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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崇實大學校, Soongsil University)는 1897년에 설립된 개신교 미션스쿨로서 사립대학이다. 1938년 자진 폐교까지 평양에 캠퍼스가 있었으나, 분단 이후 서울에 캠퍼스를 두게 되었다. 현재 캠퍼스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로 369 (상도동 551)에 있다. 교육이념[편집]숭실대학교는 기독교정신에 바탕을 둔 진리와 봉사를 교육이념으로 한다.[2] 역사[편집]숭실학당(1897 ~ 1925) 1897년 10월 10일에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동에서 개교한 숭실학당(현, 평양직할시 중구역 보통문동[3])은 1900년에 정규과정의 중등교육을 실시하고, 1906년에 학당 내 대학부를 설치하면서 합성숭실대학으로 출범하였다.[4][5] 조선총독부는 1932년 《조선교육대관》에서 “숭실대학은 대정 원년(1912) 조선총독의 인가를 얻으니 조선에서 대학의 명칭은 이것을 효시로 한다.”고 하였고 《동아일보》는 1936년 6월 3일자에서 “숭실대학이라 하면…조선 최초의 대학이니…”라고 하여, 숭실학당이 학당내에 대학부를 최초로 내걸었음을 보도하였다. 이어 1910년 이화학당에서 대학부를 설치하였고 1915년 경신학교(현 연세대 전신)에서 대학부를 설치하였다.[6] 다만 이러한 대학이라는 명칭은 당시 고등교육기관이랄게 없던 한반도에서 컬리지를 번역하여 학당내 만든 자채적 학부일뿐 실제 학위를 수여허는 대학기관은 아니었기에 실직적으로 당시 한반도 유일의 대학기관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숭실전문학교(1925 ~ 1938) 1912년 11월 25일,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학교 인가를 했으나 1925년 대조선 교육방침(소위, 문화 통치)으로 숭실학당을 전문학교로 승격하였다. 1938년 3월 4일, 숭실전문학교는 일본 제국의 억압적인 통치와 강제적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자진 폐교하였다.[7] 신사참배와 친일활동을 했던 당시의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 볼 때 이는 진정으로 민족을 위한 학교였다는 평가도 있다. 역할[편집]숭실대학교는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에서 평양 지역 항일운동의 중심이 되어 105인사건, 국민회사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신사참배 거부운동 등에서 투철하고 일관된 민족정신을 발휘하였고, 서북지방 인재 교육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문화적 암흑기이던 당시에 전도 활동을 비롯하여 음악·체육·문예활동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특히 숭실축구단이 주축이 되어 1929년부터 서울팀과 벌인 경평축구전은 많은 국민을 열광하게 만들었다.현재 60여 개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운동부로 축구부를 육성하고 있다. 교내 행사로 10월 숭실축전에서는 동문간담회·체육대회·학술활동·예술행사 등이 진행된다. 해방과 재건[편집]숭실대학(1954 ~ 1971) 일본 제국이 패망한 뒤, 숭실의 재건이 논의되었지만 당장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전쟁 직후인 1953년에 영락교회가 숭실대학재건기성회와 숭실대학재단이사회를 조직하고 문교부에 '숭실대학 설립인가'를 요청했다. 1954년에 설립이 허가되면서 자진 폐교 16년만에 평양 숭실학당은 대학기관으로 승격하여 서울 숭실대학교로 재건되었다. 숭실대학은 영락교회의 임시건물을 임시 캠퍼스로 사용하다가, 1957년에 상도캠퍼스의 완성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67년 한국기독교박물관을 개관하고 1969년 컴퓨터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때 대한민국 최초로 컴퓨터공학 교육을 실시했다. 대학 통합과 분리[편집]숭전대학교(1971 ~ 1987) 1971년 대전대학(현재의 한남대학교)과 통합하면서 '숭전대학교'(崇田大學校, 숭실대학 + 대전대학)로 교명이 바뀌었고, 그 해 12월에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다. 그 후 두 개의 대학으로 독립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아래 1982년 10월 재단이사회에서 두 대학의 분리를 정식으로 결의하여 문교부에 승인 요청을 하였으며 1983년 3월 새학기를 맞아 정식으로 분리 운용하게 된다. 교명 환원 이후[편집]숭실대학교(1987 ~ 현재) 1987년, 개교 90주년을 계기로 교명을 숭전대학교에서 숭실대학교로 환원했다.[8] 그리고 1997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더 큰 변화와 발전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2005년부터 본격화된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형남공학관, 조만식기념관, 웨스트민스터홀, 레지던스홀, 학생회관, 전산센터, 교육문화복지센터 등의 쾌적하고 혁신적인 교육환경을 갖추기 시작했다. 훌륭한 역사와 전통의 토대 위에 민족의 대학으로 성장한 숭실대학교는 21세기에 필요한,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는 인성과 전문성, 그리고 교양적인 기능을 겸비한 지식인인 숭실다움을 겸비한 인재의 양성과 함께 최초의 대학에서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숭실 2020비전을 추진 중에 있다. 캐치프레이즈[편집]숭실대학교에서는 매학기마다 캠퍼스 주변에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선보인다. 2011학년도 봄학기부터는 매학년도, 매학기 목표에 걸맞은 다양한 낱말을 활용하고 있다.
캠퍼스 소개[편집]
중앙도서관[편집]역사[편집]
현황[편집]
독서후기클럽[편집]
학부과정 및 대학원[편집]학부과정으로 2013년 3월 현재 9개 단과대학, 32개 학과, 10개 학부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원은 1개 일반대학원(인문사회 23개, 자연과학공학 17개, 학과간 협동과정 4개 학과)과 7개 특수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학점은 133 학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2010-2012학년도 기준) 이 범위 내에서 교양필수 및 선택, 전공기초 및 선택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학생자치조직[편집]숭실대학교 총학생회[편집]숭실대학교의 학생회는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산하 동아리연합회, 총여학생회, 학생복지위원회, 졸업준비위원회, 외국인학생회 및 각 단과대학생회를 두고 있다.[15] 이 중 외국인 학생회는 2010년 학칙 개정을 통해 새로 설립되었다.[16] 숭실대학교 총학생회는 운동권 내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계열이 주류이나, 2012년에는 '한대련 탈퇴'를 약속한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되었다.
교내 언론[편집]
기숙사[편집]숭실대학교 기숙사는 기존에 활용되어 온 글로벌브레인홀(제1생활관)과 2010년 3월에 완공된 레지던스홀(제2생활관)로 구성되어 있다. 자매결연[편집]49개국 212개 대학교와 교류·친선관계를 맺고 있다.
(2013년 3월 7일 기준) 학교 동문[편집]역대 역임 교수[편집]행사 / 에피소드[편집]교내행사[편집]
에피소드[편집]
운동부[편집]축구 등 여러 종목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축구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숭실학교 축구부는 1927년 일본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하는 등[33] 초창기 한국 축구 발전에 공헌하였다.[3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내용주참조주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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