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양으로 매도 톡톡하게 살아 있었다

햇살이 따스한 입술로 소곤대며 찬바람을 걷어내는 화사한 봄날이다.
“이년이 죽어야 한다. 죽어야 해” 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뺨이 홍시처럼 빨갛게 물들어 가도록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다. 이때 눈을 들여다보면 동공이 풀린 듯하고 그 속에 가득 찬 분노는 무섭고 섬뜩할 때도 있다.

“어머니, 왜 이러는데, 이러지 마세요” 하면서 손을 잡아 행동을 제지하면 더욱 흥분하며 온몸에 힘을 가한다. 목에 핏발이 서는 걸 보며 혈압이 걱정돼 잡은 손을 슬며시 놓아 주고 엽차 한잔으로 화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본다. 순간적으로 홱 뿌리쳐 물 한잔이 어머니와 나의 옷을 적신다.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물잔 따라 내 마음도 찌그러진 휴지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으신 지 오래 됐지만, 그간 자신을 학대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나날이 악화되는 몸 상태를 육감적으로 느끼며 어떤 위기감이 드는 것일까. 무엇이 억울하고 답답한지, 말없이 자학하는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도 애처롭고 이를 바라보는 자식도 답답하고 안타깝다.

어머니는 10살에 양친 부모를 사고로 모두 잃어버리고 자기 생일도 모르는 어린 동생들과 긴 세월 소녀 가장으로 사셔서 외로움을 많이 느끼곤 했다. 특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가 없는 아쉬움인지 “내 죽게 되면 화장하지 말고 조상 산소 곁에 묻어다오” 하며 수차례 다짐을 받아두셨다.

자녀들을 키워 대처로 보내고 시골에서 함께 살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정신적인 충격이 있었는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기억력과 판단력도 흐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저혈당 쇼크로 길거리에 쓰러져 이웃의 도움으로 병원에 이송되는 일이 발생했다. 자녀가 여러 명이 있어도 모두 바쁘게 사느라 어머니를 돌볼 형편이 못 됐다. 그래서 어렵사리 가족의 협조를 얻어 우리 집으로 모셔오게 됐다.
우리 집에 사신 지 6년이 돼가던 어느 날부터 하루에 몇 번씩 하는 공격적인 행동을 감당하기 어려워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셔야만 했다. 시내에서 잘한다는 요양병원을 찾아 상담한 뒤 입원이 결정됐다. 병상이 부족해 대기자 명단에 어머니의 이름을 올리고 순서를 기다리겠다며 돌아서다 마주친 어머니 눈에 실망과 섭섭함이 가득한 싸늘한 눈빛을 보게 됐다. 한참이나 말없이 나에게 눈을 고정한 채 멍하니 서서 바라보던 초점 잃은 그 시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수시로 틀니를 옷장 깊이 감춰 찾지 못하고, 약을 먹고 나서 바로 한 봉지를 더 먹고, 플라스틱 커피포트를 가스레인지에 올려 활활 태우고, 경로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사라져 파출소에 신고하고 허둥댔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지난 수많은 날을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살아보려고 무척 애썼고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 위로도 해보았다.

점점 기억력이 떨어질수록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에서 어떻게 될까 불안하고 혼자 남겨질까 두려워 자신을 버리지 말라는 애원이었을까. 자신의 뺨을 때리며 자학하는 행동은 내가 돌보는 주말이 되면 더욱 심하고 자주 일어났다.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어머니가 자식 고생시키는 것이 괴로워서 하는 자기학대라고 한다면 요양병원에 입원만 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어느 날인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요양수급자 가족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대한 실태 조사를 나왔다. 수차례에 걸친 방문상담으로 심리적, 정서적 부담감 해소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해주고, 나의 욕구를 파악해 필요한 자료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공단에서 실시한 집단 상담을 통해 열악한 상황에서 치매 가족을 돌보는 분들을 만나 어려움과 극복사례를 이야기하며 상대적으로 나는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동네 공원에서 만나게 되면 반갑고 더 가진 자로 더 행복했으니 무엇인가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겨났다.

지금은 공직을 정년퇴임하고 어머니 간병에 전념하고 있으니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시청에 근무할 때 연초가 되면 대학졸업생 취업 관련 시장님 방송 인터뷰 자료 준비를 위해 휴일 없이 사무실에 나가야 했는데, 실무리더인 내가 늦게 나오고 빨리 가려니 동료들 불만이 심했다. 주말과 휴일의 케어가 나의 몫으로 분담돼 가정과 직장 모두 잘하지 못해서 속울음도 많이 울고 다녔다. 그래서 치매 가족을 돌보며 직장 생활하는 분들의 눈물 한 방울을 닦아 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지난해 연말, 집 앞에 사무실을 열었다. 15년간 어머니 치매간병을 하며 겪은 시행착오를 다른 분들은 하지 않게 작은 등불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치매쉼터, 케어상담과 돌봄을 지원하고 있다.
황혼의 복병 치매는 오랜 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다. 혼자 간병을 모두 짊어진 것은 아니지만 장기요양 치매가족휴가제 6일을 매년 신청해 여름휴가를 편안하게 보내고 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집에 숙식하면서 어머니 케어상황을 매일 사진으로 보내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한라산 백록담, 여수 밤바다, 내장산, 마이산, 지리산을 다니며 제대로 힐링했다. 이런 제도가 있어 다시 힘을 낼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최근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사용한 지 2년이 돼가지만 아직도 답답하고 숙달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치매치료와 간병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이중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치매가 악화돼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무력감과 간혹 나타나는 이상 행동에 익숙하지 못해 당황하면서 돌아서면 무감각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있어 어머니 재가임종의 희망을 가슴에 품어본다. 옛날 장터 모퉁이에서 맛있는 핑크빛 땅콩을 까서 유년의 아들 입에만 넣어 주시던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 속에 있는 따뜻함과 향기가 가슴에 선연한데, 이별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생각에는 아직 둔탁하기만 하다.

치매가 오래된 어머니가 거실에 누워 주무시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올가미에 걸려 발버둥 치다 지쳐 탈진한 사슴의 슬픈 눈물처럼 주무시는 눈가에 물기가 고여 있다. 어머니가 꿈속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사시길 기원하며 손을 살며시 잡아보고 어머니 곁에 누웠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어머니 자신이 끼고 있던 금반지를 빼서 내 손가락에 끼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치매라는 고약한 병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고 나에게 자신의 분신 같은 반지를 주고 싶었구나 생각하니 그 마음이 애잔하게 전해졌다. 본의 아니게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도 많았다고 생각하며 어머니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드리고 꼭 안아 보았다. 기약 없는 치매 돌봄으로 지친 내 마음속으로 말라 없어진 눈물 대신 감사의 뜨거운 물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은재가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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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인장기요양보험 웹진 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