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판토스 미지수 - diopantoseu mijisu

내용

  영화 제목인 〈용의자 X〉 , 미국 드라마 〈X파일〉과 같이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것을 나타낼 때 흔히 알파벳 ‘X’라는 문자를 사용하곤 하지요.왜 ‘X’인걸까요? 미지의 것을 로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수학의 방정식 때문이에요. 수학에서 미지수를 x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17세기의 수학자 데카르트예요. 데카르트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랍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방정식을 풀 때(그게 ‘방정식’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지만) 모르는 양은 네모라고 두고 풀죠. 그러니까 “3+??=5일 때, ‘??’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러다가 학년이 조금 올라가면 네모 대신에 x라는 문자를 쓰게 되지요. 이렇게 대수방정식에서 네모 대신에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디오판토스라고해요. 수학에서는 숫자를 대신하여 문자를 사용한 것을 ‘대수’라고 해요.
  사람들은 대수를 소개한 디오판토스를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답니다. 디오판토스는 《산술(Arithmetica)》이라는 13권의 수학책을 쓴 4세기 무렵의 수학자예요. 그가 남긴 《산술》이라는 책은 유럽에서는 2000년 가까이 교과서로 쓰일 만큼 중요한 책인데요. 17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는 디오판토스의 《산술》을 공부하면서 그 여백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이것저것 적어 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랍니다. 디오판토스는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여 최초로 방정식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묘비에 방정식 문제를 내기도 했어요.
  디오판토스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얼마나 오래 살다가 죽었는가 하는 것이에요. 그것은 바로 그의 묘비명에 그의 일생이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의 묘비를 한번 구경해 볼까요?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을 보고 디오판토스의 일생을 추측해 볼 수 있어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져볼 수도 있겠어요. 여러분들도 함께 풀어보세요.
   1) 디오판토스는 몇 살까지 살았을까요?
   2) 디오판토스는 언제까지 소년이었을까요?
   3) 디오판토스가 수염이 난 것은 몇 살 때일까요?
   4) 디오판토스는 몇 살 때 결혼했을까요?
   5) 디오판토스의 아들은 언제 태어났으며 언제까지 살았을까요?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x라고 하고 식을 세우면 이렇게 되겠네요.
    (x/6)+(x/12)+(x/7)+5+(x/2)+4=x          
  수학 기호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지금과 같은 수학 기호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어요. +, -, ×, ÷와 같은 수학 기호가 없었을 때는 그냥 말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눈다.’라고 나타낼 수밖에 없었겠지요?
  4세기에 디오판토스가 기호를 처음 사용했지만 지금 우리가 쓰는 수학기호가 만들어진 것은 그보다 훨씬 뒤였답니다. 14세기부터 수학 기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바뀌거나 고쳐져서 17세기에 지금의 수학 기호로 표준화 되었어요.

 + (더하기)

1300년경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피사노가 처음 사용했어요. 라틴어 et(and와 같은 뜻)을 쓰는 과정에서 ‘+’로 변하여 만들어졌어요.

 - (빼기)

1489년 독일의 비트만이 처음 사용했어요. 라틴어로 모자란다는 뜻의 minus의 m에 ‘-’를 긋고 쓰다가 m을 빼고 ‘-’만 따서 쓴 것이에요.

× (곱하기)

1631년 영국의 윌리엄 오트레드가 십자가를 본 따서 만든 것이에요.

÷ (나누기)

1659년 스위스의 요한 하인리히 랜이 처음 사용했는데, 분수를 표시한 모양에서 따왔다고 해요.

= (등호)

1557년 영국의 레코드가 ‘같다’는 표시로 평행한 두 개의 직선을 길게 그어 나타냈는데, 직선이 점점 짧아져 지금과 같이 되었어요.

>, < (부등호)

영국의 해리어트가 처음 사용했어요.


*사진 제목 및 출처
1. 영화 〈용의자 X〉 포스터
2. 데카르트/위키피디아
3. 디오판토스/위키피디아
4. 디오판토스의 묘비
5. 디오판토스의 일생

감수 : 이동흔 교사

수학자 / / 2019. 1. 25. 12:18

디오판토스(Diophantus)

대수의 발전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또 그 이후의 유럽 수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디오판토스(Diophantus)이다. 헤론처럼 디오판토스도 그 출생시기와 장소가 분명하지 않다. 물론 그가 헤론과 동시대인일 것이라는 약간의 증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를 3세기경의 인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 그리스 명시선집>에도 그의 생애에 대한 풍자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어떤 것도 확실하게 전해 내려온 것이 없다.

디오판토스에게는 세 개의 저작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산학, Arithmetica>

    <다각수에 관하여, On Polygonal Numbers>

    <계론, Porisms>

< 산학>은 디오판토스의 가장 중요한 저술로서 모두 13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나 그중 여섯 권만이 현존하고, <다각수에 관하여>는 단지 일부만이 현존해 있으며 <계론>은 분실되고 말았다.

<산학>은 대수적 수론을 해석적 논법으로 쓴 책으로서 디오판토스를 이 분야에서 천재로 만들어준 책이다. 이 저작의 현존하는 부분은 약 130여 개의 다양한 문제의 해를 다루고 있으나 대체로 1차 또는 2차방정식과 관계된 것이다. 매우 특별한 3차방정식 문제도 하나 풀려 있다. 제Ⅰ권은 미지수가 하나인 정 방정식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나머지 책에서는 두 개 또는 세 개의 미지수를 갖는 2차 또는 종종 고차의 부정 방정식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일반적인 해법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각 문제마다 그때 그때별한 방법으로 해가 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오판토스도 단지 양의 유리해 만을 인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의 답만으로 만족했다.

단지 유리해만을 구하는 부정 대수문제는 흔히 디오판토스문제로 일컬어져 왔다. 현대에 와서는 해의 조건을 정수로 제한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디오판토스가 이러한 종류의 문제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가 부정방정식을 푼 최초의 인물도 아니고 2차방정식을 기하하적이 아닌 방법으로 처음 푼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생략속기법의 대수적 표기를 이용한 최초의 인물이었음은 틀림없다.

디오판토스는 미지수, 미지수의 6승까지의 멱, 뺄셈, 등식, 역수 등에 대하여 생략포기를 사용했다. 그는 살았던 그리스 시대에는 주로 기하학만이 연구되었고 산수와 대수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디오판토스가 약자(또는 문자)를 도입함으로써 대수는 산수로부터 확실하게 구분되어 갈라지게 된다. 두 학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분되어 갈라지게 된다. 두 학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문자의 사용 여부이다. (또 하나는 음수를 수로 인정하느냐 하는 점이다.)

디오판토스의 이러한 공로와 수학에 대한 열정을 문제 하나로 대신한 그의 묘비명은 참으로 멋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이 비석 밑에는 디오판토스가 잠들어 있노라. 그는 일생의 1/6 은 소년으로, 1/12 은 청년으로, 그 후 일생의 1/7 은 혼자살다가 결혼한 지 5년 후에 아들을 낳았노라. 그의 아들은 아버지 생애의 1/2 만큼 살다가 죽었으며, 아들이 죽은지 4년 후에 그는 일생을 마쳤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