우지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과 같은 주의 종을 환영하지도 않고, 맞아들이지도 않고, 맞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내쫓아버립니다. 얼마나 악독한 사람입니까.
교회에 다니는데, 왜 이렇게 악한 행동을 할까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굉장히 훌륭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면 회개하면 되는데,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있었습니다.

둘째, 믿음이 있지만, 믿음이 어리고 작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열한 제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에는 딴 생각만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시기하고 다투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아주 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자주 들었습니다.

셋째,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은 후,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하고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을 때,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감사하다고 말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섭섭하게 여기시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병 고침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몬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참석하셨을 것입니다.

베다니는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가 사는 동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몬의 집에 와서 도와주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향유의 가격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입니다. 노동자가 1년 동안 일해야 살 수 있는 비싼 향유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에 의하면, 옷과 향유는 혼수 준비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결혼할 때에 가지고 가려고 준비했던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다른 것은 남에게 줄 수 있지만, 이것만은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이 중심으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서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려는 사람을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본문 마태복음 26장 8~12절에 보면, 마리아가 자신의 귀한 것을 주님께 바친 것을 보고 제자들은 분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마리아에게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 드린 것을 허비한다고 하면서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곧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미리 향유를 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그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에 예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마리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아는 사람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6절에 보면,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늦게 쓴 책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도둑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를 가리켜 도둑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닌 3년 동안 회계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궤를 맡아 돈을 관리했습니다.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돈궤에 헌금을 넣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것을 슬쩍 빼서 자기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런 짓을 하며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니 그가 은혜를 받았을까요. 그는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교육 받고 훈련 받았지만, 그에게는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7~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돈궤에서 돈을 훔쳤습니다. 그는 도둑질을 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것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룟 유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일하면서 돈을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으니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매년 수십억 원의 선교비 예산을 세워서 수백 명의 선교사를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는 열매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선교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산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그들이 1년 동안 몇 명을 구원 받게 하는가’, ‘열매도 좋지 않은 선교사를 위해 많은 돈을 써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할 때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돈이 많이 들어도, 그것은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몸과 재물,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우리의 몸과 재물과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몸, 내가 가진 모든 것, 나의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진 것이요, 가장 행복한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상급이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 몸과 재물과 시간을 바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세웁니다. 주일에 낮예배 한 번만 참석하면 되고, 십일조헌금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세운 기준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주일저녁, 새벽에도 교회에 가는 사람들을 보고 ‘광신자’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헌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집을 팔아 하나님께 헌금하는 사람들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세요.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믿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바쳐도 모자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드려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부족해서 주님 앞에 송구한 마음을 가져야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 날이 옵니다. 그때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가장 기뻐하실까요? 주님을 사랑한 사람을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재물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물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것이요, 자신은 청지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바친다고 해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간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자기에게 좋은 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것인가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지금까지 40년을 뒤돌아보면, 무엇이든지 기쁨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돈부터 걱정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걱정을 한 적 없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언제나 자원하여 기쁨으로 섬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쓰고도 남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40년 동안 그런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셔서 주님을 만날 때에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말씀으로 축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주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의 사랑에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을 위해서라면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면서도 아까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셔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