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결말 - gyujang-gag gagsindeul-ui nanal gyeolmal

로맨스로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별점 : ★★★★★ (성균관..)

별점 : ★★          (규장각..)

나름 맨처음 로맨스소설로 인도한 책,

이책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렇듯 로맨스 소설에 빠져있지 않을텐데..ㅎㅎ

 

병약한 남동생 대신 남장하고 과거를 보게 된 김윤희.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한 그녀 앞에 조선 최고의 신랑감으로 칭송이 자자한 이선준이 등장한다. 과거장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선준과 정체모를 우정까지 나누게 된 윤희. 나란히 왕의 눈에 들어 금녀의 성균관에 들어가는 걸로 모자라 선준과 한방까지 쓰게 생겼다.
여자임이 발각되는 날에는 자신의 죽음은 물론 멸문지화를 면할 수 없는데…….

남장 도령 ‘대물’, 최고의 신랑감 ‘가랑’, 미친 말 ‘걸오’, 주색잡기의 대가 ‘여림’
이들 ‘반궁의 잘금 4인방’이 펼치는 아슬아슬 좌충우돌 성균관 생활이 시작된다!

선준은 윤희가 남자인줄 알고 선비의 도리가 아닌줄은 알지만 결국 윤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윤희가 여자임을 알게 된 순간 찢어지게 가난하고 당파까지 다른 윤희를 자신의 부인으로 들이고자 열심히 공부하여 대과에 합격하여

결국 둘은 해피엔딩을 이루게 된다.(여기가 성균관의 이야기라면.,,,)

앞권에서 해피엔딩을 이루고 끝났으나...

왕의 지나친 총애 덕분에 사이좋게 규장각으로 발령 난 잘금 4인방. 동생 윤식과 바꿔치기를 하려면 외관직 발령만이 살길이었던 윤희는 앞이 깜깜하다. 윤희 윤식 남매의 사기행각은 이제 그들만의 문제를 벗어나, 발각되는 날엔 윤희의 가문은 물론 선준의 인생, 위세 높은 좌의정 대감 댁이 쑥대밭이 될 상황이다. 수염도 안 나는 주제에 규장각에 출근하는 것만도 몸이 떨릴 일인데, 윤희의 정체를 안 좌의정 대감의 진노는 윤희의 앞날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운다. 급기야 선준과 윤희의 혼사마저 중단되는데... 결국 왕이 4인방을 중국으로 보내줌으로써 둘의 사랑은 이뤄지고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근데 뭔가 많이 부족한 결말. 2년간 규장각이 나오길 기다린 나로써는 차라리 안나온만 못하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진짜 재미나게 아슬아슬함을 즐기면서 보았는데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확실히 사랑이 이루어지고 나서 흘러가는 이야기이고 결혼생활을 기대했건만

여전히 규장각에서 학문만 논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게다가...아슬아슬한 줄다리기도 끝. (로맨스면 로맨스답게 로맨스를 보여주란말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1)

제1장 초야(初夜)의 불청객

1.마당을 서성이며 선준은 부친을 기다린다. 드디어 좌의정 이정무 등장. 정무는 아들이 자신도 해 보지 못한 장원급제를 해주어 세간의 부러움을 받는 몸이 되었지만 언짢은 일이 있다. 아들 선준이 혼인하겠다고 고집피우는 스물한 살씩이나 된 처자가 찢어지게 가난한 남인 가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반궁(성균관)에서 몰려다니던 구용하, 문재신, 김윤식이 선준과 함께 괴원분관(외교문서를 관리하는 승문원의 견습생)에 권점(선발)된 것이다. 정무는 김윤식을 그냥 한양에 둘 수 없다. 김윤식의 누이는 약속이니 며느리로 받아들여야겠지만 절대 남인 출신인 이 가문과는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부친에게 만약 김윤식이 여자이고 혼인하고픈 정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선준은 침만 삼키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편 윤희는 서책방을 찾아가 자신이 성균관서 필기했던 자료들을 팔아달라고 한다. 그동안 윤희는 많이 여성스러워진 터라 주인장은 곱디고운 김도령이 혹 여자가 아닐까 의심을 한다. 그러나 여자가 어찌 성균관 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초선과의 대물 사건도 여자라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주인장은  쓸데없는 의심을 했다며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다. 그동안 선준은 윤희네 종종 들러 윤식의 약을 전하고 장모될 조씨에게 인사도 한다. 그동안 아팠던 윤식도 건강이 나아지면서 틈틈이 서체 연습을 하여 윤희보다는 못하지만 매우 비슷한 필체를 갖게 된다. 선준은 윤희에게는 부친에게 윤희의 정체를 말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도 혼인을 허락했다는 말인가. 윤희는 선준의 말을 의심한다. 어머니 조씨는 딸이 명문대가로 시집간다는 기쁨보다는 혼수를 해 줄 수 없어 속상하다. 그래서 이불 한 채를 겨우 마련하였는데 윤희에게는 이도 송구스럽다. 이미 좌상부인에게 혼수는 하나도 해 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지금 해 놓은 이불이 좌상 댁의 일반 이불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왠지 모를 괴리감을 느낀다.

2. 드디어 전안례(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가서 처음 행하는 의례로 기러기를 전한다)날.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선준의 친척들은 선준의 혼례를 대부분 반대하였기에 오지 않았고, 윤희네 또한 외갓집하고 등을 돌리고 산 처지라 초례는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무사히 초례를 마치고 신방에 들어선 선준. 윤희는 선준에게 소원을 말한다.

"염치없지만 영원히 저만을 사랑해 달라고 청해도 되겠습니까?"

"그건 들어줄 수 없소. 그건 굳이 소원이 아니어도 내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오."

이렇게 오글오글한 대화를 나누다가 선준이 열심히 윤희의 옷을 벗기고 있는데 밖에서 대물도령을 부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용하와 재신이 나타난 것이다. 윤희는 얼른 남장을 하고 선준이 먼저 밖으로 나가 손님들을 맞는다.

3. 갑작스런 방문에 윤희와 선준은 하룻밤을 치르지 못하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게 되고, 윤식은 걸오에게 들켜 얼떨결에 윤희의 친척뻘 되는 김윤으로 인사를 하게 된다. 걸오와 여림이 왕의 선물인 가체를 꺼내자 모두 깜짝 놀란다. 상투를 트느라 머리를 짧게 잘라야 했던 윤희의 처지를 아는 듯한 선물.

날이 밝자 재신과 용하는 돌아가고 윤희는 자기가 규장각에 내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선준이 아직 부친에게 부인될 이가 남장을 한 윤희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도. 윤희는 얼른 좌상인 이정무를 찾아 나선다. 선준은 혼례를 올린 것에 의의를 두었지만 윤희는 선준이 결혼을 위해, 효와 충 그리고 의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선준을 아무리 사랑한다지만 윤희는 사랑이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말리는 선준의 고집을 꺾고 윤희는 그와 함께 좌상의 집으로 찾아간다.

4. 좌상은 김윤식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진노한다. 그런 좌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윤희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예상대로 좌상은 크게 노하며 혼사를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한다.

"나는 김윤식의 누이를 어쩔 수 없이 며느리로 들이려고 했지 남인 김윤식을 며느리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썩 물러가라."

이 때 정무의 아내가 들어왔다. 예전에 박물장수로 변장해서 윤희를 며느리로 점찍었던 고고한 부인. 이정무는 아내에게만은 무척 약한데 이번만은 아내의 청도 들어주지 않는다. 윤희는 괴로웠다. 그래서 선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제가 귀형과 귀형의 가문에 누를 끼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땐 저를 버려 주셔야 합니다. 마음에서도. 소원입니다.

선준은 윤희가 더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자기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막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버둥거리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는다.

5. 아무튼 이제 어쩔 수 없이 윤희는 규장각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규장각 일은 이동이 빨라 길어야 1년 정도만 근무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어머니 조씨와 동생 윤식을 위로한다. 윤희는 1년 뒤에 규장각을 나오더라도 선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정무는 조보에 나온 인사발령 글을 보고 놀란다. 자신이 우의정으로 발령난 것이 아닌가. 전날 밤 왕이 독단으로 인사이동을 했다는 것이다. 사헌부 대사헌이었던 문재신의 아버지 문근수는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정무는 왕이 자신을 좌의정에서 우의정으로 발령낸 것은 인사권을 박탈하려는 목적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인사권으로 윤희를 지방 멀리로 보내려 했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정무는 왕 앞으로 나아가 남인집안과의 혼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을 전한다. 그러자 왕은 잘되었다는 듯이

"이선준과 김윤식이 사돈이 되면 상피제도(혈연이나 지연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같은 곳으로 발령낼 수 없게 한 것)에 의해 같은 곳으로 발령을 내면 안 되지만 이젠 이선준과 김윤식을 같은 곳으로 발령낸 것에 대해 따지지 마시오."

라고 말한다. 정무는 순간 아차 싶었다. 며느리로 원치 않은 김윤식과 아들 이선준이 궁궐에서도 꼭 붙어다니다니 속이 뒤집힐 노릇이다.

제2장 분관(分館)

: 조선 시대에 새로 문과에 급제한 사람을 권지라는 이름으로 승문원(외교문서 관리 하는 곳) ,성균관, 교서관의 삼관(三館)에 배속시켜, 실무를 익히게 하는 일.

1. 잘금 4인방이 승문원으로 첫 출근하는 날. 궁궐에서도 선준의 혼례가 중단되었다는 것이 화제가 된다. 이날부터 윤식의 누이는 '모모부인'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모모는 중국 황제의 부인이었던 이로 덕은 있었으나 외모는 추악하였다고 하는데 이 별명이 붙어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김윤식의 여성답고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누이도 당연히 아름답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초례도 치루지 않고 소박을 놓았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아무튼 잘금 4인방은 승문원에서 만날 것을 기대했지만 윤희가 보이지 않는다. 걸오의 말이 윤희는 혼자서 교서관(규장각에 속해 있는 기관으로 글씨 잘 쓰는 문인들이 주로 들어감) 분관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순간 재신과 용하는 선준의 표정이 싸늘해짐을 느끼고 있다. 선준은 머리가 멍해졌다. 그녀를 지켜줘야 하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그동안 윤희를 골려주었던 용하도 윤희가 없으니 참으로 서운하고 허전하다.

"진짜 걱정은 대물이 아니라 우리라니까. 대물 없이는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일 수 없다네."

정말로 그랬다. 4인방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구심점은 그녀였고, 그녀가 없으면 이들의 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윤희의 발령에 실수가 있었다. 왕은 윤희를 교서관으로 발령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저녁 윤희는 잘금 3인방과 합류하여 다시 4인방의 구심점이 된다. 퇴궐을 했을 때 윤희는 서책방이 있는 필동으로 향하는데 일행들이 따라오려고 한다. 윤희가 혼자 가겠다고 하지만 든든한 세 명의 남자는 윤희의 방패막이 되겠다고 나선다. 윤희는 행복했다. 이제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이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2. 승문원 권지(임시직)들은 국가 문서를 작성하는 법을 제술관에서 배운다. 선준과 윤희도 가까이서 교육을 받았지만 눈이 마주친 적이 없다. 윤희는 선준과의 시선을 철저히 외면한다. 여기서 권지들은 선진(선배)들을 잘 만나야 한다. 선진들의 점수가 바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윤희의 선진은 권진복이라는 저작이었다. 그는 윤희의 매끈한 턱부터 나무란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권지들은 알아서 선진들에게 뇌물을 바쳐야 하는데 윤희는 그걸 몰랐기 때문이다. 용하는 이미 승문관 관원들에 뇌물을 뿌려놓은 뒤라 누구든 그에겐 호의적이었다. 윤희는 힘없이 승문원을 나왔다. 그녀는 빨리 집으로 가서 서책을 베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집으로 향하는 윤희를 선준이 따라온다. 윤희는 선준이 부럽다. 뇌물을 바치지 않아도 고위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를 당하는 않는 그가. 그래서

"부모님께 많이 감사 드리세요."

라고 말한다. 선준이 윤희를 따르는 실제 목적은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희는 선준을 밀쳐내고 선진인 권진복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간다.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진복은 선물을 받고 슬쩍 서랍 속에 챙겨 넣는다. 그러나 진복은 친절하지 않다. 진복은 베껴 써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데다가 본관으로 오라는 서리의 부름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윤희에게 일을 맡기게 된다. 윤희는 처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 선준은 창밖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윤희를 본다. 그녀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선준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윤희는 진복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일을 다 마쳐 놓는다. 진복은 윤희의 솜씨에 놀라고 여러 일들을 맡긴다. 한편 선준은 윤희와 단둘의 시간을 갖지 못해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윤희가 일을 마치고 먼 남산골로 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이 만남의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렵다는 것을 안 선준은 이를 해결할 계획을 세운다.

3. 황 판교(승문원과 교서관에 둔 정3품의 관리)는 저작 권진복이 작성했다는 서류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 많은 양을 권진복이 혼자 해낼 리도 없거니와 그 필체에 놀란다. 그래서 권진복이 혹 사자관(글씨를 깔끔하게 베껴 쓰는 일을 하는 관리)을 시켜 한 줄 알고 화를 내는데 사자관은 바빠서 저작들을 도울만한 처지가 아니라고 한다.  황 판교에게는 서예가의 작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래서 그 필체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권진복의 주변을 둘러본다. 곧 그는 필체의 주인공이 김윤식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하지만 윤희는 반갑지 않다. 높은 집에 초대받으면 선물을 사가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용하에게 돈을 꾸려고 한다. 용하가 이유를 묻자 윤희는 솔직하게 말한다. 용하는 황 판교가 재물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예 수집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윤희에게 빈손으로 갈 것을 권한다. 황 판교는 남인이었다. 황 판교는 윤희에게 명자(명함)를 부탁한다. 윤희는 높은 사람에게 명자를 의뢰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그러나 일이 바빠질수록 윤희는 힘들었다. 매일 집에서 출퇴궐하기가 수월찮았던 것이다. 발에는 물집이 생기고 인경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하는 일에 마음도 불편하였다. 선준은 윤희가 발이 불편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선준은 궐 가까운 곳에 집을 얻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은 용하가 처리하고 있었다.

제3장 괴물신랑

1. 모처럼 노는 날이 되었다. 관리들에게도 정기적인 휴일이 있다는 것이 윤희에겐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윤희는 그런 날 돈벌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동생 윤식도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고, 글씨도 제법 써서 윤희와 매우 비슷한 서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윤희보다는 뭔가가 부족하다. 그래도 윤희는 윤식의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머니 조씨가 어떤 수상한 사람들이 집에 와서 이것저것 캐묻더라는 얘기를 한다. 주로 윤희에 대해 묻더라는 것이다. 윤희는 불안했다.

한편 재신의 집. 그의 부친이 느닷없이 말한다.

"오늘은 네 혼삿날이다."

헉, 혼삿날? 이것은 제삿날이 아니던가.

"어떤 정신 나간 집에서 망나니로 소문난 제게 딸을 보낸답니까?"

재신은 딸을 자기에게 보내려는 집안에 대해 비웃는다. 딸이 남편한테 구타당하든 말든 이조판서 댁과 혼인 한 번 해보자는 작자일 게 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윤희를 생각했다. 이미 선준과 혼인을 했지만 재신의 마음 속엔 늘 윤희뿐이었으니까. 아버지 근수는 혹 재신이 도망이라도 갈까 봐 밖에 완력이 좋은 하인 몇을 세워두었다. 문근수의 생각은 억지로라도 결혼시켜 대를 이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난리를 치며 혼인을 거부하리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순순히 신부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왠지 불안하다. 드디어 늦게 재신이 신부집에 도착하자 온갖 흉흉한 소문을 들은 친척들과 이웃들이 모여 수근댄다. 재신이

"젠장! 뭔 구경거리 났어?"

라고 소리지르자 소문으로만 듣던 성질을 확인하게 되었다며 모두 신부를 안타깝게 여긴다.

"아이고, 우리 애기씨 불쌍해서 어쩌나."

이런 이야기들이 용하에게는 아주 잘 들렸다. 아무튼 신부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초례를 끝난 재신은 연거푸 술을 마시었다.  자신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여인 때문이었다. 윤희, 왜 그녀가 떠오르는가. 이미 남의 사람인 것을. 재신은 인사불성이 되어서 신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는데 어슴푸레하게 족두리를 쓴 여인이 보인다. 그래서 대충 족도리 벗거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벗으라고 한 뒤 쓰러졌다. 다운(재신의 아내 이름)은 이런 재신을 보며 바들바들 떤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벗어 얌전하게 개어놓고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노라니 문득 재신이 일어나 "야, 불꺼!"라고 소리질러 다운은 엉겹결에 불을 끄고 만다. 어둠 속에서 재신은 잠이 들고 다운은 아까의 공포가 어디로 갔는지 자기 신랑될 이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다시 일어나 얼굴을 뜯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촛불을  들고 재신에게 가까이 갔다. 그랬더니 이건 괴물이 아니라 엄청나게 잘 생긴 미남자가 아닌가. 그런데 재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다운은 방안에 있던 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주었다. 이 때 무의식적으로 재신이 다운의 무릎 위에 얼굴을 묻는다.

2. 한참 후, 어둠 속에서 재신의 손이 움직인다. 물을 찾는다. 다운이 꿀물을 바치자 그 달콤한 맛에 재신이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떠서 바라본다. 그런데 신부는 보이지 않고 웬 어린 아이가 쭈구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큰 눈과 툭 튀어나온 짱구 이마. 재신은 그녀가 신부의 몸종인 줄 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머리를 올리고 있다. 재신은 이를 보고

"어떤 변태 새끼가 저 어린 것의 머리를 올린 거야."

라고 불쾌하게 중얼거린다. 재신은 어젯밤의 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족두리까지 풀어준 것은 기억나는데 그 뒤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재신은 다운이 떠다준 세숫물로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나가려고 한다. 그러자 다운은 "아침은 드시고 나가셔야죠. 그냥 가시면 제가 야단 맞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재신은 계집이 야단맞을 것을 생각하니 안 먹고 갈 수도 없어서 차려오라고 했는데 짜리몽땅 다운은 밥상을 들고 들어가다 깨박을 쳐서 그야말로 왕장창 소리가 세상을 진동한다. 다운은 혹시 남편이라고 하는 저 사내에게 맞아 죽을까봐 몸을 바들바들 떤다. 그러나 사나운 목소리지만 "안 다쳤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서 옷가지와 방바닥에 떨어진 음식들을 집어서 다 먹어치우는 것이 아닌가. 안 먹고 가면 요 조고만 계집이 주인에게 야단을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 상 엎은 적 없었던 거다."

궁으로 온 재신은 윤희를 생각했다. 어제 윤희 생각으로 울었던 것 같은데 어째 신부가 눈물을 닦아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재신은 그 이후로 신부의 집으로 가지 않는다. 분관(실무 교육)이 끝나면 홍군회(기생을 거느리고 노는 놀이)를 하는데 권지들은 고민한다. 이런 일에는 구용하를 불러야 하는데 구용하가 오면 잘금4인방이 출동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기생들이 잘금 4인방 곁에 붙어 온갖 교태를 부를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아쉽지만 용하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구용하가 누구인가!

그런데 분관 마지막 날, 재신의 아버지 이조 판서 문근수가 찾아온다. 그는 황 판교에게 아들 녀석 좀 불러달라고 한다. 그런데 황판교가 윤희가 쓴 명자를 보여주며 윤희를 승문원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리 승문원에서도 인재를 부려보고 싶습니다."

문근수는 알았다고만 하고 장정 넷을 재신에게 보낸다. 잠시 후, 재신은 밧줄로 포박당한 채 아버지 앞으로 끌려간다. 그동안 신부의 집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문근수가 아들을 잡으러 왔던 것이다. 문근수가 말한다.

"알았다. 그렇다면 신부를 버리도록 하마. 이정무도 며느리를 버리는데 뭐 나라고 못할까 봐서?"

재신은 선준과 윤희의 혼사가 깨졌다는 것을 알고 비명을 지른다. 한편 윤희는 황 판교의 집으로 초대받는다. 이에 윤희와 선준, 용하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든다.

3. 재신은 할 수 없이 신부네 집으로 가 다운을 데려온다. 재신은 신부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가마에 타는 신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장모 주씨가 울면서 내 딸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데 재신은 그것을 귓전으로 흘렸다. 사실 재신은 선준과 윤희의 혼사가 깨어졌다는 말을 듣고 윤희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선준을 향한 윤희의 마음을 알기에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 가마 문은 신랑이 열어주어야 한다고 하기에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문을 여는데 꽈당~

상을 엎고 어쩔 줄 모르던 그 꼬마애가 아닌가. 재신은 아버지에게 따지듯 말한다.

"막 열 살 넘긴 것 같은 저 애가 제 신부라고요?"

"네 에미도 14살에 시집왔다."

"그 땐 아버진 13살이었잖아요. 전 25살이란 말입니다. 저런 꼬맹이와 제가 말이 됩니까?"

정말 근수가 보니 작아도 작아도 너무 작았다. 14살이 아니고 정말 10살난 꼬마 같다. 사실 이 혼처는 재신의 고모되는 이가 주선한 것이다. 문근수는 여동생을 향해

"네 눈이 제대로 박힌 거냐?"

라고 말하고 아내를 향해

"당신은 지금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거요?"

라고 나무란다. 그런데 재신의 어머니인 황씨는 큰아들이 죽고부터 정신을 놓은 데다가 행동이 아주 느리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라 며느리를 딸 대하듯 한다. 남편이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며 돌려보낸다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귀한 사람을 들여놓고 참 야박한 말씀을 하시는구나. 그렇지? 아가~"

그리고 아들의 의견을 묻는다. 재신은 다운이 옆에 가서 앉는다. 그리고 소매를 잡으라고 한다. 아내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다운은 얼른 재신의 소맷자락을 잡는다. 황씨는 재신에게 합방일은 알아서 잡아줄 테니 그 때까지는 아내의 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어머니, 절 어떻게 보십니까? 전 변태가 아닐 뿐더러 이런 어린애는 제 취향도 아닙니다."

황씨가 나간 후, 다운은 재신에게 이부자리를 깔아주려고 장롱에서 자기보다 큰 이불을 꺼낸다.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재신이 신부에게 이름을 묻는다. 반다운이라고 하자 재신은 피씩 웃으며 '반토막'이란 별명을 지어준다. 정말 재신이 그 옆에 서자 다운의 키는 재신의 딱 반토막이다.

4. 윤희네 집으로 한 하인이 와서 서찰을 전한다. 용하에게서 온 것이었다. 뱃놀이를 가자는 것이다. 선준과 재신도 온다면서. 윤희는 망설였지만 용하가 보내준 말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용하는 권지들이 홍군회 때 자기를 빼놓을 거라는 소문을 듣고 그들이 간 뱃놀이를 따라가 앙갚음으로 한 작정이었던 것이다. 윤희, 선준, 재신은 그것도 모르고 배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가 홍군회가 열리는 곳인 줄 알고 용하를 원망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사공을 시켜 배를 돌리려고 했지만 귀머거리 사공은 앞으로만 앞으로만 나아간다. 물론 모든 것이 용하의 계획이다. 어느덧 4인방은 홍군회 무리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고 아니나 다를까 기생들의 관심은 잘금 4인방에게 쏠린다. 물론 인기 1위는 이선준. 그리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예쁘장한 윤희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잘금 4인방을 따돌린 데 대한 복수는 동방생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재신이 용하를 혼내주지만 이미 잘금 4인방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잘금 4인방의 스타일을 흉내내는 사내들도 꽤 많았다. 궁궐 안에서도 그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5. 문선사(이조에 설치한 관청으로 인사발령내는 곳) 앞에서 선준, 용하, 재신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이 세 사람은 규장각으로 발령난 것이 확실하나 뜬금없이 윤희가 승문원으로 가게 된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곧 윤희가 오고 세 사람은 모두 윤희에게 교첩(관리 임명장)을 보여달라고 한다. 모두가 급하게 서두르고 있는데 윤희는 매우 느리게 교첩을 펼친다.

"저, 김윤식. 규장각 대교(정7품~종 8품까지의 각신)로 임명받았습니다."

선준은 창백했던 표정을 풀고 이내 밝은 입꼬리를 올린다. 그런데 선준은 자신의 교첩을 펴 보고 깜짝 놀란다. 홍문관 저작(정8품 벼슬)으로 발령난 것이 아닌가. 새파랗게 질린 선준을 위로하려고 윤희가 손을 들었으나 윤희의 손은 더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관원 하나가 또 다른 종이를 준다. 규장각 대교와 홍문관 저작 겸직이었다. 윤희는 자기도 모르게 선준의 목을 껴안았고, 용하는 이들의 이상행동을 감추기 위해 같이 껴안는 척을 한다.

용하는 의논할 것이 있다면서 궁궐 가까이 얻었다는 집을 보여준다. 익랑골의 기와집. 윤희는 곧 실내(안주인)께 폐가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내 아내는 본가에 있다네. 조강지처는 본가를 떠나서는 아니 되니 이곳에는 첩을 데려다 놓으라더군. 부용화.... 내 아내는 부용화를 닮았네. 아니 부용화가 내 아내를 닮은 것이지."

어떤 부용화를 말하는 것인지. 연꽃을 말하는 것인지, 병판의 여식인 부용화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용하는 자기 아내를 넓디넓은 연못에 홀로 핀 슬픈 부용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가랑에게 세를 놓았다고 말한다. 용하가 윤희에게도 함께 살자고 하자 윤희는 사양한다. 그러면서 의논할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 그 말에 용하의 얼굴 표정이 진지하게 돌변한다. 규장각 신참례에 대한 것이었다. 규장각 신참례는 그리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쩐지 용하는 불길하다.

한편 왕은 경연을 마치고 신하 몇 명과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윤식을 탐냈던 승문원, 선준을 탐냈던 홍문관, 용하를 탐냈던 호조. 모두가 불만이 많았다. 물론 홍문관 같은 경우는 선준이 겸직을 하여 반은 덜 서운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왕은 뜻밖에도 신참례는 예로부터 교만한 선비의 기를 꺾고, 상하의 등분을 엄격히 하기 위해 행했던 것이니 행하라고 한다.

"과인의 인사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신참례를 통해 내 고집이 잘못이었음을 증명해 보시오. 그깟 신래침학(신참례)도 이겨 내지 못하는 녀석들이라면 나 또한 딱히 귀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이번 신래침학은 독하게 하시오."

6. 윤희는 규장각에는 신참례가 없다는 것을 믿고 마음을 놓는다. 용하는 지금 황판교가 윤희가 쓴 제 명자(명함)을 여기저기 뿌리는 통에 윤희의 인기가 날로 높아진다는 말을 하면서 자기 명자도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재신은 이판인 아버지가 명자를 부탁했다는 말을 하고, 선준도 윤희에게 명자를 부탁한다. 윤희는 기뻤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자를 써 준다는 것은 행복인 것이다. 익랑골 용하의 집. 재신도 이 집에서 세들어 살기로 한다. 그러나 윤희는 그냥 집으로 간다. 더는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선준은 잡지 않는다. 윤희가 먼 집을 오고 가느라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라고 하지 않아도 올 윤희이기에 선준은 걱정하지 않는다. 이날 윤희는 황 판교를 찾아간다. 황 판교는 윤희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여식을 불러 차대접을 하게 한다. 아무래도 윤희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놓은 모양이다. 이름은 서영. 윤희는 난감했다.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황판교가 나가고 둘만이 남았을 때 윤희는

"낭자께는 죄송하지만 소생이 난봉기가 있어 여자 버릇이 좋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영은 양가집 규수답게

"사내에게 그만한 책은 오히려 자랑거리지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소생의 처지가 워낙 궁핍하여..."

"사람이 궁핍한 것보다는 처지가 궁핍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윤희는 서영이 좋은 여자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선준에게 미안했다. 빨리 이런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금 들어온 황 판교를 보고 윤희는 청혼을 정중히 거절한다. 황판교는 서운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윤희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황판교의 집을 나선 윤희는 선준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남산골 묵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선준의 아버지 정무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한적한 곳의 정자에 두 사람은 앉았다.

"폐혼을 당하였는데도 자결하지 않은 것이 용하구나. 염치란 게 없는 것이지."

"제가 왜 자결을 해야 합니까? 제 마음이 형님에 대한 정절을 버리지 않았으니 전 자결할 이유가 없습니다."

"네가 이대로 살아 있으면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희는 정무의 말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정무가 살의를 띤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한다."내 아들의 흔적..., 네 몸에 남지지 마라. 내 아들의 씨는 네가 받을 수 있을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금상께 네 손으로 사임 원서를 올리도록 해라. 단 하루도 지체하지 마라. 한 달 안에 관직을 그만두고 내 아들 곁에서 사라져야 한다."

제4장 신참례

1. 이른 아침부터 대루원(출근시 궐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 곳에 두루마리 하나가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관원은 그것이 버려진 상소문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하지만 잘금 4인방이 어떤 사람들인가. 펼쳐보니 규장각을 철폐해야 한다는 상소문인데 왕은 그 상소문의 잘못된 문장을 찾아내 고친 후 대루원에 버린 것이다. 이런 상소문을 올리지 말라는 왕의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윤희는 이런 상소문은 승정원에서 처리하는 것이란 말을 듣고 파직될 수 있는 좋은기회를 얻었다며 두루마리를 집었다. 이것을 건방지게 승문원에 갖다 놓으면 보기 좋게 파직당할 테니까. 하지만 4인방은 함께 행동했고, 상소문이 승정원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왕은

"건방진 놈들 같으니라구, 드디어 왔구나."

라고 비난투로 말하면서도 얼굴은 그렇지 않았다. 왕은 이 4인방들이 보고 싶어 아침 산책을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이문원(규장각의 청사)까지 나와 그들을 반겼다. 4인방은 머리를 조아리며 왕을 맞이하는데 왕은 한참동안 윤희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신참례를 허투루 하지 마라. 사귀일성(四歸一成)! 한 사람이 낙오되면 모두가 낙오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모든 일을 잘 수행하면 너의 셋은 나의 신하가 되리라."

왕의 마지막 시선이 윤희에게 있었다. 윤희는 '셋'이라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윤희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모두가 왕이 혹 말실수를 한 게 아닌가 했다. 아무튼 왕의 신참례 명령으로 인하여 4인방의 규장각 사진(출근)은 허락되지 않았다. 당상관인 인욱은 신참례를 받아야 사진할 수가 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4인방이 대유재 건물의 그늘에 모여 있을 때 관인 한 명이 봉투 4개를 가져왔다. 인욱은 각각에게 하나씩 나누어주며 문제의 답을 받은 봉투의 종이에 쓰라고 한다. 그리고 붉은색 봉투 하나를 꺼내며 만약 명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는 거기에 적힌 물건을 벌연(벌 받는 잔치)에서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신참례에서는 순라군들이 통행을 방해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봐주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봉서를 뜯어보니 '각자 다른 세 가지의 일을 써라.'라고 되어 있고, 봉투 안의 종이에는 승문원 인장이 찍혀 있었다. 다른 종이로 바꾸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붉은 봉투를 뜯어본 용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연 품목을 넷이 나누어도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윤희가 보지 못하도록 찢어버렸다. 윤희는 이를 보고 신참례에 실패해서 쫓겨나겠다는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쫓겨나는 데다가 빚까지 지면 큰일이 아닌가! 윤희는 종이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소리쳤다.

"세 가지의 일! 이 문장은 '각기 다른 세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의 일이 중심입니다."4인방은 3사를 떠올렸다. 이 때 선준이

"3사란 벼슬하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의 일 즉 청렴, 근신, 근면을 말합니다."라고 말하자 윤희가

"사람 된 도리로 지켜야 할 3사도 있습니다. 사군, 사천, 사사."라고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3사도 있습니다. 정덕, 이용, 후생."

모두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있는데 담장 너머에서 3명의 나인들이 잘금 4인방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선준이 미묘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돌리자 나인들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선준이 또 하나의 3사를 말한다.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데 있어서 농사일이 바탕이 되니 파종, 경운, 추수가 3사라는 것이다. 이리하여 각각 하나씩 선택해서 쓰고 이 답을 제출할 승문원의 우두머리리인 황 판교의 집으로 가려고 한다. 선준과 재신은 발이 넓은 용하를 보며 황 판교의 집이 어디냐고 묻자 답은 용하가 아닌 윤희에게서 나왔다. 윤희가 어떻게 황 판교의 집을 아는지 궁금했지만 윤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세한 약도를 그려준다. 하지만 그냥 승문원의 문을 넘을 수 없다. 승문원의 신래는 인간으로서는 문을 넘지 못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귀신분장을 했다. 4인방은 궐문이 닫히기 직전에 궐을 빠져나와 황 판교 댁을 향해 달렸다. 통행길로 가면 순라군들에게 잡힐 것임이 뻔하니 궐 주변의 집들 담을 넘어 황 판교 댁으로 향하자고 한다. 재신은 용하를 맡고, 선준은 윤희를 맡아 누구네 것인지도 모를 담을 넘고 달리고, 담을 넘고 달리고 하여 승문원 황 판교의 집에 이르렀다. 4인방은 답이 적힌 종이를 판교의 대문 안으로 휘날렸다. 황 판교는 4인방이 무사히 자기 집에 도착한 줄을 알고 도성 치안의 허술함을 탄식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황 판교와 승문원 관원들이 종이를 펴 보았다. 원했던 답이었다. 이리하여 황판교가 4인방에게 들어올 것을 명하자 갑자기 시체 4구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이리하여 무사히 황 판교의 마당 안으로 들어온 신귀 4인방. 이윽고 곧 삼경을 알리는 누고(시각을 알리기 위해 치던 북) 소리가 가득했다. 이렇게 하여 4인방은 황 판교 집에서 거나하게 얻어먹고 잠까지 잤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니 문제였다. 시체처럼 떨어졌던 것이 모두에게 통증을 가져다 준 것이다. 특히 용하의 엄살은 심했다.

궁으로 돌아오니 각자 제 벗어놓았던 관복을 가져왔는데 한 사람 것이 없었다. 바로 윤희의 관복이었다. 만약 도둑이라면 고급스런 용하의 관복을 가져갔어야지 해진 천으로 만든 윤희의 것을 가져갔을까? 의문은 커진다. 이제 승문원 신참례에 합격했으니 예문관과 사헌부, 홍문관의 신참례에 합격해야 한다. 예문관 같은 경우는 신례침학이 독하기로 소문이 나서 죽은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문관의 신참례 문제는 쉬웠다. '四子'를 다르게 적는 것'이었다. 이것은 가랑이 아는 것이었다. 그러자 맥이 빠진 4인방은

"다음엔 5사 5교, 6사 이런 식으로 문제가 나오는 거 아냐?"

라고 크게 떠들었다. 그런데 이 소리가 홍문관 대제학의 귀에 들어갔다. 정말 예상 문제를 보니 6사를 묻는 문제였다. 대제학은 이렇게 망신스러운 적이 없다면서 4인방을 단단히 혼내줄 문제를 내리라며 앙다짐을 한다.

3. 3인방은 예문관의 신참례를 무사히 마치고 사헌부의 심참례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헌부의 대사헌이 홍문관의 대제학과 만나 만만치 않은 신참례 문제를 준비했기에 4인방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사헌부의 신참례 봉투 안에는 종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다 답을 쓰란 얘기인가. 문제는

'동반과 서반의 모든 품계의 관청, 이에 소속된 모든 품계의 관함을 말하라.'였다.

적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것을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외울까? 선준과 윤희는 경국대전에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다 외웠지만 용하와 재신은 그렇지 못했다.

"난 외우는 거 질색이거든. 난 못해."

재신의 말이었다. 그러나 선준과 윤희는 그래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눈빛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정1품 관청은 종친부, 의정부, 충훈부, 의빈부, 돈녕부... 정1품 관함은 영의정, 좌의정......."

재신은 제 머리를 움켜쥐고 발악을 했지만 도무지 외워지질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어쨌든 대충 외우고서 대사헌의 집으로 가려는 4인방. 이 때 웬 가짜 홍벽서가 나타나 사헌부 관청 앞에 벽서를 붙이고 있었다. 2번째 벽서였다. 순라군들이 그리로 몰려가는 바람에 4인방은 대사헌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담을 뛰어 넘어 마당으로 들어선 4인방은 깜짝 놀란다. 뒷간에서 퍼온 똥냄새가 천지를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대사헌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한 사람에겐 문제를 내서 맞히게 하고 못 맞힐 경우 나머지 한 사람을 공중에 매단 뒤 똥물 함지박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똥물에 빠져 온갖 독이 올라 죽을 수도 있으며 벌연으로 집 한 채 값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 선준과 용하, 재신과 윤희가 짝이 되었다. 그리고 선준과 재신이 답을 맞혀야 하다. 선준과 짝이 된 용하는 문제가 없었으나 재신과 짝이 된 윤희는 낭패감에 젖어야 했다. 재신은 완벽하게 외우지 못해 만약 모르는 문제가 나올 경우 윤희는 똥물에 빠져야 하고 그렇게 되면 똥독이 오르는 것은 둘째치고 여자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는 것이다. 예상대로 선준은 문제를 다 맞혔으나 재신은 꾸물꾸물거렸다. 그래도 간신히 정답을 다 말했는데 짓궂은 시험관들은 비겁하게도 공중에 매단 윤희를 아래로 떨어뜨린다. 순간 선준이 몸을 날려 윤희가 똥물에 빠지는 것을 막아 신참례를 무사히 마치게 된다. 그들은 똥물 앞에서 대사헌이 가져다 준 음식을 먹는다. 백성들은 이렇게 거름을 뿌려둔 밭 앞에서 늘 식사를 한다면서 똥냄새와 함께 감사히 식사를 한다.

4. 다운은 신랑의 방을 열심히 닦고 있다가 서랍 안에서 재신이 쓴 시를 발견하고 꺼내 읽는다. 한문으로 된 글은 아직 한자를 다 깨우치지 못하여 읽지 못하고 언문으로 된 글을 읽는데 이것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쓰는 연서가 분명했다. 다운은 더는 시를 읽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자신의 존재가 보잘 것 없게 느껴진다.

한편 홍문관에서의 신참례 과제가 왔다.

'글자의 뜻은 내용이며 음은 운(韻)이다. 시문을 지어라.' 였다. 네 개의 봉투 안에 든 종이에는 화(華), 수(秀), 영(英), 영(榮)이란 글자가 있었다. 너무 쉬운 것 같아 이상했는데 글자가 써진 종이의 한 쪽 부분에 모두 뜯어낸 자국이 있었다. 그래서 맞춰보니 '영화수영(榮華秀英)이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 4인방은 글자의 공통점을 찾기로 한다. 그러니 공통적으로 모두 꽃을 나타내는데 영(榮)은 '풀의 꽃' 화(華)는 '나무의 꽃' 수(秀)는 '꽃 없이 맺는 열매' 영(英)은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이다. 그래서 각자 하나씩 선택해 시문을 짓기로 한다. 재신은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인 '영'을 선택하여 상사화를 소재를 사랑의 시를 짓겠다고 하고, 용하는 '수'를 가져갔다. 꽃 없이 열매를 맺는 꽃은 전설의 꽃 우담바라였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와 관련이 된 꽃이기 때문에 유생들이 좋아할 리 없다고 하자 선준이 뽕나무 종류 중에 백성들의 노고를 나타내는 우담화가 있다고 가르쳐 준다. 용하는 선준의 박식함에 또 한 번 놀란다.

선준는 '나무의 꽃'을 나타내는 화(華)를 선택하여 매화를 소재로 시문을 짓기로 하고, 윤희는 '풀의 꽃'인 '영(榮)'을 선택해 난초 꽃을 소재로 하기로 한다. 윤희가 쓴 시문은 배고픔과 매질로 피 토하고 죽은 가난한 어린 소녀의 처지를 읊은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용하였다. 용하가 시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을 때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글은 재신이 완성하고 글자로 옮기는 일은 윤희가 했다. 윤희가 글자로 옮기는 동안 용하는 선준과 재신에게 홍문관 대제학의 집으로 가는 길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미 닫힌 궐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는 것이다.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평상복을 입은 임금이 나타난다. 4인방이 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왕이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다. 왕은 4인방을 집춘문으로 안내했다. 집춘문에 도착하자 왕은 윤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신 앞에서 늘 조용하고 말이 없는 윤희에게 말한다.

"내내 몸 숨기고, 시선 숨기고, 숨소리마저 숨기는구나."

그러자 윤희는 당당하게

"지금 시간이 급하온데 상감마마께서는 도와주려고 오신 겁니까? 방해하려고 오신 겁니까?"라고 말한다. 왕은 윤희의 말에 농이었다고 얼버무린다. 4인방이 모두 담을 넘자 왕은 중얼거린다.

"난 너 같은 계집들은 믿지 않는다. 날 낳아 준 어미조차 믿지 못하는데 하물며 거짓을 지닌 계집은 말해 무엇하겠느냐."

한편 순라군들은 4인방이 반촌 쪽으로 오리라고 예상 못 했는지 심한 경계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당당히 신참례를 마친 4인방은 이문원 계단을 거쳐 규장각 정식 관원으로 사진(출근)을 허락받게 된다. 첫 출근을 인사받은 것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낮에 퇴궐을 할 수 있었다. 4인방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는 대간 관원들도 와 있었다. 그들은 4인방의 소식을 듣고는 한참 질투를 하고 있었던 터라 일부러

"잘금 4인방? 향안랑 4인방? 웃기고 있군. 유색(幼色) 4인방 같으니."

라고 놀려대자 드디어 선준과 재신이 그들의 말을 맞받아치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대간 관원들이 만신창이가 되어 뒹굴고 있을 때 포졸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4인방은 뒷문으로 도망친다. 그런데 도망치던 중 갑자기 용하가 홍벽서가 나타났다는 말을 꺼낸다. 진짜 홍벽서인 재신을 두고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벽서의 내용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날 용하는 기생집으로 가고, 재신도 부들부들 떨며 본가로 가서 선준과 윤희만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늙은 하녀도 심부름을 해야 한다며 나가고 순돌이도 보이지 않았다. 선준이 남산골 윤희네 집으로 심부름을 보냈다는 것이다. 윤희의 짐을 가져오라고 말이다. 신참례 때문에 용하의 익랑골 집으로 자연히 들어오게 된 윤희. 이렇게 하여 두 사람만 남게 된 집. 선준은 이 때가 기회라고 여기며 윤희와 하룻밤을 보내려고 한다. 한참 뽀뽀를 하더니 선준은 윤희를 안고 그녀의 방으로 간다. 그러나 순간 윤희의 뇌리를 스치는 이정무의 말.

"내 아들의 흔적, 네 몸에 남기지 마라. 내 아들의 씨는 네가 받을 수 있을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윤희는 발버둥을 치며 선준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선준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여 윤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윤희는 계속 남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신을 하면 안 되지 않냐고 한다. 그 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선준이 대문으로 향하고 윤희는 한숨을 쉬며 빨리 사임원서를 작성해야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집으로 온 재신은 아버지 근수를 만난다. 근수는 가짜 홍벽서가 장안을 누빈다는 말을 하며 아들을 걱정한다. 그리고 노론이 낀 4인방과 어울려 다니는 그를 나무란다. 이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 문을 여니 다운(반토막)이 서방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보고 싶어 기웃하고 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시아버지와 남편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받는 다운. 울먹이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시어머니인 황씨와 마주친다. 황씨는 며느리를 따뜻하게 감싸 주면서 재신의 어릴 때 얘기를 한다. 어릴 때부터 시적 재능이 남달랐다는 재신. 다운은 시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신도 글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시문도 짓고 싶다고.

제 5장 동고 놀이

1. 윤희는 제학 이인욱의 방으로 들어가 사임원서를 내민다. 그러나 오히려 화를 낸다. 물론 김윤식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사임원서를 받는다면 김윤식의 규장각 내정을 반대했던 자기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짓을 또 한 번 했다가는 전최(점수)에 불이익을 당할 거라며 야단을 쳐서 내보낸다. 윤희는 이정무의 명령을 실행하기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정무도 이제 좌의정이 아니라 우의정이었기 때문에 규장각에 있는 윤희를 어찌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왕은 이 4인방을 데리고 열고관(정조가 공부하던 도서관)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4인방에게 이 열고관의 책들을 4달 동안 다 읽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윤희에게는 이 열고관의 서적들을 읽는 문제보다 사임하는 문제가 더 큰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사임을 할 수 있을까? 윤희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는 선준의 표정도 심각하다. 결국 윤희는 이정무를 찾아간다. 아무래도 한 달 안에 궁을 나가라는 이정무의 명령을 지킬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무를 만나기란 임금을 만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윤희는 정무를 만나보지 못하고 열고관으로 돌아온다. 어디에 갔다왔냐는 말에 윤희는 아무 말 않고, 선준에게도 미소만 지어 보인다. 그러다가 홍벽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용하가 아무래도 홍벽서는 우리편 같다고 말한다. 신참례 밤마나 홍벽서가 나타나 순라군이 그 쪽으로 가는 바람에 명령을 수행하기가 수월했다면서 혹 그 홍벽서가 상감마마가 아닌가 하는 말을 한다. 만약 홍벽서가 임금이라면 이제 홍벽서는 나타나지 말아야 했다. 윤희가 캄캄한 열고관에서 가져갈 책을 챙기는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선준이었다. 선준은 낮에 윤희가 어디에 갔다왔는지 짐작을 하는 것처럼 자기 곁을 떠날 생각을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은 먹을 것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며 아무도 보지 못할 구석진 곳에서 윤희를 안는다. 너무도 보고 싶고 너무도 안고 싶지만 그들은 궁궐의 관리가 아닌가. 그리고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열 셀 동안만 안고 있자고 하지만 셋까지도 세지 못한다. 이젠 선준은 윤희 없이, 윤희는 선준 없이 살지 못할 것만 같다.

2. 윤희에게 삭서고시(매월 1일에 해서와 전서로 글씨 시험을 보는 것)와 소대(임금이 신하를 불러 정사에 대해 의논하는 일)에도 참석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다. 4인방들은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장계와 각 관청에서 올리는 계본을 모두 살피는 일을 했다. 장계를 살피던 선준이 조운선(조세를 운반하는 배)이 약탈당했다는 내용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백성들이 낸 세금만 약탈해 가는 해적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중간에 누군가 세금을 포탈하고 해적 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선준은 장계에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 달라는 의견을 첨부하고 그 아래 자신의 수결(사인)을 남겼다. 윤희는 양인들의 처리에 대한 사건을 주로 정리했는데 사건의 근본원인을 지적하고 고을의 잘못을 지적한 후 수결을 남겼다. 왕은 선준과 윤희가 정리한 글을 자세히 읽고 원본까지 읽었다.

한편 윤희는 다시 한 번 이정무를 찾아간다. 이번에는 무턱대고 앉아 있기로 했다. 그래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드디어 퇴궐하는 우의정 이정무의 가마가 나타났다. 윤희는 무조건 가마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정무는 사람들을 시켜 윤희를 멍석으로 말게 했다. 그녀의 몸은 자신의 아들이 손길이 닿았던 곳이 아닌가. 멍석말이는 어쩌면 자신의 며느리가 될 지도 모르는 윤희를 지켜주기 위한 정무의 배려인지도 몰랐다. 윤희는 멍석에 말려진 채로 이정무에게 사임원서를 올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 멍석이 풀리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어깨위에 걸치는 것이 아닌가. 선준이었다. 선준은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윤희와 자신을 떼어놓을 생각은 말란다. 이성적인 윤희에 비해 선준은 감정적이었다. 이 모습을 본 정무는 선준에게 한심하다고 야단을 친다. 그러다가 홍벽서가 나타났단 얘기가 나오자 사색이 되어 선준과 윤희는 정무에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뛰어나간다. 그런데 그날 가짜 홍벽서가 아닌 원조 홍벽서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장안에 깔렸다.

3. 익랑골 용하의 집. 용하의 기상하라는 소리에 윤희는 피곤한 눈을 떴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를 꼭 껴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준이었다. 윤희가 몹시도 그리웠던 선준은 참지 못하고 윤희를 껴안고 잠들었던 것이다.

"남편이 아내와 한 이불에서 자는 것이 큰 흉이 될 일이오?"

"사내 복장을 한 이와 한 이불에 있는 것은 큰 흉이 되고도 남지요."

사실 선준은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 윤희가 아버지의 협박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도망이라도 가면 어쩔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윤희의 방문을 열고 이불을 들어 그녀가 자고 있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새근새근 잠든 윤희의 소리가 좋아서 잠시만 더 들어보자고 하다가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 그녀를 안았다가 잠이 들고 만 것이었다. 선준은 윤희에게 말하였다.

"만약에 당신이 아버지의 협박에 못 이겨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그 후에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오? 굳이 나에게 답을 들려줄 필요는 없소. 알고 있을 테니까."

선준은 윤희의 방을 나갔다. 그러잖아도 파직당하지 못해 고민이 깊은데 선준마저 그러니 윤희의 머리는 복잡했다. 그런데 놋쇠대야 깨지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푹 좀 자려고 하는데 용하 때문에 다 틀렸다.

용하는 동고놀이를 가자고 한다. 동고놀이는 거지 분장을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떡이나 전을 나누어주는 놀이었다.  남인들이 하던 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윤희에게 김윤도 데려와 함께 놀자고 한다. 순돌이가 윤식을 데려왔다. 이제 윤식의 얼굴에서 병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거지 행색을 하고 동고놀이를 하러 거리로 나왔다. 동고놀이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고 헐벗고 굶주린 어린 백성들이 보이면 수레에 싣고 가던 떡과 전을 쥐어주고 다시 춤을 추었다. 거지가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기괴한 풍경이었다. 거지들 틈에서 환하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윤희를 보며 선준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동고놀이 때 가짜 홍벽서인 청벽서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용하의 말에 재신도 이 놀이에 참가하긴 했지만 재신은 용하의 말에 속은 자신을 나무랐다. 그런데 재신의 손에 무엇인가 닿았다. 어느 틈에 허벅지와 손가락 사이에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귀신 같은 놈은 사라지고 없었다. 쪽지를 펼쳐보았다.

'홍벽서,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한다. -청벽서- '

재신은 사람들 무리 속에서 그 귀신 같은 놈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한편 윤식은 사람들이 많은 틈에서 누이도 잃고 일행도 잃었다. 그 때 어떤 한 도령이 윤식의 목도리를 잡아 끌었다. 그 도령이 떡 하나 얻어 먹어도 되냐 묻자 김윤은 곱상한 그 도령을 보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식이라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곱상한 도령이 웃는데 이건 사내가 아니었다. 여인이었다. 누이와는 딴판으로 사내같은 구석이 전혀 없는 온전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용하는 멀리서 이 여인을 보고 술 석 잔이 넘는 미모라고 칭찬한다. 윤식은 여인이 남기고 간 붉은 천의 끝자락에 수놓아진 '황서영'이란 이름을 보았다.

4. 타오른 동고놀이 행렬은 선전관조차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규장각의 각신들을 찾아야 한다. 그 날 왕은 청나라의 사신들과 연회를 베풀고 있었는데 사신들이 조선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 일꾼들의 시문을 보고 싶다고 하여 왕이 잘금 4인방을 찾은 것이다. 거리는 복잡했지만 잘금4인방은 워낙 눈에 띄는 인물들이라 선전관들은 술에 널부러져 있다시피한 재신을 비롯한 그들을 궁궐로 데리고 간다. 한편 윤식은 황서영을 따라 순돌과 달리다가 한적한 곳에 이르러 서영을 다시 만난다. 서영이

"이름 보고 제가 누군인지 아셨죠? 소녀가 그 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얼굴이라도 한 번 뵙고 싶어 이런 장난을 하였어요. 송구하여요. 도련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여인은 누이를 보고서 나를 누이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윤식은 자신의 정체를 서영에게 밝힐 수가 없었다.

한편 연회장으로 끌려오다시피 한 4인방의 모습은 모두 거지꼴이었다.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왕이 놀란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시문하고는 거리가 먼 용하가 끼어 있지 않은가. 정말 재수가 없어서 사신이 용하를 보고 시문을 지으라고 한다면 큰일날 일이었다. 또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재신.

"허허, 저 지경이었으면 데려오지 말았어야지."

한 신하가 선전관을 향해 야단을 쳤다. 사신들은 용하를 점찍으려다가 몰골이 엉망이 되어 널부러진 재신을 향해 시문을 지어보라고 한다. 조선이 망신 당하는 것을 톡톡히 보리라. 그런데 재신이 소리를 지른다.

"이것들이! 빨리 안 불러?"

조선말을 모르는 청의 사신들은 '준비가 끝났으니 운을 주십시오."라는 해석된 말을 듣고 운을 불렀고 재신은 낙서를 하는 건지 시를 짓는건지 후다닥 다 쓴 후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왕이 먼저 재신의 글을 보았다. 글씨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수십 개의 문장은 질서정연한 시문이 되어 있었다. 왕은 이런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홍벽서. 아아, 그렇다면 문재신이 홍벽서란 말인가. 왕이 사신에게 그 글을 넘겨주자 사신은 놀란 눈으로 그 글을 읽어내려가고 괴상한 감탄을 내어질렀다. 왕은 4인방에게 물러가라고 하고 김윤식만 불렀다. 꽁지 빠지게 달아나려던 윤희는 멈칫했다.

"김윤식은 그런 행색으로 오게 된 사연을 간략하게 적어 사신한테 전하라."

윤희는 그 사연을 적어 사신들에게 보여주었다. 사신들은 윤희가 적은 글을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녀의 글씨에 대해 감탄을 금하지 않았다. 저리도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서체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글을 올리고 윤희가 선준에게 이끌려 연회장을 빠져나오려는데 초선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초선은 예전에 대물도령을 물고 뜯는 사건을 벌인 후에 궁궐 기생이 되었던 것이다. 선준은 윤희를 자기 등 뒤에 숨기고는 초선에게 매우 냉랭한 입장을 취했다. 용하도 "헉, 우리 대물 가운뎃다리 잘라 가지고 가겠다고 덤비기 전에 도망가야겠네. 우리 대물 살려!"하고 너스레를 떤다. 용하는 선준과 윤희의 목을 꿰어 데리고 가버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초선의 작은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다음날 재신은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도무지 연회장에 들어갔던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한 번만 더 술을 마시면 개다."

한편 윤희의 마음도 편치 않아 얼굴이 사색이 된 상황이다. 그러잖아도 밉다밉다 하는 며느리인데 정무에게 기함할 꼴을 보였으니 어찌 자기를 좋게 볼 것인가. 재신은 자신이 어제 청벽서에게 받은 쪽지를 용하, 선준, 윤희에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청벽서는 홍벽서를 알고 있는데 홍벽서는 청벽서를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윤희는 어제 일로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이제 규장각을 그만 둘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궁궐에 들어가니 징계는 커녕 임금이 내리는 푸짐한 포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정무는 선준과 윤희를 떼어놓기 위한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차 판관의 여식과 선준을 결혼시키자는 계획인 것이다. 정무는 찾아온 차 판관에게 서랍안에서 약봉지를 꺼내 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 판관의 집에 선준을 보낼 것이니 이 약을 물에 타서 먹이라는 것이다. 의식을 잃게 하고 신방에서 옷을 벗긴 후 재우고 나면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니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차 판관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권 끝

Toplist

최신 우편물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