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임신 대처법 - cheongsonyeon imsin daecheobeob

(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황영주 인턴기자 = "여자친구가 생리가 안 나온다고 해서 약국에서 임신테스트기를 종류별로 사다 줬더니 임신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나 학교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8월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고등학생 임신 도와주세요 제발'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예전에도 불안해서 여자친구랑 응급실까지 가서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었는데 대체 어떻게 임신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병원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아 숨지게 한 후 야산에 유기한 A(19)양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화장실에 피를 흘린 자국이 있다"는 병원 측 신고를 받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 A양을 긴급체포했다. A양은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출산을 해서 너무 당황해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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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를 경험하는 청소년은 적지 않다. 예기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겪기도 한다. 출산 후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성교육과 피임법을 가르쳐 성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높이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 성관계 경험 청소년 절반 가까이 '피임 안 해'

지난 20일 종로구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 모(17) 양과 정 모(17) 양은 "주변에 이성 친구와 성관계를 맺은 학생이 있긴 하다"며 "대부분 콘돔을 구하기도 어렵고 피임은 귀찮아서 거의 안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가 2018년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4차(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5.7%였다.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로 조사됐다.

청소년의 피임실천율은 2013년 39%에서 2018년 59.3%로 20.3%포인트 가까이 증가했으나, 여전히 절반 가까이는 피임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이 피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은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하거나'(49.2%) '상대방이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33.1%)라고 답변했다.

또한 낙태와 관련해 국가가 해야 할 일로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 공동책임의식 강화'(27.1%), '원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 교육'(23.4%) 등을 꼽았다.

2017년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에 실린 '20, 30대 성인남성의 낙태에 대한 인식' 논문을 보면 "20~30대 남성 140명을 조사한 결과 70%는 낙태와 관련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며 "이들은 낙태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로 '교육'을 선택했는데 우리나라 성교육 내용에 대해 다시 분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성교육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학교 성교육과 관련해 학생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성교육의 효과 및 활성화, 성교육 패러다임의 전환, 교육방법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8년 11월6일부터 12월 5일까지 전국 중학교 1~3학년 4천65명을 조사한 결과다.

조영주 연구원은 해당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 연구' 보고서에서 " 중학생들의 성 관련 지식수준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자신들이 성에 대해 알고 있다는 수준과 실제 지식수준 사이의 간극도 컸다"고 설명했다.

201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생 4명 중 1명은 음란물을 본 경험이 있었지만, 월경이나 몽정 등 생리 변화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아이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조 연구원은 "성을 문제나 금기, 위험으로만 다루는 것은 변화하고 있는 청소년의 경험과 실천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오히려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성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함으로써 왜곡된 성에 대한 인식과 관점, 실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학교 3학년 쌍둥이 아들을 둔 강 모(47) 씨는 "학교에서 여러 자료를 가지고 교육하겠지만 돌려 말하지 말고 개방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가정에서 자녀와 성 관련 대화 필요

교육부 학교 성교육표준안에는 초·중·고 학생들이 연간 15시간의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관련 교과 수업에서도 적극적으로 다뤄줄 것을 일선 학교에 요청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B 고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권 모(31) 씨는 "신체·정신·사회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고 피임은 다양한 종류를 소개하며 콘돔으로 실습하고 있다"면서 "성교육이 선생님 재량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교육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우옥영 보건교육포럼 이사장은 "학교 간 성교육 양극화가 심하다"며 "안정적으로 성교육이 진행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학교 성교육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에 대한 가치, 사람에 대한 존중·책임 의식과 함께 피임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장에서 어려움도 있다. 최종찬 교육부 교육연구사는 "2015년 학교 성교육표준안을 만드는 등 학생들의 성교육을 체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성교육 정규교육과정은 국가 차원 교육과정 안에서 개편돼야 할 문제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유네스코가 말하는 성교육의 기본적인 목적은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지식, 기술, 가치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학교뿐 아니라 가정, 사회 전반에서도 성을 쉬쉬하기보다는 의식과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자녀와 성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NHN에듀의 '아이엠스쿨'이 지난해 설문 조사한 결과 학부모 10명 중 8명은 자녀 성교육 방법을 모른다고 응답했다.

대전의 한 청소년 상담사는 "이성 친구를 사귀는 10대의 상담 내용 대부분은 성관계에 대한 고민이다. 청소년의 연애가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잦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또 "임신 청소년 대부분이 '피임에 대해 들어봤지만 정말 임신이 될 리는 없을 것 같아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말한다"며 "말 그대로 '운이 나빠 임신했다'고 생각할 정도다"고 말했다.

'임신 이후'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교육도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초ㆍ중ㆍ고교 교과서 내용 중 사회적 차별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부분에 대해 교과부 장관에게 수정을 권고하면서 한 예로 고등학교 보건 교과서의 '10대 임신의 문제점'을 들었다.

인권위는 '10대가 임신하면 선천적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기 쉽다. 이 아이는 사회적·법적 차별에 직면하게 된다'는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 "청소년기 임신과 출산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 취지와 어긋난다"며 문제로 지적했다.

이어 "다른 교과서에서는 영유아 유기의 경우 범죄 행위임에도 하나의 상황으로 제시했는데 이는 적절치 못하다"며 "청소년 비혼 부모에게 가해질 수 있는 차별을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임신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출산 후에는 겁이 나서 아기를 버리거나 살해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활동가는 "청소년들은 불법을 감수하고라도 임신 중절수술을 할 만한 자원(돈)이 성인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후 죽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의 한 관계자는 "10대의 임신·출산이 주홍글씨가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청소년들에게 극단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각 학교가 의무적으로 10시간 이상 해야 하는 성교육도 유명무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름이 청소년성문화센터 인치은 운영팀장은 "성교육은 개인사에 따라 상담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번에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실이나 강당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성교육 VTR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지적했다.

정하경주 활동가는 "여자 청소년들은 상대방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면 자기를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성관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피임에 관해 요구하면 상대방에게 성에 대해 많이 안다는 데 그치지 않고 '문란하다'고 여겨질까봐 쉽게 말하지 못한다"며 "학교에서의 성교육 내용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은 수동적, 남성은 적극적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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