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리뷰]'광기(狂氣)' 가득한 연극, '에쿠우스'가 돌아왔다

신·인간·섹스..인간의 욕망 파고든 '파격 연극'
류덕환, 3년여 만에 주인공 '알런'역으로 복귀
44년째 공연..근육질 男배우의 말 연기 '압권'

  • 등록 2019-09-21 오전 6:00:01

    수정 2019-09-21 오전 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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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연극 ‘에쿠우스’의 한 장면. 극중 알런(류덕환)이 매력적인 말 너제트를 만지고 있다(사진= 나인스토리)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원초적 쾌락에 대한 ‘갈망’, 사회 관습 속에서 갖게 되는 ‘자아 상실’…. 연극 ‘에쿠우스’가 40년 넘게 사랑받는 것은 아마도 신과 인간, 섹스라는 영원불멸의 화두를 가장 강렬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1975년 극단 실험극장이 국내에서 초연한 후 매시즌 큰 화제를 낳았던 문제작 ‘에쿠우스’가 1년 만에 더 강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벌써 44년째 공연되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에쿠우스’는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극은 쇠꼬챙이로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 뒤 정신병원에 들어온 알런, 그의 치료를 맡은 중년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대화로 전개된다. 다이사트의 대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관객들에게 정서적 ‘전이’를 일으키는 건 알런이다. 현대인의 잠재된 욕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말(馬), 라틴어로 ‘에쿠우스(Equus)’다.

알런은 말 그림 앞에서 기도를 하고, 한밤 중 마굿간을 찾아 말을 쓰다듬으며 탐닉한다. 광적인 기독교 신자 어머니와 무신론자 아버지 사이에서 억압받고 자란 알런에게 있어 ‘에쿠우스’는 종교이자 애인인 것이다. 양 끝단인 것 같은 ‘신(神)’과 ‘성(性)’이지만, 결국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둘을 모두 갈망하는 존재라는 걸 ‘알런’을 통해 얘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런은 여자친구인 ‘질’의 손에 이끌려 마굿간에서 첫사랑을 나누려다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말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질’과의 섹스에 실패한 탓이다. 알런은 ‘질’이라는 새로운 욕망의 분출구를 발견했지만, ‘말’이라는 종교적 굴레에 얽매여 본능에 따르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척 괴로워 한다. 결국 알런은 본능을 좇기 위해 말들의 눈을 찔러 굴레를 벗는 길을 택한다.

알런을 치료하던 다이사트는 그의 얘기를 듣고 점차 매료된다. 알런이 갖고 있는 순수함, 정열에 대한 ‘동경(憧憬)’이자 ‘끌림’이다. 열정이 식은 섹스리스(sexless) 결혼 생활과 의사라는 직업에 얽매여 무기력· 권태에 빠져있던 다이스트는 정작 자신의 병은 치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허탈해 한다. 결국 디사이트는 알런을 치유하려던 자신의 행위가 ‘정열의 파괴’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고 후회한다.

광기와 이성, 신과 섹스, 본능과 억압이라는 인간 본연의 화두를 예리한 시선으로 깊이있게 파고든 ‘명작’이다. 긴박감 넘치는 극 전개는 2시간 내내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아맨다. 특히 극 말미 다이사트가 내뱉는 처절한 독백 속에서 느껴지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어느덧 삶에 지쳐 열정을 잃어버린 기성세대들의 모습이 투영돼 여운이 짙다. 이번에도 근육질 남성 배우들이 분장한 일곱 마리 말은 야성적이고 섹시하다.

류덕환·오승훈·서영주가 알런 역을, 장두이·안석환·이석준이 다이사트 역을 맡았다. 2015년 공연 후 3년 여 만에 다시 ‘알런’으로 돌아온 류덕환의 연기는 더 무르익었다. 11월 17일까지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에서 공연한다. 관람료는 4만~6만원.

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연극 ‘에쿠우스’의 한 장면. 극중 다이사트(이석준)가 알런(오승훈)을 치료하고 있다(사진= 나인스토리)

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에쿠스》(Equus)는 영국의 극작가 피터 섀퍼의 대표작으로서 1973년에 영국 올드빅 극장에서 초연된 후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1975년 9월에 극단 '실험극장(實驗劇場)'이 신정옥(申定玉) 역, 김영렬(金英烈) 연출로 소극장 개관기념으로 공연하여 3개월이라는 연극사상 최장기 기록을 세웠고 관객 확대에도 성공하여 연극에 대한 대중의 새로운 인식과 아울러 연극운동의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다. 현대문명과 기성도덕, 또 그에 따른 기성세대의 위선을 비판한 이 작품은 근본적으로 현대인의 절망과 실존적 고뇌를 그리고 있다. 라틴어로 말(馬)이란 뜻의 '에쿠우스'는 영국 법정에서 커다란충격과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6마리의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마굿간 소년의 괴기적 범죄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 시골 정신병동이 무대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어느날 한 여판사는 6마리의 말을 쇠꼬챙이로 찔러 법정에 서게 된 소년을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와서 그 원인규명과 진료를 간청한다. 이 소년은 형벌보다는 병리적 치료를 받게 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여판사의 제안이었다. 의사는 자기 병원에 입원시킨 후 그 소년의 범죄에 대한 심리적 요인을 캐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의사는 소년의 부모를 찾아가서 그 집안 사정부터 알아본다. 소년의 아버지는 인쇄공이고 어머니는 전직 교사였다. 의사는 소년의 어머니로부터 그는 일찍부터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고, 말을 유난히 사랑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소년의 어머니는 기독교의 광신도인데 반해 아버지는 무신론자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런 이질적 부모 밑에서 성장한 소년은 전기기구 상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다가 마구간에서 일하고 있던 소녀를 알게 되고, 그녀의 소개로 마구간에서 그녀와 같이 일하게 된다. 이야말로 소년에게는 생의 환희이며 인생의 전부였다. 어느날 소녀는 소년을 꾀어 성인영화를 구경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서 항상 근엄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소년의 실망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마구간으로 돌아온 소녀는 소년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소년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말이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여 말굽파게로 마구간의 말눈을 모조리 찔러 버린다. 그리고 자기 눈마저 찔렀던 것이다. 이상은 의사가 치료를 위해 소년에게 재현시킨 것이다. 소년은 신(神)을 긍정하는 어머니와 신을 부정하는 아버지와의 이질적 상황 속에서 자기모순이라는 성격을 만들었던 것이다. 고독했던 소년은 말을 동경과 애정과 신앙으로 삼았다. 그러나 기성에 대한 일체가 무너지면서 신처럼 생각했던 말을 공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에쿠우스'에 나오는 말을 신이라든가 숙명, 또는 냉혹한 현실과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볼 수가 있다. 젊은이는 그런 비정과 중압감에서 자기 생의 의미를 찾고 인간으로서의 존재 확인을 위해 방황한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그대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기 위한 자기 포기를 결행했던 것이다.

외부 링크[편집]

  • (영어) Equus - 인터넷 브로드웨이 데이터베이스
  • (영어) Equus (1974 production) - 인터넷 브로드웨이 데이터베이스
  • (영어) Equus (1977 film)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핵심요약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서 11월 8일부터 2023년 1월 29일까지

에쿠우스 연극 - ekuuseu yeongeug
극단 실험극장 제공 '극단 실험극장'의 레퍼토리 연극 '에쿠우스'가 3년 만에 무대에 오른다.

'에쿠우스'는 11월 8일부터 2023년 1월 2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한다. 올해 창단 62주년을 맞은 '극단 실험극장'의 제187회 정기공연이다.

영국 극작가 피터 쉐퍼(1926~2016)의 '에쿠우스'는 1975년 국내 초연했다.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 스트랑'과 그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광기와 이성, 신과 인간, 원초적 열망과 사회적 억압의 경계를 예리하게 파고든 수작이다. 에쿠우스는 라틴어로 '말(馬)'을 뜻한다.

'알런'을 치료하며 인간 내면에 대해 고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다이사트' 역은 최종환, 한윤춘, 장두이가 캐스팅됐다. 장두이는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리어왕' 등에 출연했고, 국립극단 출신 한윤춘은 연극 '세 자매, 죽음의 파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에 참여했다.

일곱 마리 말의 눈을 찌른 광기 어린 소년 '알런' 역은 김시유, 강은일, 백동현이 연기한다. 김시유는 2014년 알런 언더스터디로 참여한 후 2019년 지방 공연부터 주연으로 활약했다. 연극 'B 클래스', '아가사'의 강은일과 연극 '스메르쟈코프', '환상동화'의 백동현은 처음 합류한다.

이한승이 연출한다. 1975년 '에쿠우스' 국내 초연 당시 배우로 무대에 섰던 이한승 연출은 2014년부터 제작을 맡아왔다. 그는 "원작의 인문학적 무게와 깊이 있는 질문, 탄탄한 구성의 명작을 바탕으로 원작과 가장 가깝게 무대화 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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