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의 필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에 한 장의 편지가 너울대고 있었다.

      '태원씨에게'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어디로든 바람에 날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난 나약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에게라도 기대고 싶은 이 나약함이 왜 생겼는지 당신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신은 왜 인간에게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소유하게 하였을까요? 한 사람만 평생 그리워하게 만들었다면 인간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신의 잔인함은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당신은 죽음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죠. 당신이 심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난 우리의 고통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의 장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죽음에서부터 삶에 이르는, 또 고통에서 황홀경에 이르는 전 범위를 담담히 지켜보는 것. 아무것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선택되어진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느낀 순간, 나의 고통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당신과 나 사이에 희망이 있을까요? 아마 희망조차 헛된 꿈일 것입니다. 당신과 만나면서 남편을 속이는 즐거움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누굴 속이면서 느끼는 단순한 쾌감이 아님을 이제는 알기 시작했습니다. 거짓말이 인간을 얼마나 굴욕적으로 만드는지 당신은 알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참으로 힘든 언어입니다. 남편을 속이는 것이 이제 고통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이렇게 몰래 편지를 쓰는 나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쩌면 그건 당신이 살아있음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겠죠.

     미래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 나는 당신을 통해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색다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울처럼 항상 나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당신의 열정적인 사랑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당신과 만나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유식함과 쾌활함이 나를 살아 있게 합니다. 이 느낌이 없다면 나의 삶은 먼지와 같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죽음에 대한 말은 앞으로 다시 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살아 있지 않는 세상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태원 씨,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내지 말고 참고 끝까지 들어주세요. 이 선영이를 자유롭게 놓아주십시오.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만남이 중단되어야 전 태원 씨와의 좋은 추억만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감정이 진행되면 저의 예감에 어쩐지 우리는 불행해질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의 가슴도 무척 아픕니다. 그러나 나중에 죽음과 같은 고통보다는 지금의 아픔이 덜할 것 같습니다. 부디 마음을 진정하시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언젠가 이런 불타는 감정이 조용히 가라앉으면 그땐 우리의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만남은 단지 육체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이 진정 영원한 사랑일 것입니다. 당신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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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부족한 글을 교정해주시고 연재해주신 시니어매일에 감사드립니다. 뻔뻔스럽게 소설이라고 이름붙이며 글을 쓰느라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몇 안 되시는 독자 여러분들이 끈기를 갖고 읽어 주셔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권영재 드림

◆감상문------------------------------

권영재 동문의 소설을 읽고

이정우 신부

"그대는 이순(耳順)에 소설을 썼다고 한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소설을 읽는 하루 종일, 내가 사는 팔공산 뒷자락 이 산골짜기 어릿골엔 2월 하순께의 눈발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발이 내려오며 숨어사는 나를 꾸짖고 있는 듯했다. 올해 봄맞이로 얼음장이 다 녹은 못물 위에 눈발은 내려오는대로 또한 녹아버리기도 했다. 

‘아련한 기억 속의 봄날’은 또 언제였던가. 봄날은 몇몇 번이나 오고 가고 또 오고 있는데, 지난 세월과 시간의 모습은 참된 삶의 뜻에 눈멀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오직 기억만으로 남는가. 

우리 젊은 시절의 그 파테틱하게 푸르던, 그러나 돌이켜보면 욕망에 사뭇 배고파하던 목숨들에 대해, 바람 속 눈발의 혼돈과도 같던 우리 젊은 날의 어쩌면 소유만을 위한 삶의 투쟁과 무상함에 대해 그대는 밤새워 아픈 기억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이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우리네 삶의 궁극적인 뜻을 그대는 애써 새로이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소유냐 삶-또는 가치-이냐?” 라는 소설 구조 속 깊이나 밑바닥에 감춰진 명제는 소유하고만 살려던 인생의 성찰에서 나온다는 걸, 그런 걸 알 때는 그만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건 그대가 아마도 병고 중에 정신적 초월의 의지로 이런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사유가 되었을까.

나는 이제쯤이야 ‘그냥 살아간다’는 별난 진리 하나 마음에 담고 새기며 살 뿐인데, 무슨 삶의 이론을 논하랴.

잘 알진 못하지만 ,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예든-그게 사랑이던- 그 어떤 소유를 위한 인간 필생(畢生)의 욕망고 투쟁은 그 근거가 육신의 안일과 평안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육신이란 늙고 소멸되어가는 것으로서 그것은 오래 가고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가치가 되지 못한다.

육신을 섬기기 위해 구하는 세상 사물도 사랑도 그러하다. 진정한 삶이란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다면, 소유만을 위한 노력은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뜻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 젊은 의사의 한없는 사랑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소유욕까지도 비극적인 결말을 낳고 마는 게 아닐까 싶다. 

한 인간 생애마다가 그러하듯, 없어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은 슬픔이지만 모든 잃은 것이야말로 기억 속에선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아, 그대가 도시에서 갖다준 소설을 읽는 날의 봄이 저만치 다시 오는 산과 들녘에 눈발이 덧없이 흩날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인생은 오고 감도 없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더욱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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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 (지은이) | 메이븐 | 2022년 11월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해 온 김혜남이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담은 책이다. 그녀는 지금껏 살면서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스스로를 너무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산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다 22년 전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없으면 집안도 병원도 제대로 안 굴러갈 것 같았는데 세상은 너무나 멀쩡히 잘 굴러갔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고, 놓쳐서는 안 될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벌써 마흔이 되어 버린,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도 딱 한가지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이 책은 2015년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출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10만 부 돌파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기념해 펴낸 스페셜 에디션으로 저자가 30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과 22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는 이유를 전한다. 또한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때론 버티는 것이 답이다’, ‘제발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하지 말 것’, ‘가까운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등 환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일 남보다 1%를 더 쌓아가는 사람의 기적"

헬스장에서 개인 트레이닝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트레이너들은 왜 한 세트에 열다섯 개 한다고 해놓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전신을 부들거리며 마지막 한 개를 들어 올리고 있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를 외치는가. 처음부터 하기로 정한 만큼만 하자고 불평해보지만, 트레이너는 단호하다. "회원님, 못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이후부터 하는 것만큼이 운동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한계치에서 한 번씩 더 기구를 들어 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바벨이 가볍게 느껴지며 근력이 붙어가는 것을 실감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그리고 트레이너는 기뻐하며 바벨에 중량판을 추가해준다.

결혼 후 신혼집 전기요금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빈곤하게 살다가 십수 년 만에 세계 최고의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에드 마일렛의 성공 비결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하다. "남들보다 딱 1퍼센트만 더한다고 생각하라. 모두가 멈추는 곳에서, 딱 한 걸음만 더 나가라." 남들보다 한 번 더 전화하고, 한 번 더 찾아가고, 한 번 더 설득하며 하루하루를 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폭발적인 티핑포인트를 통과하며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 싶은 지점에서 '한 번 더' 시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이든, 학업이든, 운동이든, 이 책이 우리가 성취를 얻고자 하는 영역에서 개인 트레이너처럼 "마지막으로 한 번 더!"를 외쳐줄 것이다.

- 편집 주간회의

"미야베 미유키, 기타기타 시리즈 신작"

여름에는 금붕어와 부채, 물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불꽃놀이를 비롯한 계절의 분위기를 담뿍 머금은 그림을 그려넣은 '붉은 술 문고'. 절기의 풍류를 밑천으로 하는 장사답게 에도 사람들의 구미에 잘 맞춘 상품으로 성업 중이다. 멜대 가득 문고를 메고 거리를 다니는 행상 기타이치는 각종 소문과 수수께끼도 덤으로 듣게 된다.

주류 도매상을 하는 겐에몬이 매년 단골 손님들에게 직접 그려주는 칠복신 그림에 아기를 점지해주는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에도 저잣거리에 파다했다. 수년간 간절히 아이를 원했던 한 부부도 겐에몬을 찾아 그림을 받았고, 역시 길몽과 함께 소원을 이뤘다. 그런데 그 아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깊은 슬픔 속에서 예전에 받았던 그림을 다시 꺼내본 부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림에서 칠복신이 사라진 것이다. 신이 노해서 아기를 저승으로 데려간 것일까. 이 괴이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한 문고상 기타이치의 활약이 시작된다. 미야베 미유키가 필생의 과업이라 칭한 '기타기타 시리즈' 신작.

- 편집 주간회의

우케쓰 (지은이), 김은모 (옮긴이) | 리드비 | 2022년 10월

"SNS를 휩쓴 부동산 괴담의 전말"

이 거대한 이야기는 도쿄에 집을 마련하려는 지인의 상담에서 시작됐다. 매매하려는 단독주택의 평면도에 이상한 공간이 있어 찜찜하다는 것이다. 괴담을 사랑하는 오컬트 전문 작가 '우케쓰'는 즉각적인 호기심을 느껴 한 건축 설계사에게 주택 평면도를 보여준다. 그는 불안해하며 수수께끼의 공간 외에도 집 구조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문이 없는 공간, 이중문, 창문이 없는 아이 방, 비효율적인 구조.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설계사는 한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그것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였다. 우케쓰는 이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SNS에 올렸고, 이는 2020년 일본과 한국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그리고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2021년 일본 호러 미스터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우케쓰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 연락해온 수수께끼의 여인, 도쿄의 '이상한 집'을 꼭 닮은 다른 지역의 집들, 이웃 주민들의 목격담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이야기.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전에 공개됐던 이야기는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는 것뿐이다.

- 편집 주간회의

정경화 (지은이) | 북스톤 | 2022년 11월

"자주 실패하고 간혹 성공하는 이야기"

네카라쿠배당토. 듣고 있자면 어쩐지 수인을 맺거나 땅바닥에 마법진을 그려야 할 것 같은 이 단어는 현재 MZ세대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IT기업 사명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이 단어 가운데 '토'를 담당하고 있는 토스는, 무간지옥 같았던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각종 보안프로그램 반복 설치로부터 우리를 해방한 간편 송금 서비스에서 시작하여 뱅킹, 증권, 보험, 결제 등을 아우르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해왔다. 이 책은 토스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토스팀, 비바리퍼블리카의 11년 도전사이다.

30대 치과의사가 '앱 하나만 만들어보자'며 시작한 이래, 토스는 11년 동안 부끄러운 실패, 절체절명의 위기, 돌아보니 중차대했던 결정, 짜릿한 성공의 순간을 거쳐 2,000명의 공동체로 성장해왔다. 2020년 토스팀에 합류한 콘텐츠 매니저인 저자는 전현직 토스팀원 35명의 인터뷰와 이메일, 슬랙 메시지, 언론 기사나 영상 등 안팎의 자료를 망라하여 토스의 유난한 도전사를 정리했다. 이 이야기는 내부자의 손으로 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이 이야기는 성공적인 창업 지침서나 핀테크 경영서라기보다는, 한 편의 모험 활극처럼 보는 이를 흥분시키고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아직 엔딩을 보지 못한, 현재 진행형이다.

- 편집 주간회의

"제러피 리프킨. 전 세계 동시 출간"

우리가 알던 세계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개발하고 확장하고 뻗어 나가는 것이 곧 옮음이라 믿던 진보의 시대는 파국을 불러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경제,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새로운 문명의 서사를 제시한다. 적응과 어우러짐, 생명애 의식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회복력의 시대다.

리프킨은 회복력 시대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한다. 그는 우리가 그간 가져온 세계에 대한 상을 산산이 부숴 근본부터 다시 세우길 제안한다. 자연과 문명의 관계, 자본의 작동 방식, 소유권의 주체 등 모든 방면에서의 전면적 변화만이 이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늦었어도 포기할 수 없다. 좌절이 일상이 된 세계에 희망을 눌러 담은 로드맵이 도착했다.

- 편집 주간회의

저자가 활동했던 17세기 스페인 귀족 세계는 겉으로는 화려함을 과시했으나, 안으로는 속임수와 음모, 배신이 가득했다. 정중한 궁정 행동 지침만 가득할 뿐, “지혜로우면서도 현실적인 선택”에 관한 실용적인 가르침은 부족했다. 그라시안은 많은 함정과 악한 행동을 미리 경고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손에 잡히는 지혜를 전하고자 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 몽테뉴, 파스칼 같은 17~18세기 유럽의 기라성 같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쇼펜하우어는 독일어로 직접 번역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따로 배웠을 정도였다. 이후 프리드리히 니체도 이 책을 극찬했고, 영어판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으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바로크 시대 유럽의 모럴리스트들은 성서에 나온 예시와 경구를 바탕으로 당연한 대답만 내놓았기에 결론도 뻔했다. 그러나 그라시안의 글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했기에 몇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와닿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그의 글이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과 삶의 중요한 원리들을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이 46번째로 출간한 『사람을 얻는 지혜』는 국내 최초로 1647년판 스페인어 원서에서 직접 옮겼으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연구자들의 최신 연구결과를 반영했다. 본문을 생략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원문 순서 그대로, 텍스트 전체를 모두 소개하는 최초의 버전이다. 198개의 각주와 친절한 해제를 통해 당시의 사회·문화 및 종교적 배경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돕고 있으며, 300개 글의 맥락을 정확히 보여주는 제목을 달아 한눈에 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인간에게 전하는 사랑 가득한 노신부의 “지혜롭고 실용적인 300개의 통찰”을 선물로 받는다. 400년의 간격이 무색할 정도로 인생 명언으로 다가올 것이다.

"<천 개의 파랑> 천선란의 소설적 애도"

어떤 책은 우연하고도 적절하게 소설적인 시점에 우리를 찾는다. 전쟁시대였을 2844년에 만들어져 사막에 정지되어 있던 로봇 고고는 인간인 '랑'에 의해 전원이 켜져 생명을 다시 얻었다. 랑은 인간답게 어느날 엔진이 꺼지듯 심장이 멎었고, 이제 고고는 '랑'이 가고 싶어 했던 과거의 바다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랑에 대한 애도를 시도한다. 이 애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고고는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여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고원 등지에서 조장鳥葬이 시작된 것은 것은 물과 공기가 부족한 환경 때문이리라 추측된다. 티베트에선 인간의 영을 하늘에 전달하기에 새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다. 고고는 인간인 랑이 다른 인간에게 했던 것처럼 랑의 몸을 사막에 묻었고, 인간의 그리움을 복사해 랑의 감정을 따라해보려 시도한다. 과거로 돌아가 푸르게 잎을 피운 나무를 보고 싶다는 인간적인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으면서도 랑이 보고 싶어했다는 이유만으로 과거를 향해 모래바람을 걷는 '나'. 애도의 여정에서 만난 인간과 로봇과 외계 생명체와 대화하며 고고는 그들의 사막과 나의 사막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10월은 이유 없이 갔다. 존엄한 작별에 대한 적절한 우화를 읽기에 적당한 11월의 첫 주, 천선란의 소설을 소개한다.

- 편집 주간회의

"방식은 달라도, 공식은 통한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더 자유롭게 공부하기 위해 저자는 중학교 2학년, 만 14세에 학교를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저자는 '학교 밖 공부'를 통해 신나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채워갔지만, 가슴 한구석이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혼자 공부하며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큰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기에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대학에 가자!'

'10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 첫해, 의미 있는 결과를 이뤄냈지만, 아쉬움이 남아 다시 1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게 된다. 최종 결과는 연세대 당해 연도 '최연소' 합격. 경험도 시간도 경쟁자들보다 턱없이 모자란 상황에서 차곡차곡 노하우를 쌓아가며 자신만의 '합격 공식'을 만들어 마침내 원하는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합격 공식>은 저자가 입시를 준비하며 1년 10개월 동안 쌓아 온 데이터를 공식화해 담은 책이다. 저자는 동기, 잡념, 시간, 계획 4가지 키워드를 사칙연산에 빗댄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 냈고, 이를 압축한 '3배속 공부법'을 소개하고 있다. 공부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이 책이 독자들에게도 공부에 대한 관심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편집 주간회의

"세계화의 종말"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세계는 미국이라는 유일 초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시대를 맞았다. 그 결과 지난 30년 동안 물가, 임금, 금리, 자원 등 여러 측면에서 세계 경제에 유례없이 특별한 상황이 펼쳐졌다. 새롭게 세계 경제에 편입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자원 탐사와 개발이 크게 확대된 덕분에 자원 가격은 안정되었고,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유휴노동력이 공급되어 낮은 노동비용으로 값싸게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다. 자본의 국경이 사라지고 어디서든 싼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저금리가 오래도록 유지되었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함께 전 세계의 자원과 노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세계화의 시대는 이제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있다. 중국이 일대일로와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과 중국, 러시아 진영 간 패권 전쟁이 가시화되었다. 주요 선진국 내부에서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중산층이 세계화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진영의 세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제 탈세계화와 패권 전쟁이 야기할 세계 경제의 격변에 대비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 박종훈 기자는 이 책에서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의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최신 글로벌 경제 이슈를 분석했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의 정치경제적 배경과 속내, 이것이 세계 경제와 나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효과가 궁금하다면 저자의 분석에 귀를 기울여보자.

- 편집 주간회의

"미쓰다 신조 괴담집"

어려서부터 집과 관련된 괴담에 매혹된 '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건축 도서를 기획하기도 하고, 주택 평면도를 보고 상상에 잠겨보기도 하다가 결국 집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된다. <호러 작가가 사는 집>이라는 장편소설 데뷔작을 발표하고 <화가>에서 <마가>로 이어지는 '집 시리즈'를 쓰는 호러 작가가 된 '나'에게는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일을 털어놓고 상담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그렇다. 작중 화자 '나'는 미쓰다 신조와 거의 일치하기에,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의 이상한 경험담을 모은 이 책도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흐리며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결계가 쳐진 낯선 저택에 당도해 일곱 가지 금기 사항을 지키며 무시무시한 밤을 보내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 '은거의 집', 순진무구한 아이가 무의식중에 그린 그림 속에서 큰 불행이 암시되는 '예고화', 한 무명작가가 신흥종교 신자들의 시설에서 야간 경비를 하며 목격한 괴이한 일을 다룬 '모 시설의 야간 경비', 할머니의 부탁으로 찾아간 타지의 집에서 무서운 것을 불러내고 만 '부르러 오는 것', 비 오는 산책로에 차례로 나타나 괴담을 들려주는 사람들을 목격한 북디자이너의 고백 '우중괴담'. 다섯 개의 괴담에 순식간에 빨려 들며 긴장하는 사이, 작가의 소회가 훅 덮친다. "그것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이상한 사건을 소설로 쓴 작가, 혹은 이 작품을 본 편집자나 독자가 있는 곳으로 그것이 찾아가는 일은 없을까."

- 편집 주간회의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치는 경제 상황 속에서 2023년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우리의 미래 자산을 좌우할 것이다. 보유 자산을 최대한 지키면서 부를 더 불려가고 싶은 이들을 위해 반드시 알고 대비해야 할 45가지 핵심 머니 트렌드를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켰다. 부동산, 주식, 메타버스, 인구, 재테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돈의 흐름을 전망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크고 작은 노하우와 전략을 한데 모았다. 도합 250만 명의 구독자가 열광하는 유튜브 채널 부읽남TV의 정태익, 김작가TV의 김도윤은 내년 경제 전망과 현실적인 재테크 방법, 자산 관리법을 알려달라는 수많은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최고의 전문가들과 만났고, 마침내 ‘돈을 주제로 한 최초의 트렌드서’ 『머니 트렌드 2023』이 출간됐다. 이 책은 장기 불황에도 꿋꿋하게 성장하기 위해 전국민이 꼭 알아야 할 부의 트렌드를 핵심만 골라 담은 전문서로, 누구보다 빠르게 돈의 흐름을 붙잡고 싶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무너진 지금같은 시기일수록, 다음 상승장을 위해 꼼꼼히 준비하고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부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2021 공쿠르상 수상작, 사라진 작가를 찾아서"

T. C. 엘리만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발표했을 때 프랑스 문단은 환호를 보냈다. "흑인 랭보의 탄생", "프랑스에서 본 적 없는 책", "성스러운 책"이라는 찬사 속에 비상하던 그의 날개는 단번에 꺾이고 만다. 어느 아프리카 민족학 교수가 세네갈의 한 부족 신화를 그대로 베낀 책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쏟아지는 모욕 속에서 엘리만은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고 출판사는 책을 전량 회수해 폐기했다. 그렇게 그는 증발해버렸다.

세네갈에서 시인의 꿈을 안고 파리로 온 디에간은 우연히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읽고 충격을 금치 못한다. 언제나 "한 권만 쓰면 다른 책은 필요 없어지는 책"이자 "나를 문학에서 해방시켜줄" 단 한 권의 책을 쓰고자 고군분투했던 디에간에게 엘리만의 책은 바로 그런 책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작품을 쓰고 침묵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었을까. 디에간은 엘리만의 삶에 이끌려 생사가 불분명한 그의 자취를 좇게 된다.

2021년 공쿠르상은 큰 화제를 모았다. 사상 최초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출신 작가가 수상했다는 것과, 이 책이 프랑스 문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아프리카인 작가로서 유럽에서 활동한다는 것에 대하여. 짙은 이국의 향을 풍기는 "아프리카인이 되라고, 하지만 너무 많이 되지는 말라는" 양립 불가능한 요구를 받고, 문학상을 수상해도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영예를 나눠준" 것은 아닐지 의심하는 것이다. 소설 속 엘리만의 말이 같은 슬픈 역사를 지닌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파고든다. "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 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거야."

- 편집 주간회의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람들. 세상은 이들을 ‘WEIRD(위어드)’라고 부른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가진 이 집단은 역사 속에서 등장한 세계의 많은 지역, 그리고 지금까지 살았던 대다수 사람과 달리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에 집착하고, 통제 지향적이며,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지 않고, 분석적인 동시에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 이들은 관계와 사회적 역할보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특성과 성취, 열망 등에 초점을 맞춘다. 과연 이 집단은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심리를 갖게 된 걸까? 또 이런 심리적 차이는 지난 몇 세기에 걸친 산업혁명과 유럽의 전 지구적 팽창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위어드》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다루며 인류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의 첨단 연구를 하나로 엮는다. 가족 구조, 결혼,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한 끝에, 저자는 이 제도들이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고,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담아냈다. 또한 일부일처 핵가족의 기원을 고대 후기까지 추적하며 로마가톨릭교회가 가장 기본적인 인간 제도(결혼과 친족 제도)를 변형시킴으로써 어떻게 의도치 않게 사람들의 심리를 변화시키고 서구 문명의 궤적을 이동시켰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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