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양 걸어서 몇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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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서울까지

서구문화원

날짜 2018-10-02 19:19

부산 한양 걸어서 몇 일
오랜 꿈이 있다.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는 것. 버스, 기차, 비행기로 금방 가버리는 순간이동으로 가지 않고 두 발로 한 걸음씩 걸어서 가 보고 싶다. 그 소망은 여태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 뿐 아직껏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늘 한해가 끝날 무렵이면 이 계획은 다음해 버스킷리스트로 넘긴다. 어쩌면 실현하지 못할 소망이 될 것 같아 이제는 스스로를 믿기도 어렵다.

이런 계획을 거창하게 국토순례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단지 나를 낳아준 땅을 두 발로 ‘스킨십’하면서 국토의 품을 더듬어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 생애 한 번이라도 이 땅을 두 발로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은 것. 가다가 해가 지면 여인숙 같은 데서 자고 다음날 또 일어나 길을 걷고 그러노라면 강산에 어려 있는 선조들의 역사, 혼과 마주하면서, 어머니인 국토로부터 위안과 자긍심을 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다.

옛날 조선시대 청년들은 괴나리봇짐에 가득 청운의 꿈을 담아 짊어지고 서울로 갔다. 과거시험을 보러, 혹은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 달여의 시간을 미투리 몇 짝을 허리춤에 달고 강나루 건너고 고갯마루를 오르며 천리 길을 걸어갔다.

국토의 산천경계를 둘러보며 주막에서 자고 가다가 산적을 만나면 털리기도 하면서 ‘사람은 서울로’하는 행렬에 섞여들었다. 그렇게 두 발로 땅을 걸었기에 이 땅의 강산, 풍속, 인심을 소재로 한 시문을 많이 남겼는지도 모른다. 문집은 물론이고 정자 같은데 시를 새겨 걸어놓기도 했다.

걸어가면 국토를 터전삼아 살아가는 갑남을녀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떻게들 사는지, 인심은 어떤지, 고을마다 재마다 서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서울까지 걸었다. 그 시절에 서울을 간 민초들이 얼마나 되었을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직도 그 옛길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봇짐장수가 걷던 길, 이몽룡이가 걷던 길, 홍길동, 임꺽정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길을 걸어서 서울까지 가보고 싶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트래킹화도, 등산모자도, 배낭에 구급약과 먹을거리, 물, 책, 지도, 칫솔, 면도기, 스틱 등등.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걸어서 서울까지 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몸이 건장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무리다 싶다. 우선 몸만들기가 필요할 듯하다. 다리에 근육도 붙여야 할 것 같고. 이런저런 것들을 살피다보니 오랜 꿈은 결국 더 오랜 꿈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옆에서 아내는 턱도 없는 생각이라며 아서라고 말한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탈이 날 거라며 그런 무모한 계획은 힘이 넘치는 젊었을 때라면 모를까 꿈을 깨란다.

조선팔도를 세 번이나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는 실측 답사 끝에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김정호는 아마도 이 땅에 살다간 사람 가운데 가장 국토를 최애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몸을 이끌고 다니며 실측했다는 이야기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어쨌거나 고산자가 방 안에 틀어박혀 기존 자료들만 가지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한번은 돌아다녀 보지 않았을까. 김정호가 이 나라 강산을 두루 돌아다녀보고 나서 답사기까지 남겨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걸어서 서울까지 천리 길 도보행이 실현된다면 당연히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천리길 도보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 수영선수 조오련이 대마도까지 바다를 헤엄쳐 간 일이 있다. 그때 조 선수는 상당 기간 몸만들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배낭에 들어갈 물건들만 준비하고 천리 길을 간다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지금 이대로 집을 나선다면 백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말 것이다. 한양 천리 길을 도보로 가보겠다는 꿈은 어쩌면 온몸으로 국토를 껴안아 보고 싶다는 간절함의 극에서 나온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땅에 태어나서 가장 해볼 만한 일이 그것 같기도 하다. 천리 길을 걸어봄으로써 비로소 이 땅의 아들로 인증되는 것 같은.

광주에서 서울까지는 720킬로미터라는데 하루 25킬로미터, 즉 하루 60려리 남짓 걸으면 될 터이다.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홀로 쓸쓸히 천리 길을 걷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천리 길 생각을 하다 보니 해마다 5월을 택해 서울에서 또는 부산에서 광주까지 한 사람이든 몇 사람이든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에게는 광주가 그에게 인권도시의 이름으로 기념 돌담장을 만들어 거기에 이름을 새겨주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

천리 길을 걸어서 광주로 오는 사람들을 무등산이 광주를 품듯이 광주가 그들을 안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애 한번은 서울이나 부산에서 광주까지 걸어보는 것을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의례로 만들어간다면. 남도의 세례를 받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나저나 올해 안 되면 내년에는 기필코 한번 시도를 해보고 싶다. 신암마을, 절골, 무내미재, 말목, 신거무다리, 못재, 미륵석불, 원덕리, 갈아바위, 갈재 길을 걷는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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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 2일차.

총걸은거리 약 35km

성남->광주->이천초입까지...

자전거길이니 이리저리 도는 거리가 3km는 더되는듯하다.

오늘은 집에서 이천까지 걸어간다..

일단 하늘한번 찍어주고~

걷기 딱좋은날씨??

아니다... 한여름에 10시간이사 걷는다는건

2일차 신발..

이놈의 신발이 정말 미스였다..

정말 쉽게 생각하고 신고 떠난 운동화...

몇일뒤... 큰결심을 하게되는데..
 

성남시내를 관통하고

이천으로 넘어가는 고개..
 

ㅇ이도로는 사람들이 다니질 않는다.

보도블럭에 잡초보소...

도보여행중 가장 힘든것이 이놈의 언덕이다..

찌는듯한 더위에 언덕을 올라가는게 여간힘든게 아님..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니.. 겁나 쫄면서 걸어감..

이런 쫄음도 5일차가 넘어가면서부터

둔해짐....
 

이배재고개.....
 

옛날 경상도 충청도 선비들이 과거를 보고자 한양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로 정상에 이르면 서울이 보이므로

한양에 도착하였다고 임금에게 절하고나서

고향의 부모님에게 절하였다.

두번 정한 고개라하여 이배재라 한다.
 

이배재 고개에서 쉬웠던 공원.

사진으로 잘나와있지만..

비온 다음날이라.. 습함이 최고였던.. 기억이..
 

걸어서 걸어서 걷다보니

탄천옆으로 보이는 콩나물 국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정말 구름한점없는..

걷다보면.. 음..

이거 찍을만한데??? 라고 생각날때마다 찍는

그냥 흔한 다리
 

꼬맹이들이 탄천에서 놀고있기에..

음... 찍어야지..

하고 찍은 사진..

아래사진은 정말 왜 찍었을까???
4개월이 지나고 작성을 할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쨔잔 실물 대공개!!

쉬면서 찍은 셀카!!
 

ㅋㅋㅋ

아직은 얼굴이 하얀데????

아직 살만한 얼굴..

마지막 날과 비교한번해보면...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나는 편의점 커피를 안먹는편인데..

걷다보면 편의점의 중요성을 3일차부터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

땀은나고,, 쉴곳은 없고,

걷다가 쉴공간이 마련되면,

무줘건 쉬어라...!!

그것이 정답이다..
 

아래사진은 아마~~!!

편의점에서 쉬면서 바지에 소금기가 보여서 찍었는데...

ㅋㅋㅋ 이건 새발의 피!!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알게된다..
 

음... 아래사진도

내가 지나온길을 기념하기위해  찍은사진이 아닐까??

그냥 막찍게 된다..

왜?? 고독하고 난 위대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 사람이란

자기 위안을 하니깐..
 

정말 무지막지하게 걷다가.....

그렇게 걸어도 서울로가는 시외버스가 보인다...
 

걸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여행하면서

꼭놓치지 않은것..

내가 지나간 도시와

지나갈 도시 표지판은 어떻게든 꼭 사진으로 남겼다..
 

안녕~~~ 난 이천이라고해~^^
 

일반 표지판이아닌...

큼지막한 이천 표지판이 보여 찍어보다..

 

그렇다..

아래 사진은 소금기 쩔은 바지...

오늘묵을 숙고 옆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
 

이집은 비추...

짜다...

그냥 힘드니깐 먹었다..

ㄷ더이상 걸어갈 힘이 없으니까...
 

오늘 잠을 청할 숙소...

보통 숙소는 장급 모텔에서 해결...

3만~4만원 사이..

난 찜질방에서 못잔다..

쓸데없이 예민하니깐..

나에게 잠만큼은 편하게 쉴수있게

나에게 선물한다.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기위한 라면과 김밥

오늘을 기념하기위한 맥주..
 

다리에 파스한방 붙혀주고 잠을 청한다..