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없는 것이 없는 풍요의 도시에

부족한 건 ‘여유’뿐일지도 모른다

[글로벌이코노믹=전혜정 미술비평가] 도시의 삶은 화려하다. 우리 대다수는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도시’라는 말을 떠올리면 사람이 많고, 복잡한 거리, 도로에 꽉 들어찬 차들, 도도하게 하늘로 솟은 건물들, 밤이면 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가득한 모습을 떠올린다. 도시에는 온갖 세계의 별미들을 다 맛볼 수 있으며, 영화, 미술, 음악 감상 등 원하는 모든 문화생활이 다 가능하다. 없는 게 없는 이 도시에 부족한 것은 어쩌면 ‘여유’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에는 카페들이 그렇게 즐비하고, 여유를 추구할 것을 종용하는 책들이 많으며, 잠깐 짬을 내 감상하라는 작은 음악회와 전시회들이 그렇게 풍성한가보다.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밤을 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

작품 ‘밤을 새우는 사람들’ 속의

不通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서글픔

배우들이 연기하는 ‘傍白’ 무대다

또 다른 작품 ‘자동 판매식 식당’

커피를 마시는 그녀는 고독하며

그녀를 보는 우리 또한 고독하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들은 번잡한 도시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쓸쓸함’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의 여유를 넘어선 호퍼 작품 속에서의 이 고독은 그림 속의 도시가 어디이건, 도시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밤을 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에는 밤새 여는 식당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새벽녘이면 세계 어느 도시에서건 이런 비슷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왁자지껄한 밤의 흥겨움이 끝나고 난 후에 찾아오는 시간들. 등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신사는 한 손에 컵을 쥐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앞에 앉아있는 커플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흰 옷을 입은 종업원은 몸을 숙이고 일을 하면서 마주앉은 손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은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는지 안 듣는지 손끝을 보며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손톱에 칠해 놓은 매니큐어를 신경 쓰는지도 모르겠다. 옆의 남성이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는 듯 보이는데, 그의 눈이 어딘가를 보고 있는지 애매하고, 담배를 쥔 한 손 끝이 여성의 손끝에 슬쩍 닿은 것으로 보아 실상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굳게 닫은 입을 보면 종업원이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 대답 없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도시에 비해 너무나도 깨끗하고 정돈된 호퍼의 이 밤의 모습에서 우리는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낀다. 불이 밝혀진 식당에는 모든 것이 가지런하고, 식당 빛에 가로등 빛까지 더해진 거리에는 오염하나 없다. 밝고 말끔한 이 밤의 모습은 그러나 너무도 쓸쓸하다. 등을 돌려 다른 세 사람과 동떨어진 남성도, 일을 하면서도 무언가 말하고 있는 종업원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남성과 여성 일행도 어느 하나 소통하고 있지 않다. 식당 안을 밝게 비추는 빛도 따스한 느낌 없이 너무나도 깨끗한 거리와 식당안의 사람들을 차갑게 비춰주고 있다. 신비롭고 정지된 느낌인 것 같은 이 장면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으나 어느 하나 소통하고 있지 못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들리지 않는 ‘방백’ 무대다.

알랭 드 보통은 ‘어쩌면 우리가 슬플 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 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호퍼의 그림 속 쓸쓸함에 마음을 위안 받는 것은 그의 그림이 따스하고 환한 색감과 밝게 웃는 모습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쓸쓸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오히려 우리가 쓸쓸함과 고독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사실 인생은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며, 이 도시가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다정다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자동 판매식 식당(Automat)', 1927

한 여성이 ‘자동 판매식 식당(Automat)’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다. 눌러 쓴 모자와 코트를 보니 밖은 쌀쌀하고, 커피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은 아직도 장갑 한 짝을 끼고 있다. 그녀는 어둡고 쌀쌀한 밖에서 따뜻하고 밝은 식당으로 급히 들어와 커피로 몸을 녹이는 중이다. 늦은 시간 차가운 도시에서 안식처를 찾아 식당에 들어 온 그녀의 표정에는 그러나 편안함이 보이지 않는다. 식당 안 우리의 시선이 미치지 않은 다른 곳에 누가 있는지 아니면 그녀가 유일한 손님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에게 이 곳은 포근한 휴식처가 아닌 또 다른 쓸쓸한 곳이다. 커피만이 겨우 차가운 몸을 녹이게 해주는 이 곳의 불빛은 그녀 뒤 쪽의 유리벽에 반사되어 끝없는 어둠 속으로 우리의 시선을 보낸다. 그녀는 고독하며, 그녀를 보는 우리도 고독하다.

‘침묵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

호퍼가 그림 속에 표현한 침묵은

도시의 고독과 쓸쓸함 그 자체다

우린 이제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밤의 사무실(Office at Night)', 1940

호퍼에게 도시는 외로운 곳이었다. ‘밤의 사무실(Office at Night)’에 대해 호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그림은 내가 뉴욕에서 기차를 많이 타고 다닐 때 내 마음 속에 새롭고 선명한 인상을 남기며 지나가는 사무실 내부의 어두운 모습이 자극되었을 것이다. 내 목표는, 나에게 확실한 의미가 있는 사무실 가구와 더불어 하는 높은 곳에 있는 듯 고립되고 외로운 사무실 내부의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늦게까지 일하는 사무실의 모습은 무척 익숙한 풍경이지만, 호퍼의 사무실은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준다. 앉아있는 남성은 스탠드 불빛에 서류를 비추어 읽는 중이며, 그 옆의 여성은 남성이 읽고 있는 서류를 바로 전에 꺼내준 듯 보인다. 두 인물이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으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서류를 주고받으며 같이 일했음에 틀림없지만, 창문에서 들어오는 밤의 빛이, 갈색 책상과 검은 색 서랍장이라는 둘이 각각 차지하고 있는 가구가 둘 사이를 각각 다른 세상을 만들어놓고 있다. 우리가 들여다보는 그림 속의 둘은 우리와, 그리고 사무실 밖의 세상과 고립되었지만, 그림 속 한 공간에 있는 두 사람도 빛으로, 가구로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같이 일하되 서로 소통하지 않고, 말했으되 지금은 침묵한, 바로 그 외로움의 순간이 호퍼가 포착한 도시의 모습이다.

아무도 없는 도시의 아침은 어떨까. 햇빛이 푸른 하늘 아래 붉은 2층 건물을 비추고 있다. 날씨는 청명하고 햇살도 따뜻하다. 거리는 텅 비어있고 도시는 조용하다. 이 낮은 건물은 수평으로 길게 가로질러 있고, 그림 바깥으로 거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거리를 분주히 오가고, 상점에서 물건을 사며, 이발소에서 머리를 손질하며 들락거렸을 사람들 모두 지금은 자고 있으며, 어제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카페에서 도시의 불을 밝히던 사람들도 이제는 없다. 일요일 아침 정적이 흐르는 도시에는 밝은 아침빛과 사람들이 떠난 거리를 지키고 있는 도시의 편린들이 길게 드리우는 그림자만 있다.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이른 일요일 아침(Early Sunday Morning)', 1930

마크 스트랜드(Mark Strand)는 호퍼의 그림 속 침묵을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로 표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만 물론 알 수가 없다. 본다는 행위에 수반되는 침묵은 커져만 가고, 이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이제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우리를 가라고 재촉하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에 머물라고 강요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고독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르고, 우리와 세상과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한다.” 스트랜드의 글처럼 호퍼의 그림 속 침묵은 도시의 고독과 쓸쓸함을 고스란히 전해주어 우리를 도시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게 한다. 호퍼가 작품 속에서 외로운 도시의 모습과 함께, 여행을 위한 장소들-호텔과 식당들, 도로와 주유소, 기차 안과 열차의 모습, 그리고 기차에서 본 풍경 등-을 그려낸 것도 떠나고 싶은 우리의, 호퍼 자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리라.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주유소(Gas)', 1940

호퍼가 자주 인용했던 괴테 詩

‘방랑자의 밤 노래’에서와 같이

삶 너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힘든 고독의 순간이 그치고

평안한 휴식이 오리라 여겼을 것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293호 열차 C칸(Compartment C, Car 293), 1938

에드워드 호퍼 어느 도시의 아침

에드워드 호퍼 작 '호텔 창문(Hotel Windows)', 1955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힘들어 했던 호퍼는 문학작품을 발췌하고 인용하며 자신의 마음을 내비쳤다. 그가 자주 발췌했다는 괴테의 시, ‘방랑자의 밤 노래’에서처럼 도시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그리던 호퍼도 도시 저 편의 자연, 삶 저 너머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고독이 그치고 평안한 휴식이 오리라 여기지 않았을까.

언덕이 모두 조용하고

모든 골짜기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새들이 모두 숲 속에서 조용해지면

곧 그대도 쉬게 되리라.

<참고문헌>

알랭 드 보통, 『여행의 책』(이레, 2004)

게일 레빈, 『에드워드 호퍼, 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을유문화사, 2012)

실비아 보르게시, 『호퍼,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마로니에북스, 2009)

마크 스트랜드, 『시인이 말하는 호퍼; 빈방의 빛』(한길아트, 2007)

■ 작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누구?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미국 뉴욕주의 나이액에서 출생, 뉴욕에서 사망했다. 1889년부터 뉴욕 상업미술아카데미에서 삽화를, 이어 뉴욕 미술학교에 입학해 삽화와 회화를 배웠다. 1906년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뉴욕에 있는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 후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등을 여행하고, 파리에서 장기간 머물렀으며,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암송하게 된다. 1908년 뉴욕에 정착한 그는 이 후 일생동안 줄곧 이곳에서 살며, 현대 사회, 특히 도시의 외로움과 고독한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대표적인 미국 화가가 되었다.

■ 필자 전혜정은 누구?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으며, 국민대에 출강하고 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