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김지율/시인·경상대 강사-우리는 ‘그 날’을 살고 있다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중략)/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 날’ 부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일들이 지나간 오늘이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 오늘이다. 일곱 시에 기차 대신에 차를 타고 아홉 시에 학교 대신에 직장을 가며 세상은 완벽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목련이 지고 벚꽃이 떨어지고 어디서 또 그만큼의 꽃들이 필 것이다. 제 각기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들과 또 목숨을 걸고 날개 짓을 하는 저 벌과 나비들을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시에는 70년대의 유신과 과도한 경제개발로 근대화되는 모순적 현실에 저항하는 시적 자아의 병적이고 폭력적인 모습들이 등장한다. ‘그 날’의 풍경들은 혼란스러운 그 시대와 현실에 대응하며 하루하루 버틴 그들의 혹은 우리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마지막 행에서 여전히 뭉클하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그 날’을 살고 있다. 그날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며, 그날 바위에서 뛰어내린 그의 속보를 텔레비전의 자막으로 보며, 그날 우리는 많은 촛불 속에서 간절하게 손잡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그날들을 견디며 나의 고통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공유했고 공감했다. 함께 있었지만 모두 각자 부끄러웠고 아픈 그날들이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집은 초록 대문이고 여기서 딱 열 걸음 걸으면 맛있는 빵집이 나온다. 저쪽에서 달려오는 개들은 깡충 지나가고, 약속 시간에 늦어 허겁지겁 달리면서 재벌 3세가 던진 물 컵을 떠올렸다. 이렇게 지나간 오늘도 언젠가 ‘그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한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을 더 많이 더 오래 기억한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 중의 하나는 지금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연두 빛으로 변해가는 가로수 잎들을 보며 무빙워크에 일주일치 먹거리를 담으며 오늘도 생각한다. 내가 했던 가장 비열한 방식의 타협과 무뎌져가는 비판력 앞에 ‘그 날’의 신음소리와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날’은 과거의 어느 날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이고,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의 어느 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수한 ‘그 날’을 건너왔듯이, 언제나처럼 무수한 ‘그 날’을 또 꿋꿋이 살아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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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 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을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인의 그날을 풍경처럼 바라보다 문득 나도 그날을 쓰고 싶어지는 건 무슨 연유일까. 뭔가 울컥해지는 순간, 그날이 그날이 아니다. 그날이다. 그날 난 정말 죽고만 싶었어, 언니를 갖고 싶을 정도로 외로웠어, 그러나 그날은 무심히 스쳐 갔네. 고해성사라도 해야 할 듯 잠근 마음을 올올히 풀어헤쳐야할 듯, 일상같은 화근들을 조근대는 시인. 그렇고 그런 사람들. 그렇고 그런 날들. 시간의 파편들 그리고 다시 또 무심히 보내야 할 그날들이 그날그날 흘러가고 있다. 그 많던 날 중 너의 신음을 제대로 들었던 날은 몇 날일까. 그날 우리에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

그날/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 읽기>  그날/이성복

‘그날’은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어서는 안 될 불망不忘의 날이다. 엄마 생신, 아버지 기일, 애들 생일...8.29, 3.1, 8.15, 6.25, 4.19, 5.16, 4.16...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그리고 그날, 아! 그날 4.16은 생때 같은 학생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우성을 눈뜨고 듣고서도 어찌하지 못하였던 가슴 아픈 일이 빚어진 날이었다.

그날은 또한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날이기도 하다. 일상의 계곡에 파묻혀 그날이 그날 같은 ‘그날’은 어떤 날인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러면 거기 화면에서 벌레처럼 줄지어 기어 나오는 일상은 마네킹처럼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는 나날이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흩어져 서로를 할퀴고 있고 죽어나가는데도 무관심하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주목받지 못한 채 바람에 찢겨진 깃발처럼 무의미한 기표로 펄럭이고 있다. 그리하여 그날, 그가 본 것은 아프고 다치고 죽음마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세상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그는 이렇게 이성이 마비된 사회에서는 아무도 아프거나 신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라고.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 먹고 일어나 많은 하얀 개미 알들이 꿈꾸며 흙 한 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이성복,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우연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골목이 끝나면 거기 그리운 얼굴, 네가 연분홍 진달래처럼 수줍은 모습을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거기, 아침처럼 꺼지지 않는 생명의 바람버섯이 온전히 숨을 쉬고 있느니...그날!

1980년대 ‘시의 시대’를 이끌었던 선구자는 이성복 시인이었고, 이성복 시인은 한국문학사에서 새로운 신기원을 창출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첫 번째는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였고, 두 번째는 한국사회에 대한 역사 철학적인 인식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자유자재롭고 거침없는 ‘저격수의 문체’로 모든 독자들의 혼을 빼앗아버리는 흡인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들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들은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의 예에 해당되고, 아버지와 여동생과 어머니와 시적 화자인 ‘나’와 역전의 창녀들과 부츠를 신은 멋진 여자와 잔디밭 잡초를 뽑는 여인들과 집 허무는 사내들과 새점 치는 노인 등의 사소한 일상생활들을 성찰한 끝에,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잠언과 경구들은 한국사회에 대한 역사 철학적인 인식의 예에 해당된다. 잠언과 경구는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이며, 모든 시인들과 모든 사상가들의 출세의 보증수표이자 영광의 월계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잠언과 경구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이 담겨있고, 잠언과 경구에는 그 주체자의 역사 철학이 담겨 있으며, 잠언과 경구에는 그 잠언과 경구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진 신세계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