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 죽이고 나도 자살할거야

(예술극장 한마당. 1994. 3.1. - 3. 31.)

* 나오는 사람들 *

지 훈

그림자 1 : 지훈의 그림자

그림자 왕 : 지훈의 아버지 역을 함께 한다.

그림자 왕비 : 지훈의 어머니, 연인(여) 역을 함게 한다.

그림자 내시 : 정신병원 보호사, 연인(남), 아들 역을 함께 한다.

그림자 2 : 지연, 수연, 미경의 그림자 역을 함께 한다.

그림자 3 : 미경, 여자 환자 역을 함께 한다.

그림자 4 : 그림자 왕의 애인

* 무 대 *

무대 뒤로 쇠창살 틀이 얽히 섥기 얽혀 있다. 그 틀은 그림자들이 자유롭게 숨거나 놀 수 있는 곳이다. 그외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소품으로 벤치와 의자 두어개, 전화, 비디오, 물고기 탈등 이용된다. 그림자들은 지훈과 단 둘이 얘기할 때나 둘이 얘기를 주고 받을 때는 자유롭게 움직이나 그렇지 않을 때는 지훈의 발밑에서 그림자로 누워있거나 뒤에 기대있는다.

* 의 상 *

그림자들은 목까지 오는 타이즈를 입는다. 타이즈는 속은 흰색, 바깥은 까만 색인데 그림자들로 나타날 때는 까만 타이즈 차림이나 일상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는 목까지 오는 애리를 밖으로 접어 흰색으로 드러나게 하고 겉 옷을 걸쳐 일상의 모습을 연기하게 된다. 타이즈 차림일 때는 철저한 무의식의 연기를, 일상 복 차림일 때는 철저한 일상이 연기를 하게 된다. 무의식과 의식의 공간은 지훈과 그림자를 제외하고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 1 막 -

( 1 장 )

(어둠. 그림자들 엎드려 있다.)

그림자 내시 : 쉬.. 모두 잠든 것 같지 않아?

그림자 2 : 글쎄, 쥐죽은 듯이 고요한데...

그림자 3 :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면 아직 잠이 덜 든 거야. 쥐새끼들이 떠들어도 나 몰라라 해야 깊이 잠든 거니까...

그림자 내시 : 요즘 인간들은 밤에도 쉴 줄을 몰라. 이러다간 우리 그림자 왕국도 없어지고 말겠어.

그림자 2 : 그래, 이렇게 밀리기만 하다간 큰일 나겠어.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그림자 3 : 대책이 있을까? 빛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데..

그림자 내시 : 방법이 있을 거야. 그림자라고 항상 당하고만 살 수는 없잖아!

그림자 2 : 그래서 오늘 모이라고 한 걸거야! 이 빛이 늘어나 는 세상에서 쉴 만한 곳을 찾으려고..

그림자 3 : 에이, 답답해서 못 참겠다. (조그만 후라쉬 전등을 희미하게 켜 앞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을 비춘다.) 이크, 아직도 눈 뜨고 있네! (손전등을 끈다.)

그림자 내시 : 왜? 아직도 안자!

그림자 2 : 큰일날 뻔 했어! 자는 줄 알았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잖아!

그림자 내시 : 그렇다면 자고 있는 거야. 눈 뜨고 어둠을 봐야 무엇을 보겠어! (손전등을 켜 관객석을 비춘다) 봐, 다들 눈뜨고 자고 있잖아. 요즘 인간들 잘 때도 눈이 부리부리하다니까..

그림자 3 : 하긴.. 눈감으면 고추 베어가는 세상이니까..

그림자 2 : (손전등을 이리저리 휘두르다) 자, 다들 일어나라! 이제는 우리들 세상이다. 이 짧은 밤이 아침 이슬 에 스러지기 전까지 마음 껏 움직여 보자.

(무대, 밝아진다. 그림자 2,3, 그림자 내시 일어난다.)

그림자 3 : (몸 여기 저기를 두들기며) 어이, 뻐근해! 하루종 일 누워 있으려니 몸 마디마디가 다 쑤시네.

그림자 내시 : (역시 몸을 주무르며) 넌 그래도 나은 편이야, 우리 미선이는 또 에어로빅을 시작했어. 그 몸 매에 뺄게 어디 있다고.. 덕분에 내가 별별 운 동을 다한다니까... (몸을 굽혔다 폈다 한다.)

그림자 2 : 그런데 우리 대왕님은 왜 아직 안오셨지?

그림자 3 : 올 정신이 있겠어? 그 바람둥이 대왕이...

그림자 내시 : 그래도 오늘만은 늦지 않는다고 했는데.. 긴급 사태라고... 아, 저기 온다. 역시.. 아니나 달 라..

(그림자 왕과 애인 등장. 그림자 왕은 애인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고 있다.)

그림자 왕 : 우리가 조금만 일찍 만났어도 결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린자 애인 : 전 지금 이대로라도 좋아요.

그림자 내시 : (그림자 2에게) 야, 우리 왕 저 대사 벌써 몇 번째 써먹는 거냐.

그림자 2 : 수도 없지. 불륜에 빠진 남녀가 제일 즐겨하는 대 사 아냐.

소 리 : (여자의 앙칼진) 야! 너 또..

(검은 물건들이 날라오고 그림자 대왕, 머리를 감싸쥐고 도망간다. 신속히 틀 사이로 숨는 애인. 손에 그림자를 들고 마구 던지며 쫓아 나오는 그림자 왕비. 그림자 대왕, 속히 그림자들 뒤로 숨는다. 덕분에 마구 얻어맞는 그림자 2,3,4,)

그림자 내시 : 마마, 고정하시옵소서. 오늘은 긴급사태가 있는 날입니다.

그림자 왕비 : 긴급사태는 무슨 긴급사태! 난 저 놈 혼내주는 것 이상 긴급사태가 없어!

그림자 왕 : 야, 좀 도와줘! 이러다간 골병 들겠어! 저 여편네 만 붙들어 주면 장관 그림자에 봉하겠다.

그림자 3 : (피식 웃으며) 그림자에게 장관이든 지게꾼이든 무 슨 상관이람. 입에 들어가는 건 갈비나 김치나 다 똑같은 모양인데...

(그림자 왕비, 그림자 왕을 붙들려 하고 그림자 왕은 숨바꼭질 하듯이 그림자 틈을 비집고 달아난다. 그러나 급기야는 붙들리고 마는 그림자 왕. 그림자 왕비, 그림자 왕을 깔고 안고 마구 후드려 팬다.)

그림자 왕 : 아구, 아구.. 그림자 왕 살려! 그림자 왕 살려!

그림자 왕비 : 왕같은 소리하네. 바람 피우기 왕하면 딱 알맞 겠다. (계속 때린다.) 그래, 그렇게 영계가 좋단 말이냐. 깜깜한데도 꼭 영계를 밝혀야 해!

그림자 왕 : 영계는 뭔가 촛감이, 좆감이 다르단 말이야!

그림자 왕비 : 이놈이 그래도 입은 살아서... (입을 마구 팬 다.)

그림자 왕 : 아이고 그림자 살려.. 그림자 살려...

그림자 내시 : (가느다란 목소리로 그림자 왕에게) 대왕님, 조 금만 참으시옵소서.. 조금 있으면 마마의 기운이 빠지실 겁니다.

그림자 왕 : 아이고.. 이놈아! 너도 한 번 맞아봐라!

그림자 2 : 여인의 질투란.. 빛과 그림자가 따로 없지. 그래도 가장 평등하다는 그림자 왕국에서도 여인의 질투만 은 어쩌지 못하니까.. 어, 쟤가 왜 저리 비실비실 해!

(그림자 1, 죽을 상을 하고 등장.)

그림자 2 : 야, 너 얼굴이 왜 그래!

그림자 1 : 말마세요, 아구구구..

그림자 3 : 나이도 어린 것이 웬 우거지 상이야. 팔팔 날라도 모자랄 판에.. 내가 너 나이때는..

그림자 1 : 아구구구... 아저씨도 한 번 당해보세요. 하루종일 납작하게 깔려 있으면 어떤지... 아구구구.. 웩웩!

그림자 왕비 : 아니 우리 귀염둥이가 왜 이러냐... (그림자 1 에게 달려간다.)

그림자 1 : 아구구구.. 웩웩 (토한다.)

그림자 왕 : 내가 오늘 다 모이라고 한 것은 쟤 때문이야. 아 고 입을 하도 맞아 말이 잘 안나온다. (그림자 1 에게) 너가 직접 좀 얘기해라.

그림자 1 : 아고고.. 주인을 잘못만났어요. (우물거린다.)

그림자 왕비 :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우리 애가 어쩌다 이렇 게 됐단 말이예요.(그림자 왕에게) 빨리 똑바로 얘기 안하면 또 치도곤 할 줄 알아요.

그림자 왕 : 아고, 입이 아파 말은 못하겠고 요술을 써서 보여 주께.. (한 쪽을 가리킨다.)

(핀이 떨어지며 지훈, 혼자서 동화책을 읽고 있다. 그림자1, 지훈의 뒤에 가서 누운다. 지훈, 엎드린다. 그림자1, 그 밑에 깔린다. 지훈, 그림자1의 몸 위에서 계속 하체를 아래로 비빈다. 납작하게 깔리는 그림자1)

그림자 왕 : 어떻게 7살 짜리 밖에 안된 애가 시도 때도 없이 밝혀! 그냥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애꿎은 우리 귀염둥이만 짓누른다구..

그림자 왕비 : 도대체 저게 뭐하는 거예요?

그림자 왕 : 보면 모르겠소. 자위 행위 하는 거지..

그림자 왕비 : 네? 벌써...

그림자 왕 : 할 줄도 모르면서 할려니까 그냥 저렇게 뭉개고만 하는 거야. 나 참, 내가 가서 가르쳐 줄 수도 없 고...

그림자 내시 : (놀라며) 아니... 쟤, 벌써부터 저러면 크면 나 같이 내시가 되는 데..

그림자 2 : 너 같이야 될라구... 너는 두 살 때 부터 했잖아.

그림자 왕 : 이건 단순하게 넘길 일이 아니야! 가뜩이나 빛이 늘어나는 세상에 우리가 숨을 곳이라곤 정신의 은 밀한 곳 밖에 없는데 그곳마저 저렇게 노골적으로 밝힌다면 우리들은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어!

그림자 3 : 그렇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그림자 내시를 가리 키며) 쟤같이 두 살 때 부터 그 짓을 하는 인간들 이 나올 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난처 해집니다. 어둠속에서 본능에 따라 마음 껏 노는 것은 우리들 그림자의 특권인데 그마저 인간들이 침범하기 시작한다면... 이건 정말 심각한 전시 상태입니다.

그림자 왕 : 그렇다면 다들 묘안을 내 보시오. 저 새끼 색마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은가.

그림자 내시 : 그렇게 고민할 것 없습니다. 더 밝히지 못하도 록 고추를 잘라 버리면 됩니다. (자기 성기부위 를 어루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고추가 없으면 쪼금은 덜 밝힙니다.

그림자 2 :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는 투로) 우리의 경험으 로 볼 때 그 방법은 별 효과가 없습니다. 고추가 없으면 엉덩이로 라도 그 짓을 하니까요.

그림자 3 : 그렇습니다. 아예 밝힘증을 뿌리채 뽑아 놔야 합니 다.

그림자 왕 :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시오. 대안을...

그림자 왕비 : 섹스보다는 사랑이 소중함을 가리키는 거예요. 사랑이란 지고지순한 것으로 섹스는 멀리하면 할수록 아름답다는 것을 가리키는 거예요. 이광 수의 [사랑].... 하! (혼자 감격해 한다.)

그림자 내시 : 진리, 순수, 아름다움 등 등 겉보기에 그럴싸한 것들로 저 색마를 뒤집어 싸버리죠.

그림자 2 : 민족주의, 인류애, 희생, 봉사, 도덕, 종교 등으로 헷갈리게 하면 어떨까요?

그림자 3 : 진학 문제, 취직 문제, 막막한 현실, 고부간의 갈 등등으로 사는 데 정신없게 만드는 겁니다.

그림자 애인 : 그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건지 가르쳐 주는 거예 요. 그것을 잘못 놀렸다가는 치도곤 당한다는 것 을 뼈저리게 겪게 하는 거예요.

그림자 왕 : 그 정도는 보통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수법이야. 좀 더 기똥찬 걸 말 해봐! 기똥찬 걸...

(그림자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끙끙댄다. 사이. 그림자 1, 갑자기 또 누워서 몸을 비튼다.)

그림자 3 : 아니 왜 그래?

그림자 1 : 또 시작했어요.

그림자 2 : 아니, 그 놈은 자면서도 한단 말이야.

그림자 1 : 아고고고...

그림자 왕 : 안되겠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순 없다. 비상 수 단이라도 써야지...

그림자들 : 네?

그림자 왕 : 우리 왕국을 이데로 멸망시킬 순 없어!

그림자들 : 그렇다면..?

그림자 왕 : 빛을 거역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지해야지!

그림자들 : (깜짝 놀라며) 빛 속으로 나가면 우린 녹아버리는 데...

그림자 왕 : 너희들은 들러리나 해! (그림자1에게) 결국 이 문 제를 해결할 그림자는 너 밖에 없다. 그 주인에 그 그림자일테니까.. 이제부터 내가 갖고 있는 왕 에너지를 전수해 주겠다. (그림자1을 돌려 세우고 그 등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찌찌지! (사이) 자, 다 됐다. 너는 이제 빛 속에서도 덜 녹을 것이다. 빛 가운데로 튀어나가 그 놈을 사로 잡아라. 그 놈의 친구가, 연인이, 조강지처가, 애인이 되서 그 놈의 밝힘증을 철저히 가두어 버려라. 그러나 다 른 사람의 눈에 띄어선 절대 안된다. 돈과 섹스에 환장한 사람들의 눈 빛만큼 그림자에게 해로운 것 은 없으니까.. (다른 그림자들에게) 그리고 너희들 은 그 놈 주위 사람들의 그림자가 되어라. 그래서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너희 주인님들을 충동질해 저 새끼 색마를 꼭 눌러 버려라.

그림자들 : 예이! (머리를 조아리고 퇴장한다.)

그림자 왕 : 결국 방법은 단 하나야! 그 놈이 밝히지 못하도록 틀을 만들어 가두어 놓는 거야. 그러다 보면 자연 히 밝힘증도 줄어들겠지. 섹스란 자유롭고 솔직할 때 번창하는 거니까... (퇴장)

( 2 장 )

(지훈, 동화책을 들고 등장. 그림자1, 뒤에서 따라 온다.)

지훈 :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 게 구박을 받았드래 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 을까? 샤바샤바.. (시무룩해지며) 혼자 하니까 재미없 다. 그래, 동화책이나 읽자.(동화책을 펴들고 읽다가 엎 드린다. 그림자1, 밑으로 깔린다.) 히히히, 재밌다. 어 머니는 나머지 옷을 다 벗어 호랑이에게 주었다. (하체 를 세게 비빈다.)

그림자 1 : 아고고고.. 에이! (지훈을 밀어버린다.)

지훈 :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야!

그림자 1 : 그만 좀 비벼대라! 넌 어떻게 허구한 날 그짓이냐?

지훈 : 어, 넌 누구야!

그림자 1 : (허리를 두들기며) 아이고, 너 때문에 골병들었다.

지훈 : 너 참 예쁘다! (입맛을 다신다.)

그림자 1 : 그래, 아예 잡아먹어라.

지훈 : 넌 누구야?

그림자 1 : 그림자!

지훈 : 그림자? 누구의?

그림자 1 : 너! 너가 내 주인이야?

지훈 : 내 그림자가 이렇게 이뻐.

그림자 1 : 너가 이쁘니까!

지훈 : 재밌다. 우리 함께 놀자.

그림자 1 : (허리를 두들기며) 아이고, 노는 건 좋은데 나 깔 고 뭉개진 마라!

지훈 : 심심해서 그래. 너가 나하고 놀아주면 안 그럴께!

그림자 1 : 좋아, 그럼 뭐하고 놀까?

지훈 : 응.. 너가 동화 좀 들려 줘! 우리 집엔 동화책이 별로 없어.

그림자 1 : (독백) 흥, 누가 모를 줄 알고.. 왜 동화책 읽어달 라는지.. (지훈에게) 알았어. 내가 아주 고상하고 교훈적인 것으로 읽어주께! [해와 달이 된 오누 이] 읽었어!

지훈 : 응, 호랑이가 고개마다 나타나서 엄마 옷 하나씩 벗기 다가 나중에는 발가벗기고 잡아먹는 얘기지! 너무 짜릿 했어!

그림자 1 : (째려보며) 백설공주는?

지훈 : 응, 그것도 짜릿해서 비벼댔어!

그림자 1 : 백설공주에 그럴 만한 곳이 어딨어?

지훈 : 있어!

그림자 1 : 어디? 빨리 말해봐!

지훈 : 왜? 너도 할라구.. (주위를 두리버거리며) 이건 일급 비밀인데.. (그림자 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그 속삭이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 나온다.) 백설공주가 잠들어 있을 때 있잖아, 난장이들이 보잖아.. 그리고 또 왕자님이 키스하잖아. 그 때 나같으면... 히히

그림자 1 : 상상력도 뛰어 나다! 그럼 인어공주는 아주 야했 겠네, 아예 반은 벗고 나오니까..

지훈 : 응. 특히 바닷가에 알몸으로 누워 있을때...

그림자 1 : 사람, 물고기 안 가리는 군. 톰 소여의 모험은?

지훈 : 그것도 감칠나! 동굴 속에 단 둘이 있을 때... 히히..

그림자 1 : 거지 왕자는?

지훈 : 그것도... 거지 소녀랑..

그림자 1 : 여자만 나오면 다 그리로 갖다 붙이는 군. 좋아, 13소년 표류기는, 소공녀는, 소공자는, 피터 팬 은, 암굴왕은, 로빈슨 크루소는..

지훈 : 그것도, 그것도, 그것도...

그림자 1 : (짜증스럽게) 로빈슨 크루소에 그럴 만한 곳이 어 딨어.

지훈 : 있어!

그림자 1 : 없어!

지훈 : 있어!

그림자 1 : 없어! (울상을 하며) 씨.. 내가 갖고 있는 마지막 카든데...

지훈 : 있어... 거기도 분명히 여자 나와.. 원주민들에게 막 쫗기는 여자가..

그림자 1 : 어휴, 이걸 그냥...(쥐어박으려 한다.) 이크..

(그림자 1, 지훈의 뒤에 드러누워 지훈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 어머니 등장, 지훈 옆에 앉는다.)

어머니 : 지훈아, 너 이담에 장가가면 누구와 살거야.

지훈 : 각시하고 살아야지!

어머니 : 이놈의 자식! (꿀밤을 때리며) 그렇게 가르쳐 줘도.. 다시.. 지훈아, 너 이담에 장가가면 누구와 살거야.

지훈 : 엄마랑..

어머니 : 월급 받으면 누구 줄거야.

지훈 : 음... 엄마하고 각시하고 반반씩 똑같이 나눠 줄거야.

어머니 : (다시 꿀밤을 때리며) 이 놈의 자식! 벌써부터 마누 라 생각하네... 엄마 다 줘! (꿀밤 한 대 더 때리고 퇴장.)

지훈 : 씨.. 다 주면 될 거 아냐! 그런데 얘가 어디갔지. (그 림자를 보며) 야, 빨리 나와! (팔짝 뛰며) 빨리.. 어, 얘가 왜 안나오지?

(이때 흥겨운 음악이 흘러 나온다. 지훈,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훈 : 어, 좋은데.. 아싸, 아싸..!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처 럼 흥겹게 춤을 춘 다.)

(아버지 등장. 지훈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버지 : (엄숙하게) 지훈아, 뭐하니?

지훈 : 놀고 있어요.

아버지 : 이 놈아, 남자새끼가 엉덩이가 그렇게 가벼우면 못 써.

지훈 : 네? 왜요?

아버지 : 남자는 엉덩이가 무겁고 여자는 엉덩이가 가벼워야 세상이 행복해 지는 거야.

지훈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아버지 : 크면 알어! (엄하게)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여.

(지훈, 시키는 대로 한다. 흥겨운 음악 계속 흘러나온다. 지훈, 발로 장단을 맞춘다.)

아버지 : (지훈의 달싹거리는 발을 보며) 지훈아, 음악들을 때 그러는게 제일 나쁜 거다.

지훈 : 왜요?

아버지 :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너 앞으로 왜요? 왜요? 자꾸 하면 맴매한다.

지훈 : 왜요?

(아버지, 쥐어박는다. 지훈, 움찔하고 흥겨운 음악 계속 흘러나온다. 지훈과 아버지, 로보트같이 꼿꼿하게 앉아 음악을 듣는다. 음악, 멈춘다.)

아버지 : 훈아, 너 이담에 커서 뭐 될거니?

지훈 : 응, 대통령, 판사, 변호사.. 음..

아버지 : 의사가 되거라, 의사만 되면 끝내준다.

지훈 : 의사가 뭐가 좋아. 아프게만 하는데...

아버지 : 의과대학만 들어 가면 이쁜 여자애들이 줄줄이 늘어 설거다.

지훈 : 정말요?

아버지 : 그럼, 의사가 얼마나 인기가 좋은 데.. 들어만 가 봐! 꽃밭속에 살테니..

지훈 : (솔깃해서) 아빠가 가라면 가야죠.

아버지 : 그럼, 그럼, 그래야 효자지. (퇴장)

지훈 : 그런데 얜 왜 안나오지! (그림자를 보고 팔짝 뛰며) 야, 빨리 나와!

그림자 : (튀어 나오며) 미안! 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되거 든..

지훈 : 왜?

그림자 : 그림자 잡아다가 박물관에 전시하면 어떡해!

지훈 : 설마!

그림자 : 인간들은 능히 그래! 돈이면 환장하니까...

지훈 : 우리 뭐하고 놀까?

그림자 : 응... (독백) 그래 영화에 환장하게 하는 거야. (지 훈에게) 우리 영화 보러 가자!

지훈 : 7살짜리는 혼자 못가!

그림자 : 내가 금방 크게 해 줄께! 세바퀴만 돌아봐!

(지훈, 세바퀴를 돈다. 그리고 경이롭게 자기 몸을 살펴본다.)

지훈 : 어, 정말.. 벌써 10살이 됐네? 어떻게 했어.

그림자 : 난 요술 그림자니까..

지훈 : (주머니를 뒤지며) 그런데 돈이 없네!

그림자 : 훔치면 되지.

지훈 : 참, 그렇구나! 너 좋은 것 가르쳐 준다.

(그림자, 엎드리고 지훈, 그림자의 등을 밟고 올라가 벽에 걸려 있는 아버지 바지에서 돈을 훔친다.)

지훈 : 세상엔 왜 돈같은 것이 생겼을까? 돈이 없으면 마음데 로 군것질도 하고 영화봐도 될텐데...

그림자 : 그러니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고 싶으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해! 어때 영화보니 재밌지?

지훈 : 재미없어.

그림자 : 뭐?

지훈 : 그게 뭐야. 벗을 려면 벗고 말래면 말지.. 벗을까 말 까... 순 구라야. (사이) 나 의과대학에 가게 요술 좀 해줘!

그림자 : 왜, 갑자기...

지훈 : 의대만 들어가면 이쁜 여자애들이 줄줄이 늘어선 데...

그림자 : (한숨을 쉬며) 아직도 멀었군?

지훈 : 뭐?

그림자 : 아, 아냐.. 하지만 고달플 텐데...

지훈 : 왜?

그림자 : 그때부턴 요술이 안 통하니까? 머리가 커지면 요술을 안 믿게 돼! 그러면 고달퍼질거야. 모든 걸 몸으로 때워야 하니까..

지훈 : 아무래도 좋아! 이쁜 여자만 만날 수 있다면...

그림자 : 좋아! (독백) 그러나 뜻대로 안될거다. (주문을 외우 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 요술의 힘은 약해지고 현실의 힘이 강해 지지.

하고 싶은 것은 멀어지고 하기 싫은 것들만 다가오 지.

(그림자의 노래에 따라 지훈은 춤을 추며 옷을 갈아입는다.)

그림자 : 과거는 연기와 같은 것!

미래는 밍기적 밍기적 다가와도 지나간 것은 순식 간 에 흩어져 버려!

흐르는 연기 속에 그래도 남는 것은 사랑뿐!

사랑이 없는 과거는 모두 다 흩어지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여인과 일생을 함께 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 했다고..

그러나 사랑도 한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

과거에 파묻히면 덧없이 흩어지고 미래엔 다시 새로 운 사랑이 그를 사로잡지..

그것이 사랑의 진실인 것을...

삶의 필연인 것을..

(지훈, 어린애 같은 옷은 벗어 버리고 대학생 차림으로 갈아입고 벤치에 앉는다. 그림자의 노래가 끝날 무렵 지훈, 심각하게 고개를 떨군다. 그림자 다가간다.)

그림자 : 왜 이리 심각해? 어렵게 의대에 들어가 놓고...

지훈 : 고민이 있어.

그림자 : 무슨 고민?

지훈 : 혹시 엄마가 나하고 결혼하자 그러면 어떡하지.

그림자 : 에이, 설마...

지훈 : 아냐, 그럴 지도 몰라... 엄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그림자 : 정말 심각해 보이네!

지훈 : 나도 설마 그러지야 않겠지 하고 생각은 들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떠올라!

그림자 : 왜 엄마하고 결혼하긴 싫어?

지훈 : 그건 아니지만... 그건.. (주저한다)

그림자 : 에구, 마마 베이비! 상태도 심하다. 걱정마..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자, 줄줄이 서 있는 저 여자들한테 가봐? 너네 아버지가 말하던 그 여자들이다.

(지훈, 고개를 들어 건너 편 무대를 보니 여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지훈, 그들에게 넋이 빠져 다가간다. 지훈,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서 뒹군다. 그러나 지훈은 계속 걷어차인다. 특히 마지막 여자에게는 심하게 걷어 차인다. 여자들, 다 퇴장하고 지훈, 상처투성이로 우측 벤치에 심각하게 앉는다. 옆에 전화기가 놓여 있다. 지훈, 노트를 꺼내 들고 무언가를 쓴다.)

지훈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 불쌍한 여인의 이야기 를.. 두 번 다시 여인에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웅크리 고 있던 내 가슴에 안겨 사랑을 빼어 내더니 차가운 경멸로 짓밞고 돌아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괴로움만 회상될 뿐이나 반드시 얘기를 해야 겠다. 훗날 내 아내에게 더듬거리면서 첫사랑을 고백하는 쓰디씀은 맛보고 싶지 않으니까... 아! 안돼! 이대로 추억으로 돌 릴 순 없어!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소리 : 여보세요?

지훈 : 저, 미경씨 좀 부탁합니다.

소리 : (미경의) 여보세요.

지훈 : 미경씨세요. 아, 네, 죄송합니다. 지훈인데요?

소리 : (미경의) 어머! (당황하며) 아니,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으면 어떡해요.

지훈 : 곧 졸업고사인데 제가 너무 힘들어서.. 한 번만 만날 수 없을 까요?

소리 : (미경의) 몰라, 몰라..! (전화를 끊는다.)

(지훈, 한숨을 쉬며 다시 전화를 건다.)

소리 : (아줌마의) 여보세요.

지훈 : 미경씨 좀 부탁합니다.

소리 : 미경이 지금 나갔는 데요.

지훈 : 네, 알겠습니다. (멍하니 전화를 끊으며 다시 한 숨을 쉰다.)

그림자 : (지훈에게 다가가며) 웬 한숨!

지훈 : 말 시키지 마! 지금 아무하고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림자 : 자기 자신도 싫어. 난 너야.

지훈 :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못 나 죽겠다. 벌써 채인 게 몇 번 째인지 몰라! 아, 나 좀 봐! 어디가 부족해! 잘 생긴 외모에 창창한 미래에...

그림자 : 왜들 찬 데?

지훈 : 몰라? 이상하게 잘 해주면 차드라구...

그림자 : 이상할 것 없어. 불신이 상식인 사회니까 이유 없이 잘 해주는 사람을 믿지 못해 그랬겠지.

지훈 : 왜 이유 없어? 사랑 있잖아?

그림자 : 사랑같은 소리하네?

지훈 : 특히 미경인 너무 했어. 결혼하기로 굳게 약속까지 해 놓고 차는 게 어딨 어!

그림자 : 그렇다고 고민할 것 있어. 또 다른 여자 만나면 되잖 아.

지훈 : 그 여자는 그냥 달아만 난 게 아니야. 내 순결까지 빼 앗고 달아났어.

그림자 : 순결?

지훈 : 응, 그녀하고 난생 처음 키스했거든! 난 그녀에게 이 미 더럽혀진 몸이야. 이 몸으로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 나니.

그림자 : (독백)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군. (지훈에게) 그녀가 왜 찼데?

지훈 : 몰라. 갑자기 채여서... 그런데 궁합때문에 찼다는 설 도 있어.

그림자 : 궁합?

지훈 : 응, 길거리에서 천원짜리 점쟁이 아줌마한테 심심풀이 로 점을 봤는데 궁합이 안좋데..

그림자 : 그 정도 때문에 우리 지훈이를 찼단 말이야. 혹시 다 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어디 내가 한 번 가서 물 어볼 까? (그림자 미경이 있는 건너 편 무대로 간다. 거기엔 미경의 그림자가 누워 있다. 그림자, 미경의 그 림자를 발로 찬다.) 가!

미경의 그림자 : 여긴 내 구역이야!

그림자 : 스.. (찰려고 한다.)

미경의 그림자 : 채인 주제에 찰려고 하기는... (퇴장)

(그림자, 미경의 발 밑에 눕는다.)

미경 : 병신같은 자식, 아직도 못 잊으면 어떡해! 그동안 날 스쳐간 남자가 하나 둘인줄 알아...

그림자 : 불쌍하지 않아?

미경 :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남자가 그래서 어디다 써. 여자 하나 못 잊고...

그림자 : 도대체 왜 찬거야.

미경 : 싫으니까 찼지.

그림자 : 어디가 그렇게 싫었어?

미경 : 뭐 그런 애가 다 있니? 우리가 데이트한 내용들을 모두 엄마, 아빠한테 조잘대는 거야. 또 내가 고고 미팅 했 다고 화를 내잖아?

그림자 : 화낼만 하잖아? 딴 남자 품에 안겨 춤을 췄는데...

미경 : 그런다고 내가 몸이 닳니, 살결이 거칠어지니.. 별꼴이 야.

그림자 : 그렇게 싫은 데 결혼 약속은 왜 했어!

미경 : 일단은 하나 챙겨 놓고 봐야지. 더 좋은 남자 나타나면 그때 가서 갈아 치우더라도..

그림자 : 더 좋은 남자가 나타난거야.

미경 : 아니, 궁합이 나빠서 찼어. 결혼하면 여자가 보따리 싸 갖고 달아난대. 그래서 미리 차버렸지.

그림자 : 사랑하는데 그따위 궁합이 무슨 소용이야!

미경 : 내 사전엔 사랑이란 단어가 없어. 태어난 것은 내가 원 해서 난 것이 아니 지만 두번째 선택은 잘해야 해. 그 러니 궁합이 좋아야 해.

그림자 : 첫 키스는 어떡하고?

미경 : (기가 막혀서) 어머, 걔 도대체 몇살이니!

그림자 : 에이, 이 창녀야! 잘 먹고 잘 살아라! (지훈의 곁으 로 건너간다.)

미경 : (깜작 놀라며) 뭐? 이게 무슨 소리야!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내가 잘못 들었나!

(미경의 그림자, 재빨리 미경의 발 밑으로 들어간다.)

미경의 그림자 : 아니 참녀, 참한 여자!

미경 : 그럼, 그럼.. 내가 얼마나 참하고 순진한데... 난 남자를 전혀 몰라!

(그림자, 지훈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인다.)

지훈 : 아, 썩을 년... 길에서 장난으로 본 그까짓 궁합 때문 에 결혼의 맹세를 헌신짝 처럼 던져 버려. 그래 잘먹고 잘살아라!

그림자 : 내가 그렇게 말해 줬어!

지훈 : 빌어먹을 년! 두고보자! 평생 날 찬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테다.

그림자 : 남자도 한을 품으니 무섭군!

지훈 : 내 속이 얼마나 좁은지 보여줄테다. 평생 잊지 않고 복 수할테다. 니가 가 야 어딜 가! 한국땅에 있지. 두고보 자, 두고보자, 두고보자...

그림자 : 정말 미경이와 헤어져서 괴로운 거야?

지훈 : 그럼..

그림자 : 솔직히 말해봐! 나한테 까지 속이려고...

지훈 : (한 숨을 쉬며) 사실 성적 공상이 괴로워!

그림자 : 구체적으로 말해!

(좌측 무대가 밝아지면서 지훈의 대역이 미경을 쓰러뜨린다. 저항하는 미경! 대역, 미경의 웃옷을 올리고 그녀의 젖가슴을 애무한다.)

미경 : 안돼, 안돼. 결혼 전까진 안돼!

(대역, 머뭇거리다 다시 다가간다.)

미경 : 안 돼! 약혼한 다음에 줄께!

(대역, 고개를 끄덕인다. 미경, 급히 옷을 추스린다.)

지훈 : 그 정도까지 했으니까 나는 내 여자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달아난 거 있지.

그림자 : 쯧쯧, 속았구나! 그러게 내 뭐랬어. 여자는 일단 먹 고 보랬잖아, 쑥맥 같기는...(깜작 놀라며 자기 입을 손으로 막는다.) 아니 어쩌다 내가 이런 진실을...

지훈 : 그래, 앞으로는 절대 실수안한다.

그림자 : 그런데 무슨 공상이야?

지훈 : 자꾸 그 때가 떠오르는 거야. 내가 그곳에서 그녀와 섹 스하는 공상이.

그림자 : 즐겁겠네!

지훈 :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

그림자 : 뭐가..

지훈 : 다 틀려. 공상할 때 마다 다 새로 와! 난 지금 그것 때 문에 미치겠어!

그림자 : 어떻게 달라. 발가벗고 섹스하는 게...

지훈 : 그럴 것 같지. 다 달라.. 쓰러뜨릴 때, 옷 벗길 때, 애 무할 때, 섹스할 때 순간순간마다 다 틀려. 우선 옷 벗 기는 것 만도 얼마나 여러가진데... 앞에서 벗기고, 뒤 에서 벗기고, 아래, 위..

그림자 : 좋겠네, 다양하고...

지훈 : 밤낮없이 그 생각만 해봐라. 좋은가.. 시험공부는 해야 하지. 공상은 자꾸 새롭게 떠오르지.. 아주 미치겠다!

그림자 : 하긴 난 너보다 더 심한 경우도 봤다.

지훈 : 뭐?

그림자 : 내 친구 주인이 어느 날 애인하고 늦게까지 술이 취 하도록 마셨데. 그래서 애인을 데리고 여관까지 들어 갔데...

지훈 : 그래서..

그림자 : 애인이 잠들었기에 옷을 벗겼데.

지훈 : 전부?

그림자 : 응, 브라자 빼고 다 벗겼는데 그만 브라자 끈 푸르는 데 깬 거 있지.

지훈 : 그래서..

그림자 :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하고 따져서 못했데.

지훈 : 쯧쯧..!

그림자 : 그래서 그냥 손잡고 잤데.. 너하곤 거꾸로지?

지훈 : 나같이 불쌍한 놈이 또 있구나..

그림자 : 자,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하구.. 공부 좀 해라. 또 낙 제하다간 10년 채우겠다.

지훈 : 그 때 아버지한테 속지만 않았어도 이 고생은 않는 건 데... 이게 사람사 는 거니. 시험, 경쟁, 낙제, 시험, 경쟁, 휴학..

그림자 : 그렇게 여자만 밝히니 공부는 언제 하겠어. 이젠 잡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훈 : 너가 있는 데 어떻게 잡생각 안하니?

그림자 : 오늘 밤은 달도 별도 뜨지 않는 그림자 축제 날이야!

지훈 : 뭐! 나도 가자!

그림자 : 그저 축제라면 다 끼려고..

지훈 : 그래도 이대 축제 한 번 못가봤어...

그림자 : 그림자들만 갈 수 있어! 너도 죽어서 그림자로 태어 나면 갈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지훈 : 뭐? 너도 전생에는 사람이었니?

그림자 : 몰라.. 전생을 누가 알겠어. 아무튼 난 축제에 갔다 올께!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나 찾지 말고 공부 열심 히 해!

지훈 : 그래,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와라! 나도 오래간만에 마음잡고 공부 좀 해야 겠다.

(그림자, 좌측 무대로 건너간다. 좌측 무대에는 그림자 왕, 미경의 그림자 등 여럿이 앉아 기다리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어 그들은 그 안에 그림자를 집어넣어 삶기도 하고 솥 주위를 돌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림자 왕 : 자, 우리 20년 만에 다시 모였으니 그동안 고생했 던 얘기들을 나눠봅시다. 여러분들의 노고 덕분에 다행히 우리 그림자 왕국은 보존될 수 있었어요. 이제는 별 위험이 없겠지요?

그림자 1 : 네,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이는 26 년동안 여자와는 섹스해 본적이 없으니까요.

그림자 왕비 : 정말 다들 고생하셨어요. 그러게 한 인간을 제 대로 키운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니까요..

미경의 그림자 : 거, 남자 차는 재미도 그만이던데요?

그림자 애인 : 열 계집 싫어하는 남자 없지요. 한 여자에게 깊 이 빠질만하면 재빨리 다른 여자를 붙여주었더 니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더군요.

그림자 내시 : 이제는 다 컸으니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성 싶 습니다. 그만 내버려 두시지요. 그 정도 밝히는 인간들은 무수하니까요.

그림자 왕 : (그림자1에게) 지훈이 그림자 생각은 어떻소.

그림자 1 : 우리가 그동안 추호도 감시의 눈총을 늦추지 않은 게 효과를 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내버려 둬도 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림자 2 : 요즘은 뭉개지 않습니까?

그림자 1 : (빙그시 웃으며) 요즘은 제대로 하지요. 나는 벽 에 기대 그 야릇한 표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살 맛이 난다니까요.

그림자 왕비 :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 껏 하며 살 게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림자 3 : 냅둬도 맘대로 못살 거에요. 그동안 독한 약이 너 무 많이 주입되서...

그림자 왕 : 좋소! 이제 그 일로 그만 고민합시다. 나머지는 지훈이 그림자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동안 쌓였던 회포나 풀어봅시다.

그림자 3 : 제가 먼저 노래를 불러 흥을 돋구겠습니다.

과거는 연기와 같은 것!

미래는 밍기적 밍기적 다가와도 지나간 것은 순식 간에 흩어져 버려!

흐르는 연기 속에 그래도 남는 것은 사랑뿐!

사랑이 없는 과거는 모두 다 흩어지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여인과 일생을 함께 했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일생을 함께 했다고...

사랑도 한줄기 연기에 불과한 것.

과거에 파묻히면 덧없이 흩어지고 다시 새로운 사랑 이 나타나 그를 사로잡지..

그것이 사랑의 진실인 것을...

삶의 필연인 것을..

(그림자들, 박수)

그림자 왕 : 뭔가 그 노래엔 사연이 깃들여 있는 것 같은데..

그림자 3 : 하도 변덕스러운 사람들이 많아서 지어 봤습니다. 어제까지 죽네 사네 사랑을 맹세한 사람일수록 헤 어지면 더 밝히니까요. 어째 인간들은 그렇게 잘 변하는 걸까요?

그림자 2 : 생명이 짦아서 그래! 삶이나 죽음이나 다 마찬가 진데 그것을 잘 못 깨닫고 조급하지!

그림자 내시 : 내가 모시고 있는 주인은 여자인데 또 너무 웃 겨요. 자랄 때 부터 도화살이 꼈다는 말을 자 주 들어 평생 경계하고 살았는데 결국 스스로 그 길로 들어서고 말았지 뭐예요?

그림자 1 : 어떻게?

그림자 내시 : 남자들을 안 만나려고 한사코 남자를 피하고 살 았는데 남자를 피해 살 수 있나요. 취직을 해도 집적거리지, 거리를 걸어도 집적거리지, 결국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돈 떨어지고 도망갈 곳 이 없어지자 룸 싸롱에 들어간 거예요.

그림자 왕 : 인간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자, 우리 어리석은 인 간에 대한 얘기는 그만하고 이 짧은 밤이 아침 이 슬로 끝나기 전에 마음 껏 우리의 어둠을 누려 봅 시다.

(그림자들, 격렬하게 춤을 춘다. 암전.)

( 3 장 )

(지훈, 지연과 정답게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림자 : 아니, 쟤가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야, 지훈아.

지훈 : 쉿, 조용해. 나 지금 바빠!

그림자 : 어떻게 된 거야. 졸업시험은 어떡하구.

지훈 : 잘 끝났어. 다 이 여자가 헌신적으로 도와준 덕분이야.

그림자 : 어떻게 도와줬길래 낙제생 마음을 잡아놨지.

지훈 : 말은 똑바로 하자, 낙제생이 아니라 휴학생이다..

그림자 : 아뭏든..

지훈 : 이 여자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줬어.. 한 번도 내 뜻을 거스리지 않았어. 내가 판단하고 결정 하면 아무리 엉뚱한 것이라도 다 존중해줬어. 이런 여자 를 세상 어디가서 또 만나냐. 내게는 천사고 구세주다..

그림자 : 하긴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산 적이 없으니까.. 어디 서 그런 천사를 구했어?

지훈 : 포장마차에서 신세타령하다가 만났어! 내가 세상 엿같 다 그러니까 너도 엿 같다고 하면서 아주 혼내잖아!

그림자 : 뭐 하는 여잔데?

지훈 : 공장 직공! 나 이 여자와 결혼할 거야!

그림자 : 너 여자 사귈 때마다 항상 그랬잖아.

지훈 : 이번엔 진짜야.

그림자 : 항상 진짜지. 이번엔 잘해. 차이지 말구.

지훈 : 걱정마! 절대 그런 일 없어.

(지훈, 지연 앞에 무릎꿇고 시를 읊는다.)

지훈 : 언젠가 당신을 꿈속에서 보았지요.

진리를 머금은 듯 그윽한 눈 빛은 나의 혼을 뒤흔들고 당신 앞에 바보처럼 서 있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였지요.

언젠가 당신을 여인들에서 보았지요. 당신이 느껴지기 에 당신인 줄만 알고 쫓아가고 매달려 보았지만 뒤에 남 겨진 건 어두운 그림자였어요.

(그림자, 다음 시를 읆고 지훈은 시를 읊는 마임을 한다.)

그림자 : 하지만 이젠 당신 앞에 무릎꿇겠어요.

당신을 빨리 만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당신을 포 기할 즈음 그윽한 눈 빛을 머금고 나타난 당신은 여 전히 나의 영혼의 아내였어요.

(사이) 항상 똑같은 레파토리지! 자기만 몰라...

지연 : 좋아요. 당신 사람이 되겠어요.

(지훈, 환호를 하며 지연을 얼싸안는다.)

지훈 : (지연의 코를 짚으며) 이 코는 누구꺼야?

지연 : 지훈이꺼!

지훈 : (지연의 입술을 더듬으며) 이 입술은?

지연 : 지훈이꺼!

지훈 : (지연의 목을 어루만지며) 이 목은?

지연 : 지훈이꺼!

그림자 : 아무리 다짐을 받아봐라!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지.

지훈 : (점점 지연의 아래로 내려가며) 헷갈리게 하지마! 하나 라도 빠뜨리면 다시 시작해야 해!

그림자 : 여자를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자유롭게 해 줘야 돼.

지훈 : 그것만은 못해. 같이 죽으면 죽었지. (지연에게) 이 발 가락은 누구거야.

지연 : 당신꺼!

지훈 : 휴, 다 가졌다. 자, 가자! 부모님께 말씀드려야지. 당 신이 날 도와줬다는 걸 알면 부모님도 틀림없이 당신을 좋아할 거야.

(지훈, 지연을 데리고 좌측 무대로 간다. 좌측 무대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 있는데 지훈이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자 깜짝 놀란다. 지훈, 뭐라고 열심히 얘기하자 어머니는 갑자기 죽겠다고 나뒹굴고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지훈, 지연과 부모님을 번갈아 보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선다. 따라 나가는 지연. 지훈, 지연을 데리고 우측 무대로 가 벤치 앞에 앉는다. 조명 어두워 진다.)

지훈 : 춥지! (지연을 따스하게 감싼다.) 이 저수지는 너무 넓 어서 바람이 세.그래도 이 근방에선 고기들이 제일 많 아! (관객들 가리키며) 봐, 우글우글하지!

지연 : 정말 이 길 밖엔 없는 걸까?

지훈 : 오늘 봤잖아. 우리 엄마, 죽겠다고 나뒹구는 거... 난 사람이 아니야. 의대생이야. 비싼 상품으로 팔려가야 하는 의대생!

지연 : 당신이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지훈 : 쓸데없는 소리! 사랑이 무슨 돼지 홀레 붙이는 건 줄 알아! 당신은 내게 생명과 다름없는 존재야! 지금까지 내 판단을 당신만큼 존중해 준 사람은 없었어. 모두 다 이래라 저래라 시키기만 했지. 그런데 지연이는 한 번도 나를 거역하지 않았어.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 어줬고 항상 날 존중해 줬어. 난 지연이를 만나면서 부 터 이 사회를 헤쳐 나갈 힘과 용기가 생긴 거야. 지연 이와 결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죽어있는 삶이나 죽음이나 마찬가지니까..

(지연, 조용히 지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지훈 : 물론 날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 아니 우리 사회 그 누구도 의도적으로 날 생명없게 만들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그러나 내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데 그렇게 까지 방해한 다면 난 거부할 수 밖에 없어. 더 이상 생명없는 삶을 살 바에야 난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어. 이젠 죽음만이 나의 삶이 야!

그림자 : 말 된다고 생각해!

지훈 : 말 걸지마! 심각해!

지연 : 난 당신에게 잘 해 준 것이 없어. 당신을 사랑하고 존 중한 것 뿐이지.

지훈 :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내게 삶과 영혼을 찾아 준거야. 내 주위에는 온통 남들에게 으시대기 위한 삶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 밖에 없어. 난 더 이상 그들의 꼭두각시가 될 순 없어.

지연 : 이제 그만 생각해! 난 아무래도 좋아..

지훈 : (독백) 그래, 기왕 벌릴 일이라면 빨리 해치우자. 더 시간을 끌다가 날 이라도 밝으면 곤란해. 괜히 시끄럽 고 또 만에 하나 남의 손에 구해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어. 내 인생을 또 누가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지연의 허리를 안고) 사랑해!

(어둠, 첨벙 소리!)

소리 : (지연의 독백) 이젠 마지막이다.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이 선택이 어리석은 줄은 알지만 그를 깨우쳐 주 고 싶지는 않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린 선택이니까.. 사랑하니까 그를 따를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것이다.

(갑자기 무대가 파랗게 밝아지며 지훈, 헤엄치는 동작으로 무대를 걷는다. 지훈의 주위로 얼굴에 잉어탈과 송어 탈을 쓴 조수들이 지나간다. 지연은 없다.)

송어 : 인간이란 하나같이 저렇게 어리석단 말이야.

잉어 : 그러게. 부모가 반대한다고 죽긴 왜 죽어.

송어 : 나 같으면 차라리 부모를 죽여버리겠다. 사람 대가리로 는 사랑도 제대로 못해.

잉어 : 물고기보다 못한 연인들이지...

지훈 : 어떻게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설령 부모님을 죽인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결혼할 수 있단 말입니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텐데...

(송어가 몸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리며 꼬리로 지훈의 얼굴을 때린다.)

송어 : 정신차려 이 친구야! 부모님의 육신을 죽일 수 없다면 정신을 죽여 버리면 되잖아!

지훈 : 어떻게요? 부모님을 정신병원에라도 가두라는 건가요?

잉어 : (송어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머리 나쁜 애라는 것을 잊지 말고..

송어 : 참, 그렇지.. (지훈에게) 그냥 전같이 똑같이 살면 돼! 단지 부모님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인생 문제를 뭐 시 시콜콜 다 얘기해. 내 인생은 내거니까 그냥 조용히 있 다가 자립할 때 되면 둘이 따로 나가서 살면 돼! 허락은 누구에게 허락받아! 둘이 이미 허락했는데..

지훈 : 그렇구나.. 지연아, 지연아... 어, 얘가 어디갔지? 지 연아, 지연아... (퇴장한다. 어둠.) 푸푸! 사람살려... 사람살려... 지훈이 살려..

(무대 밝아지며 그림자, 엎드린 지훈의 등을 부지런히 두들긴다. 왝왝 거리는 지훈.)

그림자 : 에구, 병신.. 수영도 못하는 게...

지훈 : (뒤로 벌렁 누우며) 에고 죽겠다. 하아 - 하아 - (사 이) 지연은?

그림자 : 갔어.

지훈 : 어디로?

그림자 : 멀리..

지훈 : 집에?

그림자 : 아니.. 저 세상으로...

지훈 : 아니, 넌 뭐 했어?

그림자 : 그림자가 뭘 할 수 있겠어. 널 구해준 건 내가 아니 라 지연이야.

지훈 : 지연이가?

그림자 : (고개를 끄덕이며) 너가 푸푸 거리며 살려달라 그러 니까 지연이 널 밀 어냈어.

지훈 : ....

그림자 : 끝까지 네 말을 따른거지. 그리곤 자기는 갔어.

지훈 : 왜?

그림자 : 너가 같이 죽자고 했으니까...

지훈 : 이럴 수가... 사람살려 하지 말고 우리 살려할 껄!

그림자 : 그래, 그러면 지연이도 살았을 지 모르지..

지훈 : 지연아, 지연아... (운다.) 지연아... (또 뛰어 들려고 한다.)

(그림자, 멍하니 바라본다.)

지훈 : 안 잡아!

(그림자, 고개를 끄덕인다.)

지훈 : (팔 내밀며) 빨리 잡아! 나 정말 뛰어 든다.

그림자 : 이제 떠나야 할 것 같아?

지훈 : 뭐?

그림자 : 난 삶이 있어야 움직이고 존재할 수 있어. 그런데 너 는 죽음을 찾으니 곁에 머물 수 없어.

지훈 : 안 죽으면 되잖아!

그림자 : 이미 한 사람이 죽었어. 너 곁에는 이제 지연의 그림 자가 따라 다닐 거야. 죽음의 그림자가..

지훈 : 처녀 귀신이.. (사이) 처녀 귀신은 되게 무섭다는데..

그림자 : 처녀는 아니잖아.

지훈 : 그래도..

그림자 : 왜 지연이 귀신은 싫어?

지훈 : ....

그림자 : 남자들이란... 걱정 마, 널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잘 있어? 너가 다시 삶의 한 가운데로 나올 때 돌아 올 께?

지훈 : 가지마!

그림자 : (단호히) 가야해! 삶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인간 세상이나 그림자 왕국에서나 가장 쓸모없는 사람들이 야. 같이 놀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독백) 죽음의 그림자가 옆에 있는 한 밝힐 수는 없겠지. 죽음의 그 림자만큼 어두운 것은 없으니까... 이 기회에 나도 어디가서 몸 좀 풀어야겠다. (퇴장)

지훈 : 그림자야...

- 2 막 -

( 4 장 )

(하얀 가운을 입은 지훈, 건너 편에 여자 환자 미희가 앉아 있다.)

미희 :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두근거리고 불안 초조하 고 속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고, 밖에 나가 기도 싫고 입맛도 없고 미칠 것 같고 매사 의욕이 없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들어요.

지훈 : 홧병입니다. 화내지 않으면 좋아질 겁니다.

미희 : 저... 사실은 선생님을 그리워 하다 그랬어요. 선생님 을 만나고서부터 남편에 대한 마음이 더욱 멀어졌고, 아무리 뿌리치려고 해도 선생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엊그제는 T.V.에서 의사 선생님과 그 애인이 키스를 하는데, 제가 그 애인이고 그 의사 선생님이 바 로 선생님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 했어요. 선 생님의 그 입술에 키스를 하면 얼마나 신선하고 감미로 울까 하는 상상에 혼자 빠져 들었죠. 선생님, 제가 참 바보죠?

지훈 : ...

미희 : 선생님은 왜 이런 저를 꾸짖지 않나요? 제가 얼마나 바 보같고 어리석은지 왜 지적하지 않아요. 제가 이런 식으 로 얘기를 꺼내면 다신 보지 않겠다고, 오지 말라고 왜 강하게 나오지 않으세요... 선생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제 내 일상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어요.

지훈 : 좋습니다. 부인. 그러면 이제부터 제가 이 방안의 창문 커튼을 모두 치고 저 문을 잠근 다음 부인 옆에 가 부 인을 포옹하겠습니다. 다음에 부인을 소파에 눕히고 옷 을 하나씩 벗겨 알몸으로 만든 다음 섹스를 하겠습니 다. 어떻습니까? (일어나려 한다.)

미희 : (당황하며) 그건 싫어요. (황급히 일어나 이상하게 쳐 다보며 퇴장.)

지훈 : 환자들이란... 직접하자 그러면 다들 피하니.. 그러니 노이로제에 걸리 지.. 현실에 부딪껴야지, 현실에...

(지연, 소리없이 등장해 건너 편에 앉는다.)

지연 : 지훈아!

지훈 : 악!

지연 : 놀라지마!

(지훈, 일어나서 달아나려 한다.)

지연 : 지훈아, 가지 마! 나 너무 춥고 외로워!

지훈 : (떨리는 목소리로) 지연아... 미안해!

지연 : 괜찮아. 너가 이렇게 놀랄까봐 안 나타나려 했는데...

지훈 : 어떻게 지냈어!

지연 : (쓸쓸히) 그냥... 곧 저승문이 열려!

지훈 : ....

지연 : 이제 저승으로 들어가야 해!

지훈 : 지금까지 떠돌았구나...

지연 : 괜찮아! 너가 잘 살면 되지, 뭐!

지훈 : 내가 같이 죽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지연 : 내가 타고난 운명이니 안타까울 것 없어.. (사이) 이제 저승으로 들어 가게 되면 우린 이번 생에선 다신 만나지 못하게 돼!

지훈 : 그럼...

지연 :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래서 모든 것 무릅쓰고 나타난 거야. 지훈아,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줄래?

지훈 : 그래, 말해! 뭐든지 들어줄께!

지연 : 죽은 다음에 가장 안타까운게 뭔지 아니? (옷을 어깨로 부터 내려 한 쪽 젖가슴을 꺼내고 어루만지며) 너의 촉 감을 못느끼는 거야! 너가 내 젖 가슴을 애무할때 난 너 무 황홀했어. 죽은 다음엔 아무리 해도 그 감촉을 느낄 수 없어.

지훈 : ...

지연 : 한번만 예전같이 좀 해줄래! 너가 나하고 단 둘이 조용 히 얘기하고 싶다고 데리고 갔던 그곳에서 한 것처럼..

(지훈, 멀뚱히 일어나 지연에게 다가가 지연의 젖가슴을 애무한다.)

지연 : 너무 좋아! 사랑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그림자, 등장. 지연, 사라진다.)

그림자 : 뭐해!

지훈 : (계속 허공을 애무하며) 나도 너무 좋아!

그림자 : (큰소리로) 뭐해!

지훈 : (깜짝놀라며) 지연아! 어.. 넌..

그림자 : 안녕!

지훈 :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연인..

그림자 : 갔어!

지훈 : 안돼! 안돼!

그림자 : 다 널 위해서야! 그래도 기특하다. 처녀귀신 아니 여 자 귀신을 그렇게 위로해 줬으니....

지훈 : 지연아....

그림자 : 자, 기운 내! 내가 다시 왔잖아! (지훈을 뒤에서 안 고 몇 번 들었다 놨 다 한다.)

지훈 : 놔! 놔! 지연아..

그림자 : 지연이가 왜 떠났는지 알아?

지훈 : 왜?

그림자 : 너가 딴 여자 밝히기 시작하니까 떠나간 거야! 너가 계속 지연일 그리워하면 지연이는 떠날 수 없어! 영 혼은 그리워하는 사람의 품속에 있으니까..

지훈 : 그렇다면...

그림자 : 니 바람기가 그녀를 편안하게 저승으로 인도한 거야.

지훈 : 그랬구나. 언제부터인가 그녀 생각이 멀어지기 시작하 더니.. 이게 다 내 사랑이 부족한 탓이야. (꿀밤 을 때린다.)

그림자 : 자책할 건 없어! 그만해도 많이 참은 거니까.. 그러 니까 나도 이렇게 돌아온 것 아니야!

지훈 : 왜 이제야 나타났어!

그림자 : 한 인간에게 두 개의 그림자가 따라 다닐 수 없어!

지훈 :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림자 : 데이트 좀 했지.

지훈 : 너도 채였지.

(그림자, 얼굴을 붉힌다.)

지훈 : 보나마나지. 내 그림자가 별 수 있을 라고.

그림자 : 주인을 잘 못 만나서 그래. 그런데 정신과 의사가 된 거야.

지훈 : 응. 지연이 죽은 후로 너무 괴로와서 마음 아픈 사람을 치료할려고 정신과를 택했지.

그림자 : 집에서 반대는 없었어.

지훈 : 심했지, 정신과 의사가 무슨 의사냐고.. 아버지는 내과 를 하면 젊은 여자들 가슴을 많이 만질 수 있다고 꼬셨 지만 이번엔 뿌리쳤어.

그림자 : 내과한다고 어떻게 여자 가슴을 함부로 만져?

지훈 : 청진기 대면서 만지면 된다나?

그림자 : 여전하시군. 차라리 산부인과를 하라고 하시지. 요즘 은 누구 만나!

지훈 : 이 여자, 저 여자!

그림자 : (놀라며) 아니 한 여자가 아니야?

지훈 : 응!

그림자 : 여러 여자들을 다 사랑한단 말이야?

지훈 : 아니, 섹스만 해.

그림자 : 섹스만?

지훈 : 건강을 위해서 섹스를 하지. 남녀가 만나서 할 거라곤 그 짓 밖에 더 있어.

그림자 : 이럴수가, 잠시 방심한 사이에...

지훈 : 이상해. 지연이 하고 헤어진 후 오히려 여자만 보면 더 마음이 동해! 아줌마에게도 매력을 느끼고, 여자 아이에 게도 성욕을 느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못생긴 여자에게 까지 다 사랑이 느껴져.

그림자 : 그건 나하고 헤어져서 그래!

지훈 : 뭐?

그림자 : 아, 아냐!

지훈 : 애정 영화나 소설보면 사랑하는 여자와 어쩔 수 없이 헤어지면 추억속에 서 나머지 인생 보내는데.... 난 왜 그렇게 안 되지.

그림자 :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앞으론 그렇게 될 거야. (독 백) 저 바람기를 어떻게 막지? 그래.. (지훈에게) 지 훈아, 그냥 내 개인적으로 궁금헤서 묻는 건데 그중 에서 어떤 여자가 제일 멋있었어!

지훈 : ‘NO’할 줄 아는 여자가 아름다웠어!

그림자 : ‘NO’할 줄 아는 여자가?

지훈 : 응! 발가벗은 다음엔 다 똑같지만 그래도 ‘NO’할 줄 아 는 여자가 가장 인상적이더라구.

그림자 : 왜!

지훈 : 그녀들은 생기가 있거든.. 그녀들은 내가 가진 게 아니 라 그네들이 가졌 어!

그림자 : 뭐?

지훈 : 내가 먹혔다니까... 그들이 먼저 자자고 해서 고분고분 끌려갔어. 그래서 체위도..

그림자 : 그만 그만.. 그 얘기만 나오면 끝이 없구나.

지훈 : 지가 먼저 물어봐 놓고..

그림자 : 근데 언제까지 밝히기만 할거야. 결혼은 안할 거야?

지훈 : 해야지, 그러나 어디 지연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어야 지.

(수연, 등장. 건너편에 앉는다. 그림자, 지훈의 뒤에 가서 비스듬히 선다.)

지훈 : 어떻게 오셨습니까?

수연 : 요즘 너무 혼란하고 내 느낌을 몰라서 오게 됐어요. 최 면에 걸리면 내 느낌을 알 수 있다던데 가능할까요.

지훈 : 물론이죠.

수연 : 그렇다면 최면을 걸어주세요. 제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정한 내 마음을 알고 싶어요.

지훈 : 의자에 몸을 기대고 숨을 깊이 몰아쉬었다가 내쉬었다 가 반복 하세요.

(우측 무대가 어두워진다.)

지훈 : 이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에 있다고 생 각하시고 자기 몸이 아주 가볍게 둥둥 떠오른다고 생각 하세요. 네, 좋습니다. 이제부터 무슨 얘기라도 좋으니 떠오르는 데로 얘기하세요.

(좌측 원 밝아진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수연을 잡아서 남편에게 팽개치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연을 두들겨 팬다. 수연, 달아나려고 하지만 남편은 수연이 달아나는 길목을 막고 무지막지하게 팬다. 고소해 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수연, 한참 얻어맞다가 문득 남자의 손이 입에 들어오자 힘껏 깨문다.)

남자 : 아악! 이게 어딜 물어! 너 같은 년은 이빨을 뽑아버려 야 해!

(남자, 또 패면서 수연의 입을 두 손으로 크게 벌리고 아래 이빨을 손가락으로 힘껏 잡아 뺀다. 수연, 비명을 지르다가 입을 막고 주저앉고 남자, 이빨을 뽑아 든다. 수연, 비명을 지르며 우측 무대로 뛰쳐 나온다. 우측 무대 밝아진다.)

수연 : 그 사람이 정상이에요? 정신병자 아녜요?

지훈 : ...

수연 : 그런데 사람들은 뭐래는지 아세요. 25세에 교수 부인이 라면 출세한 거니 참으래요. 자기도 칼만 옆에 있으면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참고 산 다고 하면서 행복한 줄 알라는 식이예요. 그렇다면 제가 잘못한 건가요. 저는 남편한테 얻어맞으면서 두 번이나 유산까지 했는데 그러면서도 참고 살아야 하나요. 도대 체 저는 어떻게 해야 옳은 거죠?

지훈 : 꿈은 어떤 꿈을 많이 꾸시죠?

수연 : 요즘은 잘 안 꾸지만 결혼 전에는 사다리 꿈을 많이 꿨 어요.

지훈 : 사다리하면 어떤 생각이 나나요?

수연 : 사다리타고 높은 데 올라가는..

지훈 : 평소 성공지향적인가요?

수연 : 네, 전에는... 아마 그래서 지금 이 남자와 결혼했을 거예요. 조교수라고 해서 두 달 만에 결혼했으니까요.. 아, 저는 어떻게 하죠. 또 그 인간은..

지훈 : 냅 둬요. 그데로 살게!

수연 : 너무 분하고 원통하잖아요? 망가져 버린 내 인생은 어 떡하구요?

지훈 : 싸워봤자 더 손해예요. 어둡고 칙칙하기만 할 뿐이지..

수연 : 그럴까요?

지훈 : 마마 보이로 평생 살라고 해요. 평생 자유라는 것은 못 느낄 테니까..

수연 : 그래도...

지훈 : 마마 보이의 특징은 마누라를 패는 거죠. 아이가 결혼 하니까 마누라를 감 당할 수 없어 주먹부터 나가는 거예 요.

수연 : 이 몸으로 어디 시집갈 수도 없고... 이제는 남자를 믿 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지훈 : (으쓱거리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많죠. 남에게 으시 댈 생각만 안하면 행복할 수 있는 상대는 얼마든지 있어 요.

(수연, 흐느낀다.)

지훈 : (그림자에게) 어때! 이쁘지!

그림자 : 또 발작이구나. 너 환자 잘 못 건드렸다가 신문에 난 다. 신문에 잘 못나면 매장돼. 우리나라가 매장의 철 학이 지배하는 나란거 몰라. 마모시캥이 봐! 한 번 혼 나고 나니까 꼼짝못하잖아!

지훈 : 일생 건드리고 살면 되잖아?

그림자 : 본격적으로 바람피울라구.

지훈 : 총각이 무슨 바람... 나 저 여자와 결혼할 거야!

그림자 : 뭐?

지훈 : 상처 있는 사람끼리 만나야지.

(지훈, 수연에게 다가가 일으키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돌리며 키스를 한다.)

수연 : 어머! 엄마! (비명을 지른다.)

(지훈, 깜짝 놀라며 무릎 꿇고 삭삭 빈다. 수연, 입을 막고 기가 막힌 듯 바라보며 주저앉는다.)

그림자 :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 재주에 재롱피우긴... 하지만 입을 맞추긴 맞췄네! (관객들에게) 그러고 일 주일이 지났어요.

(수연, 일어나 다시 지훈의 건너편에 앉는다. 지훈, 괜히 쑥스러워 하며 얼굴을 돌린다.)

지훈 :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수연 : 어떻게 지냈을 것 같아요?

(지훈, 얼굴이 빨개지며 챠트에 무언가 적는 시늉을 한다.)

수연 : 가까이 가도 돼요?

지훈 : 네..?

(수연, 지훈에게 다가가 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는다.)

수연 : 저 좀 안아줄래요?

(지훈, 일어나 수연을 버럭 껴안는다.)

수연 : 키스는 마약과 같아서 한 번 하고 나면 자꾸 또 하고 싶어져요. (지훈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그림자 : (관객들에게) 그래서 첫 키스가 중요한 거라니까요.

지훈 : (숨이 가빠지며) 저, 단 둘이 있는 곳에 가면 안돼요. 조용히 할 말이 있는데요.

그림자 : 점점..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하루하루 무르익어 갔 어요.

지훈 : 한 가지만 약속해 줘요.

수연 : (지훈의 입술을 더듬으며) 뭔데요?

지훈 :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요.

수연 : (계속 지훈의 입술을 더듬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요. 화낼 때는 낼 수도 있는 거 아녜요.

지훈 : 그래도...

수연 :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지훈 : (수연의 두 눈을 어루만지며) 어느 날 이 두 눈에 씌워 진 첫키스의 막이 벗겨지면 화가 날지도 몰라요.

수연 : ....

지훈 :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사랑이 미움으로 바뀔지도 몰 라요.

수연 : (발끈하며) 키스는 안 해 주고 자꾸 딴 얘기만 하면 화 낼 거에요.

지훈 : 아, 알았어요. (서둘러 키스를 한다.)

수연 : (지훈을 안으며) 뭐가 그렇게 불안해요. 전 그렇게 변덕스러운 여자가 아니예요.

그림자 : 겁은 많아서...

(어둠. 촛불이 하나씩 켜진다. 지훈과 수연, 마주 서 있고 그림자가 둘 사이에 서 주례를 선다.)

지훈 : 나 지훈은 수연을 아내로 맞아

수연 : 나 수연은 지훈을 남편으로 맞아

지훈 : 부자일때나 가난할 때나

수연 :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지훈 : 사랑하고 존경하며

수연 : 도웁고 아끼며

지훈 : 해가 뜨나 달이 뜨나

수연 : 매일을 하루같이

지훈 : 지금부터 영원히

수연 : 죽음이 우리를 가를 때까지

지훈 : 이 반지로 결혼합니다.

수연 : 이 반지로 결혼합니다.

그림자 : 이제 두 사람의 결혼이 성사가 되었음을 만천하에 알 립니다. (책상을 두어번 두드린다.) 짝짝짝!

(지훈, 수연 키스를 한다.)

수연 : 괜찮을까? 우리 결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게...

지훈 : 지금 만천하에 알렸잖아!

수연 : 그래도 부모님한테는...

지훈 : 부모님이 필요한 결혼은 부모님이 알아서 하라 그래.

수연 : 사랑해요.

지훈 : 사랑해!

수연 : 그런데 이렇게 결혼식 올릴 생각은 어떻게 했어?

지훈 : 물고기한테 배웠어!

수연 : 뭐?

지훈 : 아, 아니! 한 쌍의 물고기같이 행복하게 살자구.. 수연 아, 너는 내가 왜 결혼식장으로 이 진료실을 택했는지 알아?

수연 : ...

지훈 : 성공하는 결혼이란 아마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 치료하 며 사는 결혼일거 야. 일생 살다보면 별일이 많을 텐데 조금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헤어질 것 부터 생각하면 그 결혼이 어디 오래 가겠어.

수연 : 그런데 왜 나보고 이혼하라 그랬어?

지훈 : 응, 그건.. (머뭇거리다 그림자에게) 야, 이런 땐 어떻 게 대답해야 하니?

그림자 : 솔직하게 대답해. 마음에 드는 여자는 수단방법 안 가리고 차지하고 보는 거라구..

지훈 : 그러다 날 경멸하면 어떡해.

그림자 : 정직이 최선의 방법이야.

지훈 : 안돼. 그러니까 밤낮 채이지. 여자한텐 거짓말을 능수 능란하게 해야 해. 속고도 나중엔 포기하는 게 여자니 까... (수연에게) 응, 그건 수연일 과부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수연 : 뭐?

지훈 : 그 남자는 수연이와 더 살았다가는 아마 자살했을 거 야.

수연 : 정말?

지훈 : 그럼, 자기 혐오를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까.. 부인이란 자기 영혼인데 영혼을 그렇게 학대하면서 어떻게 살아. 영혼 없는 삶이란 죽음보다도 못 해요. 그러니 서로를 위해서도 이혼은 잘 한 거야.

수연 : (지훈의 품으로 파고 들며) 다시는 그렇게 아프고 싶지 않아요.

지훈 :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림자 : 도사 다 됐군!

지훈 : (그림자에게) 너 이제 내 곁에서 좀 떠나줄래.

그림자 : 뭐?

지훈 : 이제부터는 수연이가 내 그림자야. 넌 어둠속에 들어가 서 다신 나오지마!

그림자 : 이럴 수가...

지훈 : 앞으로 밤마다 온갖 짓을 다 할텐데 너가 옆에 있으면 쑥스럽잖아?

그림자 : 너... 조강지처 버리고 잘 되는 사람없다...

지훈 : 내 조강지처는 수연이야! 너 빨리 안 없어질래?

그림자 : 나쁜 자식, 단 물만 다 빨아먹고...

지훈 : 자꾸 시끄럽게 굴래.

그림자 : 알았어, 알았어. 가면 될거 아냐? 그런데 지훈아, 내 충고 하나 하겠는 데 결혼한다고 뭐 달라지는 거 없어! 결혼해도 나같은 친구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구. 외로울 때 같이 놀 친구정도는..

지훈 : 필요없어. 난 마누라만 사랑할 거야...

그림자 : 그래 잘먹고 잘살아라! 나쁜 자식, 아쉬울 날이 있을 거다. (지훈의 뺨 을 한데 갈기고 퇴장한다.)

지훈 : 아야!

수연 : 어머, 왜 그래요?

지훈 : 아, 아냐.. 수연일 사랑할 생각하니까 갑자기 너무 좋아서.... (수연을 안는다.)

(암전.)

( 5 장 )

(지훈, 수연이를 얼싸안고 돈다.)

지훈 : 만세. 우리 마누라, 최고다!

수연 : 난 다시는 임신 못할 줄 알았는데...

지훈 : 내가 누구냐, 호색한 아니냐.. 읍! (입을 막는다.)

수연 : 당신 애기나면 어떻게 키울 거야.

지훈 : 부모, 자식 관계가 활과 화살 같다는 얘기 들어봤어? 부모가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으면 자식은 바람을 가르고 쏜살같이 날라가지. 난 우리 아이를 가능한한 힘 껏 당겼다가 미련없이 놓을 거야.

수연 : 난 그렇게 못할 것 같어. (배를 만지며) 이 귀여운 아 이를 어떻게 놔 줘?

지훈 : 걱정마, 내가 그렇게 해줄 테니까... 활시위를 놓지 못 하면 자식은 평생 부모 곁에 머물 수 밖에 없어. 그런 자식 어디 쓸모 있겠어.

수연 : 당신 가만히 보면 순 독재야.

지훈 : 우리 사회에서 고부간의 갈등, 청소년문제, 노인문제가 왜 심각한 지 알아! 다 남자들이 약해서 그래. 남자들 이 아버지임을 포기하고, 가장임을 포기하니까 밤의 여 왕인 여자들이 대낮까지 지배하는 거야.

수연 : 나 당신한테 부탁 한가지만 해도 돼?

지훈 : 뭔데? 우리 마누라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지.

수연 : 응, 우리 엄마가 어렵게 취직자리 구해왔어.

지훈 : 웬 취직?

수연 : 전에 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자린데 내 전공도 살릴 수 있고 장래성도 좋아.

지훈 : 애는 누가 키우고..

수연 : 파출부 부르면 되잖아! 요즘 파출부 괜찮은 사람은 엄 마보다도 애를 잘 본데...

지훈 : 그만 둬. 나중에 애나 크면 다녀.

수연 : 구하기 힘든 취직자리라 엄마가 꽤나 애 썼는데...

지훈 : 아이가 7살때 까지는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해! 정서적 안정에 필수적이라구.

수연 : 그래도... 엄마가 ...

지훈 : 너 자꾸 엄마 타령할래.

수연 : 좋은 기횐데.. 이 번 딱 한 번만 하면 안될까?

지훈 : 안돼!

수연 : ...

지훈 : 할거야?

(수연, 입을 뾰족 내밀고 아무 말도 안한다.)

지훈 : 정말 할 거야.

수연 : ...

지훈 : 너 내 말 안들으면 나 지금 죽어 버린다.

수연 : ....

지훈 : 안 죽으면 오늘 부터 바람피운다.

수연 : ...

지훈 : 똥고집쟁이 같으니.. 입술도 꼭 똥구멍같이 생겨서...

(일어난다.)

수연 : 어디 가?

지훈 : 바람피우러?

수연 : 정말 바람 피울 거야.

지훈 : 그럼!, 난 마누라 안 때려. 말 안 들으면 말 잘 듣는 여자 만나러 가지.

수연 : (한 숨을 쉬며) 남자들은 다 똑같아. 알았어. 그럼 이 렇게 하자. 내가 당 신 부모님 모시고 살께. 당신 부모님 이 나 직장다니는 동안 우리 애 봐 주시면 되잖아.

지훈 : 그래... (자리에 앉으며)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자. 대리모가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수연 : 그런데 부모님이 같이 살겠다고 허락하실까?

지훈 : 물론.. 우리 엄만 나랑 사는 게 평생의 소원이니까. 그 런데 너 고생 좀 할 거다. 우리 엄만 날 아들로 생각하 는 게 아니라 남편으로 생각할 테니까...

수연 : 당신이 잘 도와줘야 해!

지훈 : 그럼.. 내가 누구니.. 소문난 애처가 아니니... (수연 에게 뽀뽀한다.)

수연 : 당신 그런데 왜 그렇게 마누라를 이잡듯 잡아!

지연 : 그게 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 그래. 고부간의 갈등이 왜 생기고 비행 청 소년 문제, 노인 문제등이 생기는 지 알아! 그건 다 남자들이 약해서 그래.. 남자들이 파워를 잃으니까 밤의 여왕인 여자들이 낮에까지 그 위세를 떨 치는 거라구...

수연 : 그 말은 아까 했어. (한 숨을 쉰다.)

(좌측 무대에 핀이 떨어지며 어머니 등장.)

어머니 : 같이 살되 조건이 있다. 월급은 내가 관리하고 생활 은 내가 한다.

(우측 무대의 지훈에게도 핀이 떨어진다.)

지훈 : 월급은 그렇겐 안 됨. 반반씩 나눠 주겠음.

(수연에게도 핀이 떨어진다.)

수연 : 어머, 여보! 이 돈으로 어떻게 살아요.

지훈 : 왜,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그게 부족하다고 하면 남 들이 욕해!

수연 : 그래도 아가방도 만들고 집도 늘리려면 돈을 저축해야 죠?

지훈 : 집 커 봤자 귀신만 들락거려!

수연 : 애들 방에 침대도 놔주고 이쁘게 꾸며주고 싶단 말이예 요.

지훈 :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

수연 : 그래도 우리 노후 대책도 세워야 하고...

지훈 : 알았어.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봐! 인천에 배만 들어 오면...

(어머니에게 핀이 다시 떨어진다.)

어머니 : 요즘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아니? 너 십만원 가지 고 장에 나가봐라! 살게 없다. 살게 없어! 또 관리비는 얼마나 드는지 알어?

지훈 : 알았어요. 촌지라도 들어오면 더 드릴께요.

(아버지에게로 핀이 떨어진다.)

지훈 : 아버진 왜 또 나서세요?

아버지 : 난 왜 돈 안주냐?

지 훈 : 엄마한테 드렸잖아요?

아버지 : 엄마가 나한테 돈 주냐. 나 돈 하나 없다. 나 약 사 먹게 돈 좀 다구.

지훈 : 같이 쓰세요. 나 돈 없어요. 맨날 카드 긋고 산다구요.

아버지 : 너가 지금까지 이렇게 큰 게 너 혼자 큰 줄 알아! 너 우리가 월급 다 갖고 오래도 할 말 없다.

지훈 : 돈, 돈 하지 마세요?

아버지 : 아니, 이놈이.. 내가 언제 돈, 돈 했냐!

(무대 밝아진다.)

어머니 : 아니 내가 언제 돈, 돈 했어.

수 연 : 아니 제가 언제 돈, 돈 했어요?

(지훈, 인상을 팍 찡그린다.)

어머니 : (수연에게) 그리고 너도 그렇지, 내 아들 돈을 내가 갖는데 너가 무슨 참견이냐?

수연 : (우물쭈물하며) 그래도 우리도 장래도 생각해야 하고.

어머니 : (버럭 소리지르며) 뭐야! 넌 내가 죽은 다음에도 내 아들 돈을 실컷 만져볼 수 있잖아?

지훈 : (더 버럭 소리지르며) 난 어머니 아들이 아니야. 수연 이 남편이지.

어머니 : 뭐라고? 아니 이놈이.. 아이구.. (비틀거린다.)

아버지 : 아니, 이런 녀석이.. 버르장머리 봐라! (몽둥이를 찾 는다.)

지훈 : 에이, 정말.. (의자를 집어 들고는 아버지에게 팰 듯 이 다가간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아버지 : 이 녀석이... (말을 못 잇는다.)

지훈 : 어쩌겠다는 거냐구? (의자를 집어 던져 부숴 버린다.)

(어머니, 비틀거리다 말고 황급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어머니 : 너 아버지 때릴 거냐?

아버지 : 나 저 놈 하고 안산다. 나 따로 나가 살랜다. 우리 가문에 저런 놈 없 다.

지훈 : 맘대로 해! 나도 지긋지긋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꺼낸다.) 자 가져! (아버지에게 돈을 던지며) 이 건 아버지 몫이야! (어머니에게 던지며) 이건 어머니 꺼 구. (수연에게도 돈을 던지려 하나 돈이 없다. 주머니에 서 동전 몇 닢을 꺼내 던진다.) 이건 너 가져! 다 가져! 다 가져가! 지금 자식, 남편하고 장사하는 거야 뭐야. 다들 돈벌레야.. (퇴장.)

(지훈 부모, 수연, 모두 그림자가 된다.)

그림자 왕 : 저런 개자식! 감히 엇다 대들어! 엉! 담당장 어딨 어.

왕비 : 부모의 공도 모르는 저런 놈들은 단단히 혼내줘야 한다 구요, 단단히..

내시 : (그림자 1을 찾는다) 뭐하구 있어?

그림자 2 : 히히히 (정색을 하고) 고스톱 쳤지? (그림자 3과 같이 그림자 1을 끌고 온다.)

그림자 왕 : 조금만 젊었어도 내가 그냥... 뭐하느라고 저렇게 내버려 둔거야.

그림자 1 : 나도 채여가지고, 이렇게 멍든 가슴을 안고...

그림자 왕비 : 야, 그림자가 찬다고 채이냐?

그림자 왕 : (헛기침) 자, 당장 저 개새끼를 잡아들여, 당장..

그림자 왕비 : 당장!

그림자 1,2,3,4 : 예이 (out)

지 훈 :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아! 추워! 배는 또 왜 이리 고프지. 그러나 정말 못 견딜 것은 외로움이야. 나도 전 에는 여자 바꿔 가면서 여기를 거닐었 는데... 아, 이 런 때 그림자라도 있었으면..

(그림자 등장. 쌍쌍이 뛰노는 연인들 곁을 기웃거리나 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림자, 허탈하게 바위에 앉는다.)

지훈 : 아니, 너 그림자 아냐! 너가 여기 웬일이야?

그림자 : 나? 난 너 그림자 아냐! (지훈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꼴이 왜 이래! 의사 선생님이..

지훈 : 가출했어. 근데 넌 여기 웬일이야?

그림자 : 너한테 채이고 나니 갈 데가 있어야지. 그래서 바닷 물속에라도 뛰어들 양으로 왔지.

지훈 : 그림자도 물에 빠지냐.

그림자 : 잘 안되겠지만 노력해 봐야지. 근데 왜 가출했어?

(지훈, 힘없이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지난 얘기를 하는 마임을 한다. 사이. 그림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자 : 그래서 깡통 찼구나. 어디 보자 얼마나 벌었나? (깡 통속을 들여다 본다.) 에게.. 300원 밖에 못벌었잖 아!

지훈 : 돈벌기 힘들더라구. 병원에 있으면 놀다보면 돈 나오는 데 문 밖을 나서니 어디 대접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림자 : 니 재주야 빤하지. 그나저나 부모님 맘이 얼마나 아 팠겠니. 우리 지훈이, 우리 지훈이 하고 키웠는 데.....

지훈 : 그게 부모님을 위해서도 좋아. 내가 그러지 않으면 모 두 힘들어.

그림자 : 그러게 내 처음부터 뭐랬어. 마누라고 부모고 다 기 댈 사람 없다 그랬잖아. 중요한 건 자신이야. 항상 자 기를 지켜 가면서 더불어 살아야지. 왜 소같이 일해서 돈 다 갖다 바치고 스트레스 받으며 살아.

지훈 : 내 말이 그말이야. 그래서 널 버린 걸 후회하지 않니?

그림자 : 그건 정말 잘 후회하는 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언제 한 번이라도 널 배반한 적 있니! 때리면 맞겠다, 옷 벗으라면 옷 잘 벗겠다. 뭐든지 다 들 어 주겠다... 게다가 난 너한테 돈 한 번 달랜 적 없다.

지훈 : 그래, 역시 조강지처는 너 뿐이야.

그림자 : 그럼, 그럼.. 그리고 나도 앞으로 너한테 더 잘해 줄 께! 너 편이 되서 너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며 살 수 있게 도와줄께! 우리 지훈이를 괴롭히기만 해봐라! 그림자 왕 이라도 가만 안 놔둔다.

지훈 : 정말!

그림자 : 그럼! 한 번 채여 보니 너가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겠어. 앞으로 우리 변하지 말고 잘 지내 보자.

지훈 : 그래! 신난다. (그림자와 얼싸 안는다.)

그림자 : 그런데 집엔 안 갈 거야.

지훈 : 안가! 가 봤자 또 노예 생활이야.

그림자 : 하긴... 지금 거지 생활이 더 나을 지도 모르지..

(미치광이 등장. 미치광이,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사람들이 쫗아와 잡으려 한다. 미치광이, 정훈의 깡통을 집어들고 사람들을 향해 이리저리 휘두른다.)

미치광이 : 놔! 놔! 이 미친 놈들아!

사람(1) : (미치광이를 나꿔 채며) 이게 누구보고 미쳤데! 정 신병원에 10년 씩이나 입원한 놈이...

미치광이 : 너희들은 산다는게 뭔지 몰라! 삶이 무엇인지 몰 라... 너희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살고 있어!

사람(2) : 미친 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사람(1) : 놔둬! 정신병자하고 무슨 얘기를 하나!

미치광이 : 정신병자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야! 내가 느낀 건 삶의 기쁨이라고, 삶의 경이로움... 너희들은 일, 놀이, 친구, 가족 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놔! 놔! (발버둥친다.)

사람(2) : 이런 놈들한테는 그저 몽둥이가 약이라니까... 어, 어이! (지훈에게) 이봐, 좀 도와줘. 일당은 줄테니 까...

(지훈, 가서 함께 붙든다.)

지 훈 : 무슨 일이죠?

사람(1) : (미치광이를 묶으며) 보면 몰라! 정신병원을 탈출했 어. 이 놈 때문에 사흘을 찾아 다녔다고... 지까 짓게 가야 어딜가! 부모도 버렸는데...

지 훈 : 이렇게 마구 묶어가도 되는 건가요.

사람(2) : (지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너도 보아하니 얼마안 있다가 만나겠다. 겨울나기 힘들면 찾아와라! (주 머니에서 천원짜리 몇 장을 꺼내 던져주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다. (미치광이를 들쳐 업고 나 간다.)

지훈 : 개새끼들.. 마구 잡아가네!

그림자 : 너도 병원에 있을 때 그랬잖아!

지훈 : 하긴.. 그래야 먹고 사니까.. 정신병자들을 누가 사람 취급이라도 하나. 그저 안보려고만 하지. 지들도 다 미 쳤으면서...

그림자 : 저 또라이는 제법 말 잘하는데!

지훈 : 환자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아! (일어선다.)

그림자 : 왜!

지훈 : 집에 갈래! 이래봤자 저 파도 한 번 치는 것만 못해! 사는 게 별 거야. 다 타협하고 적응하며 사는 거지! 빨 리 가서 마누라 엉덩이나 좀 만져야 겠다.

그림자 : 그래, 또 철들었구나! 가자, 그럼. 나도 여기 오래 있다 보니까 사람이 그리워 죽겠다. 역시 사람이나 그림자나 다 친한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해!

지훈 : (힘없이) 그래!

(그림자와 지훈, 왼 쪽 무대로 간다. 왼 쪽 무대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들은 지훈이 들어오자 반가와 하면서도 다소 겁먹은 표정이다.)

지훈 : (명랑하게)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 오, 그래 왔냐?

지훈 : 일전에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림자,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피운다. 부모들 다소 화가 풀어진다. 그림자와 지훈 오른 쪽 무대로 간다.)

어머니 : 지훈이가 많이 풀어졌네요.

아버지 : 아냐, 저 놈 또 언제 개지랄 할지 몰라.. 주의해야 지, 잘못 방심하다간 개망신 당하겠어!

어머니 : 그래요, 역시 저한텐 당신 밖에 없어요.

아버지 : 이제야 알겠어. 지훈이가 왜 개 띠인지...

( 7 장 )

(지훈, 비디오를 본다. 비디오에는 야한 장면들이 스쳐간다. 지훈, 자위행위를 한다. 그림자, 느긋하게 기대서 본다. 지훈, 갑자기 그림자를 와락 안는다. 그림자 신음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지훈에게 안긴다. 수연 등장.)

수연 : 어머, 당신 뭐해요? (지훈의 아랫도리를 보며) 어머 망 측해라. 빨리 바지 올려요.

(지훈, 쟉크를 올린다.)

수연 : 당신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내가 있는데 어떻게 혼자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요.

지훈 : 이건 어렸을 때부터 고유하게 키워온 나만의 즐거움이 야. 간섭마!

수연 : 어머, 기가 막혀! 마음속으로도 간음하는 것도 간음인 줄 몰라요.

지훈 : 그 말때문에 환자 된 사람 많지.

수연 : 어휴, 당신 저승가면 반가와 할 사람 많을 거예요.

지훈 : 누구?

수연 : 기독교인, 천주교인, 불교인, 마호메트교인.. 당신같 이 종교를 무시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지훈 : 난 무시한 적 없어. 올바르게 이해했을 뿐이지. 너 예 수님이 누군지 알아?

수연 : 누군데요?

지훈 : 이브야! 이브는 예수님으로 태어나 자손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거야! 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 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쟎아. 그게 무슨 돼먹지 않은 소린가 하고 했는데 만일 예수가 이브라면 의문이 풀려. 심판의 날에는 아마도 아담이 내려올 텐데 차마 자기 마 누라를 사랑한다고 부르짖는 무리들을 벌주진 않을 거 아니야..

수연 : 그게 말이 되는 얘기예요?

지훈 : 왜? 예수님 고추 본 사람있어! 없잖아! 다 아슬아슬하게 감췄다고. 왜 하 필 고것만 안 벗어... 그게 다 이유 가 있는 거야.

수연 : 그럼 유방은요?

지훈 : 가슴이 밋밋한 여자들 얼마나 많은데... 우선 가까이서 찾아도..

수연 : (지훈을 꼬집으며) 그 얘기만 했단 봐라.. 근데 어디서 또 그런 생각은 했어요. 지난 번엔 에덴 동산에서 하 느님과 이브가 섹스를 했다고 하더니...

지훈 : 사실이야. 하느님이 지 새끼 강간하고 창피하니까 에덴 동산에서 내쫓은 거라구.

수연 : 어디가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환자보다 더 미쳤다고 그래요.

지훈 : 환자만큼 미쳤지. 환자가 가르쳐준 거니까..

수연 : (비디오 테이프들을 집어 보며) 산딸기, 정사수표, 야시장..! 어떻게 한 결같이 이런 영화들 뿐이에요. 이런 것 좀 그만보면 안돼요?

지훈 :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야. 그것마저 없어봐! 이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날 재간이 있나?

수연 : 당신 바람 피우고 싶어요?

지훈 : 바람은 왜 피워, 골치 아프게.. 난 공상으로도 충분해.

(그림자, 기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지훈 : 예쁜 여자면 누구나 다 안고 싶지. 그러나 그 욕심은 땅위에선 붙들수 없는 거야. 그래서 바람이라고 부르 지. 끝까지 바람을 잡으려는 사람들 은 물 위도 지나 가고 낭떠러지에서 뛰어 내릴 각오도 해야 해! 바람같이 말이야.

수연 : 내가 사람하고 사는 건지, 여우하고 사는 건지..

지훈 : 어.. 내 별명을 어떻게 알았어!

수연 : 척 보면 알아요. 그나 저나 이 것들은 언제쯤 치울 거 예요.

지훈 : 우리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에 왜 밀리는지 알아?

수연 : 갑자기 헐리우드는....

지훈 : 그건 바로 에로 장면을 잘 못 찍기 때문이야. 섹스 씬 하나 제대로 찍기가 얼마나 힘든 건데 그걸 쉬쉬하니까 안되는 거야. 잘 된 섹스씬 하나는 세계를 휩쓴다구. 샤 론 스톤 봐! 죽여주지! 그런데 우리 영화는 너 무 뜸들인 다구. 뜸만 들이나, 또 샅샅이 잘리지. 그리고 잘난 배 우들은 왜 하나같이 벗는 걸 두려워 해. 최시라나 김희해같은 애들 활활 벗으면 얼마나 좋아.. 그래봤자 알몸 뚱인데.. 대놓고 연구해도 야한 장면 하나 찍기 힘든데 이리 감추고 저리 감추고.. 그래서 어디 관객 사랑받겠어.

수연 : 아예 영화 감독으로 나서지 그래요.

지훈 : 내 장래 희망이 그거야. 내가 만일 영화 감독이 된다면 세계 영화를 휩쓸어 버릴 거야. 내가 그동안 공상한 것 들 화면에 담아 봐라! 죽여주지.

수연 : 당신하고 얘기하다 보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어요. 난 가서 밥이나 짓겠어요. (퇴장)

지훈 : (그림자에게) 이럴 땐 난 무척 외롭단다. 한창 신이 날 려는 판인데..

그림자 : 계속해, 내가 있잖아!

지훈 : 김샜어! 마누라가 같이 신바람나서 맞장구쳐줘야 하는 데 가서 밥이나 짓 겠데. 내조가 이러니 영웅이 썩는다. 영웅이.. 에이 낮잠이나 자자!

그림자 : 왜 스필버그가 찾아와 ‘졌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십 시오!’ 하는 공상 좀 하지, 재밌는데...

(지훈, 돌아눕는다.)

그림자 : 오늘 병원엔 안 가?

지훈 : 안가!

그림자 : 왜?

지훈 : 그만둘 거야..

그림자 : 또? 벌써 4번째야. 1년 새에...

지훈 :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빨리 풀어버려야지. 달면 먹고 쓰면 뱉는 오너에게 쥐어 살 순 없지.

그림자 : 이번엔 무슨 일인데...

지훈 : 말시키지 마! 정신병원 비리 얘기하면 또 한시간 걸린다.

그림자 : 너 월급은 어떻게 하고... 니네 엄마 또 난리 칠텐 데...

지훈 : 이젠 그네들이 먹여 살려야지. 내가 뭐 일만 하는 소 냐? 나도 좀 편히 먹고 살자.

그림자 : 니가 그동안 돈이라도 벌어왔으니까 큰소리 쳤지. 돈 못 벌어와 봐라. 사람 취급 당하나?

지훈 : 그럴까?

그림자 : 그럼, 자본주의 사회아냐?

지훈 : 그럼 어디 가서 돈 많이 주고 일없는 곳 한 번 찾아봐 라!

그림자 : 그런 곳이 어딨냐?

지훈 : 있어! 세상 요지경이니까?

그림자 : 의사하기 싫어!

지훈 : 싫고 말고가 어딨어. 먹고 살려면 해야지.

그림자 : 사명감 좀 갖고 해봐라! 너 하나 믿고 찾아오는 환자 들인데...

지훈 : 사람마다 다 자기 갈 길이 있는 거야. 환자가 내 인생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

그림자 : 졸업식때 히포크라테스 선서 안했어?

지훈 : 안했어! 사진찍느라고..

그림자 : 어휴, 너같은 돌파리가 어떻게 의사짓을 하니?

지훈 : 우리 사회니까 가능하지. 만일 선진국같이 환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나같은 돌팔이는 생존못하지.

그림자 : 알긴 아는 구나!

지훈 : 의과대학때는 하기 싫은 것도 좋아서 해야 했어. 전공 의 시절엔 하기 싫 은 것은 싫더라도 해야 했어. 그러나 이제는 하기 싫은 것은 절대 안해! 그렇게 고생하며 참 아왔는데 이제와서 또 하기 싫은 것 억지로 하며 살란 말이야.

그림자 : 도대체 뭘 하고 싶은 데...?

지훈 : 몰라..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 야!

(지훈의 아들과 수연 등장.)

아들 : 아빠!

지훈 : 오 우리 아들 왔구나!

아들 : 나 만원 주면 안되지?

지훈 : 뭐 할려구.

아들 : 나 오락실 가면 안되지?

지훈 : 5백원줄께! 5백원 어치만 하고 와!

아들 : 5백원은 너무 빨리 죽는단 말이야.

지훈 : 그럼, 천 원 줄께!

아들 : 그래! (손을 벌린다.)

(지훈, 돈을 아들 손에 쥐어준다.)

수연 : 아마 오락실 가라고 돈주는 아빠는 당신밖에 없을 거예 요.

지훈 : 앞으론 오락을 잘해야 해! 공부 공부하면 장래를 망친다구. (아들을 번쩍 안으며) 아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일 거야. 상처많은 부모들의 아픔이 우리 자식들 세대까지 전달되지 못하도록 한풀이 대물림을 끊는 것! 우리 문화가 외국 문화의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우 리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키우는 것! (수연을 감싸 안 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

그림자 1 : 인생을 마음 껏 자유롭게 즐기는 것!

지훈 :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우리 아들을 개망나니로 키울 거야!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마음 껏 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게...

수연 : 벌써 망나니가 다 됐어요. 걔가 얼마나 욕 잘하는 데 요?

지훈 : 욕 좋지! 열받으면 욕해야지! (아들에게) 어디, 우리 아들, 욕 한 번 해 봐라!

아들 : 아빠, 씨발 새끼!

지훈 : 덱끼놈! 아빠한테 씨발새끼가 뭐야!

아들 : 그럼, 아빠 씹새끼!

지훈 : 아니.. 얘가 어디서 이렇게 욕 배웠지.

아들 : 아빠, 쌍놈의 새끼!

지훈 : 그만! 자꾸 욕하면 맴매한다.

아들 : 맴매! (지훈의 뺨을 찰싹 때린다.)

지훈 : 아니, 이 놈의 자식 봐라! (아들을 때리려 한다.)

(그림자 1, 지훈의 손을 잡는다.)

그림자 1 : 놔 둬! 크면 애비 안 때릴 거야. 기껏해야 가출정도 하겠지!

지훈 : 어휴, 자식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그림자 왕과 왕비, 나머지 그림자들 등장해 야릇한 미소를 띄우고 본다.)

그림자 왕 : 이제는 더 못 밝히겠지. 우리 내시 그림자가 저 아이에게 붙었으니....

그림자 왕비 : 그래요. 지훈이는 저 아이를 사람만드는 데 만 도 허벌날거예요.

그림자 왕 : 앞으론 마음 편히 쉬게 됐군. 자, 다들 제자리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애인과 다시 사랑을 누려봅시.. 아니, 당신 눈이 왜 그래!

그림자 왕비 : 뭐야! 애인과 어쩌고 어째... 이 바람둥이가...

그림자 왕 : 아니, 이런 실수가.. 진실을 함부로 말하다니... (도망간다.)

그림자 왕비 : 야, 너 이리와! 안와! (쫓아간다.)

(나머지 그림자들, 쫓고 쫓기는 광경을 보며 킬킬댄다.)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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