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에서 오피셜로 정한 영구 결번은 없지만, 첼시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잔프랑코 졸라의 25번을 암묵적으로 영구결번 대우를 하고 있다.[50] 거기에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도 아니다. 또한 그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로 존 테리가 선택해 20년 가까이 지켜왔던 26번도 영구결번에 가까웠으나, 2022-23 시즌부터는 존 테리가 직접 달아도 좋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칼리두 쿨리발리가 달게 되었다.[51]
18. 관련 문헌[편집]
19. 둘러보기[편집]UEFA 챔피언스 리그 [ 펼치기 · 접기 ] 순서 우승팀 국가 첫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레알 마드리드 CF 1956년 ★★★★★★★ 2 SL 벤피카 1961년 ★★ 3 AC 밀란 1963년 ★★★★★★★ 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4년 ★★★ 5 셀틱 FC 1967년 ★ 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68년 ★★★ 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70년 ★ 8 AFC 아약스 1971년 ★★★★ 9 FC 바이에른 뮌헨 1974년 ★★★★★★ 10 리버풀 FC 1977년 ★★★★★★ 11 노팅엄 포레스트 FC 1979년 ★★ 12 아스톤 빌라 FC 1982년 ★ 13 함부르크 SV 1983년 ★ 14 유벤투스 FC 1985년 ★★ 15 CSA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1986년 ★ FCSB 16 FC 포르투 1987년 ★★ 17 PSV 에인트호번 1988년 ★ 18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1년 ★ 19 FC 바르셀로나 1992년 ★★★★★ 20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3년 ★ 2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7년 ★ 22 첼시 FC 2012년 ★★ ※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구단은 UEFA 영예의 배지를 부착할 수 있는 구단이다. UEFA 유로파 리그 [ 펼치기 · 접기 ] 순서 우승팀 국가 첫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토트넘 홋스퍼 FC 1972년 ★★ 2 리버풀 FC 1973년 ★★★ 3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74년 ★★ 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75년 ★★ 5 유벤투스 FC 1977년 ★★★ 6 PSV 에인트호번 1978년 ★ 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0년 ★★ 8 입스위치 타운 FC 1981년 ★ 9 IFK 예테보리 1982년 ★★ 10 RSC 안데를레흐트 1983년 ★ 11 레알 마드리드 CF 1985년 ★★ 12 바이어 04 레버쿠젠 1988년 ★ 13 SSC 나폴리 1989년 ★ 14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1년 ★★★ 15 AFC 아약스 1992년 ★ 16 파르마 FC 1995년 ★★ 17 FC 바이에른 뮌헨 1996년 ★ 18 FC 샬케 04 1997년 ★ 19 갈라타사라이 SK 2000년 ★ 20 FC 포르투 2003년 ★★ 21 발렌시아 CF 2004년 ★ 22 PFC CSKA 모스크바 2005년 ★ 23 세비야 FC 2006년 ★★★★★★ 24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8년 ★ 25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2009년 ★ 2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0년 ★★★ 27 첼시 FC 2013년 ★★ 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7년 ★ 29 비야레알 CF 2021년 ★ ※ 우승 횟수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구단은 UEFA 영예의 배지를 부착할 수 있는 구단이다. UEFA 슈퍼컵 [ 펼치기 · 접기 ] 순서 우승팀 국가 첫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AFC 아약스 1973년 ★★ 2 FC 디나모 키이우 1975년 ★ 3 RSC 안데를레흐트 1976년 ★★ 4 리버풀 FC 1977년 ★★★★ 5 노팅엄 포레스트 FC 1979년 ★ 6 발렌시아 CF 1980년 ★★ 7 아스톤 빌라 FC 1982년 ★ 8 애버딘 FC 1983년 ★ 9 유벤투스 FC 1984년 ★★ 10 FCSB 1986년 ★ 11 FC 포르투 1987년 ★ 12 KV 메헬렌 1988년 ★ 13 AC 밀란 1989년 ★★★★★ 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1년 ★ 15 FC 바르셀로나 1992년 ★★★★★ 16 파르마 FC 1993년 ★ 17 첼시 FC 1998년 ★★ 18 SS 라치오 1999년 ★ 19 갈라타사리아 SK 2000년 ★ 20 레알 마드리드 CF 2002년 ★★★★★ 21 세비야 FC 2006년 ★ 22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8년 ★ 2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10년 ★★★ 24 FC 바이에른 뮌헨 2013년 ★★ FIFA 클럽 월드컵 [ 펼치기 · 접기 ] 순서 우승팀 국가 우승연도 우승 횟수 1 SC 코린치안스 2000년, 2012년 ★★ 2 상파울루 FC 2005년 ★ 3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06년 ★ 4 AC 밀란 2007년 ★ 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년 ★ 6 FC 바르셀로나 2009년, 2011년 ★★★ 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0년 ★ 8 FC 바이에른 뮌헨 2013년, 2020년 ★★ 9 레알 마드리드 CF 2014년, 2016년 ★★★★ 10 리버풀 FC 2019년 ★ 11 첼시 FC 2021년 ★ ECA [ 펼치기 · 접기 ] GNK 디나모 자그레브 레알 마드리드 CF 레인저스 FC 올랭피크 리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AC 밀란 FC 바르셀로나 FC 바이에른 뮌헨 비르키르카라 FC AFC 아약스 RSC 안데를레흐트 올림피아코스 FC 유벤투스 FC 첼시 FC FC 쾨펜하운 FC 포르투 [1] 60~70년대에 사용되었고 엠블렘에서는 04-05 시즌까지 볼 수 있었으나, 구단 창단 100주년에 맞춰서 변경된 현행 엠블렘부터 구단명을 풀 네임으로 기재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자주 보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현재에도 이 약칭을 유니폼 곳곳에서 찾아볼 수는 있다.[2]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하고 있다.[3] 구단 공식적으로는 서런던 더비 중에서 풀럼과의 라이벌이라고만 인정하고 있다.[4] 전통적인 의미의 서북런던 더비는 토트넘과의 더비를 뜻하고, 1990년대 이후 첼시가 급부상하면서 새로이 형성된 서북런던 더비가 아스널과의 더비이다.[5] 1873~1912/잉글랜드인 사업가로 비만이었고 이로 인해 39살 나이로 요절했다.[6] 1871~1935. 거스의 형으로 첼시 공동 설립자이다. 아우가 일찍 죽자 구단주가 되어 첼시를 이끌었다. 아들인 존 조 미어스(1905~1966)가 뒤를 이었고 손자인 조셉 브라이언 미어스(1931~2009)가 구단주를 이어갔다가 1982년에 켄 베이츠에게 팔면서 미어스 가는 첼시와 인연이 끊어졌다.[7] 2022년 토드 볼리가 구성한 컨소시엄이 구단을 인수해 볼리가 대표로 계약을 체결했다. 컨소시엄의 주주총회 의장직은 토드 볼리와 클리어레이크 캐피탈 쪽에서 공동으로 맡는다고 한다.[8] 미국 프로게임단 Cloud9의 소유주이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분 20%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지분 27%를 소유하고 있으며, 다저스가 2013년에 맺은 초대형 중계권 계약 협상에 관여하기도 했다. 히든풋볼에 출연했던 송재우 위원의 말로는 현지에선 거의 보올리라는 발음으로 통한다고 한다. e와 h가 묵음인 데다가 이름에 장음이 들어가서 그런 듯한데, 마찬가지로 이름 철자의 e와 h가 묵음이라 발음하지 않는 같은 케이스가 바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의 투수인 워커 뷸러.[9] 미국 소재 투자회사 클리어레이크 캐피탈(Clearlake Capital)의 공동 설립자.[10] 에그발리와 함께 클리어레이크 캐피탈의 공동 설립자.[11] 다저스, 레이커스, 스팍스의 구단주 그룹인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12] 토드 볼리가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인 케인 인터내셔널의 대표.[13] 영국의 미디어 대행사 MBC PR의 공동 설립자 겸 이사.[14] 더 타임스의 전 편집장이자 전 영국 귀족원 보수당 의원.[15] 클리어레이크 캐피탈 전무이사. 전직 테니스 선수.[16]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수석 커머셜 디렉터와 뉴욕 시티 FC의 최고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으며, 이후에는 캐롤라이나 팬서스의 사장으로 재직했다.[17] 3주장은 은골로 캉테, 4주장은 티아고 실바[18] We Are The Blues[19] 첼시 매니아 :: Carefree!, 카페 규모 순서다.[20] 1992년 폐지[21] 보너스 옵션 포함.[22] 1억 6,000만 € 수준. 레알이 아자르를 기른 튀비즈에 육성회비의 형태로 지불한 돈의 금액이 알려지며, 금액이 알려졌다. 튀비즈가 아자르 사가로 받은 돈은 800만 €로, 이는 이적료의 0.5%라고 한다.[23] 주로 팀의 최다 득점자는 스트라이커가 대부분이지만 첼시는 미드필더가 최다 득점자인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24] 연고지와 관련된 논쟁이 있기도 하지만 구단측이 인정한 공식 연고지를 기준으로 서술한다.[25]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UEFA 컵 위너스컵[26] 유럽에서 첼시를 포함해 아약스,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만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다회(2회 이상) 우승한 유일한 클럽이기도 하다.[27]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FC, 파리 생제르맹 FC 등이 거액을 투자하며 급등한 선수 이적료와 급료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던 기존 구단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구단주가 일시적으로 거액을 투자하였다가 금방 흥미를 잃어버려 선수 급료가 체불되고 구단은 해체 위기를 겪게 된 말라가 CF처럼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재벌 구단은 경영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경유착 등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로만은 20년간 애정을 갖고 성공적으로 구단을 이끌었고, 첼시를 개인의 장난감으로 만든 뒤 흥미를 잃으면 내팽개칠 거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구단주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했다.[28] 첼시는 2000년대 들어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이뤄낸 유일한 구단이다. 지금도 꾸준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고 있으며 우승 경험이 있는 구단[29]으로 명문의 정의를 좁게 보면, 첼시는 명문 구단 대열에 합류한 마지막 주자인 셈이다. 이후 신흥 석유재벌로 리그를 지배하는 중인 맨체스터 시티 FC와 파리 생제르맹 FC, 국내 무대의 강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토트넘 홋스퍼 FC가 꾸준히 문을 두드리는 중이지만, 모두 첫 우승에 실패해 지금까지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구단 목록은 갱신되지 않고 있다.[29] 레알 마드리드 CF, SL 벤피카, AC 밀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셀틱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 FC, 유벤투스 FC, FC 포르투, PSV 에인트호번, FC 바르셀로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첼시 등 16개에 불과하다.[30] 특히 크리스텐센은 쿠르투아와 다르게 첼시 유스로 훈련한 홈그로운 선수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컸다.[31] 대회 폐지[96강] 32.1 32.2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예선의 개념이 없었다.[48강] 이 당시에는 UEFA 유로파리그가 아니라 UEFA컵 시절이어서 조별예선의 개념이 없었다.[35] 런던에서 치안이나 경제력은 서런던 >>>> 북런던 >> 동런던 순이고 훌리건의 과격성은 정확히 그 반대 양상을 띤다. 특히 뉴엄이나 해크니 같은 동네는 런던에서 한 손에 꼽히는 우범지대다.[36] 2004-05 루이스 가르시아의 유령골, 2006-07 라파엘 베니테스의 승부차기 가부좌, 2007-08 욘 아르네 리세의 자책골에도 이어진 연장 승부에서 모친상을 당한 램파드가 보여준 투혼, 2008-09 양팀 팬들도 선수들도 하얗게 불태운 4-4 대첩 등등.[37] 당시 더풋볼이라며 무지막지하게 빨리던 제라드에 대해서 우스갯소리로 이름이 폼나는 제라드가 아니었으면 이정도까진 안빨렸을것이다 정도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않았으나 날려먹은 승점도 승점이지만 주요 원인이자 그 모양새가 너무 절묘해서 멸칭으로 붙어버렸다.[38] 현재 압도적인 전력으로 EPL을 호령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도 바르셀로나를 상대해 6전 1승 5패로 매우 열세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했던 2016-17 시즌에 캄 노우 원정에서 4-0으로 깨지기도 했다. 홈에서 첫 승을 기록하긴 했지만...[39] 이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여겨진다.[40] 호나우지뉴의 궁둥이 씰룩씰룩 골이 이 경기에서 나왔다.[41] 4강 2차전에서 그 유명한 푸욜 장풍 사건이 터졌다.[42] 페널티 박스 내부 엔드라인에서 띄운 공이 그대로 들어갔다.[43] 일단 선수단부터 그렇게 구성을 해두었으니 말이다.[44] 이 때 실수를 저지른 선수가 한참 잘하며 기대를 더해가고 있던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이다. 텐센은 이 실수를 기점으로 멘탈이 무너져, 투헬 부임 이후 물오른 폼을 되찾아 핵심선수로 발돋움하기 전까지 꽤나 긴 슬럼프를 겪었다.[45] 벵거의 아스날 1000번째 경기를 무려 6:0 으로 박살내고 굴욕을 선사했다.[46]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한 2015-16 시즌 전반기에서조차 첼시는 코스타의 적절한 초반 어그로가 대성공을 거두며 2-0으로 이겼다.[47] 2022년 9월 14일자 등록된 유튜브 이수날 채널 "토트넘 상대로 골 넣자 콘테가 조규성에게 보인 반응은?? | 생생정이수"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사진[48]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경우는 F**k off Wanderers, West Brom! 이라고 외친다.[49] 원래는 승리팀인 시티를 위한 블루문이 나왔다.[50] 네마냐 마티치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당시 규정 때문에 45번을 쓰지 못하고 25번을 사용했던 적 빼고는 쭉 공번이었다. 게리 케이힐이 입단 시에 25번을 요구했다가 잡음이 있었던 적도 있다.[51] 이 당시 쿨리발리는 존 테리에게 전화를 걸어서 26번을 달아도 좋냐고 여쭤봤는데 존 테리가 흔쾌히 수락을 해줬다고 한다. 이후 존 테리는 쿨리발리에게 이 번호를 다는 대신 PL 우승해야된다고 조크를 치기도 했다.[52] 아약스, 유벤투스,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은 5번째 클럽이다.[53] 사실 감독 복이 있다기보다는 구단이 수도 런던, 그 중에서도 부촌에 자리잡고 있다는 메리트가 크다. 유명 감독이나 선수들도 당연히 비슷한 조건이면 기본적으로 런던 생활을 선호한다. 당장 조르지뉴가 맨시티 행 도중 첼시로 선회한 것도 런던을 선호해서이며, 아자르 - 캉테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말이 많아도 끈덕지게 첼시에 붙어있는 것도 런던이라는 도시의 메리트 덕이 크다. 당장 로만이 여러 클럽 중에서 첼시를 점찍어 인수한 것도 런던 프리미엄을 무시하기 어렵다.[54] 보통 성적이 부진하다고 감독을 경질하다가 오히려 팀이 나락으로 가는 사례가 흔하다보니 램파드 경질 때도 많은 전문가들이 "첼시는 과거로부터 배운 것이 없다"라고 비판했지만, 팬들은 첼시가 하도 감독을 갈면서 성적을 워낙 잘 내다 보니 오히려 "첼시가 과거로부터 너무 잘 배웠다"는 반응을 보였다.[55] 이때 첼시는 리스 제임스와 코바치치 캉테의 잦은 부상과 아스필리쿠에타의 기량 저하, 크리스텐센의 태업, 멘디의 네이션스컵 차출, 루카쿠의 부진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구단 경제 활동 제재 등등 악재란 악재는 다 겹쳤음에도 이 성적을 내었다.[56] 삼성그룹은 2013 시즌을 끝으로 스포츠 마케팅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2013년 자사 축구단과 남녀농구단을 제일기획의 자회사로 넣으며 운영비를 줄여나가고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와 대한레슬링협회의 스폰서도 더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첼시 유니폼건도 자금싸움에서 밀린게 아니라 계약 연장을 올해까지만 하고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